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6-20권

천상의책 (17권-9-12)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예수님의 참된 모상이다.

Skyblue fiat 2015. 9. 22. 17:12

 

17권-9,  하느님의 뜻 안에서 회전을 계속하는 작은 바퀴.

사람의 모든 행위를 둘러싸고 지키는 예수님의 행위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예수님의 참된 모상이다.

 

1924년 8월 14일

 

1. 혼자 마음속으로, '언제나 그분의 거룩하신 뜻 안을 돌아다니고 싶다. 언제나 회전하며 멈추는 법이 없는 시계의 톱니바퀴같이 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2. "딸아, 언제나 내 뜻 안을 돌아다니고 싶다고? 오, 네가 끊임없이 내 뜻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야말로 내가 얼마나 기쁘게, 또 얼마나 큰 사랑으로 원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면 너의 영혼은 작은 바퀴가 될 것이고, 나의 뜻은 시계태엽을 감듯이 너를 감아 멈추지 않고 회전하게 할 것이다.

 

3. 네가 어디를 가기를 원하든지 너의 지향이 그 출발점이 된다. 과거의 길이거나 현재의 길이거나 또는 미래의 길이거나 어느 길을 따라가고 싶어지든지 선택은 너의 자유이다. 아무튼 너는 언제나 내 소중한 사람이니, 출발점을 어디로 잡든지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게 될 것이다."

 

4. 그런 다음 그분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내 뜻의 더없이 사랑스러운 딸아, 내 뜻 안에서 하는 활동은 그 속에 창조력을 지니고 있다. 내 인성이 지상에 있는 동안 행했던 모든 것을 보아라. 지고한 뜻 안에서 행해졌으므로 그 모든 것이 창조력을 지니고 있었다.

 

5. 태양은 언제나 운행 중에 있어도 그 충만한 광채가 증감되지 않고 빛과 열이 항상 가득하다. 하느님의 지음을 받은 첫 순간과 동일한 모습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행했던 모든 것도 전부 현행적이다. 또한 태양이 모든 피조물 하나하나의 소유인 것과 같이, 나의 활동 역시, 단일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피조물 각자에게 속해 있다.

 

6. 더군다나 나의 생각은 창조된 모든 지성들을 각각으로 둘러싸는 원을 이룬다. 나의 시선, 나의 말, 나의 일, 나의 발걸음, 나의 심장 박동 및 나의 고통이 사람들의 시선과 말과 일과 고통 따위를 둘러싸는 원을 이룬다. 하나의 원과 같이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을 둘러싸고 지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 그런데 사람이 내 뜻 안에서 생각하면 내 생각의 원이 열려 그의 생각을 내 생각 안에 넣는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이 창조력에 참여하면서 나의 지성이 하느님과 피조물 앞에서 행했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네가 무엇을 보거나 말을 하면 나의 시선과 말이 너의 그것들을 받아들일 자리를 만든다. 그러면 그것이 오직 하나의 원을 이루면서 내 시선과 내 말의 임무를 수행한다.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8. 그러니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은 실로 나의 반복이요, 나의 불가분적 모상들이다. 나의 모습이 그들 안에 그려져 있고 내 안에 다시 흡수되어 있다. 그 결과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바로 나의 일이라는 날인과 함께 남아 있게 된다. 나 자신의 임무를 계속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17권-10,  불신이 영혼 안에 초래하는 엄청난 해악

1924년 9월 2일

 

1. 아주 심한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으나  예수님의 팔 안에 온전히 맡기고 내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허약하고 창백한 얼굴을 한 작은 여자 아이가 온통 깊은 슬픔에 잠긴 모습으로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2. 그러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그 아이 쪽으로 가시어 팔에 안으셨다. 측은해하시며 가슴에 꼭 붙여 안으시더니,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시면서 그 눈과 입술과 가슴과 손과 발에 십자성호를 그으셨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는 동안 아이는 힘을 다시 얻으며 혈색이 돌기 시작했고, 그 우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3. 아이가 그렇게 기운을 다시 차리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더 세게 껴안으시고 아이에게 힘도 더 많이 주시면서, “가엾은 얘야, 네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그래도 두려워하지 마라. 네 예수가 여기에서 빠져나가게 해 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4.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 때에 나는 속으로, ‘나에게서 나온 이 소녀는 누구인데 예수님께서 이토록 사랑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딸아, 이 소녀는 너의 영혼이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영혼이기에, 이리도 침울하고 허약한 모습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왔다. 너에게 새 생명과 새 활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서다.”

 

5. 이 말씀을 듣고 나는 울면서 “저의 사랑, 저의 생명이신 예수님, 당신께서 저를 떠나실까 여간 두렵지 않습니다!” 하였다. “제가 당신 없이 어떻게 지내겠습니까?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이 볼품없는 영혼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꼴이 되고 말았습니까! 당신께서 저를 떠나신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고통입니다. 저를 갈기갈기 잡아 찢으며 제게서 평화를 앗아가고 제 마음속에 지옥을 던져 넣는 고통입니다! 예수님, 부디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제게는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떠나시면 모든 것이 끝장날 뿐입니다!”

 

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입을 여시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딸아, 진정하고, 두려워하지 마라. 네 예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너의 신뢰다. 추호도 나를 불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7. 보아라, 나는 영혼들의 완전한 신뢰로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떤 결점이나 불완전, 또는 내 은총에 대한 응답 부족을 일부러 숨겨 둘 때가 많다. 완전한 신뢰로 나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하는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8. 사실 영혼이 신뢰를 잃으면 마치 내게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움츠려들어 자기 자신 안에 완전히 갇힌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를 대하게 되고, 사랑의 용솟음에 마비가 온다. 따라서 나를 위한 희생에도 마비가 온다. 오, 불신이란 것이 얼마나 큰 해악을 초래하는지! 그것은 식물의 생장을 가로막는 봄 서리와 같다. 이것이 많이 내리면 식물을 죽일 위험도 있는 것이다.

 

9. 이와 같이 불신은 덕행들의 진보를 가로막고, 극히 뜨거운 사랑 속에 싸늘한 냉기를 불어넣는다. 오, 이 신뢰 부족으로 말미암아 나의 계획과 더없이 큰 성덕들이 얼마나 자주 지장을 받곤 하는지! 이런 이유로 나는 불신보다는 결점들을 더 너그럽게 보아준다. 결점은 결코 불신만큼 해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가 내영혼 안에 참으로 많은 역사를 해 왔거늘, 어찌 너를 떠날 수 있겠느냐?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했겠는지, 네 눈으로 한 번 보아라.”

 

10.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내 영혼 깊은 곳에 그분의 손으로 역사하신 호화롭고 거창한 궁궐 하나를 보여 주셨다. 그런 다음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11. “딸아, 내가 어찌 너를 떠날 수 있겠느냐? 방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아라. 저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내가 너에게 알려 준 내 뜻에 대한 지식과 그 효과와 가치와 특질들 - 이 모든 것과 같은 수의 방들을 네 안에 짓고 그 모든 재보를 여기에 넣어 둔 것이다.

 

12. 이제는 좀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색채를 부가할 일만 남아 있다. 이는 내 지고한 뜻의 더 진귀한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함이요, 그리하여 내 작품에 더 뛰어난 탁월성과 영예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너는 내가 나의 이 위대한 역사를 떠날 성싶으냐?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이냐?

 

13. 이는 내가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르며 해 온 일이다. 여기에는 내 뜻이 연관되어 있고, 내 뜻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생명이 있으니, 너의 두려움은 나에 대한 약간의 불신일 뿐이다. 그런즉 너는 나를 신뢰하여라. 그러면 우리가 늘 의좋게 지낼 것이고, 나는 내 뜻 사업을 완성할 것이다.”

 

 

 

 

17권-11,  교회의 처참한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 - 정화의 필요성

1924년 9월 6일

 

1. 일상적인 상태로 있던 중 나 자신 바깥에 나가 있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온통 상처투성인데다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한 여인이 길 복판 땅바닥에 던져져 있는 것이 보였다. 팔다리의 뼈가 다 빠져 하나도 제자리에 붙어 있지 않는 것이었다. 여인은 그러나 고통의 참모습과도 같은 그 처참한 상태 속에서도 아름답고 고상하며 위엄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이에게 버림받은 채 해치고자 하는 누구라도 해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터라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2. 불쌍한 생각이 든 나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인을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워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고 싶어서였다. 그러자 - 오!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 예수님처럼 보이는 한 젊은이가 내 옆에 나타났다. 그와 함께 여인을 땅바닥에서 일으켰는데, 우리의 동작 하나하나가 여인에게 극심한 아픔이 되곤 하였다. 그 탈구된 뼈들 때문이었다.

 

3. 우리는 그래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조금씩 서서히 어느 저택의 침대로 여인을 옮겼다. 젊은이는 바로 예수님이셨고, 이 여인을 구하고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면 그분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실 정도로 사랑하시는 것 같았다. 그분은 나와 함께 여인의 탈구된 팔다리를 잡아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으셨는데, 예수님의 손이 닿자 그 뼈들이 전부 본자리에 가서 붙었고, 여인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변화되었다.

 

4. 그 때문에 깜짝 놀란 나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딸아, 이 여인은 내 교회의 상징이다. 교회는 언제나 고상하고 위엄이 가득하며 거룩하다. 교회의 기원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5. 하지만 교회 안에 들어와 그 몸의 지체가 된 자들이 교회를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태에 놓이게 하는지 모른다! 교회와 같이 거룩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교회를 길 복판에 끌어내어 추위와 비웃음과 매질을 당하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교회의 자녀인 그들이 탈구된 지체들처럼 갖가지 악덕에 빠져 길 복판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6.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사리사욕이다. 이로 인해 분별력이 없어진 그들은 그지없이 추한 악행을 저지르면서 교회에 붙어살고 있다. 교회에 상처를 입히며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치기 위함이다. 내 교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는지! 교회를 수호해야 할 성직자들이 가장 잔인한 사형 집행자들이다.

 

7. 그러니 교회를 다시 태어나게 하려면 이 지체들을 멸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순진무구한 지체들과 한 몸이 되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지체들은 교회처럼 살 것이기에, 교회가 악의 없고 단순한 어린아이보다 더 아름답고 은혜로운 아이로 되돌아가 힘차고 거룩하게 자라날 것이다. 내가 세웠던 당시와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8. 여기에 원수들이 전쟁을 벌일 필요성이 있다. 그러면 죄악에 물든 지체들이 깨끗이 제거될 것이다. 너는 모든 것이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도록 기도하며 고통을 받아라.” 분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나는 내 몸 안에 들어와 있었다.

 

 

 

 

17권-12,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행위가 초래할 수 있는 가공할 해악.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이들이 누릴 천상 행복의 크기.

 1924년 9월 11일

 

1. 마음이 퍽 뒤숭숭해서 예수님께 자비를 베푸시기를, 이 가련한 영혼을 친히 돌보아 주시기를 간청하며 이렇게 말씀드렸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머무르시는 한, 부디 아무도 제 곁에 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만으로 족합니다. 이리도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제 원을 풀어 주십시오. 더구나 제가 원하는 것은 다만 당신뿐이니 말입니다.”

 

2, 그것과 또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내 팔을 잡으셨다. 나를 (이 마비 상태에서) 풀려나게 하심으로써 고해사제의 역할을 대신 해 주시려는 것 같았다. 오, 그런 모습의 예수님을 뵈면서 얼마나 큰 행복감을  느꼈던지! ‘드디어 내 희생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끝났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덧없이 지나간 헛된 행복이 되고 말았다! 내 팔을 잡으신 순간, 혼자서는 되돌아오지 못하는 어느 때의 상태 속에 나를 버려두신 채 그분은 즉시 모습을 감추셨기 때문이다.

 

3. 오, 나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울면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빌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났을까,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슬퍼서 온통 눈물범벅이 된 나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4. “딸아, 울지 마라. 너는 네 예수를 신뢰하고 싶지 않으냐? 그 일은 내게 맡겨라. 내가 하도록 맡겨 두어라. 오히려 너는..... 오, 슬픈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리니, 너는 이 사태를 가볍게 보아선 안 된다. 내 정의가 인간을 책벌할 재앙을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폭발하려고 한다!

  

5. 그러니 네가 네 형제들의 재난 소식을 듣게 되면, 너의 일상적인 희생에 반대한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마치 네 손으로 내 정의를 밀어붙여 인간을 치게 한 것 같을 터이니 말이다.”

 

6.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저의 예수님, 그런 일은 결코 없기를 빕니다.” 하였다. “또한 저는 당신의 뜻에 등을 돌리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행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저에게 가장 큰 재앙이니 그런 일만은 없게 해 주시기를 빌 따름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면해 달라고 청하는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더 많이 주십시오.

 

7. 당신께 청하는 것은 - 물론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 다만 한 가지, 하나의 은혜 뿐입니다. 제가 고해사제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점이고, 이를 견디어 낼 힘이 없는 느낌입니다. 단, 당신께서 원하시면 그렇게 해 주시고, 아니면 견딜 힘을 더 많이 주십시오. 아무튼 제가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만은 허락하지 말아 주십시오.”

 

8. 그러자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너에게 내 뜻 안에서 ‘예’를 발하라고 청하자 네가 사랑을 다하여 그렇게 했던 일을 기억해 보아라. (천상의 책 12권 1919년 2월 10일자 참조) 그 ‘예’는 아직 있고, 나의 끝없는 뜻 안에서 첫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네가 행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그 ‘예’에 묶여 있다. 아무것도 거기에서 달아날 수 없는 것이다.

 

9. 내 뜻은 그 자신 안에 한 피조물의 뜻이 있는 것을 보면서 크게 기뻐하며 즐긴다. 나는 그것을 새로운 은총들로 계속 채우고, 너의 모든 행위를 신적인 행위로 선정한다. 이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가장 놀라운 것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만약 -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기 바라지만 - 나에게서 갈라져 나간다면, 나는 나 자신이 찢어진 것 같아 슬피 울 것이다.

 

10. 보아라, 네가 (내 뜻에) 약간 반대한 것 때문에 너의 ‘예’가 심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이 떨림으로 하늘의 기초도 흔들리며 떨었다. 모든 성인과 천사들과 영원한 세계 전체가 소름끼치는 전율과 비통에 휩싸였으니, 하느님 뜻의 한 행위가 그들에게서 뜯겨져 나가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11. 왜냐하면 나의 뜻은 만인과 만물을 싸안고 있어서 그들은 너의 행위들을 자기들과 하나로 느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두가 그 고통스러운 찢어짐을 지각하면서 심히 통탄하는 모습들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2. 나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저의 사랑이시여, 대관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그 모든 해악이 초래된다는 것이?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괴로워 죽을 것 같습니다. 오!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리도 악한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저의 ‘예’를 당신의 뜻 안에 더욱 단단히 묶어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뜻 밖으로 나가게 두시기보다는 차라리 저에게 죽음을 주십시오.” 하였다.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딸아, 진정해라. 네가 내 뜻 안에 다시 자리한 즉시 만물이 차분해졌고, 새로이 기뻐하는 모습이 되었다. 너의 '예'가 내 뜻의 무한성 안에서 그 신속한 순회를 계속하고 있다.

 

14. 아! 딸아, 너도 또 너를 지도하는 이들도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 네가 그것의 진가를 인정하지 못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무엇으로 여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점이 나를 괴롭히는 하나의 고통이다.

 

15. (영혼이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니 만치 모든 이가 무엇보다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건만, 슬프게도 그들은 이 일보다는 오히려 내 마음에 덜 들거나 아예 나와 상관없는 다른 일에 정신을 쏟고 있다. 나를 가장 영광스럽게 하며 그들에게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내 뜻이 지닌 무한하고 영원한 재산을 주어 그 소유주가 되게 하는 일인데 말이다.

 

16. 보아라, 나의 뜻은 하나이고, 영원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그런데 내 뜻 안에서 살며 이 뜻을 자기 것으로 삼고 있는 영혼은 그렇게 함으로서 내 뜻이 지닌 기쁨과 재산에 참여하고 마치 그 소유주처럼 된다. 지상에서 활동하는 내 뜻에 의한 그 모든 기쁨과 재산을 자기 안에 맡아 가지는 것이다.

 

17. 그러니 영혼이 설령 이 땅에서 그것을 다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죽음이 온 순간 자신이 저 높이 하늘에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 내 뜻이 천상에 생겨나게 한 모든 기쁨과 재산을 알아보게 된다. 아무것도 그에게서 빠져나가지 않고, 도리어 곱절로 불어나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18. 사실 성인들이 천상에서 내 뜻을 누리는 것은 그들이 내 뜻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즐거워하며 사는 반면에 지상에 있으면서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고통을 받으며 산다. 그러니 성인들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은 뜻 안에서 그 영혼이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성인들은 천상에서 저 기쁨과 저 재산을 누리고 있었으니, 그녀도 천상에서 그것들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19. 그런데다 지상에서도 내 뜻 안에서 산 영혼은 얼마나 무한한 부를 소유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녀를 부요하고 행복하게 해 주려고 영원한 세계 전체가 그 둘레에 모여든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뜻은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그녀에게 준다. 바로 내 뜻 자신의 딸이기에 이 딸에게 없는 것이 없게 할 정도로 끔찍이 사랑하는 것이다.

 

20. 그러니, 딸아, 주의를 기울여라. 내가 너에게 세워 둔 계획에 반대하려고 들면 못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