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노래의 설명
1. 이 영적 혼인의 경지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베푸시는 우애의 선물은 실로 헤아릴 길 없을 정도이다. 또 그들 서로가 자주 나누는 찬사나 사랑의 말은 표현할 길이 없다. 신부는 신랑을 찬양하고 감사하기에 몰두하고 신랑은 신부를 드높이고 칭찬하고 감사하는데 전심한다. 그것은 아가에 있는 대로여서 신랑이 신부에게 말하기를 “곱기도 해라 내 사랑 그대 어쩌면 이다지도 아리따운고 비둘기 같은 그대 눈동자”(1, 15)그리고 신부는 대답하기를 “당신이야말로 빼어나신 풍채 이 가슴 뿌듯해오는 나의 사랑”(1, 16) 그밖에도 서로 나누는 정겨운 말과 기리는 말들이 아가에는 많다. 앞의 노래에서 영혼은 자기가 검고 추하다고 스스로 낮추었다. 그리고 그 눈길로 자기를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만들어 주신 신랑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찬미했다. 낮추는 자를 높여주시는 신랑은 신부가 원한대로 그에게 눈길을 쏟아 주신다. 그리고 다음 노래로 신부를 기리는데 전념하신다. 자기를 검다고 했는데 그분은 신부를 새하얀 비둘기라고 부르고 집비둘기와 멧비둘기가 지닌 뛰어난 특징에 관하여 신부를 기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34 노래
신 랑
새하얀 비둘기
가지를 물고 방주로 돌아왔도다
어느덧 멧비둘기 암컷
푸른 물가로 돌아를 와
그립던 짝과 서로 만나도다
해 설
2. 이 노래에서 말하는 이는 신랑이다. 그분은 신부가 이 경지에서 스스로 준비하여 그분께로 오기 위해 수고한 결과 이미 지닌 순결이랑 부유와 보상을 노래한다. 또 신부가 이 일치에서 신랑을 발견한 행복을 노래하고 현세와 과거의 노고가 끝나 신부의 소망대로 성취되어 신랑 안에 소유하게 된 기쁨과 휴식을 설명한다.
새하얀 비둘기
3. 신랑은 이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만난 은혜에서 받은 하얌과 깨끗함 때문에 신부를 새하얀 비둘기라 부른다. 비둘기라고 부르는 것은 아가에서 신부를 이렇게 부르기 때문이고 신부의 성질은 단순하고 유순하고 그리고 사랑겨운 관상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사실 비둘기는 단순하고 유순하여 성급하지 않을 뿐더러 밝고 부드러운 눈을 가졌다. 그러므로 신랑은 신부인 영혼이 하느님을 관상할 때 사랑겨운 눈길을 나타내기 위해서 신부는 비둘기의 눈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가지를 물고 방주로 돌아왔도다
4. 신랑은 영혼을 노아의 방주에 비유하여 이 비둘기가 왔다갔다한 것을 이 영혼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의 상징으로 헤아리고 있다. 비둘기는 방주에서 나왔다가 또 거기서 돌아간다. 이것은 홍수 가운데서 발붙여 쉴 자리가 없었기 때문인데 지상에 범람했던 대 홍수를 멈추게 한 하느님의 자비의 표지로 마침내 올리브 나뭇가지를 주둥이에 물고 돌아왔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영혼도 하느님께서 그를 창조하실 때 전능하신 하느님의 방주에서 떠나 죄와 불완전의 홍수 속을 나갔지만 그 욕구를 쉴 자리를 못 찾았다. 그는 사랑의 초조의 바람에 실려서 왔다갔다 하였고 그 창조주의 품이라는 방주에 들어가려 했지만 실제로는 그 속으로 들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선 이 영혼이라는 지상에 마침내 불완전함이란 홍수를 멈추게 하는 날이 다가와 그는 하느님의 관대와 자비로 모든 것 위에 얻은 승리의 상징인 올리브 나뭇가지를 갖고 사랑하는 분의 품안인 복된 숨은 집으로 결정적으로 들어왔다. 그는 그 모든 원수의 승리자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공덕의 보상을 들고 그 곳으로 들어간 것이다. 올리브 나뭇가지는 이 양편을 다 표시하는 것이므로
그러므로 이 작은 비둘기는 창조되었을 때처럼 새하얗고 더러워지지 않은 자로서 하느님의 방주로 돌아왔을 뿐 아니라 나아가 자아에 대한 승리로 얻은 보상과 평화의 상징인 나뭇가지를 갖고 돌아왔다.
어느덧 멧비둘기 암컷
푸른 물가로 돌아를 와
그립던 짝과 서로 만나도다
5. 신랑은 또한 영혼을 멧비둘기라 부르신다. 그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분을 추구하는 영혼은 그립던 짝을 찾지 못할 때의 멧비둘기 같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멧비둘기의 이야기를 알아야 하겠다.
멧비둘기는 제 짝을 찾기까지 푸른 가지에서 쉬지 않고 맑고 신선함 물을 마시지도 않으며 그늘에 있지도 않고 모든 친구를 피한다. 그러나 제 짝과 맺어지면 피하던 모든 것을 즐긴다.
영혼도 위와 같은 특징을 다 갖고 있다. 하느님이신 신랑과 일치 결합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그런 특징들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영혼은 어떤 즐거움의 푸른 가지에 욕구의 발을 멈추지 말고 세속의 무슨 영예나 영광의 맑음 물도 현세적 휴식이나 위로의 신선한 물도 마시려 않고 피조물의 어떠한 총애나 보호의 그늘에 있기를 원하지 않을 만큼 사랑과 열심으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혼은 아무데서도 쉬려 하지 않고 다른 어떠한 애정의 친구도 받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소망을 신랑 안에서 성취하기까지 모든 것에서 멀리 떠나 고독 안에서 신음해야 한다.
6. 이 영혼은 이처럼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전에 그 사랑하는 분을 열절한 사랑으로 찾았고 그분 없이는 아무런 만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므로 신랑 자신이 여기서 그의 고통이 끝났음과 소망이 성취되었음을 노래하기를 “어느덧 멧비둘기 푸른 물가로 돌아를 와 그립던 짝과 서로 만나도다”라 한다. 이는 신부인 영혼은 이미 사랑하는 분 안에서 즐기면서 푸른가지 위에 앉아 매우 높은 관상과 신적 슬기의 맑은 물과 하느님 안에서 맛보는 상쾌한 위로의 신선한 물을 마시고 뜨겁게 원하던 하느님의 보화와 총애의 그늘에 앉아 거기서 평온히 신적 위로를 받고 키워지고 힘을 얻는다는 뜻이고 아가의 신부가 환희하면서 하는 말도 이 상태를 말한 것이다. “그립던 그늘에 질펀히 앉으니 당신의 열매가 내 입에 담니다.”(2, 3)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