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노래-십자가의 성요한

제 32 노래

Skyblue fiat 2014. 5. 24. 13:09

 

 

 

 

 

 

                  다음 노래의 설명

 

     1. 사랑의 힘과 격렬함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하느님을 사로잡아 묶어버릴 정도이니 말이다. 사랑하는 영혼은 복되다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에 복종하는 포로로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참으로 이런 성실을 갖고 계시다. 말하자면 사람이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로잡을 줄을 안다면 그 사람은 무엇이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느님께 하시도록 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방법, 비록 극단의 것을 하더라도 하느님께 이야기 할 수도 그밖에 하느님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랑으로 한다면 한 가닥의 머리카락으로 하느님을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은 그것을 잘 분별하고 또 한가지 공덕을 훨씬 넘게 하느님께서 이토록 높은 사랑에까지 드높여 주시고 더구나 또 은혜나 덕의 풍요로운 보화를 곁들여 주심을 보고 다음 노래에서 그 모두를 하느님께 돌려드리면서 읊는다.

 

 

 

                              제 32 노래

 

                    그대 날 보고 계오실 제

                    그 두 눈이 곱으심을 나 안에 찍더이다

                    이로써 그대 날 사랑하셨사오니

                    이로써 내 눈도 당신 안에 보옵는 것을

                    짜장 흠숭할 수 있게 되었삽니다.

 

 

 

              해 설

 

     2. 자기 때문에는 아무 것도 허용하지 않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아무 것도 자기에게 돌리지 않으며 모두를 애인에게 돌리는 것은 완전한 사랑의 특성이다. 세속 사랑에서도 그렇다면 마땅히 그래야 할 하느님의 사랑에서야 더할 나위 있겠는가. 앞의 두 노래에서 신부는 무엇이나 자신에게 돌리듯이 보였다. 가령 신랑과 함께 화환을 만들자든가 이 화환들을 자신의 한 올의 머리카락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라든가 하면서 말이다. 확실히 그것은 중요하고 큰 가치로운 일이다. 신부는 또 신랑을 자신의 한 가닥 머리카락으로 사로잡고 그 눈동자 하나로 그 분에게 상처 입힌 것을 자랑했다. 이런 것을 신부는 자기에게 큰 공적을 돌리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 이렇게 말한 자신의 뜻을 설명하고 모든 오해를 풀려고 한다. 그는 남들이 자기에게 성공이나 공적을 돌리고 그것 때문에 당연히 하느님의 것이고 남김없이 하느님께로 돌려야 할 것을 돌리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위의 모든 공적을 하느님께 돌리고 동시에 하느님께 감사 드린다. 그는 자기가 만일 사랑의 머리카락으로 그분을 사로잡고 그 신앙의 눈으로 그 분을 상처 입혔다면 그것은 그분이 사랑겹게 자기를 보신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어서 그것 때문에 그를 그 분의 눈에 귀엽고 사랑스럽게 해 주셨다고 선언한다.

     이 은혜와 그것이 그에게 준 가치 덕분에 그는 하느님의 사랑에 맞갖게 되었고 사랑하는 분의 마음에 합당하게 경배하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맞갖은 행위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시구에서 말한다.

 

 

 

 

              그대 날 보고 계오실 제

 

     3. 말하자면 그지없는 사랑의 정을 다하여 보실 적에 라는 뜻이다. 앞서 말한 대로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사랑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두 눈이 곱으심을 나 안에 찍더이다.

 

     4. 신랑의 눈이란 그 자비 깊으신 신성을 뜻한다. 이 신성은 영혼 쪽으로 자비로이 몸을 굽히시고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그 위에 새기시고 쏟아 주신다 이 때문에 영혼을 아름답게 하시고 신성에 참여시킬 정도로 드높여 주신다. 영혼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높여 주신 존엄하심과 지극히 높으신 품위를 보고 말한다.

 

 

 

              이로써 그대 날 사랑하셨사오니

 

     5. 열애한다 함은 매우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사랑한다는 이상이어서 곱절로 사랑하는 것 말하자면 두 가지 명목 하에 두 가지 이유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럼 이 시구에서 영혼은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갖고 계신 사랑의 두 가지 동기 두 가지 이유를 명백히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하느님은 영혼의 머리카락에 반하시어 사랑하셨을 뿐아니라 그 눈에서 깊은 상처를 받아 그지없이 사랑하셨던 것이다. 왜 이토록 심각히 영혼을 열절히 사랑하셨나 하면 영혼아 이 시에서 말하듯이 하느님께선 당신 눈길로 당신의 즐거움이 될 아름다움을 그에게 주고져 원하셨기 때문이다. 친히 사랑의 머리카락을 그에게 주시고 사랑으로 신앙의 눈을 만드시고 . . . . 그러므로 영혼은 “이로써 그대 날 사랑 하셨사오니”라 한다.

     하느님께서 영혼 안에 은혜를 부어주신다 함은 그 영혼을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에 맞갖은 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구는 이렇게 말함과 같다. “당신은 저를 당신 사랑에 맞갖은 보증인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저를 열절히 사랑하시고 말하자면 당신은 더욱 많은 은혜를 제게 주셨습니다.”라고

     성 요한도 말하는데 “우리는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1, 16) 라고 이것은 더욱 더 많은 은총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으면 하느님의 은총에 합당한 자는 될 수 없기에 말이다.

 

     6.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 것에 유의하자 하느님은 당신 밖에서 아무 것도 사랑하시지 않듯이 무엇이나 당신 이하를 사랑할 수 없으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당신 때문에 사랑하고 당신께 대한 사랑이 모든 최종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피조물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당신과 동등한 자로 만들고 당신 속으로 들여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는 같은 사랑으로 영혼을 당신 안에서 당신과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영혼은 행위 하나 하나로 - 그것을 하느님 안에서 행하는 한 - 하느님의 사랑에 맞갖은 자가 된다. 그 이유는 이토록 드높은 은총에로 올려진 영혼은 행위 하나 하나로 하느님께 맞갖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어서 곧 말한다.

 

 

 

              이로써 내 눈도 당신 안에 보옵는 것을

 

     7. 당신이 저를 바라보고 저를 당신 눈에 사랑스러운 자 당신께 보여지기에 맞갖은 자 되었을 제 당신의 자비로운 눈을 제게 주신 은혜로 제 눈은. . . . 합당하게 되었습니다. 란 뜻이다.

 

 

 

              짜장 흠숭할 수 있게 되었삽니다.

 

     8.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함과 같다. 신랑이여 제 영혼의 모든 능력, 제가 당신을 뵙기 위해 사용하는 눈인 이 능력들은 당신을 보기 위해 높이 오르기에 맞갖게 되었습니다. 라고

이 능력은 전에는 그 저열한 움직임이나 타고난 소질의 비참함 때문에 비천한 속에 잠겨 있었다. 영혼에게서 하느님을 뵈올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행동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혼의 모든 능력도 하느님을 경배하면서 공적을 쌓는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경배하기 때문이어서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만이 온갖 행위는 공덕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영혼의 모든 능력은 하느님의 은총과 도움으로 비추어지고 드높여져서 하느님 안에서 발견하는 것 곧 전에는 비천하고 눈 멀었기에 볼 수 없었던 것을 경배한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 무엇을 보는가? 덕의 위대함, 넘칠듯한 감미, 무한한 온유함, 하느님 사랑과 자비, 하느님과 긴밀한 일치 이후, 또는 그 전에 받은 무수한 은혜 등이다.

     그 모든 것을 영혼의 눈은 지금 공덕을 쌓으면서 경배하기에 맞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눈은 신랑으로 말미암아 사랑스럽고 정겨운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에 이 눈은 하느님에 관한 이 일들을 보기에도 경배 하기에도 맞갖지 못할 뿐더러 그것들을 생각할 가치조차 없었다. 은총이 없는 영혼의 비천함과 소경 됨은 매우 망측한 것이기 때문이다.

 

     9. 여기서 깊이 반성하고 한탄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비추어지지 않은 영혼은 하느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는 수준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영혼은 하느님께 받은 현세적이고 그리고 영적인 무수한 은총을 지금도 매 순간마다 받는 모든 은총을 인정할 것이고 또한 이 모든 은총 때문에 그 능력 모두를 서서 간단없이 경배와 봉사로 하느님께 바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할 뿐더러 그런 것을 생각지도 않고 인정도 않으며 이런 것에 관해서는 약간의 관념조차 갖기에 부당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죄 중에 산다기보다 오히려 죽은 자의 비참은 바로 이런 데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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