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책 21권
14
1927년 4월 12일
하느님 뜻의 균형. 하느님께서 창조 당시부터
인간과 조물 사이에 장착하신 모든 통신 수단.
어둠에 잠긴 도시와 희고 빛나는 구름의 비유.
1 나의 비참한 처지가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인해 더욱더 고통스러운 것이 되고 있다. 얼마나 혹독한 순교적 고난이며 죽음인지, 다시 생명을 얻으리라는 소중하고 감미로운 희망마저 없다.
그분을 잃고 말았다는 가슴 아픈 고통이 나를 멍하게 하고 돌덩이같이 굳어 버리게 하며 내 가련한 영혼에 유독한 이슬을 흩뿌리는데, 이 이슬은 작열하는 태양 광선에 노출되어, 나를 활기차게 하는 대신 시들게 하며 내게서 생기를 앗아 간다.
죽이지는 않지만 시들게 하면서, 초목에 내린 서리처럼 생명의 가장 좋은 진액을 내게서 앗아 가는 것이다.
2 오! 내게는 죽음이 이보다 훨씬 더 감미로울 것이다. 아니 죽음은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축제가 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분을 뵐 것이고, 그분께서 내 모든 상처를 고쳐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3 오! 내 지고한 선이신 예수님의 부재여, 그대는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무자비한지! 그러므로 나는 흠숭하올 뜻 안에서 모든 이를 불러 내 가혹한 운명을 한탄하게 한다.
하늘을 그 광대한 공간의 무한성을 함께 불러 내가 이토록 그리워하는 분을 울며 청하게 한다. 또 별들과 그들의 깜박이는 빛을 불러 나와 함께 울게 한다. 울면서 예수님의 발길을 내 쪽으로 이끌어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방향으로 가시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 나는 또 태양을 불러 그 빛을 눈물로, 그 열을 불화살로 바꾸게 한다. 예수님을 재촉하며 이렇게 말씀드리게 하려는 것이다.
“서두르십시오. 보이지 않으십니까? 저 사람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그를 위해 우리 모두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며 청합니다. 그의 뜻과 우리의 뜻이 하나이니, 우리는 그와 함께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 이처럼 저는 당신 부재의 고통 때문에 - 헤아릴 수도 측정할 수도 없이 많고 큰 그 고통 때문에 창조된 만물을 불러 저와 함께 울게 합니다. 누가 울지 않겠습니까?
오! 저는 귀가 먹먹하도록 당신을 부르기 위해서 바닷물의 철썩이는 소리와 쏜살같이 달아나는 물고기 소리를 애처로운 소리로 바꾸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또 새들의 지저귐을 흐느낌으로 바꾸어 당신께서 불쌍히 여기시게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당신께서 저를 얼마나 괴롭히시는지! 오! 당신의 사랑이 제게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6 하지만 내 비통한 심경을 그렇게 토로하고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여기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나도 여간 괴롭지 않다...
7 다른 모든 피조물의 고통을 합친 것보다 너의 고통 때문에 더 괴로운데, 그것은 너의 고통이 우리 천상 가정의 딸의 고통이기 때문이고, 내가 그것을 나 자신의 고통보다 더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의 뜻이 피조물 안에 있을 경우, 그 피조물은 모든 것을 우리와 공유한다. 아무것도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이다.”
8 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선지 불쑥, “그 말씀은 그대로 진실이겠지만 제게 드러나 보이는 사실들로 보면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였다.
“어째서 이럴 수 있습니까? 당신께서는 저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애쓰게 하십니다. 저에게 돌아오시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멀리 가실수록 돌아오시는 것에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저는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또는 다른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 알 수 없어집니다.
9 당신께서 저를 무력하게 하시어 당신을 찾아낼 수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의 뜻 안에서도 저는 당신의 행방을 추적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뜻이 무한한데다 당신께서 그 무한성 안에 숨어 계시니 당신의 발자취가 보이지 않고, 그러니 저는 당신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저 근사한 말씀의 실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께서 저의 고통 때문에 그토록 괴로우셨다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셨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즉, 다른 어떤 사랑도 모르는 이 인간에게, 당신의 생명 외에는 다른 어떤 생명도 없는 이 인간에게 서둘러 오셨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11 그러자 예수님은 나를 와락 껴안으시고 무척 감동하신 듯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엾은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너는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다 알지는 못하고 있다. 내 뜻은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 모든 속성들은 지극히 높은 일치를 이루고 있으며, 어느 속성도 다른 것보다 열등하지 않다.
12 그러니 내 정의가 사람의 수많은 죄들 때문에 징벌을 내릴 필요가 있으면, 이 빈자리를, 곧 네가 나 없이 지내기를 요구한다. 그들이 받아 마땅한 징벌을 보냄으로써 정의 자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정의는 그래서 너를 내 뜻 안에 제쳐 두듯 두고 자기 갈 길을 간다.
13 비탄에 신음하는 내 인성이 얼마나 여러 번 이 장애물(과도 같은) 내 정의와 함께 있었는지! 그러나 나는 결국 내 뜻의 균형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내가 너를 내 뜻 안에 보존하고 있다고 해서 내 속성들의 질서의 평형을 깨뜨리기를 원하느냐? 안 된다, 딸아, 안 된다. 내 정의로 하여금 자기 길을 가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네 예수가 종전과 같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14 너는 이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 뜻 안에서 네가 겪어야 하는 것은 바로 내 인성이 겪었던 (고통)이고, 그때 내 뜻은 구원 사업을 위하여 벅차도록 많은 요구를 하면서 나를 냉혹하게 대했다는 것을?
너도 마찬가지다. 내 뜻은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위하여 벅차도록 많은 요구를 하면서 너를 냉혹하게 대하고 있다. 내 인성이 숨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니, 내 정의가 자기 갈 길을 가면서 그 자신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15 복되신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신 다음 이 말씀을 덧붙이셨다. “딸아, 내 뜻은 만물을 창조하면서 일치의 끈으로 모든 존재를 연결시켰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 상호 관계를 맺고 있었고, 저마다 통신 전선이 있었다.
16 인간은 존재하는 조물들과 같은 수의 전선을 소지하고 있었다. 만물의 왕이었으니 만치 모든 조물과 통신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지배권도 획득하는 것이 옳고도 필요한 일이었다.
17 그런데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멀리함으로써 통신 전선의 첫 부분을 끊었다. 그리하여 전선 초입이 끊겨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도시처럼, 어둠에 잠긴 도시처럼 남아 있었다.
비록 전선들은 있다고 해도 이제는 온 도시에 빛을 줄 힘이 없어졌으니, 빛이 나오기 시작하는 근원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빛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18 인간은 그러므로 어둠에 잠긴 도시처럼 남아 있었고, 그가 맺고 있었던 관계들, 통신 전선들이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았다. 빛의 근원이 그에게서 물러갔으니, 인간 자신이 그것과 함께 통신 수단도 훼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따라서 폐위되어 지배권이 없는 왕처럼 남아 있었다. 전깃불이 다 나가 버린 왕의 도성. 그는 그 자신의 뜻이라는 어둠에 싸여 있었다.
19 그러나 내 뜻을 소유한 영혼은 불빛이 가득한 도시로 상징된다. 이는 세상 모든 곳과 통신할 수단을 가진 도시다. 게다가 그의 통신은 바다와 태양과 별들과 하늘에도 확장된다.
비축된 온갖 종류의 양식이 모든 곳에서 이 도시에 답지하고, 필요한 모든 것이 여기에 공급되니, 이 도시는, 곧 그는 누구보다도 부요하다. 이 통신 수단에 의하여 그는 하늘에도 땅에도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모든 것이 그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그가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다.
20 내 뜻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그는 고생으로 허덕이고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불쌍하다고 던져주는 빵부스러기를 먹는 것이 고작인데, 종종 원수들이 그것마저 빼앗는다. 그러니 어둠에 싸여, 지저분하고 비참하게 살아간다.”
21 그 후 나는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 고통에다 다른 고통도 겹치는 바람에 압박감을 느꼈지만, 모든 것을 흠숭하올 뜻에 봉헌하였다. 흠숭하올 뜻의 나라의 승리를 얻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렇게 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이 희고 빛나는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22 “딸아, 저 구름을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우냐!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그 푸른 궁창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누가 어둠을 흩어 버렸느냐? 누가 저 구름 안의 어두침침함과 검은 그늘을 패주시키고 그것을 희고 빛나는 구름으로 변화시켰느냐?
23 그것은 태양이다. 태양이 자신의 빛으로 구름을 휩싸서 그 어둠을 사라지게 하고, 빛나는 구름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구름이지만, 더 이상 지상에 껌껌한 어둠을 던지는 구름이 아니다. 오히려 빛을 주는 구름이다.
태양이 구름을 휩싸기 전에는 구름이 그 어둠침침함으로 하늘 궁창을 보기 싫게 만들면서 그것의 아름다움을 앗아 가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구름이 하늘에 경의를 표하며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24 딸아, 그러니 고통, 극기, 나의 부재 및 괴로운 상황이 영혼에게는 어둠을 주는 구름과 같지만, 영혼이 그 모든 것을 내 뜻 안에 흘러들게 하면, 내 뜻이 태양 이상으로 그들을 휩싸서 매우 찬란한 빛을 내뿜는 구름으로 바꾸고, 영혼의 하늘을 더할 수 없이 아름답게 장식하게 한다.
25 내 뜻 안에서는 가련한 피조물을 압박하며 보기 싫게 변형시키는 어둠의 측면이 사라진다. 만물이 그에게 빛을 주고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꾸며 주는 일을 한다.
그러면 나는 온 천국 주민들에게, ‘이 사람을 보아라. 희고 빛나는 구름으로 꾸며진 내 뜻의 딸이다.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 딸은 빛을 먹으며 살아간다. 내 뜻은 그래서 내 뜻의 빛으로 그녀를 휩싸서 지극히 찬란한 빛으로 변화시킨다.’ 하고 거듭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