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58, 예수님의 승천을 본 사도들의 고통과 그 열매.
그분의 계속적인 방문과 계속적인 부재의 의미.
1924년 5월 29일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영광에 싸여 하늘로 돌아가셨을 때에 대하여, 따라서 그토록 큰 선이신 분 없이 남아 있었던 사도들의 비통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말씀하셨다.
2. “딸아, 그렇게 스승 없이 남아 있었던 것이 모든 사도들의 일생 중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내 부재의 고통으로 심장이 타고 있었다.
3. 가슴에 사무치는 이 날카로운 고통은 인간적인 고통이라기보다 신적인 고통이어서 한층 더 모진 고통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상실한 것은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무엇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인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활을 통해 영화(靈化)되고 영광스럽게 된 몸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모든 고통도 그들의 영혼 안에 있었다. 이 고통이 더없이 처참하고 혹독한 순교를 이룰 정도로 그들의 온 존재를 꿰뚫으면서 극심한 비탄으로 완전히 소진되는 느낌이 들게 한 것이다.
4. 그러나 그 모든 고통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덕행에 있어서나 신적인 것과 나 자신의 신원에 대한 앎에 있어서나 어린아이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들 가운데에 있었지만 그들은 진실로 나를 알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5. 하지만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자, 나를 잃은 그 고통이 그들을 가리고 있었던 휘장을 찢었다. 내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임을 너무나 확실히 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나를 볼 수 없다는 격렬한 고통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상실한 분에 대한 사랑으로 무엇이든지 겪을 수 있게 하는 확고한 덕과 힘을 낳았다.
6. 그 고통은 또한 신적인 지식의 빛을 낳았고, 그들에게서 어린애의 기저귀를 치우기도 하였다. 그들을 대담한 사람으로,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는 용맹한 사람으로 길러 내었던 것이다. 고통이 그들을 변화시켜 그들 안에 진정한 사도적 특성을 길렀으니, 그들은 내 현존으로 얻지 못했던 것을 내 부재의 고통으로 얻을 수 있었다.
7. 이제, 딸아, 너에게 작은 가르침 하나를 주겠다. 너의 삶은 나를 잃는 고통과 다시 얻는 기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잃는 고통과 얻는 기쁨 사이에 내가 얼마나 많은 선물을 주었더냐? 너에게 아주 많은 말을 하지 않았더냐? 내 뜻에 대한 그 빼어난 가르침을 들을 수 있도록 너를 준비시킨 것이 고통이었다. 바로 나를 잃는 순교적 고통이었다.
8. 사실, 너는 얼마나 자주 나를 영영 잃은 것 같았느냐? 하지만 네가 그 격심한 고통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내 뜻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 중 하나를 가지고 너에게 다시 오곤 하였다. 그리고 나를 얻는 새로운 기쁨이 너에게 돌아오게 하면서 다시 뼛속에 사무치는 내 부재의 고통을 겪을 준비를 시키곤 하였다.
9. 그러니까 나 없이 혼자 남아 있는 고통이 내 뜻의 효과와 가치와 지식과 기초를 네 안에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런 식으로 - 너에게 매우 자주 오는 한편 너를 내 부재의 고통에 사로잡혀 있게 하는 식으로 - 행동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10. 다시 말하자면, 내가 너에게 내 뜻에 대한 많은 것을 특별한 모양으로 드러내려고 정했으니 만치, 너를 신적인 고통에 계속 사로잡혀 있게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뜻은 신적인 것이어서 오직 신적인 고통 위에만 그 자신의 옥좌를 세우고 통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승의 자세를 취하면서 이에 대한 지식을 주기도 했으니, 그것은 피조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만큼 많은 지식이었다.
11. 나의 계속적인 방문과 -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내 부재로 인한 너의 계속적인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워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토록 자주 나를 보지 않았다면 이처럼 많이 나를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너를 찾아올 때마다 나에 대한 또 하나의 지식과 새로운 사랑을 더해 주었기 때문이다.
12. 그런데 영혼이 나를 알고 사랑하면 할수록 그의 고통도 그만큼 더 배가(倍加)된다. 내가 올 때마다 너의 고통이 더 심해지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영혼을 수행(隨行)하며 굳건하고 강력하게 만드는 고상한 고통이 내 뜻에 부족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는 내 뜻이 네 영혼 안에 안정된 거처를 만들기 위함이요, 내 뜻에 관한 새롭고도 연속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거듭 말한다.
내가 일하도록 맡기고 나를 신뢰하여라.”
16권-59, 예수님 삶의 행적과 고통과 말씀을 기억하는 데서 얻게 되는 크나큰 선.
1924년 6월 1일
1. 오늘 아침에는 나 자신의 몸 바깥에 나가 있으면서 이미 작고한 나의 먼젓번 고해 신부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신부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깊이 심취해 있는 것 같았다. 신부님은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면서 다른 이들의 마음에도 불을 지를 정도로 정열에 불타고 있었다.
2. 나는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 보려고 그에게 다가갔는데, 놀랍게도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던 내용이었고, 예수님 사랑의 섬세한 기량과 당신 자신을 낮추시기까지 나를 존중하며 베푸신 그분의 다정다감한 호의에 대해서였다. 그런데 나에 대한 예수님의 그 사랑의 기량에 대해서 언급하는 순간, 신부님은 빛을 발산하였다. 그러자 신부님뿐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사람들도 그 빛 안에 잠기게 되었다.
3. 나는 놀라움에 잠겨 ‘신부님은 내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살아생전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뒤에도 다른 이들에게 하고 계시는구나.’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를 멏기를 기다렸다. 가까이 가서 나의 어떤 어려움에 대해 면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신부님은 아무래도 그만둘 마음이 없는 것 같았고, 나는 나 자신의 몸 안에 들어와 있었다.
4. 나중에 여느 때와 같은 나의 방식대로 사랑하올 예수님의 수난 현장을 따라다니면서 그분께 연민의 정을 느끼며 보속을 바쳤고, 그분의 고통을 내 것으로 삼았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동하시며 말씀하셨다.
5. “딸아, 나를 기억하는 것이 -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 행하고 겪고 말했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영혼에게 얼마나 큰 선익을 대어 주는지 모른다!
영혼이 따뜻한 연민의 정으로 나를 대하고 나의 지향을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 나의 고통과 활동과 말을 하나하나 기억하면, 내가 행하고 겪으며 말했던 것의 열매를 따러 온 것처럼 그것들을 자기 영혼 안에 불러들러 가지런히 정돈하는 것이 된다.
6. 이를 통해 영혼 안에 일종의 거룩한 수분이 생겨난다. 그러면 내 은총의 태양이 즐거워하며 영혼 위로 떠올라 이 수분으로 천상적인 이슬을 만든다. 이 이슬은 놀라운 방식으로 영혼을 아름답게 꾸밀 뿐만 아니라, 내 거룩한 정의의 이글거리는 태양 광선의 볼기운을 완화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정의가 죄의 불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을 때려눕히고 불태워 더욱 바싹 마르게 하려고 할 때문이다.
7. 그 신적인 이슬은 광선들을 부드럽게 하면서 스스로를 할용한다. 사람들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그것으로 유익한 이슬을 만들고 그 자신도 생명유지에 필요한 수분이 되어 사람들이 말라 죽지 않게 하는 것이다.
8. 오! 자연 현상이 이를 얼마나 잘 상징하는지! 식물은 낮 동안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말라 가지만 습기 찬 밤이 되면 충분한 수분을 흡수한다. 그러면 태양이 이 습기 위로 다시 떠오르면서 이슬을 만들고, 그 열로 식물을 말라 죽게 하는 대신 무성히 자라게 하여 각종 열매들이 완전히 영글게 한다.
9. 같은 현상이 더욱 놀라운 모양으로 초자연계에도 일어난다. 기억이 모든 선의 시작이다. 기억이 많은 수분을 형성하여 영혼에게 생명을 준다. 잊혀 버린 선 내지 사실들은 영혼에게 생명 유지에 필요한 힘이 되지 못하고, 그 매력과 감사 및 일치와 존경과 사랑과 가치를 잃고 만다.
10. 그리고 그 기억은 살아생전의 모든 선의 근원이 될뿐더러, 죽은 뒤에도 모든 영광이 근원이 된다. 너는 작고한 네 고해 사제의 말을 듣지 않았느냐? 그는 너무나 기뻐하면서 내가 너에게 준 은총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생전에 관심을 쏟아 내 말을 듣고 기억했으므로 그의 내면이 온통 내 말로 가득차서 밖으로 넘쳐흐를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제 그의 내세 삶을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선을 대어 주겠느냐? 그에게는 그것이 선의 샘과도 같아 다른 이들의 선익을 위해 넘쳐흐르고 있다.
11. 그러므로 영혼이 내게 속한 것들과 내 은총 및 내게서 받은 가르침들을 기억하면 할수록, 내 선들의 샘이 그의 내면에서 더욱더 성장하게 된다. 마침내 그 선들을 다 품고 있을 수 없어서 다른 이들의 선익을 위해 넘쳐흐르게 되는 것이다.”
16권-60, '피앗 볼룬타스 투아' 사업의 출발점이 될 사람의 소임.
1924년 6월 1일
1. 그분 부재의 일상적이며 가혹한 고통 한복판에 있었다. 추호의 동정심도 없는 준엄한 책벌로 나를 후려치는 정의의 채찍 아래 있는 느낌이었다.
2. 오! 벌을 내리시는 하느님의 정의여, 당신은 너무 무겁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숨어 계실 때에는 훨씬 더 무섭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처벌하시어 갈기갈기 찢으신다 하더라도, 예수님만 저와 함께 계신다면 당신의 화살들이 저에게는 오히려 감미로울 것입니다.
3. 오! 얼마나 슬픈 운명인지! 나는 하늘과 땅이, 그 모든 사람이 이 귀양살이 중인 가련한 자의 운명을 두고 함께 탄식해 주었으면 싶었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더러, 이 오랜 귀양살이 동안 유일한 위로요 버팀목이셨던 예수님마저 이 몸을 버리고 떠나시지 않았는가?
4. 내 하찮은 마음이 그 쓰라린 고통에 잠겨 있었을 때에,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만물을 지배하시는 모습으로 나의 내면에 나타나셨다. 그분은 손에 여러 가닥의 고삐 같은 것을 잡고 계셨는데, 그 각각의 줄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었다.그러니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수와 같은 수의 고삐였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5. “딸아, 갈 길이 멀다. 게다가 각 피조물의 생명은 저마다 별개의 길이어서 여러 길을 따라가며 많이 걸을 필요가 있다. 너는 그 모든 길을 가야 할 사람이다. 내가 내 뜻을 네 안에 넣어 둘 터인즉, 너는 마땅히 내 뜻이 지닌 모든 것을 지니고 이 뜻과 함께 모든 피조물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너는 내 뜻 안에서 행하고 겪어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
6.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무거운데다 지쳐 있기도 했던 나는 “저의 예수님, 그건 너무 많습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벌써 지쳐 있습니다. 더욱이 당신께서는 저를 혼자 버려두시는데, 저는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 언제나 저와 함께 계셔 주신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슬프게도 당신은 저를 혼자 있게 하시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였다.
7. 그러자 예수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네 마음 안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인도하고 있다. 이 모든 길은 내가 이미 걸었던 길이다. 나는 모든 것을 내 안에 품고 있었으니, 한 사람의 단 한 번의 심장 박동도 단 하나의 고통도 그 무엇도 내게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8. 그러니 너는 알아야 한다. 내 지고한 의지가 내 뜻을 네 안에 생명의 중심으로 넣어 둘 것이기에, 네 안에서 모든 길을 보며 네 예수가 행했던 모든 것을 볼 필요가 있다. 그 모든 것이 내 뜻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내 뜻 안에 있으나 이 뜻이 그 중심을 형성하는 것과 완전한 지배력을 가지는 것을 방해하는 것, 내 뜻이 스스로를 알리며 다른 이들을 통치하기 위한 출발점을 네 안에 두는 것을 방해하는 것 - 오직 이 한 가지만 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이는 내 뜻이 너에게서 받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지게 될 것이다.
9. 그러니 보아라. 내 지존한 뜻이 네 안에 내려와 네 안에서 그 자신의 진로를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네가 모든 사람을 싸안고 모든 사람의 길을 가면서 그들의 고초와 아픔과 행위들을 짊어지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이냐!”
10. 나는 그 말씀에 놀라 “저의 사랑이시여,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제가 얼마나 하잘것없는 인간인지, 또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당신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하물며 당신의 뜻 전체를 제 속에 어떻게 품을 수 있겠습니까? 이껏해야 당신 은총으로 당신의 뜻을 실행하며 당신 뜻 안에서 살 수 있을 뿐, 당신의 뜻 전체를 내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무한하신 뜻을 속에 품기에는 제가 너무 작은 것입니다.”
11. 예수님은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그 말은 네가 알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이 뜻을 네 안에 넣어 두기를 원하는 이가 의당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은총과 능력도 네게 줄 것이다. 내 온 존재를 내 천상 엄마의 태 안에 넣었던 내가 아니냐? 나의 일부는 천국에 남겨 두고 일부만 그 안에 넣었겠느냐? 물론 아니다.
12. 내 엄마는 나를 당신의 태 안에 받아 가짐으로써 내가 행한 그 무엇도 빠뜨리지 않을 만큼 나와 동화되어, 당신 창조주의 모든 활동과 모든 고통에 참여한 최초의 사람이 되시지 않았느냐? 그리하여 그분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내주러 나가게 된 출발점이 되시지 않았느냐?
13. 내가 구원 사업을 이루려고 강생하여 나와 나눌 수 없는 내 엄마에게 그렇게 했다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내 뜻을 넣을 은총과 수용력을 주어 내 뜻이 내포한 모든 행위에 참여하게 하면서 내 뜻의 생명을 기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리하여 내가 마치 또 하나의 어머니에게서 나가듯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 나 자신을 알리면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피앗 볼룬타스 투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 너도 내 뜻의 출발점이 되지 않겠느냐?
14. 그렇지만, 오, 여왕이신 내 어머니께서는 내가 세상에 나타날 출발점이 되시기 위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셨는지 모른다! 너도 내 뜻의 출발점이 되어 이 뜻을 피조물 가운데 나타나게 하려면 그만큼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주어야 할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 자기에게 없는 것은 줄 수 없기 때문이다.
15. 그러니, 딸아, 내 뜻에 관한 것과 내 뜻이 네 안에서 그 생명을 기를 수 있도록 네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가벼이 여기지 마라. 이는 내가 가장 관심을 쏟는 일인즉, 주의를 집중하여 내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Fiat Voluntas Tua. 천상의 책 제16권 -끝-
예수님의 간절한 호소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온통 사랑의 불꽃에 휩싸인 마음으로 너희 가운데 와 있다. 내 자녀들을 끔찍이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와 있다. 우리가 하나의 뜻, 하나의 사랑으로 함께 살기 위하여 내가 너희에게로 와서 머물러 있을 만큼 내 사랑은 큰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로 오면서 나의 고통, 나의 피, 나의 일 및 나의 죽음까지도 같이 가져왔다. (중략)
나를 보아라. 나의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나의 고통과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리고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너희에게 내 거룩한 뜻을 주기를 원한다. 나의 죽음마저 너희 안에 내 뜻의 생명이 다시 태어나게 하기를 원한다.(중략)
나의 사랑은 너희의 과거 삶이나 죄, 온갖 악행들을 잊어버릴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아라. 나는 그 모든 것을 내 사랑의 불바다에 묻어 태워버리겠다
그런 다음 우리 함께 새 삶을, 온전히 나의 뜻인 삶을 시작하기로 하자.(중략)
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에워싸고 모여 바로 나 자신의 뜻으로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것이 너무나도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에, 나는 얼마나 많이 탄식하고 혼절할 정도로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모른다! (중략)
너희가 너희의 뜻을 나에게 준다면 모든 일을 내가 말한 대로 행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줌과 동시에 너희도 행복하게 된다. 나는 나의 뜻이 너희 가운데서 다스리는 것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중략)
그러니 내 말을 귀담아들어라. 내 자녀들아, 내가 너희 앞에 놓아주는 (“천상의 책”의) 이 페이지들을 부디 주의 깊게 읽기 바란다. 그렇게 하노라면 내 뜻 안에서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중략)
그리고 너희가 읽고 있는 동안 나는 바로 옆에 서서 너희의 정신과 마음을 만져 주겠다. 너희가 읽고 있는 바를 깨닫고 나의 신적인 “피앗”의 선물을 받고 싶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카레타를 통하여 당신 자녀들에게 주신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