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책 21권
16
1927년 4월 16일
당신의 성사적 생명을 엄마의 마음에 맡기신 예수님.
하느님 뜻에서 생겨난 생명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선.
성모님께서 고통 중에서도 비상한 힘을 얻으신 까닭.
1 (『수난의 시간들』중) 예수님께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세우신 ‘시간’에 대해 묵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동하시며 내게 이르셨다.
“딸아, 내가 하나의 행위를 할 때에는 나의 행위를 그 안에 맡길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는가, 그리하여 그가 내가 행하는 선을 안전하게 수호하며 보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것부터 먼저 살펴본다.
2 그런데,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제정하면서 바로 그런 한 사람을 찾았을 때, 여왕이신 내 엄마가 나의 이 행위와 이 위대한 선물을 받아 맡으시려고 당신 자신을 봉헌하시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아들아, 나는 잉태의 순간부터 너를 안전하게 수호하려고 나의 태와 내 온 존재를 너에게 바쳤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 위대한 선을 받아 맡기 위하여 내 모성적 마음을 너에게 바치고, 너의 성사적 생명 주위에 내 애정, 내 심장 박동, 내 사랑, 내 생각을 - 나 자신 전체를 늘어세운다. 이들이 행렬을 이루어 너를 에워싸고 지키며 사랑하고 보호하게 하려는 것이다.
4 또 네가 주는 이 위대한 선물에 대하여 내가 몸소 책임지고 너에게 보상하겠다. 네 엄마를 신뢰하여라. 그러면 이 엄마가 너의 성사적 생명을 지키며 돌보겠다.
그리고 네가 나를 만물의 여왕으로 봉했으니, 나는 존경과 흠숭의 표시로 태양의 모든 빛을 네 주위에 늘어서게 할 권리가 있다. 별들과 하늘과 바다 및 하늘의 모든 주민, 곧 만물을 네 주위에 두어, 사랑과 영광을 네게 돌려주게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5 그러니 나는 내 성사적 생명의 이 큰 선물을 신탁할 자리를 확보하면서 내게 충실성의 모든 증거를 주신 내 엄마에 대한 신뢰로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제정하였다. 그분만이 홀로 합당한 피조물로서 내 행위를 유지하고 지키며 보호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6 그러니, 보아라, 사람들이 나를 영할 때에, 나는 나와 떨어질 수 없는 내 엄마의 행위들과 함께 그들 안으로 들어가고, 바로 이 사실로 말미암아 내가 내 성사적 생명을 영속화시킬 수 있다.
나는 따라서 내게 합당한 어떤 큰 일을 하고자 하면, 그때마다 먼저 한 피조물을 선택한다. 그럴 필요가 있다. 이는 첫째, 내 선물을 넣어 둘 자리를 얻기 위해서이고, 둘째, 그것에 대한 보답을 받기 위해서다.
7 그와 같은 일은 자연계의 질서 속에도 일어난다. 씨를 뿌리고자 하는 농부는 그것을 길 가운데에 뿌리지 않는다. 작은 밭을 찾아가서 먼저 땅을 일구고 고랑을 만든 다음 거기에 씨를 뿌린다.
그리고 씨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흙으로 덮은 뒤 간절히 수확을 기다린다. 그 자신의 노고와 땅에 맡긴 씨앗에 대해 보상을 받기 위함이다.
8 또 어떤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원료를 준비하고 완성품을 넣어 둘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나도 너에게 그렇게 하였다.
너를 선택하여 준비시킨 다음 위대한 선물을 너에게 맡겼으니, 이 선물은 곧 내 뜻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내 성사적 생명의 운명을 맡겼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너를 믿고 내 뜻의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자 했던 것이다.”
9 그 후에도 나는 내 사랑하올 선이신 분께서 당신 생애를 통하여 행하시고 겪으셨던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딸아, 내 지상 생활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계속되었고, 그 대부분을 나는 숨은 생활로 보냈다. 그러나 그처럼 짧은 기간이었다고 해도, 아주 많은 선을 행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하느님 뜻이 내 인성에 생명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10 그러니 온 교회가 내 생명에서 양식을 취하고, 내 가르침의 샘에서 한껏 물을 마신다. 내 말은 각 낱말마다 각 그리스도인의 입에 놓인 샘이다. 내 모범은 그 하나하나가, 빛과 열을 주며 땅을 비옥하게 하는 태양보다 더 밝고, 더없이 위대한 성덕들을 성숙시킨다.
11 누군가가 모든 성인들과 모든 선, 그들의 모든 고통과 영웅적 행위를 매우 짧은 내 생애 앞에 놓고 비교하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 모든 것이 큰 태양 앞에 놓인 작디작은 불꽃에 불과할 것이다.
12 그리고 거룩한 뜻이 내 안에 군림해 있었으므로, 내 생애와 수난의 전 과정에 걸쳐 원수들이 나에게 끼친 모든 고통과 굴욕과 당혹과 반대와 고발이 - 이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의 굴욕과 더욱 큰 당혹을 위해 쓰이게 되었다.
실상 하느님 뜻이 내 안에 있었으므로, 태양에게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다.
13 즉, 구름이 대기의 아래층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땅 위를 어둡게 하고 강렬한 태양 빛을 한 순간 덮어 가림으로써 태양을 모욕하려고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때에도 태양은, 대기 중에 떠도는 구름이 영구적인 생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구름을 비웃는다.
과연 구름의 생명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덧없는 것이어서 약간의 바람결에도 흩어지고 만다. 그 반면에 태양은 온 땅을 지배하며 채우는 충만한 빛으로 언제나 승리를 구가하는 것이다.
14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났으니, 내 원수들이 내게 행한 모든 것이, 바로 내 죽음까지도 내 인성을 덮은 구름 같았다. 하지만 그 구름이 내 신성의 태양에 접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 거룩한 뜻의 권능이라는 바람이 일자마자 그것은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원수들을 종전보다 더 큰 굴욕 속에 있게 한 채, 승리와 영광에 싸여 부활하였다.
15 딸아, 내 뜻이 완전히 다스리는 영혼 안에서는 생명의 몇 분이 몇 세기와 맞먹고, 그 몇 세기도 모든 선이 충만한 세기들이다. 이와 반대로 내 뜻이 다스리지 않는 곳에서는 생명의 몇 세기가 그 속에 담긴 좋은 것의 몇 분에 불과할 뿐이다.
16 그러니 만일 내 뜻의 다스림을 받는 영혼이 굴욕과 반대와 고통을 겪는다면, 그 굴욕과 반대와 고통은 구름과도 같다. 내 영원한 의지의 전달자에게 감히 손을 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룩한 피앗’의 바람이 수치스럽게도 그들 위에 짐을 부리듯 부리는 구름 말이다.”
17 나중에 나는, 미어지는 가슴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남겨 두고 그분과 작별하신 순간의 엄마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를, ‘어머니에게 예수님을 떠나실 수 있을 만큼 큰 힘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을까?
과연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아무튼 예수님의 시신이었는데, 어머니의 사랑이, 이 예수님에게서 한 걸음이라도 발을 떼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불길로) 어머니를 삼키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셨다. 그러니 얼마나 큰 용맹이며 힘이겠는가!’ 하였다.
18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내 엄마에게 어떻게 나를 떠나실 힘이 있었는지 알고 싶으냐? 그분 힘의 모든 비밀은 그분을 다스린 내 뜻 안에 있었다. 그분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사셨으므로 측량할 길 없는 힘을 지니셨다.
19 더구나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고통에) 꿰뚫리신 내 엄마가 무덤에 있는 나를 떠나신 순간, 내 뜻이 그분을 두 개의 끝없는 바다에 잠기게 하였으니, 하나는 고통의 바다였고, 하나는 더 넓게 펼쳐진 기쁨과 지복의 바다였다.
그러기에 고통의 바다가 온갖 순교적 고통을 끼치는 한편, 기쁨의 바다는 그분에게 온갖 만족을 드렸던 것이다.
20 그분의 아름다운 영혼은 저승으로 나를 따라오시어, 모든 성조들과 예언자들과 그분의 부모님과 우리의 소중한 성 요셉이 나를 위해 마련한 잔치 자리에 참여하셨다.
저승은 나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낙원이 되었으니, 나는 고통 중에 있는 나와 불가분적 관계에 있었던 분을 사람들의 이 첫 축제 자리에 참여시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21 그리하여 그분은 너무나 기쁘신 나머지 내 시신을 떠날 힘을 얻으셨으므로, 물러가시어 구원 사업의 완성인 내 부활의 성취를 기다리셨다. 기쁨이 고통 중에 계신 그분을 지탱하였고, 고통이 기쁨 중에 계신 그분을 지탱했던 것이다.
22 내 뜻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힘도 능력도 기쁨도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만큼 가지고 있다.
너는 네가 나의 부재로 불길에 삼켜지는 느낌이 들 때, 이를 내적으로 체험하지 않느냐? ‘거룩한 피앗’의 빛이 이 피앗의 바다를 만들어, 너를 행복하게 하며 생기를 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