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신학 공부를 하지 않은 교회 학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②

Skyblue fiat 2013. 1. 21. 21:21

 

 

첫영성체

데레사는 첫영성체를 위한 석달간의 준비를 마치고 기숙사에 머물면서 피정을 했다. 기숙사 생활은 힘들었지만 예수님을 기다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은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데레사는 첫영성체 전날인 1884년 5월 7일에 총고해를 하고 그 다음날 드디어 첫영성체를 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이 큰 행복이었다. 훗날 데레사는 첫영성체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그것은 예수님께서 내 영혼에 하신 첫입맞춤이었다. 오,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저를 영원히 주님께 바치나이다!”어린 데레사는 그때부터 예수님과의 일치를 맛보았다.“우리는 이미 둘이 아니었다. 나는 예수님이라는 바닷물 속에 사라져 없어지고 그분만이 존재했다. 그분은 스승이요 임금이셨다.” 데레사는 자신의 자유를 없애달라고 예수님께 청했다. 자기 자신이 그지없이 연약함을 알았기에 하느님의 힘에 온전히 의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날은 뽈리나 언니의 서원식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날 오후, 데레사는 첫영성체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동정 성모님께 봉헌의 기도를 바쳤다. 그때부터 예수님만이 데레사를 만족시킬 수 있었기에 데레사는 예수님을 다시 모실 날만을 애타게 고대했다. 한 달쯤 지나 예수 승천 대축일에 데레사는 고해성사를 받았고 영성체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얻었다. 그 후로 그녀는 대축일마다 영성체할 수 있었다.

데레사는 1884년 6월 14일에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때 데레사가 느낀 것은 성령강림 때의 세찬 바람이 아니라 엘리야 예언자가 체험한 호렙 산에서의 부드러운 바람이었다(1열왕 19,12).

 

 

데레사의 회심

 

“그때까지 유아의 단계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내가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겠다는 그런 멋진 생각을 가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를 한순간에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어떤 작은 기적을 일으켜야만 했을 것인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랑의 기적을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성탄절에 일으키셨다. 그날 그분은 나를 강하고 용감하게 만들기 위해 당신은 약하고 힘없는 존재가 되셨다. 그날은 1886년 12월 25일이었고 그날 나는 완전한 회개의 은총을 받았다.”

그날 데레사는 성탄 전야 미사에서 영성체하는 행복을 누렸다.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데레사는 성탄절 선물을 받기 위해 굴뚝 위에 놓아두었던 신발을 가지러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갔다. 그때 예수님은 피곤에 지친 아버지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함으로써 데레사의 마음을 꿰뚫어버리는 것을 허락하셨다.“다행히 이것도 올해가 마지막이군.”

그러나 데레사는 예전의 그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데레사의 마음을 변화시키신 것이다!“나는 눈물을 참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크게 요동치는 심장 박동을 누르면서 신발을 아버지 앞에 놓았다. 그리고 기쁘게 선물들을 꺼냈다. 아버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어린 데레사는 4살 때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잃었던 강인한 정신을 그날 다시금 찾았고 그때부터는 그것을 영원히 간직했다.“눈부신 그 밤, 내 인생의 세 번째 막이 올랐다. 그때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천상 은총으로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였다. 내가 십 년 동안의 노력으로도 이루지 못한 것을 예수님은 그날 한순간에 이루셨다. 그분은, 내게서 결코 떠난 적이 없는 내 선한 의지에 만족해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내 마음에 사랑이 들어오는 것을, 또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나 자신은 잊어야 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불쌍한 영혼을 위하여

 

1887년 3월 19일 밤, 파리에서는 사교계의 귀부인 한 명이 강도에게 목이 잘리고 집사와 열한 살 소녀도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프란지니 사건”은 온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화젯거리였다. 신문마다 매일같이 이 극악무도한 강도 살인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데레사의 아버지는 딸들에게 가톨릭 신문을 포함한 모든 신문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 7월 13일 이 살인자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교도 사목을 하는 포레 신부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그는 회심하지 않고 죽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데레사 성녀의 나이는 14살이었는데 그 불쌍한 죄인이 단두대에서 치욕스럽게 죽은 다음에 영원한 지옥의 벌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데레사는 하느님께 그가 회심하게 해달라고 열심히 간청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기 얼마 전에 데레사는 다음과 같은 체험과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느 주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님의 성화를 보다가 주님의 한쪽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았다. 주님의 피가 땅에 떨어지는데도 아무도 그 피를 받으러 달려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는 큰 고통을 느꼈다. 나는 결심했다. 주님에게서 흘러내리는 그 핏방울을 받기 위해 내가 십자가 아래에 있겠다고 그리고 그것을 다시 다른 영혼들에게 부어주겠다고 … 십자가 위 예수님의 외침이 끊임없이 내 영혼 안에 울려 퍼졌다.‘목마르다!’이 말씀은 내 안에 어떤 알 수 없는 강렬한 불을 지폈다. 그리고 내 영혼 역시도 목마름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잡아끈 것은 사제들의 영혼이 아니라 수많은 죄인들의 영혼이었다. 나는 그들을 영원한 지옥불에서 구해내겠다는 열망에 불탔다.”

프란지니 사건은 14살 소녀에게 처음으로 하느님의 자비심을 호소할 기회를 주었다.“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프란지니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우리 주님의 무한하신 공로와 교회의 보물을 청했다.

프란지니의 사형 집행일 전 며칠을 데레사는 불안과 희망과 기도 속에서 보냈다. 데레사는 프란지니의 사형 다음날 아버지 몰래 신문을 보았다. 사형 집행에 입회했던 신문기자는 이렇게 썼다.“날이 밝자 사형수 프란지니는 단두대 앞에 섰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살인자의 의식 속에 참회의 작은 불꽃이 살아났던 것 같다. 사제가 마지막 작별의 말을 하고 한 걸음 앞으로 물러나는 순간, 프란치니가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신부님, 제게 십자고상을 주십시오!’사제는 급히 다가가 그의 입술에 십자가를 대주었다. 그는 온 마음으로 거기 입을 맞추었다.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질 때 인간의 정의는 이제 만족했으리라. 그리고 십자가의 마지막 입맞춤으로 하느님의 정의도 충분히 만족시켰으리라.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통회를 요구하시니까.”

어린 데레사는 이 기사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데레사는 하느님께서‘불쌍한 프란지니’를 위해 바친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걸 확신했다.“프란지니는 고해성사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신부님이 내민 십자고상을 잡고 거룩한 성흔에 세 번 입맞추었다. 그리고 나서 그의 영혼은 떠나갔다. 하늘나라에서는 회개가 필요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인보다 회개하는 한 명의 죄인을 더 기뻐한다고 선언하신 바로 그분의 자비로우신 심판을 받으러,”

이 특별한 은총을 체험한 후, 데레사의 마음속에“날마다 영혼을 구하겠다”는 열망이 자라났다. 하느님으로부터 응답의 표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표시는“내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할 마음이 생기도록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은총의 표지”였다.

 

 

 

- 마리아 142호 2007년 3·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