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44,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삶이란
하느님 뜻이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행하신 것과
겪게 하신 모든 것을 영혼 안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1922년 7월 20일
1. 보통때와 다름없이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나를 당신 뜻 안에 잠그셨다. 워낙 깊이 잠그셔서, 설령 내가 빠져나오기를 원했을지라도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2. 그것은 마치 자기의 작은 처소에서 무한히 큰 장소로 던져 넣어지기를 자원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현상과 같았다. 끝 간 데를 알 수 없는 길을 보면서 그 작은 처소를 찾아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현재의 이곳에 만족하는 사람 말이다.
3. 내가 그렇게 하느님 뜻의 무한한 바다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극히 사랑하는 내 뜻의 딸아, 나는 너를 내 생애의 복사판으로 만들고 싶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의 삶이란 내 뜻이 내 인성 안에서 행했던 것과 나로 하여금 겪게 했던 모든 것을 영혼 안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4. 유사하지 않은 것은 결코 묵인하지 않는 것이 내 뜻이다. 보아라, 내 영원한 뜻은 내 인성에게 세상에 태어나는 피조물의 수와 같은 수의 죽음을 받아들일 의무를 지웠고, 내 인성은 이를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내 영원한 뜻은 내가 치러야 했던 죽음의 수와 같은 수의 표를 내 인성에 찍었다.
5. 그러니 너도 내가 치렀던 죽음과 같은 수의 죽음을 치러 낼 수 있기 위해서 내 죽음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수의 표를 내게서 받지 않겠느냐?”
6. 나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능숙하고 신속하게 당신이 받으셨던 것과 같은 수로 죽음의 표를 내게 찍으셨다.
7. 그리고 말씀하셨다. “주의를 집중하여 힘차게 이 죽음들을 겪어라. 이 죽음들로부터 그만큼 많은 생명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올 터이니, 더욱 그래야 한다.”
8.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창조적인 손을 내게 갖다 대셨다. 그 손으로 내가 죽음의 고통을 실감할 정도로 고통을 창조하시는 것이었다. 내 심장을 찢으시며 수없이 많은 상처를 입히셨는데, 어떨 때는 불화살로, 어떨 때는 얼어서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찬얼음 화살로 그렇게 하셨고, 또는 내 심장을 너무 꽉 죄시는 바람에 움직임이 뚝 멎을 때도 있었다.
9.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누가 낱낱이 다 말할 수 있으랴? 그렇게 하시고 계셨던 그분만이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
10. 나는 마구 으깨져 형태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충분히 힘차게 견디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였다. 그때 그분께서는 내게 고통을 주시는 일을 멈추고 좀 쉬시고 싶으신 듯, 이어서 말씀하셨다.
11. “무엇이 두려우냐? 내가 너에게 주기를 원하는 고통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힘이 내 뜻에 없을 성싶으냐? 또는 네가 내 뜻의 경계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네가 출구를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내 뜻의 무한한 바다가 네 주위에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12. 내가 너에게 알려 준 진리의 효과와 가치와 지식이 그만큼 많은 바다가 되어 나를 에워싸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더 많은 바다들을 펼칠 작정이다.
13. 용기를 내어라. 딸아,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 곧 나와 영혼 사이의 유사성을 낳을 성덕에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14. 나는 내 엄마에게도 그렇게 하였다. 내가 겪은 하나의 작은 고통도, 내 활동이나 선행 하나도, 그분께서 동참하시지 않게 한 적이 없었다. 그분과 나를 생기 있게 한 뜻이 하나였으니, 내가 죽음과 고통을 겪을 때나 활동하고 있을 때나 어느 때든지 그분도 죽음과 고통을 겪으시며 나와 함께 활동하셨다.
15. 그분은 과연 영적으로 내 충실한 복사판이셨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을 그분 안에 반영하면서 또 하나의 나를 거기에서 발견하곤 하였다.
16. 이제, 내 엄마에게 했던 일을 너에 대해서도 하고자 한다. 내 엄마 다음으로 너를 배치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 땅에도 당신 모습을 반영하시게 하려는 것이다. 나 자신과 내 엄마와 너를 통해서 말이다.
17. 이는 내 뜻이 한 피조물을 통하여 땅에서도 활동적인 생명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내 뜻이 지닌 것과 내 뜻이 내 인성으로 하여금 겪게 한 것을 내가 주지 않는다면, 내 뜻이 어떻게 활동적인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내 뜻은 내 안에, 또 나와 불가분적인 내 엄마 안에 참으로 활동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
18. 이제 그 생명을 네 안에 가지는 것이 나의 원이다. 한 피조물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이다. 내 뜻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조건부로 정해질 것이다.”
19.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아들었기 때문에 내 변변찮은 존재가 더욱 으깨져 사라지는 느낌이었고, 나 자신은 그럴 만한 위인이 도무지 못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정말 큰 실수를 하고 계신다. 그분의 택함을 받을 만한 착한 영혼들이 나 말고 수두룩이 있으련마는!’
20. 내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그분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가엾은 딸아, 너의 작음이 내 곁에 있을 때면 녹아 없어질 지경이 되는구나. 하지만 나는 그렇게 결정했으니, 너를 인류 가운데서 빼내야 했다.
21.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다른 피조물을 빼냈을 테지만, 너는 누구보다도 작아서 아기처럼 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내 가슴의 젖을 먹이며 길렀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생명이 네 안에 있음을 느끼기에,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22. 보고 또 보기를 거듭하고 기뻐하면서 나는 아버지와 성령께서도 너를 보시게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전원의 일치로 너를 택하였다. 그러니 너에게 남아 있는 일은 다만, 내게 충실하고, 생명과 고통과 효과 및 우리 성삼위의 뜻이 원하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14권-45, 예수님과 각 영혼의 유대 관계
은총에 화답하는 것의 의미
1922년 7월 24일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눈부신 위업과 사랑에 찬 모습으로 오셨다. 첫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까지 모든 세대를 내게보여 주셨는데, 각 사람이 저마다 다정하신 예수님과 하나로 묶여 있었다.
2. 그것은 매우 긴밀한 유대 관계였다. 예수님께서 그들 각자의 수만큼 많아지셔서 사람마다 자기만의 예수님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 각 사람의 모든 고통과 죽음을 겪으시려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시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계셨다.
3. “아버지, 모든 피조물의 수와 같은 수로 그들 각자 안에 있는 저 자신을 받아 주십시오. 제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대신하여, 그들이 아버지께 마땅히 드려야 했으나 드리지 않았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4. 내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게 “딸아, 너도 각 사람과의 이 유대 관계를 받아들이겠느냐? 그래야 너와 나 사이에 다른 점이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하셨다.
5. 나는,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이의 무게를 내 어깨에 메고있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나의 무가치와 나약이 보이면서 실신할 지경이 되었다.
6. 복되신 예수님께서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양팔로 당신 가슴에 붙여 안으시고, 창에 찔리신 상처 자리에 내 입을 대게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7. “마셔라, 딸아, 이 상처에서 세차게 쏟아져 나오는 피를 마셔라. 네게 부족한 힘을 얻기 위함이다. 용기를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8. 우리 함께 모든 부담과 일과 고통과 죽음들을 나누자. 이런 이유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주의를 기울이며 충실을 다하여라.’ 왜냐하면 내 은총은 화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화답이 없으면 내려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없다.
9. 사람이 눈을 뜨거나 감거나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눈을 뜬 상태로 있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요, 계속 감고 있는 것은 매우 해로운 일이다.
10. 눈을 뜨고 있어야 눈이 빛으로, 햇빛으로 가득하다. 이 빛이 있어야 손이 일할 수 있고, 발이 비틀대지 않으며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또 보이는 대상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식별할 수 있고, 사물을 다시 정돈할 수 있으며, 글을 읽거나 쓰는 일 등을 할 수 있다.
11.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잃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 눈을 감는 것이다. 그러면 손이 일할 수 없고 발이 걸을 수 없다. 걸으려고 하면 비틀비틀하다 넘어지기 십상이다. 또 사물을 식별할 수 없으며 무능한 사람이 되고 만다.
12. 은총에 화답한다는 것은 바로 영혼의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이 눈을 뜨고 있으면 빛이 정신 속으로 들어오고, 그가 행하는 모든 것 속에 내 모습이 반사되어 나를 충실히 본받게 된다. 이와같이 내게서 빛을 계속 받음으로써 그의 온 존재가 빛으로 변하는 것이다.
13. 한편 은총에 화답하지 않는 영혼은 그 때문에 어둠 속에 잠기고 아무 활동도 하지 못하게 된다.”
14권-46, 각 피조물을 위하여 이중의 죽음을 치르신 예수님
1922년 5월 19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 온전히 잠겨 있는 느낌이 들자 그분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2. "딸아, 너의 지성을 나의 지성과 하나 되게 함으로써 네 지성이 모든 피조물의 지성 안을 순환하며 그들의 각 생각과 결합되게 하여라. 그러면 그 생각들을 내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같은 수의 생각들로 대치할 수 있고, 따라서 모든 생각들이 거룩하게 행해진 것처럼 내가 영광을 받게 된다.
3. 너의 뜻을 내 뜻 안에 펼쳐, 내 뜻과 네 뜻이 이루는 그물에 붙들리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이 없게 하여라. 내 안에 있는 내 뜻과 네 안에 있는 내 뜻이 한데 녹아 동일하고 끝없는 영역을 이루어야 한다.
4. 하지만 나는 너의 뜻이 내 뜻 안에서 널리 퍼질 필요를 느낀다. 내가 빚어낸 모든 조물 중 단 하나도 거기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함으로써 내가 그 만물을 통해 인간의 뜻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 뜻의 메아리를 들으며 그 안에 나의 모상을 낳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5. 보아라, 딸아, 나는 각 피조물을 위하여 이중의 죽음을 치렀다. 하나는 사랑의 죽음이요, 또 하나는 고통의 죽음이었다. 나는 피조물을 창조할 때 온통 사랑의 복합체로 빚어내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그에게서 나오지 않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과 피조물의 사랑이 계속적인 흐름 속에 있게 하였다.
6. 인간은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배은망덕하게도 모욕까지 하였다. 나는 내 거룩하신 아버지께 이 사랑 결핍을 보상해야 했으니, 각 사람에 대한 사랑의 죽음과 모욕들에 대한 고통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하였다.”
7.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온통 불꽃에 휩싸이신 그분을 보았다. 각 사람을 대신하여 그분을 태우며 죽음을 안겨 주는 불꽃이었다. 더욱이 각각의 생각과 말과 행위와 일과 발걸음 등등이 같은 수의 불꽃이 되어 예수님을 태워 죽이기도 하고 다시 살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8. 그때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모상이 되고 싶지 않으냐? 고통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과 같이, 사랑의 죽음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9. 나는 “아, 예수님,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고통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도 저는 아직 심한 반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훨씬 더 혹독해 보이는 사랑의 죽음을 제가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10. 그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립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본성이 다 형편없이 꺾여 이젠 망했다고 여길 지경입니다. 저에게 도움과 힘을 주십시오. 아무래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하였다.
11. 그러자 예수님은 매우 자애로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덧붙여 말씀하셨다.
“내 가련한 딸아, 용기를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네가 반감을 느낀다고 해서 심란해하지도 마라. 너를 안심시켜 주려고 하는 말이지만, 이 반감 역시 나를 닮은 점이다.
12. 내 인성은 거룩했으며 고통 받기를 한없이 열망하고 있었지만, 이 인성 역시 그런 반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반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면서, 또 받아 마땅한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모든 반감이었다.
13. 나는 그래서 나를 심하게 괴롭힌 이 고통들을 적지 않게 겪어야 했다. 그들에게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서, 또 그들의 고통을 완화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나는 겟세마니에서 아버지께, '아버지,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14. 너는 그렇게 말한 것이 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네 생각이 틀렸다.나는 고통받는 것을 미치도록 좋아하였고 죽음도 좋아하였다. 내 자녀들에게 내 생명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15. 그러므로 그것은 내 인성 안에 메아리친 온 인류 가족의 부르짖음이었고, 그들에게 힘을 주려고 나도 그들과 함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세 번이나 부르짖었다. 마치 나 자신의 말인 것처럼 그렇게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었지만, 짓눌려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16. 내가 느끼는 반감도 네 것이 아니고, 내 반감의 메아리다. 그게 네 것이라면 내가 너에게서 제거했을 것이다. 딸아,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또 다른 나 자신의 모상을 낳고 싶기에 내가 이를 수락하기 바란다. 내가 몸소 내 사랑의 죽음들 도장을 네 뜻 안에 찍어 주겠다. 이것이 나의 뜻 안에 널리 퍼져 나가며 타오를 것이다.”
17.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당신의 거룩하신 손으로 내게 그 도색을 찍으시고 사라지셨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기를 빈다.
14권-47, 글의 출판을 꺼린다고 예수님께 꾸중을 듣다.
1922년 7월 30일
1. 고해사제의 명에 따라, 예수님께서 덕행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적은 글을 복사하게 했는데, 내게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못 불쾌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2. “딸아, 왜 나를 숨기려고 드느냐? 내가 이름조차 대기 싫은 불명예스러운 존재란 말이냐?
3. 불명예스러운 사람에게서 나온 하나의 미덕이나 말이나 업적이나 진실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숨긴다. 그 미덕이나 말 따위에 내포된 가치나 영예, 위광이나 효과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면 그런 미점들의 출처가 상찬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기에, 그에게서 나온 모든 것이 평가 절하되거나 숫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4. 이와 반대로, 선하고 명예스러운 사람일 경우에는, 그 사람이 말했거나 행했던 모든 것을 강조하여 더 높은 평가를 받게 하려고 우선 그 이름부터 밝힌다. 그런 다음 그의 행적이나 말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다.
5. 그렇다면 내 이름이 내 말보다 앞에 놓일 자격이 내게 없다는 것이냐? 아, 네가 내게 이런 몹쓸 대접을 하다니! 이런 슬픔을 안겨 주다니!
6. 하지만 나는 너를 너그럽기 짝이 없게 대해 주었다. 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려 주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려 준 적이 없는 가장 내밀한 것까지도 알려 주었다. 그러니 너는 나를 알리는 일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관대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토록 인색하게 굴다니!
7.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내가 말해 준 약간의 지식을 우렁찬 나팔 소리로 드러 내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고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너는 그러기는 커녕 나를 숨기려고 드니, 도무지 내 마음에 들 턱이 있겠느냐?”
8. 극도로 당황한 나는 꿇어 엎드린 채 쩔쩔매는 목소리로 “예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말씀이 옳습니다.”하였다. “그것은 제가 딱 질색인 것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밝히면 저의 존재도 드러내야 하는 것이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더 큰 힘과 은총을 주시며 제 마음을 더 관대하게 넓히시어, 다시는 이런 슬픔을 드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9. 그러자 예수님은 “네 마음이 더 많은 은총을 받고 더 관대하게 나를 알리며 사랑받게 하도록 내가 강복해 주마.”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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