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1938년 11월 13일
하느님 뜻의 나라는 이에 대한 진리들 위에 수립되리라.
사람이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들.
1. 하느님 의지 안에서의 날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이 비상을 그치고 있으면 내가 내 영혼을 죽인 느낌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말기를! 더구나 생명 없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2.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뜻에 대해 말씀해 주신 그 숱한 진리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믿기지 않고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하느님 의지 안에서의 삶에 그 정도로까지 도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3.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불현듯 오셔서 매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복된 딸아, 놀라지 마라. 내 뜻은 사람이 이 뜻과 함께 있기만 하면 어디까지라도 도달하게 할 능력이 있다. 이제 너는 알아야 한다. 내 뜻의 나라는 그것이 드러내 보인 진리로 이루어지고 그 위에 수립되리라는 것을.
4. 이 나라는 그 진리들을 많이 드러낼수록 그만큼 더 찬란하고 아름답고 장엄할 것이고, 그만큼 더 좋은 것들과 기쁨거리들이 풍성할 것이다. 내 진리들이 이 나라에서 살게 될 사람의 통치 체제와 법과 양식이 되고, 막강한 군대와 방어 수단 및 바로 그의 생명 자체가 될 것이다.
5. 각 진리가 저마다 서로 구분되는 일을 맡을 것이니, 어떤 것은 스승으로, 다른 것은 자애로운 아버지로, 또다른 것은 자상한 어머니로 활동할 것이다. 특히 어머니는 아기를 위협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품에 안고 팔로 흔들어 주며 자신의 사랑을 먹이고 빛을 옷으로 입힐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각 진리가 하나하나 독특한 선을 지닐 것이다.
6. 내가 이리도 많은 진리를 너에게 말하고 있으니 내 뜻의 나라는 얼마나 풍요하겠느냐? 그러니까 네가 유의해서 다 쓰지 않으면 내 기분이 언짢아진다. 덧붙여진 어떤 선을 빠뜨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고, 이를 읽을 사람은 그 선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인지 알아야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
7. 지식은 생명과 빛을 가져오고 그것이 내포한 선도 가져온다. 알지 못하는 선을 소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마치 볼 눈이 없고, 이해할 지성이 없고, 활동할 손이 없고, 걸을 발이 없고, 사랑할 가슴이 없는 사람과 같다.
8. 내 뜻에 대한 지식이 맨 먼저 하는 일은 사람에게 볼 눈을 주며 가련한 소경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보고 알게 하여 지식이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선과 생명을 갈망하게 한다. 지식 스스로 행위자요 관찰자가 되어 그 자신의 생명을 사람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9. 한데 내 의지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들은 그 성덕과 아름다움과 사랑과 지혜로 서로 구분되면서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행위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표징을 지니고 있다. 성삼위는 각각 구분되지만 나뉠 수 없는 분이시니, 각 위의 뜻과 성덕과 선성 등이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10. 따라서 서로 나뉠 수 없으나 구분되는 이 행위들은 하나이며 셋이고 셋이며 하나인 지고하신 삼위일체의 표징을 내포한다. 뿐만 아니라 지고하신 삼위일체를 그들의 생명으로 소유하기도 한다.
11. 이 행위들은 모든 천상 주민들은 물론 우리 성삼위의 가장 큰 영광이 된다. 우리의 거룩한 의지 안의 행위가 사람에 의해 수행될 때마다 이 행위들 안에 우리의 신적 생명이 증가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12. 그때 나는,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살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13. “딸아, 그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나의 거룩한 ‘피앗’이 영혼 안에 군림해 있으면,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은 채 있을 줄 모르기에 계속 움직이며 작용한다. 그것은 생명이고, 생명이니 만치 숨쉬고 움직이며 고동치고 스스로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행위도 먼저 하기 마련이어서 사람은 자신이 그 지배하에 있음을 깨닫고 그대로 따라 하는데,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거의 계속적으로 그렇게 한다.
14. 이 계속성이야말로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살고 있다는 확실한 표징이다. 사람이 계속해서 그 피앗의 숨과 활동과 거룩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를 중단하면 생명과 활동과 다른 모든 것의 결핍을 느끼고 곧바로 다시 계속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 계속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면 막대한 대가를, 곧 하느님의 생명을 잃는 손실을 치러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따라서 쉽사리 이 생명을 놓치지 않는다.
15. 그렇다면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행하는 그 행위의 정체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내 뜻이 사람 안에서 행하는 생명의 펼침이다. 오직 내 뜻만이 그 계속적인 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단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사람과 사물이 마비된 듯 생명이 없는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16. 사람은 그러니 혼자서는 그 계속적인 행위를 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내 의지와 결합되면 그 능력과 힘과 의지를 얻기에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사람이 내 뜻의 인도를 받고 내 뜻의 소유가 되려고 하면, 내 뜻은 어떻게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더 이상은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화시키기에 그에게는 과거의 삶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지는 것이다.
17.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표징이 있다. 내 뜻은 영혼이 준비되어 있음을 보면, 다스리기 위해서 먼저 그 영혼의 의지와 고통에 평화의 공기와 함께 발삼 향유를 발라 주고, 거기에 자신의 옥좌를 만든다.
18. 그러므로 내 의지 안에서 사는 사람은 결코 약해지는 법이 없는 힘을 소유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하느님 안에서 참사랑으로 모든 이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소유한다. 그리고 특히 모든 사람과 각 사람을 위하여 수없이 많은 희생에 그 자신을 내놓는다. 가엾은 이 작은 사람이 모든 이를 위한 참된 순교자요 산 제물인 것이다.
19. 나는 그가 고통 받는 것을 뜨거운 애정과 연민으로 바라보면서, 오, 얼마나 자주 이렇게 말하며 격려하는지 모른다. “얘야, 네가 나하고 똑같은 운명에 시달리고 있구나. 불쌍한 아가, 용기를 내어라. 네 예수가 더욱더 너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면 그는 내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면서, 고통 중에서도 그 자신을 내 팔에 맡긴 채 생긋이 웃는다.
20. 딸아, 내 뜻이 행하는 법을 알고 행하는 모든 것을 경험하며 소유하려면 내 뜻 안에 있을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내 뜻에 대해 한 자(字)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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