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24 하느님 뜻 안에서 바치는 기도의 효과
1922년 4월 21일
1. 내가 글을 써 왔고 지금도 쓰고 있는 것은 오직 순명하기 위해서다. 더 큰 이유는 예수님께서 언짢아하시며 내게 오시지 않을 구실을 찾아내시면 어쩔까 두려워서다. 그분만이 이 작업이 내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게 하는지 알고 계신다.
2. 아무튼 그분 없이, 단지 그분의 그림자 몇 개로만 지내다가 - 맙소사! 얼마나 혹독한 고통이었는지! - 혼자 중얼거리기를, “주님은 참! 나를 떠나시지 않겠다던 약속을 이리도 금방 깨어 버리시다니! 오, 거룩하고 영원하신 의지시여, 저의 지고하신 선, 저의 전부이신 분을 제게 모셔다 주십시오!” 하였다.
3. 말하자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심통이 나기도 하고 침통해지기도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그분의 거룩하신 의지 안에 녹아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4. 그러는 사이 그분께서 오셨는데, 조각조각 갈라진 심장을 보여 주시며 슬피 우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시는 모습을 보자 나는 내 찌무룩하던 마음을 싹 제쳐놓고 와락 그분을 껴안았다. 눈물을 닦아 드리면서, “무슨 일이십니까, 예수님? 왜 우십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저들이 주님께 무슨 짓을 했습니까?” 하고 물었다.
5. 그분께서는 “아, 딸아, 그들이 내게 도전하려고 한다. 흉악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도 지도자들이 말이다.”하시며 말문을 여셨다. “너무 괴로워서 내 심장이 조각조각 토막나고 있는 느낌이다. 아, 당연히 내 정의가 쏟아져 내려 피조물을 덮칠 것이다!
6. 그러니 너는 나와 함께 내 뜻 안으로 들어가자. 하늘과 땅 사이에 솟아올라 지고하신 임금님께 흠숭을 드리자.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그분께 찬미와 공경을 드리자. 그러면 하늘과 땅에 흠숭과 공경과 찬미가 충만할 것이고, 모든 이가 이들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7.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과 함께 그분의 뜻 안에서 기도하며 아침나절을 보냈다. 한데 놀랍게도!
우리가 함께 기도하자 그 기도의 말은 하나였지만 거룩하신 의지께서 이를 만물 위에 퍼뜨리셨으므로 그 표가 모두에게 남아 있었다.
8. 이 의지는 그것을 천국에도 가져가셨다. 모든 복된 이들이 이 표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새로운 지복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거룩하신 의지는 또한 땅으로 내려오시기도 하고 연옥 속으로 들어가시기도 했으니, 모두가 그 효과를 얻었다.
9.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럴 때 생기는 효과가 무엇인지, 누가 다 말할 수 있겠는가?
10. 그렇게 나랑 함께 기도하신 후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느냐? 내 의지는 만물과 만인 안을 빙빙 돌아다니면서 그 모든 것의 생명이 되고, 모든 것의 행위자이며 관찰자가 된다. 그러니 내 의지가 없는 곳은 없다.
11. 이와 꼭 같이,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들도 만물의 생명이며 행위자요 관찰자가 되고, 바로 저 성인들의 즐거움과 지복과 기쁨이 되기도 한다. 이 행위들이 도처에 빛을 가져다주고, 기쁨과 행복을 발산하는 향기롭고 천상적인 공기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12. 그러니 너는 결코 내 뜻을 떠나지 마라. 하늘과 땅이 새로운 기쁨과 광채를 받으려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
14권-25, 수많은 천사들이 수호하며 보존하는 거룩한 행위
1922년 4월 25일
1.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하느님의 거룩하신 의지 안에 완전히 잠겨 있는 느낌이 들었고,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태양은 식물을 버리고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신으 빛으로 어루만지고 그 자신의 열로 영양을 충분히 갖추게 하면서 식물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히게 한다. 이때가 되면 잠시도 소홀함 없이 빛으로 에워싸며 지켜 열매가 영글게 한다. 마침내 농부가 양식으로 쓰려고 열매를 따는 때가 와야 비로소 태양은 그 열매를 떠난다.
3.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들도 그와 같다. 이 행위들에 대한 내 사랑과 질투가 너무나 큰 까닭에, 내 은총으로 어루만지고 내 사랑으로 품어 좋은 영양 상태로 영글게 한다. 그리고 나는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단 하나의 행위에 대해서도 수많은 천사들을 배치하여 지키게 한다.
4. 이 행위들은 내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씨앗이기에 모두가 엄중히 지키는 것이다. 그들의 이슬은 내 숨이요, 그들이 드리우는 그늘은 내 빛이다. 천사들이 황홀감에 잠기며 공손하게 경배하기도 하는 것은, 이 행위들 안에서 경배를 받아 마땅한 하느님의 영원한 뜻을 보기 때문이다.
5. 나는 자기 영혼의 양식으로 삼으려고 이 거룩한 열매를 따는 영혼들을 볼 때, 그때라야 비로소 그것을 떠난다. 오, 이 행위들은 얼마나 풍성하고 풍요한지! 이를 행하는 사람조차 그 수를 셀 수 없는 것이다.”
6. 그때 나는 속으로, ‘이 행위들이 어째서 그렇게 위대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어째서 천사들마저 황홀감에 잠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두 팔로 나를 더 세게 끌어안으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7. “딸아, 이 행위들의 위대성은, 영혼이 계속 이를 행하면 하늘에도 땅에도 그가 참여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가 된다는 데에 있다.
8. 그런 영혼은 모든 조물과 소통한다. 하늘, 태양, 별, 물, 불 등의 모든 선과 효과와 가치와 계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뿐더러, 이들이 그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그가 삼라만상과 조화를 이루고, 삼라만상이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9.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내 뜻 안에서 사는 이들은 내 뜻을 맡아 보존하고 지원하며 수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미리 알고 내 명령을 받음 없이 그것을 실행하는 이들이며, 내 뜻의 위대성과 거룩함을 알기 때문에 엄중히 지키며 보존하는 이들이다.
10. 그러니 내 뜻의 놀라운 능력으로 하느님의 지주가 된 이 영혼들을 보면, 누구든지 마음이 황홀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내 권리를 수호할 수 있겠느냐?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만이 내 사랑처럼 사심 없는 사랑으로 나를 진정 사랑할 수 있지 않겠느냐?
11. 나는 이런 영혼들 가운데서, 비록 나 자신의 힘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더욱 강력해짐을 느낀다. 이를테면 내가 충성스러운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왕과 같다. 왕은 혼자 있을 때보다 이 충신들 가운데 있을 때에 더 큰 힘과 영광과 고무(鼓舞)를 받고 있음을 느낀다. 다만 혼자라면, 자기 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도, 자기 왕국의 운명을 맡길 사람도 없는 것이 못내 아쉬울 것이다.
12. 나도 그러하다.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야말로 내게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내 뜻이 배가되는 느낌, 그만큼 더 큰 영광을 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 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로 그들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14권-26, 주님의 영원하신 심장 박동과 전능하신 숨으로 사는 사람
1922년 4월 29일
1. 여느 때와 같은 상태로 있는데, 내 영혼과 내면 전체, 곧 생각과 애정과 심장 박동과 성향(性向)이 같은 수의 빛나는 실로 바뀌는 것이 보였다. 이 실들이 얼마나 많이 연장되며 확대되는지, 내 내면에서 나온 것임에도 태양과 어울리며 더욱 높이 뻗어 올라 하늘에 닿았고, 또 온 땅 위로 퍼져 가는 것이었다.
2. 이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그 빛의 실 전부를 손에 잡으시고 매혹적인 솜씨로 조종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만큼 길이가 늘어나고 수가 불어나며 확대되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이 빛에 닿으면 모든 조물이 허리를 굽혔고, 함께 어울려 크게 기뻐하였다.
3. 그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을 내가 얼마나 큰 사랑으로 즐겨 조종하는지 보았느냐? 나는 이 행위들을 아무에게도, 심지어 행위자 자신에게도 맡기지 않을 정도로 경계하며 지킨다.
4. 그 하나의 생각, 하나의 감정 안에도 내 뜻의 모든 능력을 포함시키기에, 이 행위들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생명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닿으면 모든 조물이 자기 창조주의 생명을 느낀다. 또한 그들이 존재하게 된 저 ‘전능한 피앗’의 힘을 새삼 실감하며 기뻐 한다. 이 행위들이 그들에게 새로운 영광, 새로운 기쁨이 되는 것이다.
5. 이제 이 아름다운 조화, 너의 내면에서 나오는 이 빛나는 실들에 대해 말해 보자. 만일 네 마음이 내 뜻 안에 흘러들지 않고 너 자신의 뜻이나 다른 누구의 뜻 안에 흘러든다면, 신적인 생명의 수많은 심장 박동이 실종된 네 마음에 같은 수의 인간적인 박동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감정이나 애정 따위도 그러할 것이다.
6. 한데 인간적인 것은 빛을 만들 수 없으니, 어둠의 실들만 양산(量産)할 것이다. 그러면 내 의지는 내 뜻의 모든 능력을 네 안에 발휘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침통해할 것이다.”
7.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내 영혼 안에 신적인 심장 박동을 저해하는 인간적인 박동이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것은 하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8. “지금으로서는 하나도 없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로 하여금 주의를 기울이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영원하고 거룩한 심장 박동으로 사는 것이며, 내 전능한 숨으로 사는 것이다.”
14권-27,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이의 고통과 성심의 관계
1922년 5월 8일
1. 보통 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었으나, 복되신 예수님께서는 한 순간 번쩍하다 사라지는 섬광같이 좀처럼 당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으셨다. 어떨 때는 당신 빛의 그림자만 보여 주시고, 어떨 때는 한쪽 손만 보여 주셨다.
2.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러자 그분은 그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가엾은 딸아, 네 고통이 정녕 크구나. 하셨다. 그리고 단박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다.
3. 나는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매우 사랑하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고, 내가 그분의 부재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시면 무척 괴롭다고 하셨다. 지금 내가 그 고통으로 돌처럼 굳어 있는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괴로워하실지 누가 알겠느냐?
4. 그러니 그렇게 괴로워하시지 않도록, 내가 힘써 분발하여 더 기뻐하고 덜 우울해하며 더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 그분 뜻 안을 날아다니고, 이런 내 태도를 견지해야 하겠다. 그러면 쓰디쓴 입맞춤이 아니라 평온하고 기쁜 입맞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그분께 고통이 아니라 위로를 드리게 될 것이다.’
5.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그분께서 몹시 고통스러워하시며 나의 내면에서 나오셨는데, 심장이 상처투성이셨다. 이 심장 중심에 있는 하나의 상처에서 작은 불꽃이 솟아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6. “딸아, 나 자신의 현존을 거둘 때 네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볼수록, 과연 나도 더욱더 커지는 괴로움을 느낀다. 너의 고통은 나의 부재로 인한 것이니 바로 나에 대한 네 사랑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7. 그런즉 네가 괴로워하며 우울한 심정으로 있으면, 네 심장 박동이 내 심장 안에 반향하기에 나도 너의 그 고통과 우울을 느끼는 것이다. 오, 나 때문에 고통 받는 너를 볼 때 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는지 네가 안다면, 내게 더한 고통을 끼치지 않으려고 언제나 그렇게 조심하며 꼼꼼히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이는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이니, 내 심장 속에 끊임없이 흘러드는 것이다.
8. 보아라, 작은 불꽃이 솟아나는 이 상처, 내 심장 중심에 있는 이 상처는 바로 너의 것이다. 그러나 너는 위안을 받아라. 이것은 내게 가장 큰 고통을 주지만, 가장 높은 사랑도 주니 말이다.
9. 아무튼, 평온한 마음으로 남아 있어라. 나는 내 정의를 완수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겠다. 하지만 너를 떠나지 않고 자주 돌아오마. 비록 섬광처럼 짧은 방문이라 할지라도 이를 그만두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14권-28,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이는 하느님의 모든 일을 함께한다.
1922년 5월 12일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평소처럼 오시지 않는 걸 보니, 내가 그분을 모욕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곧잘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그분 성심의 자애가 이다지도 수없이 불러대는 내 소리를 못 들은 체 버틸 수 있겠는가?
2. 내가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노라니 예수님께서 내 내면에서 나오셔서 찬란한 빛의 망토로 나를 완전히 덮으셨다. 그리고 빛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냐? 보아라, 내가 너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그 누구도 또 그 무엇도 너를 해치지 못하게 하려고 이 빛의 망토로 에워쌌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모욕했을지 모른다는 생각 따위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느냐?
4.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 속에는 죄라는 독이 들어온 적이 없다. 게다가 너에게 죄의 작은 얼룩이라도 보이면 네 예수가 벼락을 치며 너를 내 뜻의 영역 밖으로 쫓아낼 것이다. 그러면 너는 즉각 내 의지 안에서 활동하는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5. 아, 딸아, 내 뜻 안에서 사는 성덕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모든 종류의 성덕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너에게 자주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많은 이들이 놀라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내가 다른 영혼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6. 내 의지 안의 삶이라는 성덕은 나와 불가분적인 것이다. 그러니 피조물을 신적 수준으로 들어 높이기 위해 내가 그를 내 인성과 하나되게 하거나 내 신성의 빛 안에 있게 할 필요가 있다. 나의 활동과 영혼의 활동이 일치를 이루지 않는다면, 그가 어떻게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
7.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따라서 나의 모든 속성에 참여하고, 나의 모든 행위를 함께 한다. 그러므로 정의의 행위도 나와 함께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징벌을 내리려고 할 때 너에게서 내 인성을 감춘다. 내 인성은 정에 약하기에 네가 내 인성의 반영 안에서 영혼들에 대한 내 사랑과 연민을 느끼고, 내가 그들에게 내리치려고 하는 재앙을 내게서 앗아 가기 때문이다.
8. 그런데 그들의 죄악이 내게 징벌을 내리도록 강요하다시피 할 경우에는 내가 너에게서 내 인성을 감추고 너를 내 신성의 빛 안으로 들어올린다. 내 신성이 흡수하여 네가 이를 즐기고 있는 동안에는 내 인성의 반영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내가 자유롭게 그들을 치는 것이다.
9. 따라서 내가 내 인성을 드러내면서 너로 하여금 사람들에 대한 자비의 행위를 나와 함께하게 하든지, 아니면 너를 내 신성의 빛 안으로 흡수하여 정의의 행사를 함께하게 하든지, 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10. 더군다나 내가 너에게 더욱 큰 은총을 주는 것은 너를 내 신성의 빛 안으로 흡수할 때다. 그렇건만 너는 내 인성을 못 보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서 내 현존을 앗아 갔다고 애통해할 뿐, 정작 네가 받고 있는 그 은총은 알아보지 못한다.”
11. 나는 정의의 행사도 내가 그분과 함께한다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 “제 사랑이시여, 그렇다면 주님께서 사람들을 치시며 그들의 집을 무너뜨리시는 지금도 제가 그것을 주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하였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제 형제들을 치는 것은 하늘이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12. 주님께서 그들을 치시려고 하시면, 저는 여기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 주님 뜻 안에서 저 자신을 널리 펼치는 대신 오히려 최소한으로 축소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따라 하겠지만, 사람들을 치는 이 일만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째서 놀라워하느냐? 내 뜻 안에서는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예외 없이 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뜻 안의 성덕이 바로 이것이니, 사람이 자기 자신의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다.
14. 게다가 내 정의는 신성한 것이며 사랑이기도 하다. 이는 신적인 권리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내게 정의가 없다면, 내 신성의 모든 완전성에 결함이 있을 것이다.
15. 그런즉 네가 내 의지 안에 살기를 원하면서 정의의 행사에는 동참하지 않고자 한다면, 내 뜻 안에서 이루어질 성덕이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16. 두 개의 강이 합쳐지면, 이 강은 저 강이 하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서로 갈라지면 각각 제 길을 따라 흐른다. 나의 뜻과 너의 뜻은 하나가 된 두 강이다. 그러니 내 뜻이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네 뜻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네가 언제나 내 뜻 안에 있는 것이 내 원이다.”
17. 나는 그래서 그분의 뜻에 온 존재를 내맡겼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강한 반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말씀하셨다.
18. “정의를 행사하는 것이 내 마음을 얼마나 무겁게 하는지, 내가 피조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안다면! 모든 피조물이 내게는 혼에 대한 몸, 열매에 대한 껍질과 같다. 몸이 혼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만물이 나를 감추고 있지만, 나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행위를 계속하는 상태에 있다.
19. 혼이 없다면 몸에 생명이 없는 것과 같이, 내가 피조물을 떠나 버리면 그들에게도 생명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조물을 통해 사람을 찾아가고 어루만지며 생명을 준다.
20. 이를테면 나는 불 속에 숨어 있으면서 그 열로 사람을 찾아간다. 내가 불 속에 없다면 불은 열이 없을 것이니, 생명이 없는 가짜 불 - 그림 속의 불일 것이다. 그러나 불을 통해 찾아가는 나를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고, 인사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21. 나는 물 안에 있으면서 사람을 찾아가 목마름을 해소해 준다. 내가 물 안에 없다면 물이 아무의 갈증도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죽은 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사람을 찾아가도 사람은 고개 숙여 절 한 번 하지 않고 내 앞을 지나간다.
22. 나는 음식물 안에 숨어 사람을 찾아가서 그에게 양분과 힘과 맛을 준다. 내가 음식 안에 없다면 사람은 음식을 먹고 나도 위장이 빈 상태로 있을 것이다. 사람은 그러나 배은망덕하게도 나를 먹고 살면서 내게 등을 돌린다.
23. 나는 태양 안에 숨어 있으면서 내 빛으로 거의 매순간 사람을 찾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배은망덕하게도 끊임없이 저지르는 죄로 내게 보답한다.
24. 나는 만물을 통해 사람을 찾아간다. 사람이 숨 쉬는 공기, 향기를 풍기는 꽃, 상쾌하게 하는 미풍,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 곧 모든 것을 통해 찾아간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문이다. 내가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 알겠느냐?
25. 너 역시 내 뜻 안에 있으므로 나와 함께 사람을 찾아가서 생명을 준다. 그러다가 때로는 정의의 행사도 함께한다. 그러니 놀라워하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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