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58. 봉헌하는 시간에 성전에서

Skyblue fiat 2022. 11. 19. 19:53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III. 공생활 둘째 해

 

58. 봉헌하는 시간에 성전에서

 

 

베드로는 아버지의 자격으로 야베의 손을 잡고 성전 경내로 들어올 때 정말 엄숙하다. 어떻게나 몸을 꼿꼿이 가누고 걷는지 키가 더 커보이기까지 한다.


뒤에는 다른 사도들 모두가 떼를 이루고 따라간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엔도르의 요한과 밀도있는 토론을 하시느라고 맨 뒤에 오신다.


베드로는 그의 피보호자에게 묻는다. “너는 여기 와 본 적이 있니?” 그러니까 그 아이는 대답한다. “아버지, 내가 태어났을 적에 왔어요. 그렇지만 기억이 안 나요.” 그러니까 베드로는 기꺼이 웃는다. 베드로가 그 말을 동료들에게 되풀이하니까 그들도 솔직하게 또는 교활하게 이렇게 말하면서 웃는다. “너는 아마 자고 있었던 모양이지, 그래서 …” 또는 “우리도 모두 너와 같아. 우리가 났을 때 여기 온 건 기억이 나지 않아.”


예수께서도 당신의 피보호자에게 같은 말을 물어보시고 비슷한, 거의 비슷한 대답을 들으신다. 엔도르의 요한은 이렇게 대답하기 때문이다. “저희들은 개종자였습니다. 그래서 마침 과월절을 지내느라고 어머니에게 안겨서 왔습니다. 저는 아달달 초순에 났으니까요. 유다 출신인 어머니는 아들을 늦지 않게 주님께 드리려고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마 너무 빨리 떠난 것 같습니다. 병이 들어서 낫질 않았으니까요. 어머니를 잃게 된 것은 제가 두 살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것이 제 일생의 첫번째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맏아들이었고,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서 외아들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이렇게 말하고 했습니다. ‘네 어머니는 너를 성전에서 드린 것을 기뻐하며 죽었다.’ … 고. 가엾은 어머니! 어떤 것을 드렸습니까? 장차 살인할 아이를 ….”


“요한아,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그때는 네가 펠릭스였지만, 지금은 요한이다.

하느님께서 네게 내리신 큰 은총을, 그 은총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여라. 그러나 네가 떨어졌던 타락의 생각은 물리쳐라. … 다시는 성전에 오지 않았느냐?”


“아니요, 왔습니다. 열 두 살 때에 왔고, 그 뒤에도 할 수 있는 때에는 … 항상 왔습니다. … 그 후에는 할 수 있었을 터인데도 더 이상 안했습니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린 것처럼, 유일한 종교, 즉 미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 그리고 이 때문에 감히 이 안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저는 외부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저는 아버지의 집을 너무 오랫동안 버렸었습니다.”


너는 이제 아버지의 아들인 내게 손을 잡혀서 이 집에 돌아오고 있다. 내가 너를 제단 앞으로 데려가는 것은 모든 것이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엔도르의 요한은 조용히 흐느끼며 말한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그렇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 감사드려라. 참다운 이스라엘 여인인 네 어머니가 예언자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겠느냐? 너는 주님께 바쳐서 다시는 되찾아가지 않는 아들이다. 너는 제자로서 내 것이고 하느님의 것이며, 그러니까 내게서 이름을 얻게 될 새로운 기원(紀元)과 새로운 종교에서 네 주의 미래의 사제로서 내 것이고 하느님의 것이다. 요한아, 나는 네게 든 것을 사해 준다. 차분한 마음으로 성소를 향해 나아가라. 분명히 말하지만 이 경내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너보다 훨씬 더 죄가 많고 제단에 가까이 갈 자격이 너보다 더 없는 사람이 많이 있다 ….”


이동안 베드로는 성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을 어린 아이에게 설명하느라고 애쓴다. 그러나 도와달라고 더 학식이 많은 다른 사람들, 특히 바르톨로메오와 시몬을 부른다. 가장 나이많은 사람과 같이 있어야 아버지의 자격으로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헌금을 하려고 헌금궤 옆에 있는데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그들을 부른다. “당신들이 여기 와 있군요. 언제부터?” 요셉은 인사를 나눈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어제 저녁부터요.”
“선생님은?”
“저기 새 제자와 같이 계신데, 곧 오실 것입니다.”
요셉이 어린 아이를 보면서 베드로에게 묻는다. “조캅니까?”
“아니 … 그렇습니다. … 요컨대 혈육으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믿음으로는 관계가 많이 있고, 사랑으로는 전부입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요 ….”


“얘는 어린 고아입니다. … 그러니까 혈육으로 관계가 없습니다. 제자이니까 … 믿음으로는 관계가 많구요. 아들이니까. … 사랑으로는 전부입니다. 선생님이 이 애를 거두어 주셨습니다. … 그리고 나는 이 애를 애무하구요. 며칠 안에 성인례를 합니다 ….”


“벌써 열 두 살입니까? 그렇게 작은데?”
“아! 그래요. … 그렇지만 선생님이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 요셉, 당신은 착한 분이지요. … 여기서는 몇 안 되는 착한 사람들 중의 한 분이지요. … 이거 보세요, 이 일에 나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아시겠어요? … 내가 이 아이를 내 아들이라고 내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갈릴래아 사람이고, 고약한 문둥병을 가지고 있어요 ….”


“문둥병을!” 하고 외치며 요셉은 놀라서 물러선다.

“겁내지 마세요! … 나는 예수께 속해 있다는 문둥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예외를 빼놓고는 성전 사람들에게는 가장 추악한 문둥병이지요.”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해야 합니다. … 그래서 그들이 나와 예수님 때문에 이 어린 아이에 대해서 엄하게 굴까봐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또 이 아이가 율법과 할라쉬아, 하가다, 메드라쉬오 따위를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어요. 예수께서는 이 애가 넉넉히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요 …”

 

“아!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겁내지 마시오!”
“그렇지만 저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
“이 아이를 대단히 사랑하는군요! 얘를 늘 데리고 있을 겁니까?”
“그렇게는 못합니다! … 나는 밤낮 걸어다니는데 … 얘는 작고 허약해서 …”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와 기꺼이 같이 다니겠어요 ….” 하고 요셉의 애무로 자신이 생긴 야베가 말한다.

베드로는 몹시 기뻐한다. …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 그래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자. … 요셉 … 나를 도와주시겠지요?”

“물론이지요! 내가 당신과 같이 가지요. 내 앞에서는 그들이 부정한 행위는 못할 것입니다. 언젭니까? 아이고! 선생님! 축복을 주십시오!”


“요셉,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건강하게.”


“선생님, 저도 그렇습니다. 제 친구들도 선생님을 기꺼이 뵐 것입니다. 게쎄마니에 계십니까?”
“거기 있었지요. 그러나 기도가 끝나면 베다니아로 갑니다.”
“라자로의 집에요?”
“아니오, 시몬의 집으로 갑니다. 내 어머니도 계시고, 내 사촌들의 어머니와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도 있습니다. 나를 보러 오시겠습니까?”
“그걸 물어보십니까? 저로서는 큰 기쁨이고 큰 영광입니다. 여러 친구들과 같이 가겠습니다.”
“요셉, 친구들하고는 신중히 행동하시오! …” 하고 열성당원 시몬이 충고한다.


“오! 당신도 그들을 벌써 알고 있어요. 용의 주도함은 ‘공기도 듣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당신이 그들을 보면 그들이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
“선생님, 요나의 시몬이 이 어린 아이의 의식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언제 그 의식을 행할 생각이신지 물어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저도 그 의식에 참례하겠습니다.”
“과월절 전 수요일입니다. 나는 이 아이가 율법의 아들로 과월절을 지내기를 원합니다.”
“좋습니다. 약속했습니다. 베다니아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하지만 월요일에 친구들과 같이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선생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평화가 선생님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향올리는 시간입니다.”


“잘 가시오, 요셉.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야베야, 오너라. 지금이 하루중에 제일 엄숙한 시간이다. 같은 종류의 시간이 아침에도 또 하나 있다. 그러나 지금 시간이 한층 더 엄숙하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다. 그래서 사람이 하루 동안 모든 일에 하느님의 축복을 얻기 위하여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저녁은 한층 더 엄숙하다. 빛이 멀어져 가고, 일이 중단되고, 밤이 온다. 멀어져 가는 빛은 우리에게 악에 떨어지는 것을 상기시킨다. 또 실제로 나쁜 행동이 보통 밤에 생긴다. 왜? 사람이 일에 골몰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혹과 악몽을 보내는 마귀에게 둘러싸이기가 더 쉽게 된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 보호해 주신 데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후 우리에게서 밤의 환상과 유혹들을 멀리해 주십사 하고 하느님께 간청하는 것이 좋다. 밤과 잠은 … 죽음의 상징이다. 그러나 주님의 축복과 더불어 살고서, 어두움 속이 아니라 빛나는 새벽빛 속에 잠드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향을 드리는 사제는 그것을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한다. 사제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가운데 모든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백성에 대한 강복을 사제에게 맡기신다. 사제의 성직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겠느냐?”


“저는 사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 그러면 엄마에게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을 것입니다.”


네가 항상 좋은 제자로 또 베드로의 착한 아들로 있으면 그렇게 될 거다. 이제는 이리 오너라. 자 들어봐라, 나팔소리가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린다. 야훼를 경건하게 찬미하러 가자.

(예수께서는 마지막 “에”를 “아”에 가깝게, 그리고 “야훼”의 “아”는 “에”에 가깝게 발음하신다.)

 

 

 

 

58. 봉헌하는 시간에 성전에서 – 평화의 오아시스 (medjugorj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