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파티마의 어린 양치기,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시복 10주년에 포르투갈을 사도 방문하신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미사 강론

Skyblue fiat 2015. 6. 17. 23:13

 

 

 

파티마의 어린 양치기,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시복 10주년에 즈음하여
포르투갈을 사도 방문하신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미사 강론
(파티마 성모 순례지 언덕, 2010년 5월 13일)

 

 

사랑하는 순례자 여러분,

“그들의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 널리 알려지고 …… 그들은 주님께 복 받은 종족이다”(이사 61,9 참조). 오늘 미사 제1독서는 이 구절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말씀은 독실한 신심으로 파티마 성모님의 발치에 모인 회중 여러분 가운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 역시 순례자로 여기 파티마에, 성모님께서 현대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선택하신 이 ‘집’에 왔습니다. 저는 이곳 파티마에서 성모님의 현존과 보호를 만끽하고자 합니다. 제가 파티마에 온 것은 성모님의 아드님께서 바라신 대로, 순례하는 교회가 복음화의 도구이자 구원의 성사로서 오늘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한 성모님과 많은 순례자들과 하나 되어, 온갖 불행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인류 가족을 위하여 기도하고자 파티마에 왔습니다. 끝으로, 저는 복자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하느님의 종 루치아와 한마음으로 성모님께 의탁하여 다음과 같은 마음속 고백을 하고자 파티마에 왔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교회와 사제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제의 해가 끝나가는 이때 예수님만을 바라보고자 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저는 사제와 봉헌 생활자와 선교사, 그리고 하느님의 집을 환대와 자선의 장소로 만들고자 선의의 활동을 펼치는 모든 이를 성모님의 보호에 맡겨 드리고자 합니다.

 

그들은 “주님께 복 받은 백성”입니다. 또한 레이리아-파티마 교구민 여러분은 여러분의 목자인 안토니오 마르토 주교님과 더불어 주님께 복 받은 백성입니다. 저는 미사를 시작하며 환영 인사 말씀을 해 주시고, 특히 이 순례지에서 보여 주신 정중한 환대에 마르토 주교님과 주교님의 협력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영예로운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포르투갈 대통령과 포르투갈 정부 당국에도 인사드립니다. 또한 포르투갈의 모든 교구를 대표하여 이 자리에 참석하신 교구장 주교님들과 포르투갈의 모든 교우 여러분과도 영적으로 함께하며,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하늘 나라에 맡겨 드립니다. 하느님 안에서 저는 특히 고통 받거나 소외당하는 아들딸을 생각하며 제 마음속에 타오르고 이곳 파티마에서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저 위대한 희망으로 그들을 이끌고자 합니다. 우리의 위대한 희망이 사랑하는 순례자 여러분과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이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빕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희망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랑으로 당신 백성에게 당신과 친교를 이루는 미래를 보장해 주십니다. 하느님 백성은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오는 힘든 여정 내내 자신들을 저버리지 아니하신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를 체험하고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이사 61,10) 하고 외쳤습니다. 이 백성의 빛나는 딸이 바로 나자렛의 동정 성모 마리아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은총을 받아 하느님을 자기 태중에 모시게 된 데에 놀라워하며 스스로 직접 체험한 이 기쁨과 희망을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에서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네”(루카 1,47 참조). 성모님께서는 당신을 불모의 백성 가운데에서 특혜를 입은 한 사람이라고 여기기보다는, “하느님의 자비는 대대로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치기에”(루카 1,50 참조)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경이로운 일이 얼마나 달콤한 기쁨인지를 그 백성에게 예언하였습니다.

 

이 거룩한 장소가 그 증거입니다. 7년 뒤에 여러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성모님의 첫 번째 방문 백 주년을 기념하고자 이곳에 다시 올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어린 예언자들이 복되신 삼위일체의 사랑을 깊이 알고 인간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실재이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스승이십니다. 이러한 은총의 체험으로 어린 예언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고, 히야친타는 이렇게 외치기까지 하였습니다.

 분을 사랑한다고 예수님께 고백하는 일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예수님께 이 말씀을 드릴 때마다, 저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마치 제 마음이 불타는 듯이 느껴집니다.” 또한 프란치스코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제가 무엇보다 좋아한 것은 성모님께서 우리 마음에 밝혀 주신 그 빛을 통해 우리 주님을 뵙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너무도 사랑합니다(『루치아 수녀의 회고록』[Memoirs of Sister Lœcia], I, 42.126).

 

형제자매 여러분, 이 어린 양치기들의 그처럼 순진무구하고 신비롭고 깊은 확신에 귀를 기울이면서, 어떤 이는 그들이 성모님을 뵐 수 있었음을 부러워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신에게는 그러한 운이 없었지만 뵙기를 계속 청하면서 실망 어린 체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교황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자 합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성경은 우리를 믿음으로 초대합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그러나 나 자신보다 내게 더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께서는(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3,6.11) 특히 우리의 내적 감각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는 권능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영혼은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초감각적인 실재와 감미롭게 접촉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마음이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내적인 깨어 있음은 외적인 현실의 심한 압박 때문에 그리고 영혼을 채우고 있는 오만 가지 생각과 심상의 강한 압력 때문에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파티마 메시지’에 대한 신학적 해설, 2000 참조).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우리 마음의 눈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실 수 있으십니다.

 

더욱이 어린 양치기들의 마음을 밝힌 그 빛은 하느님의 영원성에서 나온 빛으로, 때가 찼을 때에 드러난 바로 그 빛, 곧 우리 모두를 위하여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경우처럼(루카 24,32 참조) 매우 상심하여 차디차게 식어 버린 마음을 타오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희망은 참다운 근거를 갖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역사에 속하는 동시에 역사를 초월하는 한 사건, 곧 나자렛 예수님께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분의 지혜와 구원 능력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 열정은 다음의 복음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이르셨습니다(루카 11,27-28). 그러나 오늘날 누가 시간을 내어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사랑에 이끌리겠습니까? 누가 번민과 불안이 이는 밤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깨어 있습니까? 누가 믿음의 불꽃을 피우며 새날이 밝기를 기다립니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확실한 희망을 우리 앞에 펼쳐 보입니다. 이 믿음은 두려움 없는 삶의 견고한 토대를 제시하며, 세상을 지탱하시는 사랑이신 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탁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들의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 널리 알려지고 …… 그들은 주님께 복 받은 종족이다”(이사 61,9 참조).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희망에서 열리는 열매는 다른 이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하여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말하듯이, 이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7). 어린 양치기들은 그 좋은 본보기로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였고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그들의 삶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들이 보편된 사랑에 마음을 열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특히 복자 히야친타는 끊임없이 가난한 이들과 나눔을 실천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희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낌없는 형제애가 있어야 우리는 사랑과 평화의 문명을 세울 수 있습니다.

 

파티마의 예언적 사명이 완결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한 처음부터 인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이 바로 여기에서 되살아납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9-10). 인간은 죽음과 공포의 악순환을 가속시킬 뿐, 이를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 도성을 구원하시고자 의로운 이들을 찾으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이곳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 다음과 같이 물으실 때에 하느님께서는 그와 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하느님께 너희 자신을 바쳐서, 하느님께 모욕을 끼친 온갖 죄를 보속하며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간구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모든 고통을 참아 받겠느냐?” (『루치아 수녀의 회고록』, I, 162)

 

인류 가족이 국가, 인종, 이념, 집단, 개인의 하찮고 이기적인 관심사로 쌓아 올린 제단 위에서 지극히 거룩한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려고 할 때에, 복되신 성모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당신의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하느님의 사랑을 당신을 믿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부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세 아이뿐이었지만, 그들 삶의 모범은 널리 퍼졌고, 특히 ‘순례하는 성모님’의 여정을 통하여 형제적 연대라는 대의에 헌신하는 전 세계 수많은 단체로 확산되었습니다. 성모 발현 백 주년을 칠 년 앞두고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의 승리의 예언이 하루빨리 실현되어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되기를 빕니다.

 

 

병자 강복

병환 중에 계시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모신 성광을 들고 여러분 한가운데를 지나가기에 앞서, 여러분과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저희와 함께하시는 모든 분께, 또 그러한 매체가 아니라도 성령의 깊은 유대를 통해, 곧 믿음과 기도 안에서 저희와 일치를 이루는 모든 분께 격려와 희망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너무나 귀중히 여기셨으므로 몸소 사람이 되시어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매우 실제적인 방식으로, 사람의 고통을 함께 겪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 고통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우리와 함께 체험하고 짊어지는 분과 결합됩니다. 따라서 모든 고통에는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위로(con-solatio)가 있으며, 그래서 희망의 별이 떠오릅니다”(「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39항). 마음속에 그러한 희망이 있다면 여러분은 질병과 죽음이라는 힘든 상황에서 헤어나 하느님 사랑의 굳은 반석 위에 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한 사람을 그 안에서부터 소진시키고 스스로 주위 사람들의 짐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고통이 무익한 것이라는 생각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함께 경험하는 고통은 자기 형제들의 구원에 이바지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느님의 권능은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 솟아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역설입니다. 따라서 스승이신 하느님께서는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시기보다는 모든 이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당부하십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마르 8,34 참조). ‘나와 함께 가자.제 고통을 지고 내 십자가 고통을 통하여 실현된 구원 활동에 참여하여라.’ ‘너희가 점차 제 십자가를 지고 내 십자가에 영적으로 일치할 때, 고통이 지닌 구원의 의미가 너희에게 드러날 것이다.’ ‘고통 속에서 너희는 내적인 평화를 찾고, 영적인 기쁨도 누릴 것이다.’

 

사랑하는 환우 여러분, 여러분 곁을 지나가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의 부르심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여러분이 직면한 모든 좌절과 고통을 예수님께 의탁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러한 좌절과 고통이 예수님의 뜻대로 전 세계를 위한 구원의 수단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아드님 안에 있는 자녀들이기에 구원자와 함께하는 구원의 일꾼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 곁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께서 서 계십니다.

 


<원문 Apostolic Journey of Pope Benedict XVI to Portugal on the Occasion of the Tenth Anniversary of the Beatification of Jacinta and Francisco, Young Sheperds of F‡tima, Holy Mass, Homily of His Holiness Benedict XVI, 201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