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6-10권

천상의책 (6권-46~50)산제물인 영혼들은 하느님 자비의 딸들/확고부동함만이 영혼내부에 신적생명의 진보를 드러낸다

Skyblue fiat 2014. 9. 20. 04:59

 

 

​6권-46,  교회가 접어들고 있는 고통스러운 시대

1904년 6월 19일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노라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가까이 계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느낌이 들었다.

 

2. "딸아, 교회가 바야흐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국면에 접어들려고 하고 있는지!

그러나 이 시대에 빛나는 영예가 되는 것은 장애도 속박도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만 사회를 하느님으로부터 갈라놓는 가시밭길을 돌파하며 개척할 뿐인 저 운동선수와 같은 강건한 정신이다."

 

3. 그런 다음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에게는 인간의 피에 대한 탐욕적인 갈증이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땅에서, 나는 하늘에서, 지진과 화재와 허리케인 따위 여러 재앙들을 동시에 일으킬 것이고, 이것이 상당히 많은 죽음들을 초래할 것이다.”

 

 

 6권-47,  산 제물인 영혼들은 하느님 자비의 딸들이다

1904년 6월 20일

 

1. 기다리느라고 한참 애를 태운 끝에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잠시 계시는 동안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인간의 배반 행위가 나의 자비를 고갈시킬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의 선량함은 자비의 딸들을 선정할 정도로 크다. 그것은 인간 편에서도 나의 이 속성이 고갈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네 뜻을 없앤 뒤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소유하게 된 산 제물들이다. 과연 이 영혼들 안에는 내가 그들을 창조하면서 준 그릇이 활기에 차 있다. 그리고 내 자비의 소자(素子)를 받았기 때문에 자비의 딸로서 이를 다른 이들에게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내 자비의 소자를 남들에게 줄 수 있으려면 그들 자신은 당연히 정의 안에 있어야 한다."

 

3.  그래서 나는 "주님, 어떤 사람이 늘 정의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4. 그분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중죄를 짓지 않는 사람, 지극히 가벼운 소죄도 고의로는 짓지 않으려고 삼가는 사람이다.”

6권-48,  현 세대의 진상

1904년 6월 25일

 

1. 오늘 아침에도 평소와 같이 있었는데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잠시 모습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정의가 인간을 더 이상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중한 징벌을 내리려는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는 표는 인간이 더 이상 스스로를 참아내지 못하는 때이다. 이는 인간의 배척을 받으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서 등을 돌리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본성과 죄와 비참의 무게를 그대로 느끼게 하시기 때문인데, 인간은 하느님의 도움이 없고서는 자기 본성의 무게를 견딜 수 없는 존재인지라 스스로를 없애 버릴 방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현 세대의 진상이다.“

 

6권-49,  삶은 지속적인 연소 작용이다

1904년 7월 14일

 

1. 흠숭하올 예수님을 계속 못 뵙고 있기 때문에 나날이 고통이 더 심해지고있다. 이 분리로 말미암아 심신이 불길에 삼켜진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 된 까닭인지 나 자신도 모를 일이다. 정말이지 불태워지는 격심한 고통이다..... 오직 하나뿐인 위안은 '하느님 뜻'이다. 모든 것을 , 심지어 예수님도 잃고 말았지만, 이 거룩하고 감미로운 뜻만은 내 수중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육신도 불타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래지 않아 이것이 끝장나리라는 생각도 굳어진다. 육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조만간 나를 당신께로 부르실 것이며 따라서 이 견디기 힘든 분리감도 끝나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2. 그런데 오늘 아침, 오래도록 기다린 뒤에 - 오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기다렸는지! - 마침내 그분께서 잠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3. "내 딸아, 인간의 삶은 지속적인 연소(燃燒) 작용이다. 어떤 삶은 쾌락을 위하여 불타고, 어떤 삶은 사람들을 위하여 불타고, 어떤 삶은 죄를 짓느라고, 다른 삶은 이해 타산을 하느라고, 또 다른 삶은 이런저런 변덕을 부리느라고 불타곤 하니..... 과연 다양한 종류의 연소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온전히 하느님 안에서 이 연소 작용을 다하는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주님, 제 삶은 오로지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타올랐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타올랐을 뿐더러 그 때문에 죽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4. 따라서 네가 나와 떨어져 있는 것 때문에 계속 태워지는 느낌이 든다면, 나에 대한 사랑으로 내 안에서 계속 죽고 있으며 또 많은 죽음들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나 때문에 네 존재를 불태운다면, 그 자기 연소와 같은 정도로 네 안에 신적인 것을 획득하게 된다.

 

   

6권-50  확고부동함만이 영혼 내부의 신적 생명의 진보를 드러낸다

1904년 7월 22일

 

1. 여느 때와 같은 상태로 있는 동안 내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잠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죄를 짓지 않겠다거나 어떤 선을 행하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전적인 것이 아니어서 하느님의 빛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표이다. 그가 진정으로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피해야 할 악이나 행해야 할 선을 하느님의 빛에 의해 알게 된다면, 스스로 작정한 대로 수행하지 않을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느님의 빛은 영혼 안에 확고부동한 의지가 보이지 않으면 필요한 빛을 주지 않기에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는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지는 것이다.

 

3. 기껏해야, 영혼이 불운이나 사람들의 저버림, 혹은 다른 어떤 불상사를 겪으면서 하느님을 위해서 자신을 불태우며 생활을 바꾸기를 원하는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상황의 변화라는 바람이 일자마자 그러한 원의도 바뀌고 마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 그것은 의지와 빛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상황 변화의 지배를 받는 격정의 혼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확고부동함만이 영혼 내부의 신적 생명의 진보를 드러낸다. 하느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니, 그분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한결같이 선하신 그분의 불변성에 참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