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신적 정의의 권리 앞에서 인간을 지키는 예수님의 피.
자기를 하느님께 내드린 사람의 유일한 권리는
영복을 보장하는 하느님 뜻을 소유하는 것이다.
1924년 7월 1일
1. 흠숭하올 예수님의 부재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오! 얼마나 피를 쏟고 있는지 계속 죽음을 치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분 없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고, 고통도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2. 그런데 예수님 수난의 여러 신비들 속에서 그분을 따라다니려고 애를 쓰다가 고통스럽게 채찍질을 당하시는 신비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분께서 나의 내면에서 움직이시며 흠숭하올 그분 자신으로 나를 완전히 채우셨다. 나는 그런 예수님을 뵙자 이 괴로운 처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그분은 입을 열지 못하게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우리 함께 기도하자. 피조물의 악행 때문에 참을 수 없어진 내 정의가 새로운 징벌들로 땅을 뒤덮으려고 하는 슬픈 시기들이 있다. 그러니 내 뜻 안에서 바치는 기도가 꼭 필요하다. 이 기도는 모든 것 위로 퍼져 나가면서 피조물의 방어선으로 자리하고, 그 힘으로 내 정의가 피조물에 접근하여 후려치는 것을 막는다.”
4. 예수님의 기도 소리는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들리던지! 내가 그분께서 채찍질을 당하시는 고통의 신비 속에 함께 있었으므로 그분은 피를 펑펑 쏟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기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5. “아버지, 저의 이 피를 아버지께 바칩니다.
이 피가 모든 피조물의 지성을 덮어,
그들의 악한 생각을 무위(無爲)로 만들고
그 욕정의 불길을 끄며 거룩한 지성으로 되살리게 하소서.
이 피가 그들의 눈을 덮고 눈길을 가리는 베일이 되어,
악한 쾌락에 대한 매력이 그 눈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 땅의 진창으로 그들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게 하소서.
6. 저의 이 피가 그들의 입을 덮고 채워,
모독과 저주와 나쁜 말들에 대해서는 그 입술들이 죽게 하소서.
아버지, 저의 이 피가 그들의 손을 덮어, 숱한 악행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게 하소서.
이 피가 우리와 뜻 안으로 흘러들어, 모든 것을 덮고 지키며
우리 정의의 권리 앞에서 피조물을 보호하는 방어 무기가 되게 하소서.”
7. 하지만 아무도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에 대하여, 또 그분께서 바치신 그 기도가 전체를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8. 그런 뒤 그분은 침묵을 지키셨고, 나는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나의 작고 미천한 영혼을 손에 드시고 꽉 짜시거나 톡톡 두드리시거나 바라보시기도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저의 사랑이시여, 무얼 하시는 중이십니까? 혹시 제 안에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9.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영혼을 내 뜻 안에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기야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너한테 보고할 의무는 없다. 너 자신을 완전히 내게 주었으니 너의 권리란 것은 없고, 모든 권리가 내 것이니 말이다.
10. 너의 권리는 딱 한 가지뿐인데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그것은 내 뜻을 소유하는 권리이니, 내 뜻이 시간 속에서나 영원 속에서나 너를 행복하게 할 모든 것을 너에게 주는 것이다.”
17권-5,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새로이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다시 숨을 불어넣어 주셔야 한다.
1924년 7월 16일
1. 여느 때와 같이 있는데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를 몸 밖으로 나오게 하시며 이르셨다.
“딸아, 창조주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내놓으신 좋은 것들을 그 무릎 위에 올려놓을 사람을 찾아다니신다. 그분은 이 때문에 모든 세기에 걸쳐 그분만을 찾아다니는 영혼들이 있게 하신다. 그분만을 찾으며 그분의 선물들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 안에 당신의 그 선들을 넣어 두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서로 만나기 위하여 창조주는 하늘에서 내려오시고 사람은 땅에서 올라간다. 창조주는 주시기 위해서, 사람은 받기 위해서다.
2. 나는 줄 필요를 절실히 느낀다. 주기 위하여 선물들을 준비하는데 줄 사람이 없으면 언제나 큰 고통이 된다. 이를 받는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응답 부족으로 그 좋은 것들이 쓸모없는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창조 사업을 통해 나에게서 나온 그 선들을 내가 누구 안에 둘 수 있는지 아느냐?
바로 내 뜻을 자기의 소유로 하고 있는 사람의 내면이다. 오직 내 뜻만이 그에게 자기 창조주의 선들을 받을 수 있는 능력과 통찰력과 진실한 성향을 줄 수 있고, 그 큰 자애로 받게 된 선물들에 대하여 보답할 임무를 그에게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4. 그러니 나와 함께 하늘과 땅을 두루 돌아다녀 보자. 이는 내가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만물 안에 발한 사랑을 네 안에 넣어 두기 위함이요, 너는 그들을 대신하여 그 보답을 내게 주면서 나와 함께 모든 사람을 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우리가 모두에게 사랑을 줄 것이니, 내가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니고 우리 둘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5. 우리는 그러므로 모든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예수님은 창조된 만물이 내포하고 있는 사랑을 내 안에 넣으셨고, 나는 그분 사랑의 메아리가 되어 그분과 함께 모든 피조물에 대한 그분의 '사랑한다.'를 되풀이하였다.
6. 나중에 그분은 이 말씀을 덧붙이셨다.
“딸아, 나는 사람을 창조하면서 내 숨으로 그 안에 영혼을 불어넣었고, 우리 성삼위 내면의 가장 심오한 요소인 우리의 뜻을 그 영혼 안에 넣어 주었다. 우리의 뜻이, 피조물로서 수용할 수 있는 한도만큼 우리 신성의 모든 요소도 사람에게 주어 우리의 모상이 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7. 그러나 사랑은 배은망덕하게도 우리의 뜻에서 떨어져 나가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영혼은 아직 남아 있었으나 하느님의 뜻을 대신할 그의 인간적인 뜻이 그를 어둡게 하고 더럽히며 신적인 모든 요소를 쓸모없이 만드는 바람에, 그는 완전한 혼란에 빠졌으며 손발이 잘린 불구자 행색이 되고 말았다.
8. 이제 나는 이 나의 뜻을 받을 수 있도록 사람을 다시 준비시키고자 한다. 그러니 그에게 다시 숨을 불어넣기 위해 내가 돌아올 필요가 있다. 나의 숨으로 사람에게서 어둠과 더러움을 몰아내기 위함이요, 우리 성삼위가 사람을 창조하면서 그 안에 불어넣어 준 우리 신성의 요소들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9. 오, 내가 빚어내었을 때처럼 아름답게 회복된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 나의 바람인지! 그런데 오직 내 뜻만이 이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다.
10. 이런 이유로 너에게 내 숨을 불어넣겠다. 네가 이 위대한 선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이 선은 곧 내 뜻이 너를 다스리면서 사람을 창조할 때 주었던 모든 좋은 것들과 권리를 너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11.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내게 다가오셨다.
숨을 불어넣으시고, 나를 바라보시고, 꼭 껴안으시고, 그런 다음 내게서 모습을 감추셨다.
17권-6, 하느님의 지고하신 뜻은 지속적인 행위이다.
창조주의 거룩함의 표징과 모습을 지닌 성덕.
1924년 7월 25일
1. 오늘 아침 다정하신 예수님께서는 나의 내면에서 십자가 형상으로 두 팔을 뻗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나도 그분과 함께 팔을 뻗친채 있었는데, 그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생애의 마지막 행위는 십자가 위에서, 몸을 움직이거나 사람들이 내게 하려는 일에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양팔을 뻗치고 죽을 때까지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사람의 진정한 모습, 생생한 모습이었다.
3. 나는 움직이거나 저항할 수 없었고,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잃었으며, 팽팽하게 당겨지는 양팔의 끔찍한 긴장을 겪었다. 그때 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말이 많던지! 나는 내 권리를 잃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 생명을 얻고 있었다.
4. 그러나 첫째가는 권리는 지고한 뜻의 권리였다. 이 뜻이 스스로의 무한성과 전지(全知)로 무죄하든 유죄하든 거룩하든 착하든 모든 영혼들을 모아, 나의 뻗친 팔 안에 놓았다. 내가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거룩한 뜻이 모든 사람에게 내 팔 안의 자리를 하나씩 주었다.
5. 그런데 나의 지고한 뜻은 지속적인 행위이다. 일단 행하기 시작한 것은 절대로 중단하지 않는다. 내 인성은 이제 하늘에 있고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지만, 그래도 이 뜻은 인간적인 뜻으로 움직이지 않고 신적인 뜻 안에서 활동하는 영혼들을 계속 찾고 있다. 반항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권리를 (기꺼이) 잃는 영혼들 말이다.
6. 그러면 권리는 전적으로 내 뜻만이 가지게 되기에, 이 뜻이 하느님의 뜻 안에 자신을 바치려고 하는 사람의 팔에 모든 영혼들을 - 죄인이든 성인이든 순수한 영혼이든 사악한 영혼이든 - 올려놓는 행위를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십자가 위에 뻗쳐진 내 팔이 했던 일을 계속 반복하기 위함이다.
7. 내가 너의 내면에 십자가 위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이 때문이니, 지고한 뜻이 모든 사람을 내 팔 안으로 데려오는 활동을 계속하게 하려는 것이다.
8. 무릇 성덕은 하나의 행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함께 결합된 수많은 행위들로 이루어진다. 단 하나의 행위는 성덕도 악덕도 되지 못한다. 행위들의 지속성이 결해 있어서 성덕의 빛깔과 그 생생한 조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결해 있기 때문에, 한 행위의 무게나 가치를 성덕이나 악덕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다.
9. 성덕을 빛나게 하면서 그 위에 확인 도장을 찍는 것은 지속적인 선행들이다. 동전 한 닢을 가진 사람을 보고 부자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넓은 토지나 별장이나 대저택 따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야 그렇게 부를 수 있다. 성덕도 마찬가지다. 많은 선행과 희생과 영웅적인 행위들이 필요하다.
10. 그런데 (일반적인) 성덕은 빈틈이나 시간적인 간격을 겪기 일쑤이지만, 내 뜻 안의 성덕은 그런 간헐적인 중단을 겪지 않는다. 절대로, 절대로 중단되지 않는 영원한 의지의 지속적인 행위와 결부되어, 항상 활동하고 항상 일하며 항상 승리를 거둔다. 항상 사랑하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
11. 그러므로 내 뜻 안의 성덕은 영혼 안에 창조주의 활동이 각인되게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지속적인 사랑과 지속적인 보존의 각인이다.
12. 창조주는 변화를 겪지 않는다. 불변적인 존재다.
변화를 겪는 자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 속한 존재다. 변화하는 것은 인간의 뜻이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선을 중단하는 것은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니다. 그러니 이런 것은 모두 내 뜻 안에서 사는 성덕에 맞갖지 않다. 이 성덕은 창조주의 거룩함의 표징과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3.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라. 네가 모든 권리를 지고한 뜻에 맡기면,
내가 내 뜻 안에서 사는 성덕을 네 안에서 계속 길러 주겠다.”
17권-7, 예수님과 영혼에게 안식의 받침목이 되는 행위.
하느님의 뜻은 모든 두려움을 몰아낸다.
지울 수 없는 글자로 만물 위에 새겨지는 이름.
1924년 7월 29일
1. 오늘 아침에는 내가 무척 괴로워한 끝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 나타나셨다. 피곤해서 쉬고 싶어 하시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 안에 받침목 같은 것이 있었으므로 그분은 팔을 펴서 그것을 부둥켜안으셨다. 그리고 그것을 베고 누워 쉬셨는데, 당신뿐만 아니라 나도 함께 쉬기를 바라셨다. 많이도 괴로워한 뒤에, 예수님과 함께 그 받침목을 베고 누워 있는 것이, 그렇게 잠시 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던지!
2. 나중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우리에게 이리도 큰 위안과 안식을 주는 이 받침목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으냐? 나와 너를 위해 이 받침목을 만든 것은 내 뜻 안에서 행한 너의 모든 행위들이다. 이는 매우 실팍(사람이나 물건 따위가 보기에 매우 실하다)해서 내가 내 안에 담고 있는 하늘과 땅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고, 그래서 내게 안식을 줄 수 있다.
3. 홀로 내 뜻만이 이리도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들은 하늘과 땅을 한데 묶고, 하느님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자체 안에 신적 능력을 담고 있는 것이다.”
4. 나는 그 말씀을 듣고, “하지만, 저의 사랑이시여,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그 실팍한 받침목이 있어도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떠나실까 두렵습니다. 당신 없이 제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저는 너무 미천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기에 당신께서 저를 떠나실까 두렵고, 당신의 뜻 역시 제게서 떠나실까 두려운 것입니다.” 하였다.
5. 그러자 그분께서 이르셨다. “딸아, 어째서 두려워하느냐? 이 두려움은 싸움터에 발을 들여놓기를 원하는 너의 인간적인 뜻이다. 나의 뜻은 모든 두려움을 몰아낸다. 두려워해야 할 것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만만하며 흔들림이 없다.
6. 더구나 -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 내 뜻은 모든 피조물과 연결되어 있고 그들 모두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혼이 내 뜻의 소유가 되어 내 뜻 안에서 살기를 결심하면, 내 뜻과 같은 모양으로 모든 피조물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가 자기의 행위들을 거듭함에 따라, 그의 집이요 소유인 내 뜻의 친자(親子)라는 신분이 지울 수 없는 글자로 피조물 위에 새겨진다.
7. 온 우주를 둘러보아라. 하늘과 별들과 태양 및 모든 것 속에, 너의 이름과 내 뜻의 딸이라는 말이 지울 수 없는 글자로 적혀 있다. 그런즉 영원하고 거룩한 이 어머니가 자기에게서 태어난 딸을, 그리도 애지중지 키운 딸을 떠난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느냐? 내 마음을 언짢게 하고 싶지 않거든, 네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려라.”
8.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하늘과 태양과 다른 모든 것들 속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내 이름이 그분 뜻의 딸이라는 칭호와 함께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9.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기를 빈다.
내 하찮은 영혼은 어리둥절해서 어찌할 줄 모르더라도 - .
17권-8, 하느님이 의노의 폭발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
아버지인 바다와 고기, 어머니인 땅과 식물의 비유.
1924년 8월 9일
1. 흠숭하올 예수님의 현존을 고대한 지 한참 뒤에 그분께서 나의 내면에 나타나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두 팔을 펴시고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2. “딸아, 너도 나와 함께 내 뜻 안에서 팔을 펴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인간적인 뜻 안에서 펼치는 일들을 보속하기 위함이다. 그런 일들은 온갖 악의 덫이 되어 그들을 영원한 구렁 속으로 집어던지기 때문이다.
3. 또한 정의가 그들 위에 정당한 분노를 터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게 하여라.
사실 사람이 내 뜻 안에서 팔을 펴고 활동하며 고통을 받을 때면, 내 정의가 내 뜻의 능력을 가진 그에게 감동되어 그 준엄한 의노를 거둔다. 그 사람이 하느님과 인류 가족 사이에 거룩한 혈관이 생기게 하는 까닭에, 내 정의가 가련한 인류를 봐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4. 한데 그분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파당(派黨)을 결성한 자들이 정부와 교회를 거슬러 큰 혁명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얼마나 끔직한 대량 학살이, 얼마나 허다한 참극(慘劇)의 광경을 보이던지!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을 시작하셨다.
5. "딸아, 보았느냐? 인간은 그런 짓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 피에 대한 탐욕적인 갈증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것이 내 정의로 하여금 지진과 물과 불로 도시들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 주민들을 지구 표면에서 사라지게 해 달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6. 그러니, 딸아, 내 뜻 안에서 기도하고 고통받으며 활동하여라. 그렇게 하는 것만이 내 의노가 벼락치듯 터져 이 땅을 쑥밭으로 만들며 멸하려고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7. 오!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영혼을 보는 것이 얼마나 좋고 즐거운 일인지를 네가 안다면! 이에 대한 비유를 들자면, 아버지인 바다와 어머니인 땅이다. 이 둘은 너무나 긴밀히 결합되어 있어서 물은 땅 없이 지낼 수 없고 땅은 물 없이 지낼 수 없다. 마치 결혼한 사이 같아서 바다를 ‘아버지’, 땅을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영혼과 내 뜻의 결합 관계도 그와 같다.
8. 그런데 바다에는 무엇이 있느냐? 무한량의 물이 있다. 누가 이물에서 사느냐? 물이 누구를 먹여 기르느냐? 누구에게 생명을 주느냐? 수많은 종류의 고기들에게 준다. 고기들이 이 무한한 바다 안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헤엄치며 재빠르게 휙휙 달아난다. 그러니 보아라, 바다는 하나이지만 수많은 고기들이 그 안에서 산다.
9. 그런데 이 고기들에 대한 바다의 사랑과 질투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들 모두를 바다 자신 안에 감추어 둘 정도다. 바닷물이 고기들의 상하좌우를 에워싸는 것이다. 고기들은 헤엄쳐 다니고 싶으면 물을 가르면서 즐겨 미끄러져 나아간다. 물은 갈라지지만 그들 둘레와 아래위를 받쳐 준다. 절대로 그들을 떠나는 법이 없다.
10. 그리고 고기들이 지나간 길을 즉각 다시 덮는다. 어디를 지나 어디에 다다랐는지 그 흔적을 없애 일체의 추적을 따돌리는 것이다. 바닷물은 또한 고기들이 뭔가를 먹고 싶어 하면 스스로를 먹이로 내어 주고, 그것들이 자고 싶어 하면 스스로 잠자리가 되어 준다. 절대로 그들을 떠나는 법 없이 항상 감싸 안고 있다.
11. 이처럼 바다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바다가 그 생명이 되는 이 말없는 생명체들의 움직임과 날렵한 헤엄을 볼 수 있으니, 이들이 한편은 바다의 영광과 영예와 부(副)가 된다.
12. 이 고기들을 월등 능가하는 것이 내 뜻 안에서 활동하며 사는 영혼이다. 내 뜻은 무한하고 인간은 유한하지만, 그래도 이 피조물은 그의 몸짓과 목소리와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다. 그가 내 뜻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므로 내 뜻이 바다보다 더한 사랑과 질투로 그의 상하좌우를 감싸 안는다. 그리하여 이 복된 피조물의 생명이 되고, 그의 양식, 말, 활동, 발걸음, 고통, 침상, 안식 및 거처가 된다.
13. 내 뜻은 또한 어디든지 그를 따라다니며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이런 영혼들은 내 뜻에서 태어났기에 나의 영광과 영예와 부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내 뜻 안에 있는 영혼의 활동은 지상의 바다 속 고기들의 날렵한 헤엄과 같다. 지고한 의지의 천상적 바다 속에서 그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14. 그들은 그 천상적 물결 속에 숨어 있는 주민들이며, 무한한 바다인 내 뜻의 무한한 상속 재산으로 살아간다. 바다 속에 숨어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고기들이 바다의 영광을 이루며 인간의 양식으로 쓰이는 것과 같이, 신적인 바다 속에 말없이 모습을 감추고 있는 듯한 그들이 만물 가운데 나의 가장 큰 영광이 되고, 나로 하여금 내 뜻과 내 은총의 맛깔스러운 음식을 땅에 내려 보내게 하는 일차적인 원인이 된다.
15.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영혼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상징은 땅이다.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은 풀과 꽃과 나무와 씨앗이다. 땅이 그 씨앗을 받아들이기 위해 너무나 큰 사랑으로 열리지 않느냐? 열린다기보다 갈라지며 씨앗을 덮는다. 씨앗이 이 흙과 함께 부드럽게 분해되도록 돕는다. 씨앗이 품고 있는 식물을 땅이 그 자신의 태로부터 더 수월히 분만하기 위함이다.
16. 그리하여 그 식물의 싹이 트기 시작하면, 흙이 그 둘레를 에워싸고 자신이 함유한 체액을 음식처럼 대주어 식물이 성장하게 한다. 그러니 어머니인 이 땅만큼 애정 깊은 어머니는 없다. 갓 태어난 아기를 무릎 위에 싸안고 앉아 언제든지 끊임없이 젖을 주는 어머니는 없는 반면에, 땅은 어머니 이상으로 갓 태어난 식물을 그 젖가슴에서 떼어놓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17. 오히려 식물이 성장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자라날수록, 땅은 스스로를 그만큼 더 갈라 식물의 뿌리가 거침없이 뻗어갈 공간을 내주면서 더 아름답고 더 튼튼하게 자라게 한다. 이 땅의 사랑과 질투는 대단해서 언제나 젖가슴에 붙여 두며 그것에게 생명과 젖을 끊임없이 주는 것이다. 한편, 풀과 꽃과 나무 따위의 식물은 땅의 가장 아름다운 장신구가 된다. 즉 땅의 행복과 영광과 부가 되면서 인간 세대들에게 양식을 제공한다.
18. 내 뜻은 그러나 내 뜻 안에서 살며 활동하는 영혼에 대해 이 어머니인 땅보다 더 사랑 깊은 어머니이다. 내가 자상한 어머니 이상으로 그 영혼을 내 뜻 안에 숨기고, 그 자신의 뜻이라는 씨앗이 죽게 하여 내 뜻과 함께 다시 태어나게 하고, 이 사랑스러운 식물을 내 신성의 천상적인 젖으로 몸소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사랑과 질투도 대단해서 그것을 내 젖가슴에서 떼어 놓지않으며 끊임없이 감싸 안고 있다. 아름답고 튼튼하게, 모든 면에서 나의 모양으로 자라나게 하기 위함이다.
19. 그러므로, 딸아, 주의를 기울여라. 네가 사랑하는 네 예수를 만족시키고 싶거든 언제나 내 뜻 안에서 활동하여라. 나는 네가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오로지 내 뜻 안에서 살며 끊임없이 활동하는 이 일에만 전념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