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저자: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
제 4 장 과월절의 어린 양
17.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 주었다(마태 27, 26)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형리들은 예수의 속박을 풀어 드렸다. 마침내 안나스와 가야파는 빌라도에 대한 시비와 증오를 종식시켜 버렸다. 그들은 종이 또는 양피지로 된 약간 폭이 좁은 두루마리 사본을 갖고 급히 성전으로 갔다.
그 부당한 판결은 우리 시간으로 아침 열시경에 내려졌다.
예수께서는 형리들에게 이끌려 집회장의 중앙으로 인도되셨다. 많은 노예들이 서쪽 문으로 십자가형의 나무를 운반해 가지고 와서 그것을 그분의 발 앞의 땅바닥에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내팽개쳤다.
빌라도 앞에서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는 그의 행렬이 앞서 가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표시였다. 그는 도시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봉기를 예방하기 위해 부대를 이끌고 떠나려는 참이었다. 무장을 하고 말에 올라탄 그는 그의 관리들과 기병대에 둘러싸여 있었다.
십자가형의 행렬 앞에는 나팔수가 있었는데, 그는 거리마다 다니며 나팔을 불어 사형 집행을 알렸다. 예수께서 함께 하신 그 행렬은 주택가의 뒤편으로 나 있는 거리를 지나갔다. 그것은 성전으로 가는 군중들에게 길을 비켜 주고 또 빌라도의 행렬이 방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마음이 온통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고 계신 예수의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아들에게 부당한 판결이 내려지기 대략 한 시간 전에 요한과 몇몇 여인들과 함께 그 집회장을 떠나셨다. 성모께서는 예수께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던 여러 장소들로 다시 발길을 옮기셨다. 군중들이 몰려가고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빌라도와 군인들의 행렬이 지나감으로써 십자가의 행렬이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을 때 성모 마리아께서는 더 이상 참고 계실 수가 없었다. 그분은 고통을 당하고 계신 당신의 아들을 보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그분은 요한에게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곳으로 당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 행렬은 시온 지역까지 왔으며 법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세번째 성문이 열려 있는 저택의 서쪽 방향을 통과하였다.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첫번째로 넘어지셨다. 그곳에서 그 행렬은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그곳의 옆 건물이 빌라도의 저택이었는지 또는 지금 기억되고 있는 것처럼 대사제 가야파의 저택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시온 지역에는 단지 관청 건물밖에는 없었다. 요한은 성모 마리아와 그분의 동반자들과 함께 그곳을 가로질러 다른 방향으로 가도 좋다는 허락을 어떤 문지기로 보이는 사람으로부터 얻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들에게 건너편에 있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들 가운데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의 조카들 중의 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밖에 예루살렘에서 온 수산나, 요안나 쿠자 그리고 살로메가 성모 마리아의 뒤를 따랐다. 벌써 멀리 떨어진 집들을 지나오고 있는 십자가 행렬의 아우성이 들려 오고 있었다. 십자가형에 처하는 것을 알리는 외침 소리와 나팔 소리가 골목마다 들려 왔다. 그 아우성치는 소리가 더욱 크고 분명하게 들려 오자 하인은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군중들은 더 앞으로 나가지 않았으나, 몇몇 형리들이 나란히 지나가기도 하고 뒤처져 따라가기도 하였다. 많은 사형 집행수들이 갖가지의 고문 기구들을 들고 의기 양양하게 다가왔을 때, 예수의 어머니께서는 몸을 떠시며 흐느껴 우셨다. 어찌할 바를 모르시고 손을 비비시는 그분의 얼굴은 시신(屍身)처럼 창백하였으며 입술은 푸르스름해지셨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갔다. 그때 명패를 든 소년이 걸어왔다. 아아, 그 소년의 뒤에 몇 발자국 떨어져서 하느님의 아들, 성모의 아들, 거룩하신 성자, 구세주, 사랑하시는 그분의 아들 예수께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시며 몸을 굽히신 채 걸어오셨다. 끔찍끔찍한 가시들이 뒤엉킨 가시관을 쓰신 예수께서는 유혈이 낭자한 움푹 들어간 당신의 눈으로 지극하신 진지함과 동정심을 나타내시며 고통으로 가득 찬 당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발을 헛디디시어 십자가를 지신 채로 두 번이나 넘어지셨다.
고통과 열절한 사랑으로 가득하신 그분의 어머니의 눈에는 군인들도, 사형 집행수들도 보이지 않았으며, 단지 처참하게 학대받고 계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만이 보였다. 저택의 대문 곁에서 안타깝게 손을 비비고 계시던 성모께서는 마구 몰아세우는 형리들 가운데 계신 예수께로 몇 걸음 달려가서 그분을 포옹하신 채 주저앉으셨다. 나는 그때 그분이 입으로 말씀하셨는지, 영적으로 말씀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내 아들!”
“나의 어머니!”
소동이 벌어지자 요한과 거룩한 여인들은 성모 마리아를 다시 모시고 가려고 하였다. 형리들은 욕설을 퍼부어 대며 조롱하였다. 많은 군인들이 그 광경을 보고 측은히 여기고 있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러나 그 군인들은 성모를 십자가 행렬 밖으로 끌어냈으며 형리들은 성모께 관여하지 않았다. 요한과 거룩한 여인들은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갔다. 성모께서는 죽을 지경에 이르신 고통으로 성문의 머릿돌 위에 주저앉으셨다. 성모의 무릎이 닿은 돌은 깊지 않게 파여 있었는데 손을 짚고 계신 돌 위에는 편편한 반점들이 있었다. 나는 그 돌이 최초의 가톨릭 교회인 베짜타 연못가의 교회로 옮겨진 것을 보았는데, 그 교회는 야고보 주교의 관할 구역에 속해 있었다.
십자가 행렬이 지나간 거리는 약간 왼쪽으로 휘어진 길이었는데 꽤나 길었다. 사면 팔방에서 말쑥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성전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시몬이 거의 이백 보 정도 되는 거리를, 십자가를 운반하여, 주님을 도와 드렸다. 그때 왼편 거리의 어떤 아름다운 집에 있던 몸집이 크고 남의 눈을 끌 만큼 잘생긴 한 여인이 소녀의 손을 잡은 채로 그 행렬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는 성전 참사원의 위원인 시라의 부인으로서 세라피아라고 불리었는데, 오늘의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베로니카(Veronica, ‘참된 모상’에서 나온 말)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세라피아는 혹독한 수난의 길을 걷고 계신 예수를 위로해 드리려는 경건한 열망에서 향기가 좋고 값비싼 포도주를 준비하였다. 그녀는 베일을 쓴 채 어께 위에 수건을 걸치고 있었는데, 곁에는 아홉 살 가량 된 소녀가 서 있었다. 행렬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포도주 통을 덮개로 씌워 숨겼다.
앞장 서서 지휘하던 사람들이 그녀에게 되돌아갈 것을 명령했지만 그것은 헛일이었다. 그녀는 오직 예수께 대한 사랑과 애통한 마음에 가득 차 어쩔 줄을 몰랐다. 그녀는 옷을 붙잡고 있던 아이와 함께 옆으로 몰려가고 있는 군중들을 뚫고 군인들과 형리들 사이를 다시 비집고 들어가서 예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수건을 꺼내 한 쪽을 넓게 펴들고 그분께 간청을 드렸다.
“저를 받아 주시어 주님의 얼굴을 닦으시옵소서.”
예수께서는 왼손으로 수건을 받으시어 피투성이가 되신 당신의 얼굴 위에 얹으시고 손을 펴시어 가볍게 누르셨다. 그리고는 수건을 잡고 계신 왼손을, 십자가의 가로대 위를 붙잡고 계신 오른쪽 손으로 가져가시어 두 손으로 그 수건을 접으시고는 고마움을 표시하시며 그것을 그녀에게 되돌려주셨다. 그녀는 그 수건에 입을 맞추고는 그것을 외투 속의 가슴 안에 품고 일어섰다. 그때 소녀가 수줍어하며 포도주가 든 용기를 그분께 올려 드렸다. 그러나 욕지거리를 하고 있던 형리들과 군인들은 그 아이가 예수께 포도주를 드려 그분을 위로해 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용감하고 민첩한 행동으로 갑작스럽게 생긴 이 사건을 보기 위해 많은 군중들이 그리로 몰려들었다. 그 통에 그 행렬은 거의 이 분 동안 정지되었다. 땀수건을 주님께 건네 드렸던 사건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자신의 거실로 들어온 그녀는 그 땀수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포도주 단지를 들고 있던 그 소녀는 그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흐느꼈다. 그때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친근한 벗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그 수건 위에 마치 죽은 모습과도 같이 보이는, 피투성이가 되신 예수의 얼굴이 처참하면서도 놀랍도록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 수건은 발이 고운 모직으로 짜여 있었는데 보통 수건보다 세 배 가량 길고 폭이 넓었다. 그녀는 그 수건을 일상적으로 목에 두르고 다녔다. 그녀가 그 수건을 가지고 슬퍼하는 사람들, 울고 있는 사람들,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병든 이들, 피로에 지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닦아 주는 것은 관례처럼 되었다. 그것은 이웃과 슬픔을 나누고 고통에 동참하는 표시였다.
세라피아는 세례자 요한의 백모였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요한의 아버지인 즈가리야의 형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보다 다섯 살 가량 나이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나는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요셉과 결혼식을 올리실 때 그녀을 보았다. 그녀는 또한 성모께서 예수를 성전에서 봉헌하실 때 예언을 했던 나이 많은 시므온과도 친척간이었다. 시므온의 아들들과 그녀는 어려서부터 친구로 지냈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버지 즈가리야의 영향을 받아 메시아를 애타게 고대해 왔는데, 세라피아도 역시 그러했었다.
십자가 행렬은 성문 앞까지 꽤나 먼 거리를 지나왔다. 성문 쪽을 향해 뻗어 있는 그 길은 약간 비탈져 있었다. 시외의 국도(國道)에서 오른쪽으로 뻗어 있는 그 길은 넓지 않았으며 거칠고 조야한 길이었다. 성문 바로 앞에서부터 북쪽의 갈바리아 산 쪽으로 올라가는 길로 방향이 바뀌는 거리는 몇 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국도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 방향으로 나뉘었다. 곧 동쪽과 서쪽 사이에 있는 왼쪽 길은 기혼 계곡을 지나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서쪽 방향의 길은 엠마오와 요빠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서쪽과 북쪽 사이에 있는 오른쪽 길은 갈바리아 산을 돌아 벳수르를 거쳐 엑토르로 연결되는 길이었다. 여기서 서쪽과 남쪽 중간으로부터 왼쪽으로 이어진 길을 보면 예수께서 통과하시게 될 베들레헴 성문을 볼 수 있었다. 이 두 개의 성문은 예루살렘의 성문 아래쪽으로 가장 인접해 있는 문들이었다. 갈바리아 산을 향한 길로 갈라지는 이 성문 앞 국도의 가운데에 죄인을 매다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널빤지가 붙어 있었다. 그 널빤지에는 우리 구세주와 두 명의 강도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글자들은 유난히 희었는데, 마치 글자를 오려 붙여 놓은 것 같았다. 많은 여인들이 그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갈림길의 모퉁이에 서서 통곡하고 있었다. 그들 중의 일부는 젊은 여인들이었으며, 예루살렘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난한 부인들이었다. 그들은 십자가 행렬보다 앞서 와 있었다. 또 그들중의 일부는 베들레헴과 헤브론과 다른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축제를 위해 왔다가, 이곳에 오는 여인들을 따라 함께 온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예수께서는 땅바닥에 완전히 넘어지시지는 않으셨으나 실신하신 듯이 보였다. 그래서 시몬은 허리를 굽히고 계신 예수의 등에서 십자가를 내려 드린 후, 바싹 다가가서 그분을 받쳐 드렸다. 주님께서는 시몬의 몸에 기대셨다. 이번으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다섯번째 쓰러지셨다.
행렬은 잠시 멈추었다. 왜냐하면 하인들이 사형 기구들을 들고 먼저 갈바리아 산으로 올라가게 하는 한편 백 명의 로마 군인으로 편성된 빌라도의 친위대가 이곳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빌라도는 십자가의 행렬과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여기까지 따라왔으며 성문 앞에서 다시 도시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감시자들의 눈총 속에서 십자가를 끌고 가시던 예수께서는 그들이 밀치는 바람에 이곳에서 넘어지셨다. 그리고 시몬을 이곳에서 쫓아내었다. 그때 시간은 열한시 사십오분경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밧줄로 묶어 위쪽으로 세차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십자가형의 나무들을 따로 묶어서 한 곳에 모아 놓았다.
이때 형리들은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세 개의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받침 나무에 구멍을 팠다. 그들은 쉽게 십자가를 맞추어 올려놓을 수 있도록 적합한 위치에 홈을 파고 그곳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를 고정시켰다. 그들은 좌우로 양팔이 걸리게 된 나무의 끝을 조정하기 위해 얼마쯤 가늘게 다듬었다. 발이 걸리게 될 통나무는 아랫나무와 함께 못질을 하여 붙박이로 만들고 못구멍들을 팠다. 빌라도가 내려 주는 호칭 명패가 걸리게 될 못 구멍도 내었다 그들은 팔이 걸리도록 맞추어 넣은 가로대 아래에 쐐기를 질렀으며 나무판 중앙의 여기저기를 약간씩 우묵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가시관과 등이 닿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손들이 찢겨 나가지 않은 채 몸이 더 오래 매달려 있을 수 있으며 고통에 더욱 오래 시달리게 할 수 있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를 고통 속에 만나신 성모 마리아께서 기절하시며 쓰러지시자 군인들로부터 쫓겨났던 요안나 쿠자, 수산나, 예루살렘에서 온 살로메, 아리마태아 요셉의 조카 그리고 요한이 달려와서 성모를 모시고 갔다. 그리고 성문이 닫혀짐으로써 성모 마리아와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 고통의 십자가를 지신채 학대받고 계신 아들 사이가 갈라졌다. 항상 아들 곁에 계시면서 아들과 함께 모든 고통을 받기를 원하시는 성모 마리아, 아들을 끝까지 버려 두지 않으시려는 그분의 사랑와 충정은 그분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가져다 주었다. 성모를 따라왔던 여인들은 베일을 쓴 채 그분을 모시고 엑토르 지역에 있는 라자로의 집으로 서둘러 갔다. 그곳에는 눈물과 비탄 속에 잠겨 있는 막달레나와 마르타 그리고 다른 거룩한 여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곁에는 아이들도 몇 명 있었다. 그들 열일곱 명은 그곳을 떠나 예수께서 걸으신 수난의 길로 향했다.
이 거룩한 여인들은 무리를 이루어 베로니카의 집에까지 이르렀는데, 그들은 곧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말을 탄 빌라도가 그의 기병대와 이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성문으로부터 이 거리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베로니카의 집에서 그들은 애통해 하며 많이 울었다. 그들은 예수의 얼굴이 인각된 땀수건을 보고 예수께 헌신한 여인을 칭찬했으며, 예수의 자비하심을 찬양하였다. 그들은 베로니카가 예수께 드리려다가 못 드리고 도로 가져온 향료가 섞인 포도주 단지를 가지고 베로니카와 함께 성문에서 골고타에 이르는 길로 올라갔다.
17.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 주었다(마태 27, 26) | CatholicOne (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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