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아빌라 데레사 성녀가 경계한 - 악신의 숨겨진 영적 유혹

Skyblue fiat 2013. 8. 31. 13:29

 

아빌라 데레사 성녀가 경계한 - 악신의 숨겨진 영적 유혹

 부르고스 가르멜 수녀원

 

 

1. 덕이 없으면서 있는 줄로 알게 하는 착각을 주입시킴


 악마가 가장 무섭게 해를 끼칠 수 있다. 페스트와 같다고도 묘사됨. (완덕의 길 38,5 참조)  



2. 스스로가 겸손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착각을 하도록 하게 함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생각과 마음으로 자신이 가난하다고 입버릇처럼 하다보니
스스로를 겸손한 영적 가난자라고 착오를 하게 되는 것 (완덕의 길 38,9 참조) 

 


3. 기도의 감각적인 맛이나 위로를 마치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처럼 꾸며 보임


악마는 영혼이 기도를 열심히 할 때, 그것을 방해하려고 기도의 맛이나 위로를 주어 

그를 기도의 감각적인 쪽으로 끌어내려고 유혹한다.
이 때 기도시간을 늘리고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면서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를 드리면 악마는 도리어 패배한다.
악마의 유혹 중 가장 덜 위험한 유혹이다. (완덕의길 38,3 참조)


4. 그릇된 겸손

악신이, 자신은 아예 구원받지 못할 죄인, 하느님께 버림받은 영혼인양 
하느님의 자비하심까지도 의심하도록 이끔.
그러나 참다운 겸손은 그것이 아무리 깊어도 결코 한 영혼을 불안과 초조와 당황으로 몰아 넣지 않으며
도리어 참회를 통한 평화와 기쁨과 안정을 준다. (완덕의 길 39,1~2참조)

악마가 하느님께 의지하는 마음까지 없애 버리려고 할 때는
자기 비참에 대한 생각을 뚝 그칠 것.


5. 극도의 매우 지나치고 엉뚱한 고행을 하게 함


그를 통해 자신은 남보다도 더 많은 고행을 하고, 

매우 거룩한 일을 하는 듯 착각을 하게 함
(완덕의 길 39,3참조)


6. 죄에 대한 지나친 안전감

매우 위험스러운 유혹에 속한다. 
자신은 과거의 죄악이나 세속의 쾌락을 절대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존재라는 

일종의 주입된 생각으로, 이 유혹은 초심자에게 더욱 해롭다. (완덕의 길 39,4참조)

유혹을 이겨내려면 깨어 기도하는 수 밖에 다른 좋은 방법이 없다.
우리의 약함을 주님께서 돌봐주시기를 의탁으로 청해야 한다.


 


성녀는 이 유혹과 잘 싸우기 위해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무기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사랑과 두려움(경외)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발걸음을 빠르게 해주는가 하면,
(하느님과 죄에 대한) 두려움은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길에 넘어질세라
그 발 디딘 자리를 보며 걸어가게 해준다.(완덕의 길 40,1참조)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애인을 찾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셨고
지상에 사는 애인때문에 당신의 신분인 하느님을 벗어놓으셨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먼저 이탈하신 것이다.


그 사랑에 놀라고 마음이 녹아 하느님과 눈이 마주친 인간 역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 (이 역시 받은 것이지만 넉넉한 부귀, 명예.자기애, 자의식 등)을 뒤로하고 

하느님을 만나러 떠났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과 눈이 마주친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자리에서 장막을 마련하지 않고 그들을 한 발씩 한 발씩 당신의 왕국으로 데려 가셨다.  

만약 하느님이 사랑하는 사람과 만난 그 자리에서 장막을 마련하셨더라면
인간 쪽에서는 고통은 덜 했겠지만 얻는 기쁨도 적었을 것이다.
이처럼 신분이 전혀 다른 둘이 사랑하게 되면
양쪽 모두가 
사랑 때문에
자기 신분과 고향을 이탈하게 된다.

 


그런데 사랑보다 자신이 이탈해야 할 것에 먼저 마음을 쓰면 이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따라나서고 보니
어느덧 스스로 이탈한 상태에 있게 되는 것 뿐이다.

 


먼저 이탈하려고 애쓰기보다
하느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묵상 속에서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랑은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행동을 자유롭게 하고 그 자유가 바로 이탈이다.


따라서 데레사 성녀가 보는 이탈과 겸손은 바로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이며
사랑이 이탈(자기부정)과 겸손을 촉진시킨다면 

그 이탈과 겸손은 

우리가 하느님 자체이신 그 분의 사랑 안에 

자리잡고 거주하도록 해주는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거룩함은 의로움(죄악을 멸시하여 벌하고 경계함)에 바탕을 두지만
의로움 자체에 고집하여 머물지 않는다.
거룩함은 옳음과 정당함을 아득히 초월하기에 자비로움과도 상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