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21.부활 제5주간 토요일>
<요한15,18-21>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말이지요.
우리의 “영spirit”에서 “나”라는 본성이 나옵니다.
혼soul(정신)과 육body(행동)은 “‘나’라는 영spirit”이 발현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영spirt은 혼soul과 육body의 차원과는 다른 차원인 것입니다.
“‘나’라는 영spirit”이 하느님을 향하면 하느님의 영을 닮게 되고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이타적으로 가지만,
“‘나’라는 영spirit”이 세상을 향하면 “인간의 혼soul(정신)”과 “인간의 육body(행동)”에 갇혀 이를 신격화해서 우상에 빠지거나, 이기적이게 됩니다.
결국 “‘나’라는 영spirit”이 인간의 혼soul(정신)과 육body(행동)의 갈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마음의 평화나 안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혼soul(정신)”의 세계는 “원초적 본능(Id, 원초아)”과 “이기적 자아(ego, 자아)” 그리고 “사회적 자아(Superego, 초자아)”라는 갈등 관계에 있게 됩니다.
또한 이 “혼soul(정신)”에서, 즉 생각에서 “육body”이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라는 영spirit(마음)”이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의 뜻에 있지 않고 세상을 향하면 흔들리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이 창조하신 외부세계가 있고,
그것을 오감으로 수없이 많은 것을 감각 체계로 느끼게 되고,
감각으로 느껴진 수없이 많은 것들 중에 내가 쌓은 지식이라는 틀에 한해서 인식하고,
인식한 것들 중에서 내 가치 체계가 그것을 취사선택하게 됩니다.
그것이 현실 사진으로 나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내가 가진 이상적인 사진과 이 현실사진이 다를 경우,
우리는 이 현실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게됩니다.
이는 마치 기울어진 영정사진을 바로 잡으려는 마음처럼 강력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바로해야합니다.
이 마음은 “‘나’라는 영spirit”에서 나오므로, ‘하느님의 영Spirit’ 을 향한 기도와 정화로 나를 수련하고 쇄신하며,
현실을 개혁하며 나와 세상과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혼을 향한 이기적으로 안주하려는 나와 하느님의 영을 향한 개선하려는 내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하느님에게 몇 마디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그분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변화되는 삶은 기도가 되어야 하고,
우리 기도는 변화되는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사는 기도의 역사요, 하느님과 더 깊이 하나가 되려는 유일하고 오랜 기간에 걸친 시도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느님에게 마음을 두려는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우리의 영spirit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특히 동방 교회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예수 기도’ 를 바치고 있습니다.
예수의 기도란 하루 일과 중에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단순한 기도를 자주 바침으로써, 그 기도가 지속적인 기도가 되게 합니다.
소화데레사 성녀는 예수성심께 30초가 넘지 않도록 계속 봉헌했으며,
마리아비안네 성인께서는 혀로 말하는 것이 힘들어 숨을 쉬면서 “주님 사랑합니다”를 의식적으로 반복했습니다.
나는 어떤 기도를 하고 싶습니까?
어떠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내가 바라는 기도와 삶을 살려면?
기본적으로 기도는 집중력입니다.
집중이 되는 기도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1)구송기도 : 묵주기도를 소리내어 합니다. 온 몸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2)묵상: 매일미사책에 나오는 복음을 2~10번 읽고 묵상합니다.
복음 내용을 상상하며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오감으로 느낍니다.
대화도 합니다.
우리의 전두엽으로 하는 상상이지만,
측두엽에서는 사실인지 상상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몸에 반응이 생깁니다.
무념무상으로 30초 정도 침묵으로 기다림으로써 성령께서 대신 기도하도록 자리를 내어드립니다.
3)정감의 기도: 나의 감정과 느낌으로 자유로이 예수님과 대화하며 기도합니다.
4)단순기도: 일과중에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예수의 기도나
소화데레사 성녀처럼 사랑의 불가마이신 예수성심께 자신을 순간 순간 봉헌하거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처럼 숨쉴 때마다 “주님 사랑합니다!”를 반복하면 됩니다.
<John15,18-21>
Jesus said to his disciples:18 “If the world hates you, realize that it hated me first.19 If you belonged to the world, the world would love its own;but because you do not belong to the world,and I have chosen you out of the world,the world hates you.20 Remember the word I spoke to you,‘No slave is greater than his master.’If they persecuted me, they will also persecute you.If they kept my word, they will also keep yours.21 And they will do all these things to you on account of my name,because they do not know the one who sen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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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얻을 수 없는 사진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실패가 확실한데도 노력을 계속함에 따라 더 불행해지고 비효율적으로 되어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우리가 원하는 사진과 현재 눈앞에 있는 사진 간에 차이가 있을 때마다, 이 차이에서 생겨난 신호가 우리를 행동하도록 만들고,
또한 그 신호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그 행동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는 실재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강한 신호를 느끼고 있다.
벽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그림이 있다고 상상하고 그것을 쳐다보자.
그림을 똑바로 해놓고 싶은 즉각적인 충동을 무시해 보라.
그림은 똑바로 걸려 있어야 한다는 사진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우리들 대부분은 이 충동이 너무나도 압도적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비스듬히 걸려 있는 그림을 무시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당신의 삶은 누가 통제하는가, William Glasser 지음, 김인자 옮김, 생활심리시리즈4, 한국심리상담연구소, 2016, p.83 요약)
—//—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제1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도가 지니는 의미
제3장
기도하는 방법
510 기도는 언제라도 할 수 있나요?
기도는 언제나 바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삶에 꼭 필요한 요소며, 기도와 삶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2742-2745, 2757]
(Y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402)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하느님에게 몇 마디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그분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은 기도가 되어야 하고, 우리 기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사는 기도의 역사요, 하느님과 더 깊이 하나가 되려는 유일하고 오랜 기간에 걸친 시도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느님에게 마음을 두려는 열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특히 동방 교회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예수 기도’ 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 일과 중에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단순한 기도를 자주 바침으로써, 그 기도가 지속적인 기도가 되게 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5,16-19)
(Y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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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그리스도인의 기도
제1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도
기도란 무엇인가?
저에게는 기도가 마음의 약동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고,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을 겪을 때에도 부르짖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입니다.(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자서전 유고’, C, 25r: Manuscrits autobiographique(파리 1992), 389-390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03)/
제3장
기도 생활
제2절 기도의 싸움
IV.항구한 사랑으로
->2742 “늘 기도하십시오”(1테살5,17).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 드리십시오”(에페5,20).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에페6,18). “언제나 일하고 깨어 있으며 재를 지키라는 명령을 우리가 받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법입니다.”(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아나톨리우스에게 보낸 실천 요강’, 49: SC 171, 610(PG 40, 1245). 이런 지치지 않는 열성은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다. 우리의 우둔함과 게으름에 대항하는 기도의 싸움은 겸손하고, 신뢰하며, 항구한 사랑을 가진 사람이 벌이는 투쟁이다. 이 사랑은 기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빛과 생명을 주는 세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2743 첫째로, 기도는 언제나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시간은, 어떠한 풍파 중에라도(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아나톨리우스에게 보낸 실천 요강’, 49: SC 171, 610(PG 40, 1245) 날마다 “항상 우리와 함께”(마태28,20) 계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시간이다. 우리의 시간은 하느님 손안에 있다.
저잣거리에서나 혼자 산책할 때에도, 자주 그리고 열심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중에도, 또는 요리를 하는 중에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안나에 관한 설교’, 4, 6: PG 54, 668)
->2744 둘째로, 기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반명제에서 이끌어 낸 증명도 똑같이 설득력을 가진다. 곧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죄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69)/
다(갈라5,16-25 참조). 만일 우리의 마음이 성령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어떻게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 이 되실 수 있겠는가?
기도만큼 값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 주고, 어려운 것을 쉽게 해 줍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죄에 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안나에 관한 설교’, 4, 5: PG 54, 666)
기도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어김없이 영벌을 자청할 것입니다(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기도의 위대한 힘’, 제1편 제1장, G. Cacciatore 편(로마 1962), 32면).
->2745 셋째로, 기도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분리될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같은 사랑의 문제이며, 그 사랑에 따른 자아 포기와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곧, 성부께서 세우신 사랑의 계획에 자녀답게 사랑으로 일치하는 것, 우리를 늘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더 닮도록 해 주시는 성령의 힘을 입어 우리가 변화되는 동일한 일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모든 이를 사랑하는 동일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실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요한15,16-17).
기도를 일과 결합시키고, 일을 기도와 결합시키는 사람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원칙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오리게네스, ‘기도론’, 12, 2: GCS 3, 324-325(PG 11, 452))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70)/
간추림
->2757 “늘 기도하십시오”(1테살5,17). 기도는 언제나 가능하다. 나아가, 기도는 절대 필요한 일이다. 기도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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