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515~p527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122. ‘맑은 내’에서의 예수. “네 부모를 공경하라”
1945. 3. 3.
예수께서는 강가를 천천히 왔다 갔다 하며 산보하고 계신다. 음산한 겨울날의 안개가 아직 강둑의 갈대에 끼어 있는 것을 보니 지금은 이른 새벽임이 틀림없다. 요르단 강 양안에는 시야가 미치는 한 아무도 없다. 물 위에 깔려 있는 안개, 갈대에 부딪치는 물소리, 최근에 내린 비로 인하여 상당히 흐려진 물이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짝짓기의 계절이 지난 후에 늘 그렇듯이 짤막하고 슬픈 새소리가 들려온다. 계절과 먹을 것의 부족으로 인하여 새들은 야위어 있다.
예수께서는 새소리들을 듣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한 작은 새가 시계의 정확성을 가지고 규칙적으로 머리를 북쪽으로 돌리고 구슬프게 울고, 그 다음에는 남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아무런 대답 없는 질문을 하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에 흥미를 느끼시는 것 같다.
마침내 그 작은 새는 대안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로 대답을 얻은 모양이어서, 작은 기쁨의 소리를 내며 강 너머로 날아간다. 예수께서는 ‘다행이군!’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몸짓을 하신 다음 다시 걷기 시작하신다.
“선생님, 제가 당신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요한이 풀밭 쪽에서 오며 묻는다.
“아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저는 당신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당신을 위로해드릴 수 있는 소식일 것 같기도 하고, 당신께 조언을 청하고 싶기도 해서 즉시 왔습니다. 제가 우리의 큰 방들을 쓸고 있는데 가리옷의 유다가 들어와 ‘내가 자네를 도와줄게’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남이 시킬 때에도… 그런 궂은일들을 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저는 놀랐지만, 제가 말했습니다. ‘오! 고맙네! 그렇게 하면 일이 더 빨리 끝나고 청소도 더 잘 될 거야.’ 그는 쓸기 시작했고, 그래서 저희는 아주 빨리 청소를 마쳤습니다.
그 다음에 그가 말했습니다. ‘숲으로 가세. 항상 나이 많은 사람들이 땔감을 구해 오는데, 그건 공평하지 않아. 우리가 가세. 나는 나무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지만 자네가 나에게 가르쳐준다면…’ 그래서 저희는 숲으로 갔습니다. 제가 유다와 함께 나뭇단을 만들고 있을 때 그가 말했습니다. ‘요한, 나에게는 자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네.’ ‘그래, 말하게.’ 저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것이 어떤 비난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반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자네가 가장 젊으니 우리가 더 화합해야 할 거야. 자네는 나를 거의 무서워하다시피 하는데,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니 나는 그런 자네를 이해하네. 하지만…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게. 나는 가끔 못된 짓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아마 내가 외아들이라 버릇이 잘못 들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착해지고 싶어. 나이든 사람들이 나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건 나도 알아. 예수님의 사촌들은 나에게 화가 나 있어… 하긴 난 그들에게 잘못한 게 많아. 그 사람들의 사촌인 예수님께도 그렇고.
하지만 자네는 착하고 참을성이 있으니, 나를 사랑해주게. 내가 자네가 사랑해야만 하는 자네의 못된 형제라고 생각하게. 선생님께서도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내가 정확히 옳은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을 자네가 볼 때 나에게 말해주게. 그리고 항상 나를 혼자 놔두지 말게. 내가 마을에 갈 때 자네도 나와 함께 가주게. 자네는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나를 도와주게.
어제 나는 많이 괴로웠네. 예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고, 나는 그분을 뵈었네. 나는 어리석은 원한으로 나 자신도 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보지 않았었네. 그런데 어제 나는 보았고, 깨달았어…
예수께서 고통당하고 계신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이 옳아… 나는 그것도 내 잘못이라는 걸 느끼고 있어. 나는 더 이상 그분의 고통의 원인이 되고 싶지 않아. 나와 함께 가세. 자네는 가줄 거지? 자네는 내가 더 나아지도록 도와줄텐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 사내아이에게 붙잡힌 참새처럼 가슴이 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착해진다면, 저는 기쁠 것이고, 당신을 위해서도 기쁘겠지만, 솔직히 무섭기도 했는데, 그건… 제가 유다처럼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당신께서 유다를 받아주신 날 해주셨던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나는 자네를 도와주겠어. 하지만 만일 내가 다른 명령을 받는다면, 나는 순종해야 해.’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그래서 만일 그분께서 승낙하신다면, 나는 그와 함께 가겠다. 만일 그분께서 승낙하지 않으신다면,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나에게 명령을 내려달라고 말씀드리겠다.’”
“들어라. 요한아, 나는 너에게 가게 하겠다. 그러나 만일 네가 너를 어지럽히고 있는 무언가를 느낀다면, 너는 나에게 와서 말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요한아, 너는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가지고 온다. 가보아라, 요한아.”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고기는 많이 잡았느냐?”
“흠, 별로요, 아주 작은 놈들뿐입니다… 하지만 이거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야고보는 한 동물이 밧줄을 물어뜯어 자기의 그물을 잃었다고 투덜대고 있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놈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불쌍한 동물을 동정하게.’ 하지만 야고보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웃으며 말한다.
“너희의 한 형제에 대하여 내가 하는 말이 정확히 네가 방금 한 말과 같다.”
“당신께서는 유다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렇다. 그리고 그도 그로 인하여 괴로워한다. 그의 의도들을 착하지만, 그의 성향은 비뚤어져 있다. 그런데 나의 노련한 어부야, 네가 나에게 말해다오. 만일 내가 요르단 강에서 배를 타고 겐네사렛 호수까지 가기를 원한다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내가 성공하겠느냐?”
“에! 그건 힘든 일일 겁니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작고 바닥이 평평한 배들로는 성공하실 것입니다… 당신께서도 아시겠지만, 그것은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수심을 재야 할 것이고, 강가와 얕은 곳, 떠다니는 나뭇가지, 물살 따위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돛이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강을 따라 호수로 돌아가기를 원하십니까? 흐름을 거슬러 가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네 말이 아주 옳다. 악습에 젖어 있는 사람은 곧고 좁은 길을 따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는 자기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 유다가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데, 너희는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 가엾은 친구는 혼자 가다가 바닥에 부딪치거나, 소용돌이들에 휘말리거나, 부유하는 작은 나무들에 엉키거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만다. 반대로 만일 그가 수심을 재고 있다면, 그는 그와 동시에 키를 잡거나 노를 저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그가 왜 비난받아야 하겠느냐? 너희는 타인들은 동정하면서 너희의 동료인 그를 동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옳지 않다.
저기 그와 요한이 빵과 야채를 사려고 마을로 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유다는 제발 자기 혼자 가지 않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그가 요한에게 동행해달라고 청한 것은 그가 바보가 아니어서 너희 나이 든 사람들이 자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요한을 보내셨습니까? 요한도 물들면 어쩌시려고요?”
“누가? 내 아우가? 그 애가 왜 물들어?”
갈대밭에서 자기의 그물을 가지고 방금 도착한 야고보가 묻는다.
“왜냐하면 유다가 요한과 함께 가기 때문이야.”
“언제부터?”
“오늘부터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가도록 허락했다.”
“좋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그 애에게 허락하셨다면…”
“그렇다. 나는 너희 모두에게 똑같이 하도록 권한다. 너희는 너무 그를 혼자 내버려둔다. 그에 대해서 재판관들만 되지는 마라. 그도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나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더 버릇없이 자랐다.”
“예, 그것은 분명히 그럴 겁니다. 만일 그의 아버지가 제베대오이고, 그의 어머니가 살로메였다면, 그는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 부모님은 착하시지만, 그분들의 자녀들에 대하여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니다.”
“네 말이 옳다. 오늘 나는 그것을 주제로 말하겠다. 이제 가자. 많은 사람들이 이미 들판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는 우리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먹을 시간도, 기도할 시간도, 쉴 시간도 없습니다… 군중이 점점 많아지니까요.”
베드로가 한편으로는 감탄하고, 한편으로는 짜증내며 말한다.
“너는 그것을 불평하느냐? 이것은 여전히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표시이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당신께서는 그것으로 인하여 고통당하십니다. 어제 당신께서는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셨고, 간밤에는 당신의 겉옷만을 덮고 주무셔야 했습니다. 만일 당신의 어머니께서 그것을 아신다면!”
“그분께서는 그토록 많은 신자들을 나에게 데려다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당신을 돌보아드리라고 그분에게서 부탁받은 저를 나무라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결론짓는다.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가 손짓을 하면서 그들을 향하여 오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보고 걸음을 재촉하며 말한다.
“오! 선생님! 저희는 어찌해야 할까요? 진짜 순례자들이 있습니다. 병자들, 우는 사람들, 멀리서 온 아무런 대책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빵을 사자. 부자들이 기부금을 내니 우리는 그것을 쓰기만 하면 된다.”
“낮은 짧고, 헛간은 거기서 야숙하는 사람들로 혼잡합니다. 밤에는 습하고 춥습니다.”
“필립보야, 네 말이 옳다. 우리는 모두 한 방에 끼여 자기로 하고, 다른 방들은 저녁에 자기 집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양보하자.”
“알겠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손님들에게 옷 갈아입는 것까지 허락받아야 할 판이군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몰려들어 우리가 도망가야 될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볼멘소리를 한다.
“나의 소중한 베드로야, 너는 완전히 다른 도망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도망치게 될 일들을 암시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저 여자에게는 무슨 일이 있느냐?”그들은 지금 타작마당에 있는데, 예수께서는 울고 있는 여자를 보신다.
“누가 알겠습니까! 저 여자는 어제도 여기 있었는데, 그때도 울고 있었습니다. 당신께서 마나엔과 말씀하고 계실 때 그녀는 당신께 다가오다가 그냥 갔습니다. 저 여자가 다시 온 것을 보면 저 여자는 마을에 머물러 있거나 이 근방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 여자는 병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죠…”
“여인이여,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예수께서 그녀 가까이로 지나가시며 말씀하신다.
그러자 그녀는 조용히 대답한다.
“당신과도 함께 있기를.”
다른 말은 없다.
적어도 300명의 사람들이 있다. 헛간에 불구자들, 소경들, 벙어리들, 머리에서 발까지 몸을 부들부들 떠는 한 사람도 있다. 그는 어린 소년인데 뇌수종에 걸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 남자가 그의 손을 붙잡고 있다. 그 소년은 얼빠진 모습으로 그저 신음하고 침을 흘리고 크고 백치의 그것과 같이 보이는 머리를 흔들기만 하고 있다.
“아마 저 애는 저 여자의 아들인 모양이지?”
예수께서 물으신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시몬이 순례자들을 돌보고 있어 그가 알 것입니다.”
그들은 열성당원을 불러 그에게 물어본다. 그러나 그 남자는 그 여자와 함께 있지 않다. 그 여자는 혼자 있다.
“저 여자는 그저 울고, 기도할 뿐입니다. 방금 전에 저 여자는 저에게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도 고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열성당원이 설명한다.
“아마 저 여자의 남편이 저 여자에게 불충실한 모양이군.”
베드로가 자기의 생각을 말한다.
예수께서 병자들에게로 가시는 동안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데리고 세례를 주러 간다. 그 여자는 원래 있던 구석에서 울면서 동요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누구에게도 기적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그 머리를 긴 두 손으로 잡으시고 입김으로 지성을 불어 넣어주시는 저능아의 기적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들 모두가 그의 주위로 모여든다.
베일을 쓴 여자도 다가온다. 아마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녀는 감히 다가와 울고 있는 여자 곁에 선다. 예수께서 그 바보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 안에 지성의 빛이 들어가 그것이 너를 하느님의 빛으로 이끌어가기를 원한다. 얘야, 나와 함께 ‘예수’ 라고 말해라. 그것을 말해보아라. 나는 그것을 원한다.”
전에는 짐승처럼 신음만 할 줄 알았던 저능아인 젊은이가 어렵게 ‘예수’라고, 아니 ‘제쥬’라고 어렵사리 웅얼거린다.
예수께서는 여전히 기형의 머리를 그분의 두 손으로 잡으시고 그분의 두 눈으로 그를 압도하시며 명하신다.
“다시 한 번.”
“옛수.”
“다시.”
“예수!”
불쌍한 바보가 마침내 말한다. 그의 두 눈은 더 이상 무표정하지 않고, 그의 양 입술은 지금 다르게 미소 짓는다.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에게 말씀하신다.
“여보시오. 당신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에게 물어보시오. 예수의 이름은 병들과 격정들에 대하여 기적을 행합니다.”
그 남자가 자기의 아들에게 묻는다.
“내가 누구냐?”
“아버지”
소년이 대답한다.
그 남자가 자기의 아들을 가슴에 꼭 껴안으며 말한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랬습니다. 제 아내는 이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이 아이는 생각과 언어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신께서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예, 저는 믿었습니다. 저는 야포에서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착하게 사시오. 그리고 당신의 아들도요. 나는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요. 오! 가서 네 외할머니께 말씀드리자. 제 장모님이 저에게 이리로 오도록 강권했습니다. 그분이 축복받으시기를!”
두 사람은 기쁘게 떠나간다. 지난날의 불구에서 남은 흔적이라고는 소년의 큰 머리밖에 없다. 그의 표정과 말은 정상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당신의 의지로 나았습니까, 아니면 당신의 이름의 힘으로 나았습니까?”
많은 이들이 묻는다.
“그분의 아들에게 항상 친절하신 아버지의 뜻으로 나았습니다. 그러나 내 이름도 구원입니다. 여러분은 압니다. 예수는 구세주라는 뜻입니다.(‘요수아’의 그리스어형이다. ‘야훼는 구원자시다’라는 뜻이다.) 영혼의 구원과 육체의 구원이 있습니다. 참 믿음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병과 죄에서 해방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영적, 육체적 질병에는 사탄의 발톱이 있는데, 그는 육체의 고통을 통하여 반역과 실망으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육체의 질병들을 만들어내고, 영벌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질병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럼 당신의 말씀에 따르면 베엘제붑은 인류의 모든 불행과 무관하지 않군요.”
“그렇습니다. 그를 통하여 질병과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 죄악과 타락도 그를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가 불행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은 그가 사탄으로 인하여 고통당한다고 확신해도 됩니다. 여러분이 불행의 원인인 누군가를 볼 때 여러분은 그가 사탄의 도구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병은 질서 안의 무질서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건강하고 완전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질서 안에 사탄이 야기한 무질서는 육체의 질병과 그것의 결과들인 죽음이나 고통스러운 유전병을 가져왔습니다.
사람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원죄를 물려받았습니다만, 원죄만을 물려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얼룩은 점점 더 넓어져서 사람의 세 개의 가지들에 미칩니다. 점점 더 악해지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약해지고 병드는 육체, 점점 더 교만해지고, 그래서 더 타락하는 마음, 점점 더 회의적이 되고, 그래서 점점 더 우상숭배적인 것이 되는 영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저 가련한 저능아에게 한 것처럼 사탄을 도망치게 하는 이름을 가르쳐야 하고, 그 이름을 생각과 마음에 새기고, 사람의 자아에 소유권을 나타내는 도장을 찍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저희를 소유하십니까? 당신이 누구시기에 당신은 당신 자신을 그토록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제발 그렇다면!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일 내가 여러분을 소유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권리일 것입니다. 나는 구세주이고, 나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소유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요한은… 저는 요한에게서 왔는데, 그분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에프라임과 예리코 근처에서 설교하고, 세례를 주고 있는 분께로 가라. 그분께서는 용서해주거나 용서해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반면에 나는 다만 ‘네 영혼이 구원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민첩하게 만들기 위하여 회개하라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방금 전에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지금은 목발이 필요 없게 된 사람이 말한다.
“세례자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는다.
그러자 방금 전에 말한 사람이 대답한다.
“괴로워하다니요? 그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가시오! 가요! 나는 지고 있는 별이고, 그분께서는 떠오르고 계시고, 영원히 빛날 별이시오. 만일 당신이 어둠 속에 남아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내 심지에 불이 꺼지기 전에 그분께로 가시오.’”
“바리사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신께서 많은 사람들을 당신께로 이끄시기 때문에 쓰디쓴 증오를 가득 품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것을 아십니까?”
“나는 압니다.”
예수께서는 짤막하게 대답하신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하여 토론을 시작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짧게 말씀하심으로써 토론을 종결시키신다.
“비판하지 마시오.”
그분께서 단호하게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대꾸할 수 없다.
바르톨로메오와 마태오가 세례 받은 사람들과 함께 돌아온다.
예수께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여러분이 아침에 이곳에 오셨고, 그래서 정오 이후에 돌아가시는 편이 더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나는 오전에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나는 밤이 되기 전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그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나 자신도 나그네인데, 나는 동정하는 친구가 준 최소한의 필수품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요한은 나보다 훨씬 더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들이나 다리 저는 사람들이나 소경, 벙어리처럼 심각하게 앓지는 않는 환자들만이 요한에게 가고, 나에게 오는 것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이나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고 그에게 갑니다만, 여러분은 여러분의 육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도 나에게 옵니다.
율법은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말합니다. ‘만일 내가 내 형제들의 육체적인 필요들에 대하여 내 마음을 닫는다면, 어떻게 내 형제들에게 내 사랑을 보여주겠는가.’
그래서 나는 결론짓습니다. ‘나는 내가 받은 것을 그들에게 주겠다. 나는 부자들에게 내 손을 내밀어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빵을 부탁하겠다. 나는 내 침대를 포기하고, 피로에 지치고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을 맞아들이겠다.’
우리 모두는 형제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형제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말이 아닌 행위로 증명합니다. 자기의 동료 인간에게 자기의 마음을 닫는 사람은 카인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에 반역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형제들입니다.
그러나 나도, 여러분도 같은 핏줄로 결합하고, 피와 살과 함께 아담에게서 우리에게 오는 우애로도 결합해 있는 곳인 가정 안에도 증오와 불화가 있음을 봅니다. 형제들이 형제들과 대립하고, 자녀들이 자기들의 부모들에게 반항하고, 부모들은 서로에게 적대적입니다.
항상 나쁜 형제들이 되지 않고, 미래에 간통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되지 않으려면, 어릴 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도 가장 큰 조직체인 가정에 대한 존중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은 한 도시, 지방, 나라, 대륙에 비교할 때 가장 작지만,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국이나 나라의 개념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때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것인데, 그때도 이미 남편은 왕이고, 아내는 왕후이며, 자녀들은 신민들인 작은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살아 있고 활동적이고 인종과 인종들의 근원인 가정의 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한 나라가 분열되어 있고, 그 주민들 사이에 반목이 있다면, 그 나라가 지속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참으로 한 가정도 순종, 존경, 경제, 착한 뜻, 활동, 애정이 없이는 유지되지 못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십계명은 말합니다. 어떻게 그들을 공경합니까? 왜 그들을 공경해야 합니까?
참다운 복종, 올바른 사랑, 다정한 존경, 존경어린 두려움으로 그분들을 공경합니다. 존경어린 두려움은 신뢰를 막지는 않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연장자들이 마치 우리가 종들이나 아랫사람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를 대우하지도 않게 합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공경해야 하는 까닭은 하느님 다음으로는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에게 생명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질적 필수품을 주시고, 이 세상에 태어난 어린 존재의 첫 번째 선생들이고, 첫 번째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땅에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주거나 빵 한 조각을 주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또는 ‘고맙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우리의 옷을 만들어주고 그것들을 깨끗하게 유지해주기 위하여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고, 우리의 잠을 지켜주느라 깨어 있고, 우리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밤잠을 자지 않고, 우리가 가장 피로하고 고통스러울 때 그분들의 품으로 우리의 침대를 만들어주는 분들에게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 ‘하느님께서 당신들을 축복하시기를’ 또는 ‘고맙습니다’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들은 우리의 선생들입니다. 우리는 선생을 두려워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선생은 우리가 자신을 지탱하고 먹기 위하여 불가결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기본적인 것들을 말할 줄 알 때 우리를 떠맡고, 우리가 여전히 인생의 가장 어려운 교훈 즉 ‘사는 법’을 배워야 할 때 우리를 떠납니다. 우리가 학교에 가고, 그 다음에 인생살이를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 사람들은 우리의 부모들입니다.
그분들은 우리의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아버지보다 더 친할 수 있으며, 어떤 친구가 어머니보다 더 다정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분들을 무서워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를 배반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남들과 친구가 되어 부모에게는 마음을 닫고, 죄가 되지는 않더라도 분별없는 우정으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망쳐 그것이 녹은 납 방울처럼 그들의 부모의 마음을 태우는 눈물의 원인이 되게 하는 어리석은 젊은이와 그보다 더 어리석은 처녀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그 눈물들은 먼지나 망각 속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거두어 세고 계십니다. 짓밟힌 부모의 고통은 주님에게서 상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부모를 괴롭히는 아들의 행위는 비록 부모가 비통한 사랑으로 자기들의 죄지은 아들을 불쌍히 여겨주시도록 하느님께 애원한다 해도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네가 땅에서 오래 살기를 원한다면, 네 부모를 공경해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탈출20,12) 나는 거기에 ‘그리고 하늘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면’이라는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여기서의 단명은 자신들의 부모에게 잘못한 사람들에게 너무 가벼운 벌일 것입니다! 내세는 부질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세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상이나 벌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를 학대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부모들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는데도 그분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육체적 생명보다는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참 생명을 잃고 자기의 죽음을 향하여 갑니다. 아니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혼이 주님의 은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 다음인 가장 거룩한 사랑을 어기기 때문에 이미 범죄자입니다. 그는 나쁜 아들로부터 불충실한 남편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기 안에 미래의 간통들의 싹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나쁜 아들로부터 미래의 도둑, 끔찍하고 포악한 암살자, 몰인정한 고리대금업자, 냉소적인 향락주의자, 조국과 친구와 자식과 아내와 모든 사람에 대한 역겨운 배신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미 자기 안에 사회적 타락의 유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사랑을 배반할 수 있고, 아버지의 백발을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습니까?
좀 더 들으시오. 자녀들의 의무는 부모들의 그와 유사한 의무와 대응합니다. 죄지은 아들은 저주받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지은 부모도 저주받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을 비판하거나 여러분의 악행을 흉내 내지 못하게 하시오. 여러분이 정의와 자비로 그들에게 준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이 여러분을 사랑하게 하시오.
하느님께서는 자비이십니다. 하느님 바로 다음인 부모들도 자비로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모범과 위로가 되시오. 그들의 평화와 인도자가 되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의 최초의 사랑이 되시오.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가 얻기를 바라는 아내의 최초의 이미지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어린 딸들이 꿈꾸는 그녀의 남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그들의 부모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상대방들 안에서 그들의 부모들의 진실한 성덕들을 찾으며 그들의 짝들을 슬기롭게 고를 수 있도록 올바르게 행동하시오.
만일 내가 이 문제에 대하여 완전히 고찰할 때까지 말해야 한다면, 하루 밤낮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 대한 사랑으로 내 설교를 이만 줄이겠습니다. 영원하신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나머지를 말씀해주시기를. 나는 씨를 뿌린 다음 갑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들 안에서 그 씨는 뿌리 내리고 열매 맺을 것입니다. 가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떠나야 할 사람들은 빨리 떠나간다. 그리고 머무르려는 사람들은 세 번째 큰방으로 들어간 다음 자기들이 가져온 빵이나 제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주는 빵을 먹는다. 널빤지들과 짚이 투박한 가대들 위에 깔려 있어 순례자들이 거기서 잘 수 있다.
베일 쓴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간다. 전에도 울었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계속 울고 있었던 다른 여인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배회하다가 떠나기로 결심한다.
예수께서 식사하시려고 부엌으로 들어가신 다음 식사를 시작하시자마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안드레아가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간다. 안드레아가 대화를 나눈 다음 들어온다.
“선생님, 울고 있었던 그 여인이 당신을 뵙고 싶어 합니다. 그녀는 자기는 떠나야 하는데, 당신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언제, 어떻게 약간의 음식이라도 드실 수 있겠어?”
베드로가 외친다.
“자네는 그 여자에게 나중에 오라고 말했어야 했네.”
필립보가 말한다.
“조용히 해라. 나는 나중에 먹겠다. 너희는 식사를 계속해라.”
예수께서 나오신다. 여인은 거기 밖에 있다.
“선생님… 한 말씀만…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오! 집 뒤로 가십시다. 제 고통을 말씀드리는 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여인의 말을 따르신다.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집 뒤로 가셨을 때 비로소 물으신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바랍니까?”
“선생님… 저는 전에 당신께서 저희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그 다음에는 당신께서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당신께서는 바로 저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질병 안에 사탄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병든 아들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부모들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그 애가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애는 제 고통입니다. 나쁜 친구들이 그 애를 나쁜 길로 이끌어… 당신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도둑이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 애는 집에 있습니다만… 다투기를 좋아하고… 거만합니다… 그 애는 음란과 방탕으로 자기를 망치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그 애를 쫓아내려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저는 그 애의 어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심하여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 가슴이 얼마나 헐떡이는지 보십시오.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제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저는 어제부터 당신께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하느님이신 당신께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한 어미가 ‘저는 난폭한 아들을 두었습니다!’ 하고 말하기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의 앞에서 몸을 숙이고 울고 있다.
“더 이상 울지 마시오. 그의 병은 나을 것입니다.”
“예, 만일 그 애가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그 애는 당신의 말씀을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오! 그 애는 결코 고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위하여 나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그를 대신하기를 원합니까?”
“당신께서는 왜 그것을 저에게 물으십니까? 저는 그 애를 대신하여 당신께 청하려고 상부 베로이아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가보시오! 당신이 당신의 집에 도착할 때 당신의 아들이 당신을 마중 나올 것이고, 뉘우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어떻게요? 그럼 당신은 하느님께서 내가 청하는 것을 하실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의 아들은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곳에 계십니다. 나는 하느님께 ‘아버지, 이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부르심이 당신의 아들의 마음속에 천둥처럼 울릴 것입니다.
부인, 가시오. 어느 날 나는 당신의 지방의 마을들을 지날 터인데,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로서 그와 함께 나를 만나러 올 것입니다.
그가 당신의 무릎에 엎드려 울며 용서를 청하고, 자기가 새 영혼을 가지고 나타나게 된 신비한 갈등에 대하여 당신에게 말하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났느냐고 묻는다면, 그에게 말해주시오. ‘네가 정직한 삶으로 돌아온 것은 예수 덕분이다.’ 그에게 나에 대하여 말해주시오. 당신이 나에게로 왔다는 것은 당신이 알고 있다는 뜻이오. 그가 구원의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그가 나를 알고 나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시오. 잘 가시오. 믿음을 가진 어머니에게, 돌아오는 아들에게, 기뻐하는 아버지에게, 그리고 하나 된 가족에게 평화. 가시오.”
여인이 마을을 향하여 간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