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501~p515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120. ‘맑은 내’에서의 예수.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가지지 마라”
1945. 2. 28.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가져서는 안 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무엇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무엇이든 땅 아래 물속에 있는 무엇이든 새긴 모양이나 그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은 강하고 질투하는 신이다.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자들의 아비의 죄들을 그의 아들들, 손자들, 증손자들에게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들의 후손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비를 베푼다.'”( 탈출20,3-6)
예수의 목소리는 큰 방안에 울려 퍼진다. 비가 오고 있어 그들 모두가 그 안으로 피해 들어왔기 때문에 그곳은 군중으로 꽉 들어차 있다. 앞줄에는 네 명의 병자들이 있다. 한 여자에게 인도되는 소경, 종기들로 뒤덮인 어린이, 황달이나 말라리아로 인하여 얼굴이 노란 여자, 그리고 들것에 실려 온 남자이다.
예수께서는 빈 구유에 기대서서 말씀하고 계신다. 요한, 두 사촌들, 마태오, 필립보는 그분 가까이에 있고, 유다, 베드로, 바르톨로메오, 야고보, 안드레아는 출입구에서 늦게 오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그리고 토마스와 시몬은 사람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어린이들을 떠들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의 청원들을 들으며 헌금을 걷고 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가지지 마라.’
여러분은 어떻게 하느님께서 그분의 눈과 그분의 목소리를 가지고 모든 곳에 계시는지(omnipresent) 들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항상 그분의 면전에(in His presence) 있습니다. 우리가 방안에 틀어박혀 있든, 성전 안에서 군중들 속에 있든, 우리는 그분 앞에 있습니다. 설사 우리가 돕는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들의 얼굴을 감추는 숨은 은인들이라 해도, 외진 계곡에서 여행자들을 습격하여 죽이는 살인자들이라 해도, 우리는 항상 그분의 면전에 있습니다.
자기의 조정에 있는 왕도, 전장의 병사도, 성전 안의 레위인도, 책들을 읽고 있는 현인도, 밭에 있는 농부도, 계산대의 상인도, 요람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머니도, 신방에 있는 신부도, 자기의 아버지의 집에 고이 숨어 있는 처녀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린이도,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도 모두 그분 앞에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그분 앞에 있고, 사람들의 모든 행동들도 그분 앞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행동들! 무서운 말입니다. 동시에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그것은 만일 그 행동들이 죄라면 무서운 말일 것이고, 그것들이 거룩하다면 위로가 되는 말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의 악행을 억제하고, 선행을 격려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신다. 나는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보시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분께서 착한 행위들을 보상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이 상급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래서 나는 그 확실성 위에서 안식한다. 그것은 나에게 행복한 생활과 평온한 죽음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살든 죽든 내 영혼은 하느님의 우정의 밝은 빛으로 위로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을 행하는 사람의 추론입니다.
그런데 행악자들은 왜 우상 숭배가 금지된 행동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왜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내가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체할 때 사람들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시는 하나 또는 둘 이상의 거짓 신을 내가 숭배한다는 것을 아신다.’
성전에도 하느님의 상이 없는데 무슨 신들을 섬긴단 말인가 하고 여러분은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우리가 참 하느님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데, 그 신들의 얼굴들은 무엇인가 하고요.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완전하시고, 지극히 순수하신 분을 사람이 적절하게 묘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숭고한 접촉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 성인에게 그분께서 허락하실 때 그 영혼만이 그분의 무형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어렴풋이 볼 수 있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분의 애무들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과 귀와 손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따라서 주님께서 무엇이신지를 수금의 소리로 나타낼 수 없고, 망치와 끌로 대리석에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오! 의인들의 영혼이여, 그대들이 하느님을 뵐 때 그 행복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을 최초로 일별하는 것은 끝없이 세기들 동안 여러분과 동행할 지복의 새벽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 하느님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을 사람은 거짓 신들을 위해서는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여자에게 제단을 세우고, 어떤 사람은 황금에게, 어떤 사람은 권력에게, 어떤 사람은 지식에게, 어떤 사람은 군사적인 승리들에게 제단을 세웁니다. 어떤 사람은 본성은 자기와 같고, 거만함이나 행운에 있어서만 자기보다 큰 사람을 숭배합니다.
다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숭배하며 ‘나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하느님의 백성인 사람들의 신들입니다.
짐승들, 파충류들, 그리고 별들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을 보고 놀라지 마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많은 뱀들, 얼마나 많은 짐승들, 얼마나 많은 죽은 별들을 숭배합니까!
입술들은 아첨하고, 소유하고, 부패하기 위하여 거짓말들을 내뱉습니다. 그것들은 은밀한 우상숭배자들의 기도들이 아닙니까?
마음들은 복수, 불법적인 거래들, 매음에 대한 생각들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정욕, 탐욕, 사악함의 더러운 신들에게 바쳐진 경배들이 아닙니까?
‘너희는 참되고 한분이시고 영원하신 너희 하느님이 아닌 그 무엇도 숭배하지 마라’, ‘나는 강하고 질투하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강하십니다. 그분의 힘보다 더 강한 힘은 없습니다. 사람은 행동하는 데 있어 자유롭고, 사탄은 유혹하는 데 있어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제 그만’ 하고 말씀하실 때 사람은 더 이상 악을 행할 수 없고, 사탄은 더 이상 유혹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그의 지옥으로 추방되고, 사람은 악행을 저지르다가 제지당합니다. 하느님께서 누구도 넘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질투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무엇에 대하여 질투하시고, 어떻게 질투하십니까? 그것은 소인들의 치사한 질투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한 그분의 거룩한 질투입니다. 의롭고 사랑하시는 질투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창조하셨고,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무엇이 여러분에게 해로운지, 무엇이 여러분을 그분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는지를 아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아버지와 그분의 자녀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을 건강(health)이시고 평화이신 하느님인 유일한 사랑으로부터 빗나가게 하는 것에 대하여 질투하십니다.
비열하지 않고, 잔인하지 않고,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하느님의 그 질투를 깨달으시오. 그것은 무한한 사랑이고, 무한한 선이고, 무제한의 자유인데, 그것은 그분을 유한한 피조물에게로, 그것을 그분께로 이끌어 그분의 무한성에 참여케 하시려고 그분 자신을 그 유한한 피조물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착한 아버지는 자기의 재산을 자기 혼자 누리기를 원치 않고, 자기의 자녀들이 자기와 함께 누리기를 바랍니다. 결국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보다는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 그 재산을 축적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행동하시지만, 그분께서는 그분의 사랑과 갈망에 그분의 모든 행위들 안에 있는 완전함(perfection)을 주십니다.
주님을 실망시키지 마시오. 그분께서는 죄 있는 아버지들과 죄 있는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벌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항상 그분의 약속들을 지키십니다.
그러나 오, 사람과 하느님의 자녀인 여러분, 실망하지 마시오. 다른 약속을 듣고 기뻐하시오. 그것은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들의 후손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비를 베푼다’고 하신 약속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후손 천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악의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무분별함과 사탄의 덫들로 인하여 죄에 떨어진 사람의 가엾은 자녀들의 천 번째 잘못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자비는 그보다 훨씬 더 큽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만일 여러분이 뉘우치는 마음과 눈물에 젖은 얼굴로 ‘아버지, 저는 죄지었습니다. 저는 압니다. 저는 당신 앞에서 저 자신을 낮추고, 제 죄를 고백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당신의 용서는 제가 참 삶을 ‘다시 살기’ 시작하는 데 힘이 될 것입니다’ 하고 말씀드리면, 그분께서는 그분의 양팔을 여러분에게 벌리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여러분이 연약함으로 인하여 죄들을 짓기 전에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죄지을 거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여러분이 집요하게 여러분의 죄 안에 남아 있고, 죄짓기를 원하고, 특정한 죄나 많은 죄들로 여러분의 소름끼치는 신들을 만들 때에만 닫힙니다.
모든 우상들을 타파하고, 참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드리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 안에 오직 그분만이 계시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의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하여 그분의 영광 안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처소를 그분께 돌려드리시오. 그분의 거처는 돌들로 지어진 성전들 안에 있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 문설주를 닦고, 무익하거나 죄스러운 모든 장식들을 그 안에서 치워버리시오.
오로지 하느님만이. 그분만이. 그분께서는 전부십니다!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사람의 마음, 손님이신 하느님(the divine Guest)께 자기의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은 천국보다 어느 모로도 결코 열등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천국으로 만드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과 여러분의 동거를 시작하시오. 여러분의 영원한 미래 안에서 그것은 능력과 기쁨에 있어 더 커질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것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의 떨리는 놀라움을 능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이상 전능하신 분과의 눈부시고 두려운 만남이 아니라 아버지이시자 친구로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이 내 기쁨이다. 너는 나를 기쁘게 해준다. 아들아, 고맙다’ 하고 말씀하시는 분과의 항구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백 명이 넘는 청중은 한참 후에야 감동에서 깨어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떤 사람들은 기쁨의 희망으로 그와 동시에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침내 청중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 그들은 속삭이는 것 같고 크게 한숨 쉬는 것 같기도 하다가 마침내 해방의 외침을 내뱉는다.
“당신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의 길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대답하신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부터 줄곧 선을 따른다면,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병자들에게로 가신다. 그분께서는 한 손으로 병든 어린이와 소경과 얼굴이 완전히 노랗게 된 여자를 스치신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마비환자에게로 몸을 숙이시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것을 원한다.”
그 남자는 그분을 쳐다보다가 외친다.
“죽은 제 사지에 온기가 느껴집니다!”
누군가가 병상에 있는 그의 몸을 덮고 있는 담요를 잡아당기자 그가 일어선다. 엄마는 더 이상 상처들로 덮여 있지 않는 자기의 아기를 치켜들고, 소경은 처음으로 빛을 보려고 눈을 비빈다. 여자들이 소리 지른다.
“디나는 더 이상 미나리아재비들처럼 노랗지 않아요.”
이곳은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어떤 사람들은 소리 지르고, 어떤 사람들은 찬미하고, 어떤 사람들은 보려고 서로 떠밀고, 어떤 사람들은 마을에 가서 말하기 위하여 나가려고 애쓴다. 예수께서는 사방에서 공격당하신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그분을 거의 으스러뜨릴 지경인 것을 보고 외친다.
“여보게들! 사람들이 선생님을 숨 막히시게 하네! 와서 그분을 모셔오세!”
그래서 열 두 제자들은 팔꿈치를 휘두르고 몇 사람의 정강이를 차기까지 해서 선생님을 자유롭게 하고 그분을 밖으로 모셔오는 데 성공한다.
베드로가 말한다.
“내일은 제가 이것을 살피겠습니다. 당신께서는 문 곁에 계시고, 다른 사람들은 방의 안쪽으로 들어가게 하지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없다!”
“그들은 미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 무슨 무례한 짓인가!"
“그들을 내버려두어라. 그들은 행복했고… 나도 행복했다. 세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로 가거라. 나는 집으로 가겠다.
유다야, 너는 시몬과 함께 헌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어라. 우리는 주님의 사도들이 가져 마땅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가거라. 베드로야,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에게 그것을 하기를 명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너를 정당화할 것이다. 벗들아, 안녕.”
그리하여 예수께서 피로에 지치시고 땀에 젖은 채로 집안으로 들어가시는 동안에 제자들은 순례자들 가운데에서 각자의 임무를 행한다.
121. ‘맑은 내’에서의 예수. “너희는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1945. 3. 1.
모든 제자들이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 그들이 어찌나 불안해하는지 그들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다. 그들은 말하고 밖에 나가 사방을 살펴본다… 예수께서는 거기 계시지 않는다.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을 불안하게 하는 일에 대하여 마음을 정한다. 그래서 베드로는 요한에게 명령한다.
“가서 선생님을 찾게. 그분께서는 강 옆의 숲에 계셔. 즉시 오시거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일러주십사고 그분께 말씀드리게.”
요한이 달려간다.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나는 이토록 큰 흥분과 불친절의 이유를 모르겠네. 나 같으면 그에게 가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그를 맞이했을 걸… 그의 방문은 우리에게 영광이야. 그러니…”
“나는 모르겠어. 그는 자기의 젖형제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 허나… 하이에나들과 함께 살면 그놈들의 냄새와 본능도 닮게 돼… 어쨌거나 자네는 그 여자를 쫓아버리기를 원하지만… 조심해서 행동해! 선생님께서는 그걸 원치 않으시고, 나는 그녀를 보호해야 해. 만일 자네가 그 여자를 건드린다면… 나는 선생님이 아니야… 자네가 알아두기를 바라네.”
“오! 도대체 그 여자는 누구야? 혹시 아름다운 헤로디아가 아닌가?”
“말장난하지 마!”
“나를 나무라지 마. 자넨 마치 그 여자가 여왕이라도 되는 듯이 호위병처럼 굴어…”
“선생님께서는 ‘그 여자가 방해받지 못하도록 보살펴라, 그리고 그 여자를 존중해라’ 하고 나에게 말씀하셨어.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 여자는 누군가? 자네는 아나?”
토마스가 묻는다.
“나는 몰라.”
“자, 우리에게 말해봐… 자네는 알잖아…”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주장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맹세하네. 선생님께서는 분명히 아실거야. 하지만 나는 몰라.”
“우리는 요한을 시켜 그분께 여쭈어보아야 해. 그분께서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말씀하시니까.”
“왜? 요한은 뭐가 특별하나? 자네의 동생은 신인가?”
유다가 말한다.
“유다, 아니야. 그 애는 우리 중에서 가장 착해.”
“자네들 그런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네.”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어제 내 동생이 강에서 안드레아가 그 애에게 준 물고기를 가지고 돌아올 때 그 애는 그 여자를 보았다는데, 안드레아가 예수께 여쭈었더니 그분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대. ‘그 여자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여자는 하느님을 찾는 한 영혼이다. 그 여자는 나에게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여자가 모두에게도 그렇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나는 원한다’는 말씀을 어찌나 엄한 어조로 말씀하셨는지 나는 자네에게 고집부리지 말라고 충고하네.”
“나는 그 여자에게 가보겠어.”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만일 자네가 할 수 있다면, 한 번 해봐.”
베드로가 얼굴이 어린 수탉처럼 시뻘개져서 말한다.
“자네도 첩자 질을 해서 예수님에게 고자질하려는 건가?”
“나는 그런 일은 성전 사람들에게 양보하네. 우리 호수 사람들은 일해서 밥벌이하지, 밀고해서 밥벌이하지는 않아.
요나의 아들 시몬이 자네를 밀고할까봐 염려하지는 말게. 하지만 내 화를 돋우지는 마.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 한, 나는 자네가 선생님께 불손하게 구는 걸 수수방관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야…”
“그러는 자네는 뭔데?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지.”
“그래. 아니 나는 자네보다 더 가난하고 촌스럽고 무식해. 나도 아. 하지만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아. 그러나 만일 내 마음이 자네의 마음과 같다면 나는 걱정할 거야. 허나 그분께서 그 일을 나에게 맡기셨으니 나는 그 일을 수행하고 있는 거야.”
“‘자네의 마음과 같다면’이라고? 그토록 혐오스러운 무엇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건가? 말해봐. 나를 비난하고 공격해보라고…”
“제발 그만둬!”
열성당원이 버럭 소리 지르고, 그와 함께 바르톨로메오도 말한다.
“유다, 그만 두게. 베드로의 반백의 머리를 존중하게.”
“난 모든 사람을 존중해. 그렇지만 나는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
“내가 즉시 대답해주지… 내가 말해줄게… 이 부엌을 가득 채울 만큼 교만이 있고, 거짓과 정욕도 있어.”
“내가 거짓말한다고?”
그들 모두가 끼어든다. 그래서 유다는 침묵을 강요당한다.
시몬이 침착하게 베드로에게 말한다.
“내 벗이여, 내가 자네에게 몇 마디 말하는 걸 양해해주게. 이 사람은 자기의 결점들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자네도 몇 가지 결점들을 가지고 있네. 그중 하나는 자네가 젊은이들에게 관용하지 못하는 거야. 자네는 왜 그들의 나이와 출신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않나?
여보게, 자네는 예수님을 위하여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만, 이런 말다툼들이 그분을 피로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나?
나는 이 사람에게는(그는 유다를 가리킨다) 부탁하지 않겠지만, 원숙하고 정직한 사람인 자네에게는 부탁하겠네. 그분께서는 그분의 원수들로 인하여 아주 많은 걱정거리들을 가지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분의 걱정들을 더해드려서야 되겠나! 그분의 주위에 적의가 가득한데, 우리가 왜 그분의 보금자리 안에서까지 그것을 일으켜야 하겠나?”
“그건 맞아. 예수께서는 매우 슬퍼하시고 체중이 줄기까지 하셨어. 나는 밤에 그분께서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시고 한숨 쉬시는 소리를 들어. 며칠 전 밤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 그분께서 기도하시며 우시는 것을 보았어. 나는 그분께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그분께서는 나를 껴안으시며 ‘나를 사랑해다오. ‘구속주’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들구나!’ 하고 말씀하셨어.”
유다 타대오가 말한다.
“나도 강가의 숲에서 분명히 우시고 난 그분을 만났어.”
필립보가 말한다.
“그분께서는 의아해 하는 내 표정을 보시더니 대답하셨어. ‘너는 하느님의 가시적인 현존이 없다는 사실 외에 땅을 하늘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삐처럼 나를 숨 막히게 한다. 나는 작은 새들에게 낟알들을 던져주어 서로 사랑하는 새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이곳으로 왔다.’”
가리옷의 유다는(그는 약간 실성한 것 같다) 땅에 엎드려 어린이처럼 운다.
마침 그때 예수께서 요한과 함께 들어오신다.
“무슨 일이냐? 너는 왜 우느냐?…”
“선생님, 이것은 제 잘못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유다를 너무 거칠게 비난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당신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착하지 않습니다… 저는 방해하고,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불순종하고, 저는…
베드로가 옳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착해지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저는 여기 마음속에 무언가가 있어 제가 하기를 원치 않는 일들을 하게 되니까요.
그것은 저보다 더 강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쁨만을 드리기를 원하는 선생님 당신께 심려를 끼쳐드립니다… 제 말을 믿어주세요! 이것은 사실입니다…”
“물론이다. 유다야. 나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너는 진지한 마음과 참된 정열을 가지고 나에게로 왔다. 그러나 너는 젊다… 아무도 너를 알지 못하고, 너 자신도 내가 너를 아는 것만큼 너를 알지 못한다. 일어나 이리로 오너라. 나중에 우리끼리만 이야기하자.
지금은 너희 모두가 나를 불러오게 만든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마나엔이 여기 왔다고 무슨 해악이 있겠느냐? 헤로데의 친척은 참 하느님을 갈망할 수 없겠느냐? 너희는 나를 위하여 염려하느냐? 두려워하지 마라. 내 말을 믿어라. 그 사람은 정직한 목적으로 왔다.”
“그럼 그는 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제자들이 묻는다.
“왜냐하면 그는 한 ‘영혼’으로서 왔지 헤로데의 젖형제로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the Word of God) 앞에서는 왕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침묵했다… 우리는 그의 침묵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그가 저 사람을 보냈다면요?”
“누가? 헤로데가? 아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럼 누가 저 사람을 보냈습니까? 저 사람이 어떻게 당신을 알까요?”
“내 사촌 요한을 통해서이다. 너희는 그가 옥중에서는 나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또한 쿠자를 통해서도… 군중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바리사이들의 증오 바로 그것을 통해서도… 나뭇잎들과 바람도 나에 대하여 말한다.
돌 하나가 잔잔한 물속으로 던져졌고, 방망이가 청동을 때렸다. 물결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물들에게 그 계시를 전하고, 소리는 그것을 공간에 넘겨주며 점점 더 넓게 퍼져나가고 있다…
땅은 ‘예수’라고 말하기를 배웠고, 그것을 말하기를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가서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한 것처럼 그에게도 친절하게 대해라. 가거라. 나는 유다와 단둘이 여기 남아 있겠다.”
제자들이 나간다.
예수께서는 아직도 울고 있는 유다를 보시며 물으신다.
“자! 너는 나에게 말할 것이 없느냐? 나는 너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너에게서 그것을 듣고 싶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항상 그토록 불만스러워하는 원인인 이 불안정의 이유가 무엇이냐?”
“예! 선생님! 당신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질투심이 많습니다. 당신께서는 분명히 아십니다. 그래서 저는… 저는 아주 많은 것들을 보고… 괴로워합니다. 그것은 저를 좌불안석으로 만들고… 공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원치 않는데도 나빠집니다…”
“다시 울기 시작하지 마라! 너는 무엇에 대하여 질투하느냐? 너의 참다운 영혼으로 말하는 데 익숙해져라. 너는 말을 많이 한다. 너무 많이 할 정도이다. 그러나 어떻게 말하느냐? 네 본능과 네 생각으로 말한다. 너는 네가 말하려 하는 것을 말하는 데 있어 어렵고 뒤틀린 길을 따라간다.
나는 너에 대하여, 네 자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네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에 관하여 너는 스스로 억제하거나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네 육체에 대해서도 억제나 제한이 없다. 그것은 너의 미친 말이다.
너는 경마 관리인에게서 두 마리의 미친 말들을 넘겨받은 경마기수와도 같다. 한 마리는 네 육욕이다. 다른 한 마리는… 다른 한 마리가 무엇인지 내가 너에게 말해줄까? 내가 말할까? 그것은 네가 길들이기를 원치 않는 오류이다.
너는 능란하지만 조심성 없는 경마기수인데, 너는 네 능력에 의지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너는 첫째가 되기를 원한다… 너는 적어도 한 마리 말이라도 바꾸기 위하여 시간을 소비하기를 원치 않는다. 반대로 너는 그것들에 박차를 가하고, 그것들을 채찍질한다.
너는 ‘승리자’가 되기를 원한다. 너는 박수갈채를 받기 위하여 전전긍긍한다… 너는 부단하고, 참을성 있고, 신중한 노력으로 승리를 얻을 때 그 승리가 확실해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네 영혼에게 말해라.
나는 네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네 고백을 원한다. 아니면 내가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해주어야 하겠느냐?”
“저는 당신께서도 공평하지도, 항구하지도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저는 고통을 겪습니다.”
“너는 왜 나를 비난하느냐? 네가 보기에 내가 어떤 실수를 하였느냐?”
“제가 제 친구들에게 당신을 모시고 가기를 원했을 때 당신께서는 ‘나는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선호한다’고 말씀하시며 거절하셨습니다. 그 후 시몬과 라자로가 권력 있는 사람의 보호를 받으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당신께 말씀드리자, 당신께서는 동의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베드로, 시몬, 요한을 편애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또 무엇이냐?”
“예수님,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것들은 파도 위의 물거품들이다. 나는 네가 기뻐할 수도 있을 터인데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가엾은 인간이기 때문에 안타깝다.
너는 이 집이 호화롭다고 말할 수 있느냐? 너는 내가 이 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긴급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느냐? 만일 시온이 그 예언자들에게 가혹한 계모가 아니었다면, 내가 마치 인간의 재판이 무서워 성소로 도피하는 사람처럼 이곳에 피신해 있겠느냐?”
“아닙니다.”
“좋다, 그렇다면? 너는 내가 다른 제자들에게는 임무들을 주고, 너에게는 그것들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너는 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내가 너에게 가혹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
너는 진실하지 않았다… 그 포도밭들!… 오! 네 포도밭들! 그 포도밭들의 이름은 무엇이었느냐?
너는 고통당하고 있거나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너는 심지어 나에게도 공손하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도 그것을 보았다…
그런데도 오로지 한 목소리만이 항상 너를 변호했는데, 그것은 내 목소리였다. 다른 제자들이야말로 질투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호받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너니까 말이다.”
유다는 창피하고 감격하여 운다.
“나는 가겠다. 지금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속해 있는 시간이다. 너는 여기 남아서 묵상해라.”
“선생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당신께서 저를 용서해주시기까지 저는 평화를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저로 인하여 슬퍼하지 마십시오.
저는 나쁜 사람입니다… 저는 사랑하면서도 괴롭힙니다… 제 어머니에게도 그랬는데… 당신에게도 그렇게 합니다. 만일 제가 결혼한다면, 저는 제 아내에게도 똑같이 할 것입니다…
저는 죽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네가 네 행실을 고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용서받았다. 안녕.”
예수께서는 바깥으로 나오신 다음에 문을 닫으신다.
베드로가 밖에 있다.
“선생님, 오십시오. 시간이 이미 늦었고, 사람들이 있습니다. 곧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셨으니… 저 젊은이가 모든 말썽의 원인입니다.”
“저 ‘젊은이’가 더 이상 이 모든 말썽들의 원인이 되지 않으려면, 그에게 너희 모두가 필요하다. 베드로야, 애써 이것을 기억해라. 만일 그가 네 아들이라면, 너는 그를 불쌍히 여기겠느냐?”
“흠! 저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를 불쌍히 여기겠습니다만… 그가 이미 어른이 되었다 해도 저는 마치 그가 말썽꾸러기 소년인 것처럼 그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겠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제 아들이라면, 그는 저 모양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해라.”
“예, 나의 주님, 그만하겠습니다. 저기 마나엔이 있습니다. 거의 검은색으로 보이는 암적색 겉옷을 입고 있는 저 사람입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이것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여기 머무르고, 여기서 잘 수 있겠느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그에게 대답했느냐?”
“사실 그대로를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침대밖에 없으니 마을로 가시오.’”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당혹해 하는 베드로를 그대로 두시고 요한에게 가시어 그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분의 자리로 가셔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평화와 함께 빛과 거룩함이 여러분에게 오기를. ‘너희는 내 이름을 헛되이(in vain) 부르지 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탈출20,7)
언제 사람이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릅니까? 그가 그것을 저주할 때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자신을 하느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지 않고 그것을 부를 때에도 그렇습니다. 한 아들이 자기의 아버지가 그에게 원하시는 것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면서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 아버지’ 하고 말한다고 해서 그가 자기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하느님’ 한다고 해서 그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께 내가 여러분에게 설명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에는 사람들의 마음속 은밀한 곳에 참으로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하느님에 대한 위선적인 찬양도 있는데, 그 찬양은 찬양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의 풍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외적인 것들에서는 수많은 죄들을 찾아내면서 실제로 죄들이 있는 곳 즉 내면적인 것들에서는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를 찾기를 원하지 않는 경향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또한 어리석은 교만인 비인도적이고(anti-human), 반영적인(anti-spiritual) 습관이 있습니다. 이교도들이 우리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것은 신성모독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참 하느님께 접근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입니다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을 창조하신 바로 그분이십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창조주께서 자신들을 끌어당기시는 것을 느끼는 것을 왜 방해합니까? 여러분은 이교도들이 그들 마음의 밑바닥에서 외치고 동요하고 찾는, 만족되지 않은 무언가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를? 무엇을? 미지의 신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만일 어떤 이교도가 미지의 신의 제단을 향하여 움직인다면, 즉 항상 자기의 창조주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영혼, 모세가 자기에게 주어진 명령에 따라 세웠던 성막처럼 하느님의 영광에 사로잡히기를 바라는 영혼, 그러한 사로잡힘(possession)이 일어날 때까지 우는 영혼이라는 무형의 제단을 향한다면, 하느님께서 그 이교도의 제사를 신성모독이라고 물리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오너라’ 하시는 하느님의 천상의 부르심들에 깨어나 ‘저는 가겠습니다’ 하고 응답하는 영혼의 정직한 갈망에 의하여 야기된 행동을 죄라고 여깁니까? 반면에 여러분은 쾌락들을 누리고 난 나머지를 성전에 바치고, 무수한 추악한 죄로 더럽혀진 영혼과 육체로 하느님의 현존 안으로 들어가서 지극히 깨끗하신 분의 이름을 부르는 이스라엘 사람의 타락한 예배를 거룩함이라고 여깁니까?
아닙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부정한 영혼을 가지고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in vain) 부르는 그 이스라엘 사람은 완벽한 독성죄를 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말합니다만, 여러분의 영혼의 상태로 인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것을 알면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됩니다.
오! 나는 어떤 위선자가 하느님을 부를 때나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영혼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때 역겨워하시며 외면하시는 그분의 진노하신 얼굴을 봅니다. 나는 하느님의 분노를 살 만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공포에 질립니다.
나는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의 마음속을 읽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 안에는 더러움과 죄가 있으니, 어린이들 외에는 아무도 하느님을 부를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요.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죄인들이야말로 그 이름을 불러야 하고, 사탄에게 목 졸리는 것을 느끼면서 죄와 유혹자에게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께서 에덴을 거닐고 계시지 않았을 때 뱀이 하와를 유혹하였다고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에덴에 계셨다면, 사탄은 거기 있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하와가 하느님을 불렀다면, 사탄은 도망쳤을 것입니다.(창세 3장)
항상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생각을 간직하시오. 그리고 진실하게 주님을 부르시오. 그 이름은 구원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깨끗해지기 위하여 강에 내려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사랑으로 하느님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씀으로써 여러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오. 거짓 기도들은 안 됩니다. 습관적인 의식들도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 생각, 행위, 전존재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시오. 여러분이 홀로 있지 않기 위하여 그 이름을 부르시오. 도움받기 위하여 그것을 부르시오. 용서받기 위하여 그것을 부르시오.
시나이 산의 하느님의 말씀의 뜻을 이해하시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자신의 긍정적 변화를 함축하지 않을 때 하느님의 이름은 헛되이 불린 것입니다. 그때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심장의 박동처럼 매일의 모든 순간에, 모든 정직한 행동 중에, 필요할 때, 유혹당할 때, 고통당할 때, 자녀다운 사랑의 말로 ‘나의 하느님, 오십시오!’ 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참으로 여러분이 하느님이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가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병자들은 없다. 예수께서는 땅거미가 덮이기 시작하는 헛간 아래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 계신다. 그분께서는 작은 나귀들을 타고 가는 사람들과 세례 받기 위하여 강 쪽으로 서둘러 가는 사람들과 들판을 가로질러 마을로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신다.
아주 짙은 암갈색 겉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인다. 예수께서 그를 보고 계신다. 결국 그 사람은 자기의 말을 향하여 간다. 그의 말은 장신구들이 많이 박힌 안장 밑에 붉은색 마의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백마다.
“여보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날이 저물고 있는데, 당신이 주무실 곳은 있습니까? 당신은 멀리서 오셨습니까? 당신은 혼자십니까?”
그분께서는 말씀하시며 그에게 다가가신다.
그 사람이 대답한다.
“저는 아주 먼 곳에서 왔습니다… 저는 가야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제가 마을에 가서 잠자리를 찾아낸다면… 아니면… 예리코로 가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어 제 하인을 그곳에 남겨두었습니다.”
“가지 마시오. 나는 당신에게 내 침대를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음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숙식을 제공해줄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습니다.”
“여기에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겠지요. 헤로데에 대한 증오도요. 당신은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나를 찾는 사람들은 하나의 이름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의 이름 안에서의 형제들 말입니다. 이리 오세요. 함께 빵을 나눕시다. 당신의 말은 이 헛간에 매셔도 됩니다. 내가 여기서 자면서 당신을 위하여 이놈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결코 그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자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빵은 받아들이겠습니다만, 더 이상은 아무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당신의 거룩한 몸을 누이시는 곳에 저의 더러운 몸을 누이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은 내가 거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당신께서 거룩하시다는 것을 압니다. 요한과 쿠자… 당신의 행적들… 당신의 말씀들… 궁정에는 마치 바다의 파도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조개껍데기처럼 그것들을 반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한에게 가곤 했는데… 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에 저에게 말했었습니다. ‘나보다 더 크신 분이 당신을 받아들여 당신을 들어 올리실 거요.’ 그것은 당신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께서 어디 계시는지 알아내자 이리로 왔습니다.”
그들 두 사람만이 헛간에 남아 있다. 제자들은 부엌 가까이에서 작은 소리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곁눈질로 두 사람을 살핀다.
오늘의 세례자였던 열성당원이 마지막으로 세례 받은 사람들과 함께 강에서 돌아온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신 다음 시몬에게 말씀하신다.
“이분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숙소를 찾고 있는 나그네다.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친구로서 이분과 인사를 나누자.”
시몬이 몸을 굽히고, 그 사람도 그렇게 한다. 그들은 큰방으로 들어가고, 마나엔은 말을 구유에 맨다. 예수의 눈짓으로 알아차린 요한은 풀과 물 한 통을 들고 서둘러 온다. 날이 이미 어둡기 때문에 베드로도 작은 기름등잔을 가져온다.
“나는 여기서 아주 편하게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갚아주시기를.”
그 사람이 말한 다음 예수와 시몬 사이에서 부엌으로 들어온다. 부엌에는 막 불붙은 잔가지에서 나오는 불빛이 보인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