도서: 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저자: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
제 4 장 과월절의 어린 양
18.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의 어머니와 …가 서 있었다(요한 19, 25)
이 언덕길에서 형장의 광경을 바라보시며 겪으시는 성모 마리아의 고통과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그분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겪고 계신 내면의 고통이었으며, 살아 남아있는 당신 자신에 대한 한(恨)의 마음이셨다. 그들은 완만하게 비탈진 언덕의 서쪽 편 길로 올라간 다음 원형으로 둘러싸여진 담벽으로부터 세 공간을 두고 연이어 섰다. 예수의 어머니와 그분의 조카딸인 마리아 글레오파 그리고 살로메와 요한이 원형 벽으로 가까이 가 섰다. 그리고 그 뒤로 마르타, 마리아 헬리, 베로니카, 요안나 쿠자, 수산나 그리고 마리아 마르코가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막달레나를 둘러싼 채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섰다. 그리고 일곱 명 가량의 다른 사람들이 그들과 친교를 맺어 온 대부분의 호의적인 사람들과 함께 더 뒤쪽으로 사이를 두고 서 있었다.
판결이 내려진 날에는 아침 열시경까지 간헐적으로 우박이 쏟아졌다. 다시 밝은 하늘과 햇빛이 보이다가 열두시경에는 태양이 어슴프레한 붉은빛으로 가리어졌다.
태양이 가리어진 후 그들은 열두시 십오분경에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우리 구세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그 놀라운 순간에 몇 분간은 암흑에 싸여 조롱과 야유의 함성이 잠시 멎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요란한 트럼펫과 나팔 소리가 성전으로부터 이쪽으로 들려 왔다. 과월절 어린 양의 도살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십자가는 이 피트가 넘는 높이로 세워져 있었다. 십자가의 발이 매달려 있는 부분의 나무가 아래쪽 나무의 홈파진 곳에 끼워졌을 때 예수의 발은 어른 키의 높이에 있게 되었다. 십자가가 견고하게 고정되었을 때 예수의 벗들은 그분의 발을 끌어안고 입을 맞출 수 있었다. 언덕에 이르는 길은 가파르게 경사져 있었다. 예수의 얼굴은 북서쪽을 향하고 계셨다.
백 명의 로마 군인들은 그들의 지휘자와 함께 골고타 언덕을 떠났으며, 새로 오십 명의 다른 로마 군인들이 교대로 올라와서 그곳을 지켰다. 새로 도착한 부대의 총책임자는 아라비아 태생의 아베나다르였는데 나중에 그는 세례를 받고 체시폰이라는 영세명을 얻는다. 그리고 함께 온 카시우스라고 불리는 하사관은 빌라도의 일종의 부관이었는데 후에 론지누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때 시간은 여섯시(유다인들의 시간으로 – 역자 주)였는데, 해가 지나가는 위치로 보아서 내가 보기에는 열두시 삼십분경이었다. 유다의 시간은 다르게 계산되는데, 그것은 시간을 태양의 주기에 따라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태양이 빛을 잃고 캄캄해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그 같은 현상의 진행 과정들은 나에게 상세하게 보여졌는데도 나는 유감스럽게 그것을 잘 정리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 현상을 말로 다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마치 내가 지구 밖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온갖 종류의 천체들과 유성들의 궤도들이 불가사의하게 기적적으로 서로 뒤섞여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지구의 다른 편에 있는 달을 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유성처럼 빠르게 달리거나 급격한 변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다음에 나는 예루살렘에 있게 되었는데, 거기서 흰빛을 발하는 만월이 올리브 산 위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태양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으며, 그때 동쪽으로부터 달이 매우 빠른 속도로 태양 앞으로 다가왔다. 처음에 나는 태양으로부터 동쪽 방향에서 마치 거무스럼한 안개의 층적(層積) 같은 것을 보았다. 이 층적은 산더미처럼 커지더니 곧 태양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이 같은 형상의 중심 부분은 담황색으로 덮여 있었고 그 주위는 마치 작열하는 환상 고리 같은 것이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어졌다. 그리고는 붉은 색을 띤 별들이 희미한 빛을 발하며 나타났다. 그 모양은 인간과 짐승들에게 경악할 만큼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다. 모든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예수의 어머니와 막달레나와 마리아 글레오파 그리고 요한은 강도들을 매달아 놓은 십자가 사이에 서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았다. 완전한 모성애로 충만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예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내심으로 열절히 간원하셨다. 그때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어머니를 지극히 진지하시고 자애로우신 눈으로 바라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시선을 요한에게로 돌리셨다. 그리고는 성모께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마치 당신이 낳으신 아들처럼 아주 훌륭한 아들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요한을 칭찬해 주셨다.
“요한은 언제나 악의가 없고 믿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높여 주기를 원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화를 낸 일이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이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
요한은 이제 자신의 어머니가 되신 예수의 어머니를 세상을 떠나고 계신 구세주의 십자가 아래서 공손하게 포옹해 드렸다.
한시 삼십분경에 나는 도시로 인도되었다. 나는 거리들이 어둠과 혼란에 휩싸여 있는 것과 사람들이 공포 속에서 당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성전 안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이 과월절의 어린 양들을 도살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어두운 밤이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이리저리 방황하였다. 여기저기서 불안에 떠는 비탄의 소리들이 들려 왔다. 대사제들은 질서와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들을 강구하였다. 대낮의 시간인데도 모든 사람들은 램프에 불을 붙여야만 했다. 그러나 혼란은 여전히 더 커지기만 하였다.
십자가 주위는 이제 정적에 잠겨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딴 곳으로 발길을 돌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피해 달아났다.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께서는 끝없이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뼈저리게 고독을 느끼셨다. 그런 중에서도 그분은 원수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을 위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향하신 채로 기도를 드리셨다. 그분은 그토록 혹독한 고통 속에 계시면서도 끊임없이 시편을 음송하시며 그 내용이 당신께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다.
그분은 인간의 위안도 하느님의 위로도 없는 가장 고독한 상황속에서 혹독한 수난에 짓눌린 인간이 겪는 모든 뼈저린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분은 수난 중에 겪으시는 그분의 버림받은 소외감을 표징하시는 말씀을 큰소리로 외치셨다. 그 외치심을 통해 극도에 이른 모든 고통들의 압박 상태를 드러내셨다. 그를 통해 사람들이 그들의 아버지로의 하느님을 인식토록 하시면서 친밀하게 호소하는 자유를 나타내 보이셨다. 세시경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큰소리로 외치셨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세시가 지나자 다시 밝아졌다. 태양을 가렸던 달이 반대 방향으로 비켜 나가기 시작했다. 태양은 광선을 발하지 않는 모습으로 드러나 있었는데 안개에 휩싸인 채 불그스름하였다. 그리고 달은 마치 낙하하듯이 반대편으로 급히 사라졌다. 햇살이 다시 비추기 시작했으며 별들이 사라진 하늘은 여전히 희끄무레하였다. 사방이 더 밝아졌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몸이 창백하고 쇠약해지신 모습으로 드러났다. 주님은 매우 피를 많이 흘리셔서 전보다 더욱 핏기가 없으셨으며 몹시 여위어지셨다. 예수께서는 메마른 혀로 말씀하셨다.
“목이 마르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분의 탄식하시는 듯한 말씀을 듣고는 그분께 마실 물을 제공하도록 병사들에게 돈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병사 중의 한 명이 초에다 배(梨) 모양의 해면을 담갔으며 그 위에 쓸개즙을 끼얹었다. 그러나 예수께로부터 감동을 받고 있던 아베나다르는 병사가 갖고 있던 해면을 빼앗아 그것을 꽉 쥐어짠 다음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초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해면의 끝부분을 짧은 히솝 풀대에 꽂았다. 그 히솝 풀대는 빨대로 이용되었다. 그는 창의 뽀족한 끝부분에 이것을 붙들어 맨 다음 예수의 얼굴에 가까이 올려 드렸다. 그래서 그 히솝 풀대가 예수의 입에 닿았으며 그것을 통해 예수께서는 해면에 담긴 식초를 빨아 드실 수 있었다.
주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가 이르렀을 때 단말마의 고통을 받으셨다. 그분의 몸에서 식은 땀이 솟아 나왔다. 요한은 십자가 옆에 서서 그의 땀수건으로 예수의 발을 닦아 드렸다. 마음이 비통으로 완전히 으깨어진 막달레나는 십자가의 뒤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예수의 십자가와 착한 강도의 십자가 사이에 서 계셨으며, 마리아 글레오파와 살로메가 그분을 받쳐 드리고 있었다. 성모께서는 죽어 가는 당신의 아들을 보시고자 얼굴을 위쪽으로 향하고 계셨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다 이루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위쪽으로 드시고 큰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크고도 명쾌한 그 외침의 소리는 하늘과 땅에 골고루 감미롭게 퍼져 갔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머리를 숙이신 채 숨을 거두셨다.
예수께서 식초를 잡수시게 한 백인대장 아베나다르는 말을 탄 채 십자가가 있는 언덕의 아주 가까이서 계속 지키고 있었다. 오랫동안 깊은 감동 속에 마음의 충격을 받고 있던 그는 가시관을 쓰신 우리 주님의 얼굴을 진지한 모습으로 줄곧 바라보았다. 그런중에 예수께서 마지막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갈라져 나가면서 예수의 십자가와 왼쪽 강도의 십자가의 사이가 넓게 벌어졌다. 그때 은총이 아베나다르에게 내렸다. 그는 창을 던져 버리고 힘쎈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세게 치면서 새로워진 인간의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브라함과 야곱의 하느님은 찬미받으실지어다. 이분이야말로 올바른 사람이었고, 진실로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백인대장이 외치는 이 말을 듣고 많은 병사들이 깊은 감동을 받아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였다.
구원받은 새 인간으로서 이제 하느님의 아들에게 공공연히 충성을 하게 된 아베나다르는 더 이상 그분의 적대자들에게 헌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하사관 카시우스에게로 말(馬)을 돌렸는데, 카시우스는 후에 론지누스라고 불리게 된다. 그는 말에서 내린 후 창을 집어 들어 론지누스에게 주고는 그와 병사들에게 몇 마디 말을 했다. 이제부터 카시우스가 말에 올라타서 병사들을 지휘했다. 아베나다르는 급히 갈바리아 산에서 벗어나 기혼 골짜기를 거쳐 힌놈 계곡에 있는 동굴을 향해 서둘러 갔다. 그는 거기에 숨어 있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돌아가신 소식을 전하고는 계속해서 베드로가 있는 도시로 급히 서둘러 갔다.
모든 생애를 사랑으로 채우신 주님께서는 고통이 가득 찬 가혹한 죽음으로 죄인들의 빚을 갚으셨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께 인간으로서 당신의 영혼을 맡기셨으며, 순종으로 당신의 몸을 죽음 앞에 내어 놓으셨다. 이 거룩한 그릇은 온통 으깨어지신채 창백하고 싸늘한 죽음의 색으로 물들여졌다. 그분의 몸은 희부옇게 되는 가운데 고통으로 전율하였다. 상처 입은 곳곳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피가 점점 검푸르게 되면서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그때 예수의 어머니의 두 손은 뻣뻣하게 굳어지셨으며 그분의 두 눈은 흐려지셨다. 성모께서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게 되셨다. 그분의 귀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분은 힘없이 떨리는 발로 비틀거리시며 앞으로 내딛으시다가 곧바로 땅에 쓰러지셨다. 막달레나와 요한과 다른 사람들도 얼굴을 감싸 쥔 채 비통해 하며 쓰러졌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신 것은 오후 세시였다.
예수께서 돌아가시자 땅이 진동하며 갈바리아 산이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것들이 함몰되었다.
성전 입구에 있는 두 개의 큰 기둥 사이에 있는 웅장한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지며 찢겨 나갔다. 이 큰 휘장은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며 위로부터 아래로 찢겨진 채 양쪽으로 떨어졌다. 성전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출처
18.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의 어머니와 …가 서 있었다(요한 19, 25) | CatholicOne (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