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티없는 성심의 사랑의 불꽃

【2 사랑의 불꽃】1. 나는 너를 무척 기다렸다

Skyblue fiat 2015. 11. 10. 02:49

  

영혼의 일기 1961~1974

  

 

나는 너를 무척이나 기다렸다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하신다. 하느님을 멀리하는 사람도 그것에서 예외는 아니다. 사실 나도 그렇게 하느님을 멀리하며 살았었다.

 

나는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들 여섯 명을 키우면서 생활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일과에 지쳐 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영성 생활이란 사치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런 것은 까마득하게 잊은 지 오래였다. 자연스레 나는 하느님을 멀리하며 살았다.

 

생존을 위한 지속적인 투쟁은 나의 존재 전체를 온전히 점령해 버렸고 영성 생활과 신앙까지도 잠식해 버렸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어쩌다가 넌 이런 대가족을 책임지게 되었니?’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점점 무너졌다. 그때껏 거룩하게 여겨졌던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그러면서 불행과 유혹의 불씨도 커져갔다.

 

‘왜 너 자신을 속이니? 오로지 자식들의 안전과 안락을 위해서만 너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 여타의 것은 포기할 거니? 이러면서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네가 믿지 않는 것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니? 가면을 벗어라. 그래야 구원을 깨닫지 않겠니? 언젠가는 아이들도 엄마인 네가 가르치지 않고 숨겨 둔 것을 알게 될거야!’

 

이 순간 갑자기 나는 정지 상태가 되었다. 이때까지 희미했던 하느님의 모습이 내 앞에 뚜렷하게 살아났다.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면 깊숙한 곳에서 아주 강렬한 영적 투쟁도 시작되었다!

길고도 무시무시한 싸움이었다!

 

나는 계속적으로 미사에는 참례했지만 텅 빈 것 같은 마음은 그대로였다. 솔직히 말하면, 미사는 지루했고 성가신 것이었다. 싫증도 났다. 따분했다. 그래서 ‘이렇게 따분하고 지루한 미사에 왜 굳이 와야 하지?’하며 미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몹시 괴롭혔다. 나는 모든 것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미사 시간이 다 되었는데 나는 빨래를 시작했다. 아이들만 미사에 보내고 나는 그냥 빨래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을 넘기자 아이들은 내가 시간을 모르는 줄 알고 깨우쳐 주었다.

 

“엄마, 벌써 6시 반이야.”

 

나는 화가 났다. 하지만 하던 빨래를 계속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나를 재촉했다. 

 

“엄마, 빨리 준비해요.”

 

결국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셨다. 성당에 도착하여 하느님 앞에 앉았지만 그분께 무슨 말을 하며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내 마음은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나는 하느님이 아닌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넌 왜 여태껏 카르멜회의 단식 규정을 지키고 있니?’

 

나는 카르멜 제3회 회원으로서 단식 규정만은 거의 습관적으로 지키고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무엇에 이끌린 듯 성모 소성무일도를 꺼내 펴들었다. 예전에는 각각의 시편이 내 영혼을 기꺼이 하느님께 올려 주었는데 지금은 기운 빠진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성들여 기도하던 기도서를 다시 손에 들었지만 그마저도 차가운 내 마음을 녹이지 못했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하느님은 나를 전혀 돌보지 않으시고 알고 싶지도 않으신가 보다.’ 나는 극심한 낙담과 절망에 빠졌다. 그때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악령의 말이 들려왔다.

 

“네 영적 투쟁이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점을 네가 알았으면 해서 내가 이렇게 했다.”

 

이 영적 투쟁은 내 아이가 이 말을 할 때까지 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아이가 그랬다.

“엄마, 오늘 10시에 B 아저씨의 장례미사가 있어요. 그러니 어서 옷을 갈아입으세요.”

그런데 벌써 9시가 됐지 않은가! 이 슬픈 소식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급히 서둘러 초상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카르멜 제3회 회원으로서 모범적으로 거룩하게 살았었다. 나는 그를 기억하며 흐느껴 울었다. 나의 삶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그를 떠올리다가, ‘나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나는 아주 나지막하고 친절한 목소리를 들었다. 성인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울지 마라! 카르멜로 돌아가라!”

 

다음날 7월 16일 주일은 우리 성당의 수호자인 카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성당에 도착해서는 밤늦게까지 성당에 머물렀다. 매우 늦은 시각에 고해성사를 받으려고 일어섰다. 나의 영적 상태는 너무나 바싹 메말라 있어 조금도 통회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기계적으로 통회의 기도를 바쳤다. 내가 이러고 있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들러 성모님 앞에서 공경과 사랑을 바쳤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내 생각은 어제 장례를 치른 B형제에게로 향했으며 그러면서 내 영혼도 다소 위안을 느꼈다. 그는 나를 성모님께로 이끌었다.

 

“성모님 앞으로 가서 성모님께 너를 바쳐라.”

 

나는 성모님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내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밤이 늦어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와는 다른 특이한 감흥을 느낄 수 있었다. 카르멜에 내 영혼을 두고 온 것 같았다. 나는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시 악령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음식을 들어라. 굶는 건 해롭다.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쉬면서 그런 생각일랑 던져버려라!”

 

쥐죽은 듯 고요한 한밤중에 나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정원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원에 서 있는 루르드의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 어둔 하늘을 수놓고 있는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성당으로 급히 갔다. 그 성당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내가 자주 찾던 곳이며, 저녁 미사 때마다 B 형제를 만나곤 했던 곳이다. 그의 깊은 신심이 다시 나를 그 성당으로 이끈 셈이다. 그런데 악령 하나가 공허한 마음을 이용해 나를 유혹하려고 애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는 결심했다.

 

‘천상의 어머니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이제 다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자!’

 

미사 도중에 나는 주님께 용서를 청했다. 그리고 영성체 때 내 뒤에 앉은 사람들이 내 팔을 잡으며, “같이 나가요.”하고 말했지만 나는 감히 주님의 거룩한 몸을 모실 용기를 내지 못했다.

  

  

  

-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의 사랑의 불꽃【영혼의 일기 1961-1974】/ 엘리사벳 킨델만/ 아베마리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