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36, 하느님 뜻은 예수님 생애의 구심점이었으니,
이 뜻 안에 사는 영혼의 구심점이기도 하다.
1922년 6월 15일
1.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면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거룩하신 뜻 안으로 녹아들고 있을 때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영원한 뜻은, 내가 잉태되어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내 생애의 구심점이었다. 그것이 나를 앞서고 동반하면서 내 행위의 생명이 되었고,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 행위를 이 뜻의 영원한 영역 안에 포함시켜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였다.
3. 그런데 내 영원한 뜻은 끝없이 무한한 것이기에 포함할 수 없는 지점이 없었고, 지배할 수 없는 세대도 없었다. 따라서 그것이 내 행위를 이루고 이 행위를 모든 사람을 위하여 불어나게 하되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것처럼 했던 것은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4. 사람은 자기가 소유한 것만 남에게 줄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소유한 것 이상을 줄 수는 없다. 한데 내 뜻은 무한성을 지니고 있어서 원하는 수만큼 행위를 불어나게 하는 능력이 있었고, 영원성을 지니고 있어서 창조된 당초와 마찬가지로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물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길이길이 존속하게 할 수 있었다.
5. 이런 이유로 내 뜻의 능력은 내가 잉태된 첫 순간부터,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들과 같은 수의 잉태를 빚을 수 있었고, 내 말과 생각과 행위와 발걸음을 증가시켜 첫 사람에서부터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퍼져 나가게 할 수 있었다.
6. 내 영원한 의지의 능력은 또한 내 피와 고통들도 끝없는 바다로 바꾸어 모든 사람이 이를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만일 이 지고한 뜻의 놀라운 능력이 없었다면, 나의 구원 사업은 개인적이고 제한적이어서 오직 몇몇 세대만을 위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7. 그런데 내 뜻은 변함이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다. 더구나 나 자신이 지상에 왔기에,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을 다시 묶게 되었다.
8. 이 결속의 끈 밖으로 달아나지 않는 영혼에게는, 곧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며 이 뜻이 자신을 앞서고 동반하며 따라다니게 함으로써 자기의 행위를 내 의지 안에 포함시키는 영혼에게는, 나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9. 보아라, 네가 네 생각과 말과 행위와 보속을, 또 네 작은 사랑을 내 뜻 안에 녹아들게 하고 있을 때면, 내가 그것들을 확대하며 증가시킨다. 그러면 그것이 사람들의 각 생각과 말과 행위 하나 하나에 대한 해독제가 되고, 각각의 죄에 대한 보속이 되고, 하나하나의 사랑을 대신하는 사랑, 곧 내게 합당한 사랑이 된다.
10.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것은 인간적인 뜻 탓이다. 인간적인 뜻이 신적인 뜻의 밥이 될 정도로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않아 모든 것을 받아가지지 못하고, 따라서 그 자신을 모든 이에게 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
11. 그러면 사람의 뜻은 인간적인 것이 자신을 불행하게 하고 제한하며 가난하게 하고 불완전하게 한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12. 너의 뜻이 내 뜻 안의 삶을 살고, 내 뜻 안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피조물이 할 수 있는 한 잘 깨닫는 것 - 여기에 내가 온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네가 그렇게 살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고, 나에게 모든 것을 줄 것이니 말이다.”
13. 이 말씀을 하신 뒤 그분은 사라지셨고, 나중에 다시 오셨을 때는 온통 상처투성이인 모습이셨다. 그런데 그 상처들은 수많은 작은 세포들을 이루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 세포들 안에 영혼들을 불러들여 에워싸시고, 안전하게 보호하시려는 것이었다.
14. 나는 그분께 "제 사랑이시여, 저의 작은 세포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제가 그 안에 쏙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으렵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딸아, 너를 위한 작은 세포는 내 몸 안에 없다." 하셨다. "왜냐하면 내 뜻 안에 사는 사람은 내 작은 세포 한 칸이 아니라 내 심장 박동 안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16. 심장 박동은 인체의 중심이며 생명이다. 심장 박동이 그치면 생명도 그친다. 이것이 혈액 순환과 체온과 호흡 작용을 유지하고, 따라서 지체의 생명과 활동력을 유지한다. 그 박동이 불규칙하게 되면 인체의 제 기능이 혼란에 빠진다. 지성마저 활기와 지력과 완전한 총기의 빛을 잃는다.
17. 이는 내가 사람을 창조할 때 그 심장에 특수한 소리를 집어넣고 이 소리를 영원한 하모니에 맞추어 조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장 박동이 정상이면 그 피조물 안의 모든 것이 조화로운 것이다.
18. 내 뜻은 피조물 안의 심장 박동과 같다. 이 뜻의 박동에 성덕이 화응하고 덕행이 화응하면서 하늘과 땅 사이의 조화를 이룬다. 그 하모니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도달할 만큼 높이 퍼져오르는 것이다.
19. 너에게는 하나의 세포가 아니라 내 심장 박동이 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니, 이 박동이 세포처럼 너를 에워싸서 단 한 번의 박동으로도 네가 하늘과 땅 사이에 조화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순환하며 만물 안에 있게 하려는 것이다. 너는 내 안에서 순환하고 나는 네 안에서 순환하면서 말이다.”
14권-37, 하느님의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들은 그때마다 하느님에게서 새로운 지복과 기쁨이 나오게 한다.
1922년 6월 19일
1. 여느 때와 같은 상태로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의 지고하신 뜻 안에 잠겨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 거룩하신 뜻 안에서 행하는 사소한 행위들이 그때마다 거룩하신 임금님에게서 새로운 기쁨이 나오게 하는 것 같았는데,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기쁨과 행복과 더없는 행복을 무한히 소유하고 있어서 매순간 새로운 기쁨과 지복을 줄 수 있다. 영혼이 내 뜻 안에서 활동하면 그때마다 이 새로운 지복과 기쁨을 쏟아낼 자리를 나에게 주는 것이다.
3. 그런데 내 뜻은 무한하여 만인과 만물 안에 두루 퍼져 있다. 그러므로 내 지복과 기쁨이 쏟아져 나오게 한 일차적인 원인이 된 영혼에게, 곧 내 뜻 안에서 활동 중인 사람에게 그것이 맨 먼저 흘러들고, 그런 다음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흘러든다.
4. 너는 따라서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횟수와 같은 수로 나로 하여금 지복과 기쁨을 쏟아내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소유한 기쁨을 나누는 흐뭇함을 느끼게 된다.
5. 내 뜻은 스스로 소유한 것을 내어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럴 기회를 줄 사람을 계속 찾고 있다. 이는 받을 채비가 되어 있는 사람, 즉, 자기 영혼안에 나의 이 새로운 기쁨을 넣어 둘 작은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을 말한다.
6. 사람은 내 뜻을 실행함에 의해 내 의지의 문을 열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비움에 의해 내 선들을 넣어 둘 작은 자리를 내게 마련해 주게 된다. 그리고내 뜻 안으로 들어와 활동함에 따라 새로운 지복을 쏟아낼 기회를 내게 준다.
7. 따라서 나는 내 영원한 의지 안에 들어와 활동할 영혼을 고대하고 있다. 나 자신으로부터 새로운 기쁨을 쏟아내기 위함이요, 내 뜻을 실행하는 이에게 언제나 무엇인가를 주는 하느님인 나를 - 아무리 퍼주어도 말라 없어지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인 나를 알리기 위함이다.”
14권-38, 자기 자신의 뜻을 완전히 비우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 뜻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지 못한다. 태양보다 월등 밝은 진리.
1922년 6월 20일
1.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시지만, 고해 사제들조차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이 무한한 빛 앞에 있으면서도 비추임을 받지 못하고, 이처럼 매력적인 뜻에 반하지도 못한다.
2.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 목에 한 팔을 두르시고 말씀하셨다. "딸아, 그건 의아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뜻을 완전히 비우지 않은 사람은 내 뜻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지 못하기 마련이다.
3. 사람의 뜻은 내 뜻과 그의 뜻 사이에 구름이 끼게 하고, 이것이 내 뜻이 지닌 가치와 효과를 아는 데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일지라도 이것이 빛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4. 보아라, 이 세상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이라고 해서 사람이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태양을 어떻게 창조했는지, 또는 태양이 얼마나 많은 빛과 열을 지니고 있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사람들은 태양을 보며 그 효과를 누리고, 태양은 종일 그들과 함께 있으며 그 빛과 열이 어디든지 그들을 따라간다.
5. 누군가가 높이 떠올라서 태양을 알려고 한다면, 그 빛이 그의 눈을 멀게 할 것이고, 그 열이 그를 태워 버릴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태양을 탐구할 수 없다. 그저 눈을 내리깔고 '저건 태양이야.'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6. 내가 사람의 자연적 선을 위하여 만들어 내었기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태양도 그러한데, 하물며 태양보다 훨씬 더 많은 빛과 열을 지닌 진리, 특히 내 뜻에 대한 진리야 얼마나 더 그러하겠느냐? 이 진리는 영원한 효과와 선과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누가 그 모든 것을 측량할 수 있겠느냐? 그런 시도를 한다면 눈이 멀기를 바라는 것과 같을 것이다.
7. 내 진리의 빛은 전체를 완전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아예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 따로 제쳐두기 보다는, 차라리 이마를 숙이고 이 진리가 가져오는 빛을 즐기며 사랑하고, 인간의 오성으로도 깨달을 수 있는 작은 빛을 자기 것으로 삼는 편이 나을 것이다.
8. 사람은 태양을 잘 모르면서도 할 수 있는 한 많이 그 빛을 즐기고, 이를 활용하여 일하고 걷고 사물을 본다. 그리고 그 빛이 자기와 함께 다니며 함께 살게 하려고 환한 낮을 기다려 마지않는다.
9. 그런데 인간 정신 안에 빛보다 더 밝은 태양이 떠오르게 하는 내 진리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응시하지도 사랑하지도 열망하지도 않는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10. 하지만 그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보이면 나도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 진리들로 하여금 이를 사랑하며 열망하고 이들의 빛으로 자신의 삶을 빚으며 마침내 이들과 하나 되는 영혼들과 함께 진로를 따라가게 할 따름이다.
11. 너는 내가 내 진리들에 대하여, 이들이 지닌 효과와 가치에 대하여 너에게 전부 말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오! 내가 떠오르게 해야 할 태양들이 아직 수많이 남아 있다. 그러니 네가 전부를 다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의아해할 것 없다. 그 빛으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여라. 내게는 그것으로 족하다.”
14권-39, 피조물에게서 따돌림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고독
1922년 6월 26일
1. 늘 같은 일상 속에 머물러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셨다. 사실은 며칠 동안 온몸이 경직되어 움쩍도 할 수 없는 터였으므로, 그분께서 내 손을 잡으시고, "딸아, 네 몸을 풀어 주마." 하셨다. 그리고 상체를 굽혀 내 두 팔을 당신 어깨에 얹어 놓으시고 말씀하셨다.
2. “이제 마비가 풀렸다. 내게 딱 붙어 있어라. 너와 함께 있으려고, 또 그 보답으로 너의 동반을 받으려고 내가 왔다. 보아라.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나를! 나는 그들 가운데에서 살며 그들이 행하는 각 행위의 생명이건만, 그들은 내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은 것처럼 지낸다.
3. 오, 이 고독이 얼마나 한탄스러운지! 내가 태양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태양은 자신의 빛과 열로 만물 가운데 살고 있다. 비옥한 것치고 태양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고, 그 열은 이 땅의 더러운 것들을 수많이 정화한다. 태양은 또한 관대하게도 셀 수 없이 많은 선을 모든 사람 위에 내려보낸다.
4. 하지만 태양은 저 높은 곳에서 언제나 혼자 산다. 사람은 배은망덕하여 '고맙다'는 말 한마디 보내지 않고, 다른 어떤 사의(謝意)도 표하지 않는다.
5. 나도 그렇다. 혼자다! 언제나 혼자다... 그들 가운데에 있으면서 내가 모든 생각의 빛이요, 모든 말의 소리이며, 모든 일의 활동, 모든 발의 걸음, 모든 심장의 박동이건만, 사람은 배은망덕하게도 나를 혼자 내버려두고, '고맙습니다.' 라든가 '사랑합니다.' 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6. 나는 또 사람의 지성 속에서도 고립되어 있다. 내가 준 빛을 그들 자신을 위하여 쓰거나 나를 모욕하기 위해 쓰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 속에서도 내가 고립되어 있는 것은 그 말의 소리가 나를 모독하는 데에 쓰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활동 안에서의 내 고립은 이 활동으로 나를 죽이기 때문이요, 사람의 걸음과 마음 안에서의 내 고립은 사람의 의향이 오직 내게 불순종하는 것에 있거나 내게 속하지 않은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7. 오, 이 고독이 나를 얼마나 무겁게 짓누르는지! 그러나 내 사랑, 내 관대함은 너무나 크기에 태양 이상으로 내 길을 계속 간다. 가면서 줄곧 찾는다. 이리도 큰 고독 속에 있는 나를 동반하고자 하는 사람을.
8. 그런 사람을 찾아내면 영원한 동반자로 삼고 그에게 내 은총을 아낌없이 부어 준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온 까닭이니, 이 고독이 지겨워서다. 딸아, 그러니 너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마라.”
14권-40, 예수님께서 수난 전에 어머니께 강복하신 의미.
예수님의 성사적 생명을 전부 수탁하게 되는 사람.
1922년 7월 6일
1.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수난의 시간들' 중 거룩한 축복을 청하려고 당신의 거룩하신 엄마에게 가시는 그분을 동반하였다. 그때 지극히 다정하신 그분께서 내 내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수난 전에 내 엄마에게 강복하고, 엄마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내 엄마에게만 강복한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에게 강복하였다. 피조물이 허약하고 상처투성이이며 궁핍한 것을 보자, 내 가슴이 비통과 자비로 고동치고 있었던 것이다.
3.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 ‘가련한 인류야, 네가 얼마나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지! 그 상태를 떨치고 다시 일어나도록 너에게 강복한다. 내 강복이 네 안에 성삼위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의 삼중 인장을 찍기를, 이것이 네 힘을 되찾아 주고 너를 치유하며 부유하게 하기를 빈다.
4. 또 나는 너를 에워싸고 지키도록 내가 빚어낸 모든 조물들도 축복한다. 내 축복을 받은 그들을 네가 받게 하려는 것이니, 너를 위하여 빛과 공기와 물과 불과 먹을거리를 축복한다. 그러면 네가 내 축복에 싸여 잠겨 있는 것 같을 것이다. 너는 그러나 이를 받을 자격이 없기에 내가 내 엄마를 통로로 삼아 내 강복이 너에게 다다르게 한다.’
5. 내 엄마께서 당신의 축복으로 나에게 보답하셨듯이 사람들도 그들의 축복으로 내게 보답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하지만, 아아 슬프다, 그들은 내게 축복으로 보답하기는커녕 모욕과 저주를 퍼붓는다.
6. 딸아, 그러니 너는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모든 피조물의 날개를 타고 높이 떠올라 그들이 내게 마땅히 주어야 할 축복으로 모두에게 인장을 찍고, 그 모든 축복을 비통과 자애에 찬 내 가슴으로 가져오너라."
7. 내가 그렇게 하고 나자 그분께서 보답하시기 위함인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너에게 특별히 강복한다. 너의 마음과 정신과 활동과 말과 숨 - 네 전체와 네 안의 모든 것에 강복한다."
8. 그 후 나는 '수난의 시간들'을 계속 따라갔다. 성찬례 제정의 만찬 시간이 되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내면에서 움직이시며 그 안을 손가락 끝으로 세게 두드리셨다. 그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기에, '이렇게 세게 두드리시니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를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9. "내 말을 귀담아듣게 하려고 너를 불렀다.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말이다. 잘 들어라. 딸아, 나는 성찬례를 제정하는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내 주위로 불렀고, 첫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까지 그 모든 세대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이에게 내 성사적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것도 한 번만이 아니라 그들이 이 유형적인 음식을 필요로 할 때마다 주기 위해서였다.
10. 그렇게 나 자신을 영혼의 음식으로 주고자 했지만, 내 성사적 생명이 멸시와 무관심, 심지어 무자비한 죽음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여간 슬프지 않았다. 그리고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내 성사적 생명이 너무나 비참하게 반복적으로 겪게 될 죽음의 온갖 아픔이었다.
11. 그때 나는 더욱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뜻의 능력을 발휘하여, 장차 내 뜻 안에서 살게 될 영혼들을 내 주위로 불렀다. 그러자, 오, 얼마나 기쁘던지! 내 뜻의 능력에 흡수된 듯한 영혼들, 내 뜻이 그들 삶의 중심인 영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12. 나는 이 영혼들 안에서 내 무한성을 보았고, 모든 것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내 성사적 생명을 맡겼다. 이 생명을 맡긴 것은 그들이 이를 돌볼 뿐만 아니라 각각의 성체에 대해 그들의 생명으로 내게 보답하게 하려는 것이다.
13. 이는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내 성사적 생명은 내 영원한 뜻에 의해 생명을 받는데, 이 영혼들의 생명은 내 뜻의 생명을 그 중심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4. 따라서 내 성사적 생명이 이루어질 때에 내 안에서 활동하는 내 의지가 그들 안에서도 활동한다. 그러니 나는 내 성사적 생명 안에서 그들의 생명을 느낀다. 그들이 나와 함께 각 성체마다 불어나기에, 내가 생명에 대해 생명을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15. 오, 내가 내 뜻 안에서 네 생명을 이루도록 특별히 부른 너, 그런 첫 사람인 너를 보면, 내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이 이는지 모른다! 나는 처음으로 네 안에 내 성사적 생명들 전부를 맡겼고, 네가 이를 맡을 수 있게 하려고 지고한 의지의 능력과 무한성에 너를 맡겼다.
16. 그때부터 너는 내게 현존해 있었고, 나는 너를 내 성사적 생명의 수탁자로 임명했으며, 내 뜻 안에서 살게 될 다른 모든 영혼들도 네 안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 위에, 심지어 사도들과 사제들 위에 높은 권한도 너에게 주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니, 내 뜻은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17. 사실 그들은 나를 축성하지만 나와 함께하는 생명으로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돌보지 않고 잊어버린 채 홀로 내버려둔다.
18. 반면에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은 나 자신의 생명 안에 있는 생명, 내게서 분리할 수 없는 생명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너를 끔찍이 사랑한다. 즉 내가 네 안에 있는 나 자신의 뜻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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