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1-15권

천상의책 (14권-29-31)하느님의 뜻은 생명과 선을 불어나게 하시는 활동/ 선행적 행위와 현행적 행위

Skyblue fiat 2015. 6. 15. 14:56

 

14권-29,  예수님의 성심뿐만이 아니고 모든 속성에도 이름이 적혀 있음을 보다. 

사랑을 의심하는 죄.

1922년 5월 15일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러나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온통 괴로움에 싸여 지냈다. 그런데 기도 중에 누군가가 내 어깨 뒤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예수님인 줄 몰랐으므로 무서워서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분은 한쪽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으시고, “루이사야,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하셨다.

 

2. 나는 고통스러운데다 그분을 기다리는 것이 지겹기도 했기 때문에, “오, 예수님, 당신께서 이제는 전처럼 저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제게서 모든 것을 앗아 가셨고, 고통마저 가져 가셨습니다. 제게 남은 것은 다만 당신뿐인데 너무나 자주 달아나시니,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서 당신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몰라지곤 합니다. 아, 정말이지 더 이상은 저를 사랑하시지 않나 봅니다!” 하였다.

 

3.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두려움에 압도될 만큼 위엄이 넘치는 표정으로, 너는 내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로 나를 모욕하였다. 이 점을 명심하여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더없이 큰 모욕을 주는 것이다. 뭐라고!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주는 온갖 은총은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거냐?" 하셨다.

 

4. 나는 어쩔 줄 모르도록 당황했다. 예수님의 그 엄하신 표정 앞에서 그야말로 온몸을 화들화들 떨며 진심으로 용서와 자비를 간청하였다. 그제야 그분은 부드러운 표정이 되시며 말씀하셨다.

 

5.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내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하겠다.”

 

6. 그 뒤 내가 얼마간 고통을 받고 나자 그분께서 다시, “이제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보여 주고 싶다.” 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성심을 열어 보이셨다.

 

7. 거기에서 무한한 바다들이, 능력과 지혜와 자애와 사랑과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무한한 바다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 바다들 각각의 중심에, “루이사, 내 무한성의 딸, 내 능력의 딸, 내 지혜의 딸, 내 자애의 딸, 내 사랑의 딸, 내 아름다움의 딸, 내 거룩함의 딸.”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8. 나는 바라볼수록 더욱더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예수님은 그러나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았느냐?” 하셨다. “내 마음뿐만이 아니고 내 모든 속성들에도 네 이름이 적혀 있고, 내 안에 적혀 있는 네 이름이 나로 하여금 너에게 은총과 빛과 사랑 등등의 새로운 흐름의 물꼬를 트게 한다. 그런데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네가 어떻게 의심할 수 있는 거냐?”

 

9. 이후 나는 짓부수어진 상태로 남아 있었다. 어느 정도로 그러했는지는 오직 예수님만이 아실 것이다. 그것은 내가 예수님을 모욕했다는 사실, 그것도 그분의 면전에서 모욕했다는 사실을 생각에서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 하느님 맙소사!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죄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14권-30,  하느님 뜻은 하늘의 복된 이들 안에는 지복을 주지만, 

땅에서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이 안에서는 활동하신다.

하느님의 뜻은 생명과 선을 불어나게 하시는 활동이다.

1922년 5월 19일

 

1. 평상시와 다름없이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내면에 나타나셨다. 여기에서 작은 문을 여시고 이 문에 양팔을 기대신 채,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시려고 고개를 바깥쪽으로 돌리셨다. 나도 예수님과 함께 내다보았다.

 

2. 하지만 누가 말할 수 있으랴? 그 넘치는 악과 퍼부어지는 모욕들 및 쏟아져 내릴 징벌들을? 너무나 비통한 이 광경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또한 내 가련한 나라도 하느님 징벌의 채찍을 맞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3.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과 비탄에 젖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것을 보고 계셨다. 그런 그분을 뵙자, 이전 같으면 내가 그분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향해 얼굴을 돌이키시게 할 수 없었을 것이지만,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었다.

 

4. “제 사랑, 제 생명이시여, 당신의 소중한 형제이며 저의 형제인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 보이시지요? 저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시렵니까? 징벌을 면해 줄 수 있다면 제가 무슨 고통이든지 기꺼이 받겠습니다.

 

5. 보십시오. 이것이 산 제물의 신분이 제게 부과하는 의무인즉, 곧 주님을 본받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모든 고통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저들의 고통을 면해 주려고, 또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으신 주님을 본받으려고 제가 고통을 받고자 하는데, 주님께서 어떻게 이를 말리실 수 있습니까?”

 

6. 그러자 예수님은 내 말을 가로막으시며 말씀하셨다.

, 딸아, 사람은 내가 혐오감을 느끼지 않고서는 볼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내가 사람을 본다면 오직 네 안에서 볼 뿐이다. 네 안에서 내 인성의 모든 자애와 내 기도를 보고 마음이 움직여 그들을 측은히 여기며 볼 수 있고, 너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의 목숨을 살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7.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정화다. 이것이 없으면 그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런고로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려고 한다. 뜻밖의 일을, 곧 새로운 징벌을 내려, 사람이 그 영문조차 알 수 없게 하리니, 이로써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작정이다.

 

8. 그러나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너에 대한 사랑으로 얼마쯤은 면해 주겠다. 나는 네 안에서, 마치 내 인성 안에서 느끼는 것처럼, 모든 피조물과 소통하는 기류를 느끼기에, 너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조금도 기쁨을 주지 않은 채 배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9. 나중에 나 자신의 바깥에, 매우 높은 어떤 곳에 나가 있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천상 엄마와 작고하신 우리 대주교와 내 부모님과 다정하신 예수님을 뵈었다. 예수님은 주교님의 팔에 안겨 계셨다. 주교님은 나를 보자마자 예수님을 내 팔에 안겨 주면서, “딸아, 이분을 받아모시고 즐겁게 지내라.” 하였다.

 

10. 예수님은 내 팔에 안겨 크게 기뻐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극히 사랑하는 내 뜻의 딸아, 내가 내 뜻 안에서 살게 하는 큰 선물을 너에게 주면서 맺었던 계약을 지금 새로이 하고 싶다.

 

11. 그러므로 사람들을 대표해서 내 사랑하는 엄마를, 세상에 있을 때 너를 지도하는 일에 참여했던 주교를, 그리고 네 부모를 이 자리에 모셨다. 이는 네가 내 뜻 안에 더욱 굳건히 머물면서 내 뜻에 포함된 모든 흐름과 선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그리하여 사람들이 내 뜻 안에 사는 일의 영광을 처음으로 받게 하려는 것이다.

 

12. 너는 내 뜻 안에서 하나의 티끌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 티끌 안에 내 뜻의 모든 무게를 두었다. 그것은 네가 움직임에 따라 내 의지의 무한한 바다가 이 움직임의 영향을 받아 잔물결이 일게 하려는 것이요, 이렇게 바닷물이 뒤흔들린 듯이 그 신선한 기운과 향기를 발산하면서 하늘과 땅의 선익을 위해 넘쳐흐르게 하려는 것이다.

 

13. 티끌은 극히 작고 가벼워서 내 뜻의 무한한 바다를 통째로 움직일 수 없으나 일단 내 뜻의 무게가 실리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 그러니 너는 나 자신으로부터 거룩한 행위들이 더욱 많이 나오게 할 터를 닦게 된다.

 

14. 너는 또 샘에 던져지는 작은 돌멩이와도 같다. 이것이 떨어지면 샘물에 잔물결이 일고 흔들리면서 신선한 기운과 향기를 발산한다. 하지만 이 작은 돌멩이에는 내 뜻의 무게가 실려 있지 않아서 샘물을 넘쳐흐르게 할 수 없다. 반면에 너라는 티끌은 내 뜻의 무게가 있기에 내 바다를 압도할 뿐더러 하늘과 땅을 그 바닷물에 잠기게 할 수도 있다.

 

15. 너는 내 뜻 전체와 이 뜻이 지닌 모든 선을 단숨에 마시듯 마실 것이고 또한 단숨에 이를 밖으로 내뿜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마시고 내뿜고 하는 동작을 하는 동안 그 횟수와 같은 수로 내 생명과 선을 불어나게 할 것이다.

 

16. 하늘에 있는 복된 이들은 내 뜻이 지닌 모든 지복을 누리며 내 뜻을 그들 자신의 중심으로 삼고 그 안에서 살지만, 이 뜻을 불어나게 하지는 못한다. 그들의 공로가 그들 안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내 생명과 내 뜻과 내 선을 불어나게 할 수 있으니 그들보다 더 행복하다.

 

17. 내 뜻은 그들 안에 지복을 가져온다. 하지만 네 안에서는 활동한다. 내가 너의 행위를 요구하는 것은 나 자신을 불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네가 활동할 때 내 뜻 안에 활동하는지 내가 마음 죄며 지켜보는 것은 이 때문이니, 네 행위 안에서 나 자신이 불어나는 것을 보는 흐뭇함을 누리려는 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네게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면서 네가 얼마나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느냐!"

 

 

 

14권-31,  선행적 행위와 현행적 행위

1922년 5월 27일

 

1.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는 하나만이라도 그토록 위대한 것이거늘,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행위들을 수없이 빠져 달아나게 하고 있지 않은가!’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말씀하셨다.

 

2. “딸아, 행위에는 선행적인 것 현행적인 것이 있다. 선행적인 행위 날이 밝아오는 첫 순간에 영혼 자신의 뜻을 나의 뜻 안에 고정시키고, 오로지 내 의지 안에서 살며 움직이겠다고 결심을 굳힐 때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자신의 모든 행위를 앞질러 내 뜻 안에 미리 흘러들게 하는 것이다.

 

 

3. 이 선행적인 의지로 그의 모든 행위들이 하나의 행위처럼 되고, 그 안에 내 태양이 떠오르며 내 생명이 배가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현행적 행위들을 보완한다.

 

4. 그러나 선행적인 행위는, 인간적인 방식이나 영혼 자신의 뜻, 자만심, 태만이나 다른 요인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질 수 있다. 그런 것이 태양을 가리는 구름같이 그 빛을 약화시켜 지면을 비추게 한다.

 

5. 이와 반대로, 현행적인 행위는 구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구름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 좀이라도 구름이 끼어 있으면 더 많은 태양이 떠오르게 하는데 여기에는 내 생명이 배가되어 있어서 빛과 열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먼저 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새 태양들을 그만큼 많이 떠오르게 할 수 있다.

 

6. 하지만 둘 다 필요한 행위들이다. 선행적인 행위는 현행적인 행위를 보조하며 현행적인 행위가 이루어질 기반을 닦고, 현행적인 행위는 선행적인 행위의 기반을 보존하며 확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