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영광

637. 베드로가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성찬례를 집전하다

Skyblue fiat 2024. 3. 30. 06:09

637. 베드로가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성찬례를 집전하다

 

작품의 종결, 즉 성령강림절부터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 마리아의 승천까지. 제1삽화(44. 6. 3.) 베드로, 더 이상 투박한 어부가 아니라 대사제로서의 새 능력을 보여준다.

 

1944. 6. 3.

성령강림절 직후 며칠 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최초의 모임들 중의 하나이다.

사도단은 이미 배반자를 대신하도록 선출된 마티아가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에 다시 열두 사람이다. 그리고 열두 사도들 모두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아직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을 전하러 가기 위하여 헤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지금은 성령강림절 직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에 대한 산헤드린의 박해들도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만일 그 박해들이 시작되었다면, 그들은 아주 평온하게 아무런 예방조치들도 취하지 않고 성전 사람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집에서 의식을 거행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집은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집을 말하는데, 정확히 최후의 만찬이 행해졌고, 성체성사가 세워졌고, 진정하고 전적인 배반이 구속과 함께 시작되었던 방에서 의식이 행해진다.

그러나 넓은 방은 한 교회로서의 그 새로운 기능에 필요하고 신자들의 수로 인하여 요구되는 변화를 겪었다. 큰 식탁은 더 이상 작은 계단통의 벽 가까이에 있지 않고, 그 맞은편 벽 가까이, 아니 그 벽에 붙은 채 놓여 있어, 이미 사람들로 만원이 된 최후의 만찬실―그곳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최초의 성당이다―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활짝 열려 있는 그 방의 작은 문 가까이에 있는 복도에 밀집해 있는 채로 그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방안에는 모든 연령대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큰 식탁 근처이기는 하지만 한쪽 구석에 있는 여자들의 무리, 라자로의 마르타와 마리아, 니까, 엘리자, 알패오의 마리아, 살로메, 쿠자의 요안나, 요컨대 유다인과 비유다인을 막론하고 많은 여자제자들에게 둘러싸여 계신다. 그들은 예수께서 병을 고쳐주시고, 위로해주시고, 복음화 하셔서 그분의 양들이 된 사람들이다.

남자들 중에는 니코데모, 라자로, 아리마태아의 요셉 등 대단히 많은 제자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스테파노, 헤르마, 목자들, 엔게디의 회당장의 아들 엘리사와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론지노도 여기 있는데, 그는 군복을 입고 있지 않고, 마치 민간인인 것처럼 길고 수수한 회색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들은 틀림없이 성령강림과 열두 사도의 최초의 전도 후에 그리스도의 양떼에 들어온 사람들일 것이다.

이번에도 베드로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말한다. 그는 최후의 만찬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말한다. 다시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말을 들으면 그가 그것에 대하여 이미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다.

“저는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그 만찬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그는 다시라는 말을 아주 많이 강조한다.

“나자렛 사람 예수께서는 사람들에 의하여 희생되시기 전에 이 믿음에 우리의 구원이 있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마음들과 정신들을 기울여 불러야 하고, 믿어야 하기에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우리 구세주라고 불리셨는데, 그분께서는 그분의 자유의지로, 그리고 넘치는 사랑으로 그분 자신을 사람들에 대한 음식과 음료로 주시며 그분의 종들이고 후계자들인 저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하여라.’ 그것이 저희가 이렇게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오, 여러분, 그분의 증인들인 우리가 그분을 기억하고 그분의 하느님으로서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그분께서 하신 것처럼 바쳐지고 축성된 이 빵과 이 포도주 안에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피가 들어있고, 그것들이 하느님의 것,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드님의 것이고,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의 생명을 위하여 못 박혀지고 흘려진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처럼, 예언자들이 예언하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참되고 새롭고 불멸하는 교회의 일원이 되려고 들어오신 여러분도, 여러분 모두도 그렇게 믿으셔야 합니다.

용서의 이 영원한 표지를 우리, 그분을 섬기는 데 있어서의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그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우리의 우둔함으로 인하여, 그분의 절정의 시간에(in His supreme hour) 도망침으로써 그분을 버린 우리의 비겁함으로 인하여 그분과 의절하고, 그분을 부인하고, 제가, 그분의 종들 중에서 첫째인 제가 거기 성전의 마당에서 1시약간전에 주님을 배반함으로써 그분의 제자라는 것을 부인할 정도로 두려워하고 비겁했던 우리, 아니 제 개인적인 배반으로 인하여(그때 굵은 눈물 두 줄기가 베드로의 얼굴로 흘러내린다), 물질적으로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분명히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우리에게 남겨주시는 주님을 믿고, 그분을 찬미하십시오.

나는 용서의 이 영원한 표지를 우리에게 남겨주시는 주님을 믿고 찬미하라고 말하고 있었지요. 주님께서 나자렛 사람이셨을 때 그분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그분께서 그분의 아버지와 재결합하신 육화된 말씀이시라는 것을 지금 알도록 허락해주시는 그분을 믿고 찬미하십시오.

와서 이것을 드십시오.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알아듣지 못했었습니다(그러면서 베드로는 다시 운다). 우리는 이해하는 데 느렸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께서 우리의 지성을 밝혀주셨고,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해주셨고, 우리 안에 사랑을 불어넣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모세의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사야에게, 예레미야에게, 에제키엘에게, 다니엘에게, 그리고 다른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셨던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것이 진리라고 맹세하며,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도록 믿으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할 때 위엄이 넘친다. 그는 더 이상 불과 얼마 전의 약간 촌스러웠던 어부가 아니다. 그는 말하면서 사람들이 더 잘 보고 더 잘 듣게 하려고 등받이 없는 걸상 위에 올라갔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그대로 방바닥에 서 있었다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군중을 내려다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적당한 목소리로 참다운 웅변가다운 몸짓들을 곁들여가며 온건하게 말한다. 항상 표정이 풍부한 그의 두 눈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사랑, 믿음, 권위, 뉘우침, 이 모든 것이 그의 말들을 예상하게 하고 강화해주는 그의 두 눈을 통하여 빛난다.

지금 그는 연설을 끝냈다. 그는 걸상에서 내려와 큰 식탁 뒤를 지나 식탁과 벽 사이의 공간에서 기다린다.

야고보와 유다, 즉 알패오의 두 아들이며 그리스도의 사촌들이 지금 식탁위에 하얀 식탁보를 깐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식탁의 가운데에 있는 넓고 낮은 궤를 든다. 그리고 그 궤 덮개에도 아주 고운 천을 깐다.

지금 사도 요한이 마리아께로 가서 그분께 무언가를 청한다.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목에서 일종의 작은 열쇠를 벗겨내 그것을 요한에게 주신다. 요한은 그것을 받아 궤로 돌아와 그것을 열고, 앞판을 아래로 열어 그것을 식탁보 위에 얹고 그 위에 세 번째 아마포를 깐다.

궤의 안쪽은 수평 분리판이 있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아래 칸에는 술잔과 금속 쟁반이 있고, 위 칸에는 그 한가운데에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고 최초의 성체성사를 위하여 예수께서 사용하셨던 잔과 그분께서 쪼개셨던 빵의 나머지들이 술잔처럼 귀중한 작은 쟁반에 놓여 있다.

잔과 그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쟁반 곁에는, 한쪽에는 가시관과 못들과 해면이 있고, 다른 쪽에는 둘둘 말린 수의들 중의 하나와 니까가 예수의 얼굴을 닦아드렸던 베일과 마리아께서 그분의 아드님께 그분의 사타구니에 두르도록 주셨던 베일이 있다.

바닥에는 다른 물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상당히 가려진 채로 남아 있는데, 아무도 그것들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보여주지도 않기 때문에 그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반면 눈에 보이는 다른 것들은 요한과 알패오의 유다에 의하여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그러자 군중이 그것들 앞에 무릎 꿇는다.

그러나 잔도, 빵의 작은 덮개도 만지게 하거나 보여주지는 않고, 수의도 펼쳐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말린 천이 무엇인지를 말하며 보여준다. 아마도 마리아께 그분의 아드님께서 당하셨던 잔인한 고통들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하여 요한과 유다는 그것을 펼치지 않을 것이다.

의식의 이 부분이 끝나자 사도들은 목소리를 맞추어 몇 편의 기도들을 암송하는데, 나는 히브리인들이 그들의 회당들에서나 율법에 의하여 규정된 성대한 의식들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순례할 때 으레 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노래하는 것을 보니, 그것들이 어떤 시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도들의 합창에 군중도 참여한다. 이렇게 하여 그것은 점점 더 감명 깊은 것이 된다.

마침내 그들은 몇 개의 빵을 가져다가 궤의 아래 칸에 있었던 작은 금속 쟁반에 얹어놓고, 작은 금속 암포라들도 가져다놓는다. 식탁의 다른 쪽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요한은―그 동안에 베드로는 여전히 식탁과 벽 사이에서 군중을 향하여 서 있다―빵이 올려져 있는 쟁반을 베드로에게 넘겨주고, 베드로는 그것을 들고 봉헌한다. 그 다음에 그는 그것을 강복하고 궤 위에 내려놓는다.

요한 옆에서 요한처럼 무릎을 꿇고 있는 알패오의 유다는 자기 차례가 되자 베드로에게 아래 칸의 잔과, 방금 전에 빵이 담긴 작은 쟁반 가까이 있었던 두 개의 암포라를 베드로에게 건네주자 베드로는 암포라에 들어있는 것을 잔에 따른 다음 그가 빵으로 했던 것처럼 그 잔을 들고 봉헌한다. 그는 잔에도 강복하고 그것을 궤 위 빵들 옆에 내려놓는다.

그들은 더 많은 기도들을 드린다. 베드로는 빵들을 많은 조각들로 쪼개고, 군중이 훨씬 더 몸을 굽혀 엎드리는 동안 말한다.

“이것은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하여라.”

베드로는 빵조각들이 가득한 쟁반을 들고 식탁 뒤에서 나와 먼저 마리아께로 가서 그분께 한 조각을 드린다. 그 다음에 그는 식탁 앞으로 가서 축성된 빵을 받으려고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몇 조각의 빵이 여전히 쟁반 위에 남아 있는데, 그는 그 쟁반을 궤 위에 내려놓는다.

지금 그는 잔을 들어 봉헌하고 그것을 나누어주는데, 항상 마리아로부터 시작하여 참석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준다. 요한과 유다는 작은 암포라들을 들고 베드로를 따라다니며 잔이 비면 액체를 따르고, 그 동안에 베드로는 잔을 들어 봉헌하고 액체를 축성하기 위하여 강복을 되풀이한다.

성체를 받아 모시기를 청하는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자, 사도들은 남아 있는 빵과 포도주를 다 먹고 마신다. 그 다음에 그들은 다른 시편 또는 찬미가를 부른다. 그 후에 베드로가 군중에게 강복하자 그의 강복을 받은 군중이 몇 사람씩 떠나간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을 축성하여 분배하는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에 줄곧 무릎 꿇고 계셨던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일어나 궤로 가신다. 그분께서는 큰 식탁 위로 몸을 굽히시고,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쓰셨던 잔과 작은 쟁반이 놓여 있는 궤의 윗부분에 그분의 이마를 대시고 잔과 쟁반들의 끝에 입 맞추신다. 이 입맞춤은 거기에 모아둔 모든 유물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 다음에 요한은 궤를 잠그고, 그 열쇠를 마리아께 돌려드리자 그분께서는 그것을 다시 그분의 목에 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