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영광

635. 마티아를 뽑다

Skyblue fiat 2024. 3. 30. 06:11

635. 마티아를 뽑다

1947. 4. 26.

 

지금은 평온한 저녁이다. 빛이 천천히 엷어져 방금 전만 해도 자줏빛이던 하늘을 우아한 자수정 빛 차일로 만들어놓는다. 곧 어두워지겠지만 지금은 아직 빛이 남아 있는데, 그토록 작열하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난 후의 희미한 이 저녁 빛은 유쾌하다.

사방에 흰 담이 둘러쳐져 있는 최후의 만찬의 집 넓은 마당은 부활 후 며칠간의 저녁들처럼 사람들이 꽉 차 있다. 기도드리는 조화로운 속삭임이 들리다가 가끔씩 묵상으로 그 소리가 중단된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의 안마당에 빛이 점점 더 희미해지자 어떤 사람들이 등불들을 가져다가 사도들이 모여 있는 탁자 위에 놓는다. 베드로가 한가운데 있고, 알패오의 야고보와 요한이 그의 양 옆에 있고, 그 다음에는 다른 사도들이 있다. 작은 불꽃들의 흔들리는 빛이 사도들의 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비추어 그들의 특징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그들의 표정들을 보여준다.

자기의 직무의 이 첫 번째 일들을 수행하려는 노력으로 긴장한 듯한 베드로의 집중된 표정, 알패오의 야고보의 고행자다우면서도 온화한 표정, 차분하고 꿈꾸는 듯한 요한의 표정, 요한 옆에 있는 바르톨로메오의 사색하는 사람 같은 얼굴, 그 다음에는 토마스의 생명력이 충만한 둥근 얼굴, 그 다음에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두 눈을 거의 감고 있는 겸손한 안드레아의 얼굴. 그의 얼굴은 ‘나는 자격이 없소’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그의 곁에는 마태오가 자기의 다른 손에 팔꿈치를 얹고, 그 얹은 팔의 손으로는 뺨을 올려놓고 있다. 알패오의 야고보 다음에는 권위 있는 얼굴에 예수의 눈 빛깔과 눈매를 꼭 닮은 눈매를 가진 타대오가 있다. 그는 참으로 군중들의 지배자이다.

지금도 그는 다른 사도들 모두의 눈길보다 그의 불타는 듯한 눈길로 모임을 조용하게 한다. 그러나 그의 본의 아닌 왕자다운 위엄에서 뉘우침으로 충만한 그의 마음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된다. 특히 그가 기도를 시작할 차례가 오면 더 그렇다.

“주님, 당신의 자비와 성실로 인하여 저희, 저희에게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주시어 민족들이 ‘그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소서” 1) 시편115,2) 하는 시편을 읽을 때 그는 자기를 선택하신 분 앞에 실제로 영혼이 무릎 꿇고 기도드리며, 내면의 가장 힘찬 감정에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는 자신의 모든 기도와 함께 이렇게도 말한다.“저는 지극히 완전하신 당신을 섬길 자격이 없습니다.”

 

그의 곁에 있는 필립보는 아직 장년인데도 이미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로 자기만이 아는 어떤 광경을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처럼 양손으로 자기의 양쪽 뺨을 누르며 약간 몸을 숙이고 어쩐지 침울하게 앉아 있다…

반면 열성당원은 멀리 위쪽을 바라보며 친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것의 금욕적인 특징으로 인하여 매력 있는 그의 얼굴이 그 미소로 아름다워 보인다.

충동적이고, 파르르 떠는 제베대오의 야고보는 아직도 자기의 사랑하는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것처럼 기도드려 시편 12편이 정열적인 그의 불타는 영혼에서 충동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들은 길고 아름다운 시편 118편 2)시편 119편)을 한 구절씩 읽는데, 두 바퀴를 돌아서야 끝에 이르게 된다. 그 다음에 그들 모두는 조용히 묵상한다.마침내 베드로가 앉아 있다가 어떤 영감을 받은 듯 다시 일어나 주님이 하시곤 했던 것처럼 양팔을 내밀고 큰 소리로 기도한다.

 

“오 주님, 당신의 성령을 저희에게 보내시어 저희가 그분의 빛 안에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마라나 타”3) ‘우리 주님, 오십시오!를 뜻하는 아람어이다. 1코린16,22 )

그들 모두가 말한다.

베드로는 열렬한 침묵의 기도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기도드리는 것보다는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적어도 빛의 말씀들을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얼굴을 들고, 팔짱끼고 있던 팔을 다시 풀고, 자기의 대다수의 동료들에 비하여 키가 작기 때문에 안마당에 빽빽하게 들어선 작은 군중을 내려다보고, 모든 사람이 자기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의자 위로 올라선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그가 말하려 하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주목하며 침묵한다.

“내 형제들이여,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유다에 관한 성경 말씀이 성취되어야 합니다. 사실 그는 주님이시고 우리의 복되신 선생님이신 예수님을 붙잡은 사람들의 안내자였습니다.

그 사람 유다는 우리 중의 한 사람이었고, 이 성직을 맡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택(his election)은 그에게 파멸로 변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여러 가지 길들을 통하여 그의 안으로 들어가 그를 예수의 사도였던 사람으로부터 자기의 주님의 배반자가 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승리하고 환호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모든 정욕으로 가득 찬 그의 마음의 불결한 소망들을 실망시키셨던 거룩하신 선생님께 복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가 승리하고 환호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는 자신을 마귀와 육신과 세속의 종으로 만드는 사람은 승리하지 못하고, 반대로 패배한 사람처럼 진흙을 먹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과 사탄이 주는 음식의 맛은 대단히 쓰고, 하느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감미롭고 소박한 빵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실망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하느님을 미워한 다음 온 세상을 미워했고, 세상이 그에게 준 모든 것을 저주하고는, 자기의 불의한 행위로 매수했던 올리브 밭의 올리브나무에 자기의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날, 썩어서 벌써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 그의 시체가 터져서 내장이 올리브나무 아래 땅에 흩어져 그곳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구속하는 피는 골고타 언덕 위에 비 오듯 쏟아졌고, 그래서 땅을 정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명 높은 산헤드린의 위원회가 있는 곳 근처 야산 위에는 피나 참다운 가책의 눈물이 아니라 더러운 썩은 내장이 비 오듯 먼지 위에 쏟아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화의 날들에 그 어떤 피도 어린양께서 그분의 피로 우리를 씻고 계셨던 지극히 거룩하신 피와 섞일 수 없기 때문이었고, 더구나 하느님의 아들의 피를 마시고 있었던 땅이 사탄의 아들의 피도 마시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과 함께 지옥에 떨어질 그의 영혼의 분노로 유다가 파렴치한 흥정의 대상이 되었던 돈을 성전으로 도로 가져가서 그 더러운 돈으로 대사제의 얼굴을 쳤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성전의 금고에서 꺼냈지만 그것이 피의 대가였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금고에 넣을 수 없어 대사제들과 원로들이 서로 의논하여 예언서에서 액수까지 밝히면서 말한 것처럼 옹기장수의 밭을 샀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곳은 후세에게 하켈 드마라는 이름으로 전해질 것입니다.

유다와 관계되는 것은 모두 말했으니, 그의 얼굴의 기억마저도 우리에게서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았던 그가 영원한 암흑의 나라의 왕자가 되기까지 내려간 길들을 명심하여, 우리 자신들도 분별없이 그 길에 발을 들여놓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말씀에 대하여,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 선생님이신 말씀에 대하여 다른 유다들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시편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들의 집을 폐허로 만드시고, 아무도 거기서 살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자리를 차지하게 해주십시오.’4) 사도1,18, 마태27,3―10)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왕래하신 동안에 줄곧, 즉 요한이 베푼 세례로부터 시작하여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에서 떠나시어 하늘로 올라가신 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함께 있었던 이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그분의 부활의 증인으로 지명되어야 합니다.

빨리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분에게서 성령을 받지 못한 그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불의 세례에는 우리와 함께 참석하여 하느님에게서 직접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비추어지고, 거룩하게 되고, 우리가 받을 성덕들을 그도 가짐으로써 그가 판단하고, 죄를 사해주고, 우리가 하게 될 일을 하며, 그의 행위들이 유효하고 거룩한 것이 되게 해야겠습니다.

나는 충실한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충실한 제자들, 그분께서 세상에 대하여 미지의 분이셨을 때에도 그분께 충실했고, 이미 그분을 위하여 고통당해온 사람들 중에서 그를 선택하자고 제안하겠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의 선구자인 요한으로부터 우리에게 왔는데, 여러 해 전부터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매우 아끼셨고, 그들 중에서 아기 예수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했던 이사악을 가장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주님께서 승천하신 날 밤에 그의 심장이 부서졌습니다.

우리는 그를 애도하지 맙시다. 그는 주님과 합류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음의 유일한 바람이었고… 우리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수난을 당해야 합니다. 이사악은 이미 자기의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사람들 중 몇 개의 이름들을 추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열두 번째의 사도는 가장 중대한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지명권을 맡겨드려 우리 민족의 관습에 따라 지명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 의논한다. 잠시 후 그들은 가장 중요한 제자들(목자들이 아닌 제자들 중에서)이 충실한 제자인 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한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사바의 요셉의 아들 요셉을 열 사도들과 합의하여 추천한다는 것을 베드로에게 알리고, 요셉과 같은 이유들로, 그리고 그의 처음 스승이었던 요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마티아를 추천한다는 것을 알린다.

베드로가 그들의 추천을 받아들이자, 그들은 그 두 사람을 탁자 앞으로 나아오게 하고, 그 동안에 히브리인들이 흔히 하는 자세로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기도드린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들을 아시는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 한 분이시고 삼위이신 지극히 높으신 주님, 당신께서 이 두 사람 중에서 이 성직과 이 사도직에서 배임행위를 한 유다를 대신할 사람으로 선택하신 사람을 저희에게 알려주십시오.”

“마라나 타”

그들 모두가 합창한다.

그들은 주사위나 제비뽑는 데 쓰는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렇다고 이 일에 돈을 쓰기는 싫어서 그들은 안마당에 널려 있는 작은 조약돌들을, 보잘것없는 작은 조약돌들을 흰 것과 검은 것을 똑같은 수로 집어 흰 것은 마티아의 것으로, 검은 것은 요셉의 것으로 정한다. 그들은 자루 하나에 들어 있는 물건을 꺼내고, 그 안에 그 조약돌들을 넣고 흔들어 베드로에게 내민다.

베드로는 자루에 축복의 몸짓을 하고, 손을 넣고 별들이 흩어져 있는 하늘을 쳐다보며 기도하고 나서 조약돌 한 개를 꺼낸다. 눈같이 흰 돌이다. 주님께서 마티아를 유다의 후임으로 지명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탁자 앞으로 나와서 ‘그를 그 자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마티아를 껴안는다.

다른 열 사도들은 작은 군중의 갈채 속에 같은 몸짓을 한다.

끝으로 베드로는 선출된 사도의 손을 잡고 자기자리로 돌아와 자기 곁에 그대로 있게 한다. 그래서 베드로는 지금 마티아와 알패오의 야고보 사이에 있게 된다. 그가 말한다.

“하느님께서 자네에게 마련해주신 자리로 와서 자네의 의덕으로 유다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들을 자네의 형제들인 우리가 완수하도록 도와주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항상 자네와 함께 있기를 바라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해산시킨다…

제자들이 옆문을 통하여 천천히 나가는 동안 사도들은 그분의 방에서 기도에 골몰해 계시는 마리아께 마티아를 데려가기 위하여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새 사도가 하느님의 어머니로부터도 인사와 선택의 말씀을 듣게 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