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권-13, 인간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하느님 뜻의 태양이 인간의 뜻을 태양으로 바꾸어 자신의 중심에서처럼 그것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글을 낱말 하나마다 다 축복하시다.
1924년 9월 17일
1. 거룩하고 신성한 뜻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여 이 뜻 안에 녹아들려고 하였다. 이는 모든 이를 싸안고 이들이 창조주께 응당 돌려드려야 할 모든 행위들을 오직 하나의 행위로 만들어 내 하느님께 드리기 위함이었다.
2.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사이 하늘이 열리고 한 태양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 태양이 그 광선들로 내게 상처를 내면서 내 영혼 깊은 곳으로 뚫고 들어왔다. 그러자 그 광선들에 찔린 내 영혼이 또 하나의 태양으로 바뀌었고, 스스로의 광선을 퍼뜨리면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 태양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었다.
3. 그리고 내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모든 이를 대신해서 계속하고 있었던 활동들에 이 광선들이 덮쳐 신적 행위로 바꾸었고, 이 행위들이 모든 사람 안에, 또 모든 사람 위에 퍼져 나가면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질서가 잡히게 하는 빛의 그물을 형성하였다.
4. 이 광경을 보며 황홀해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내면의 그 태양 한복판으로부터 나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의 태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아라! 얼마나 능하고, 얼마나 경이로우냐!
5. 영혼이 내 뜻 안에 녹아들어 모든 이를 싸안고자 하면, 내 뜻은 즉시 태양으로 바뀌어 그 영혼에게 상처를 입히며 그 안에 또 하나의 태양을 만든다. 영혼은 이 태양 안에서 활동하기에 그 광선을 이루면서 지극히 높은 뜻의 태양에게 상처를 입힌다.
6. 또 모든 이를 그 빛 속에 묻고 모두를 대신해서 그녀의 창조주께 사랑과 영광과 보속을 바친다. 그것도 인간적인 사랑과 영광과 보속이 아니라 하느님 뜻의 사랑과 영광으로 그렇게 한다. 내 뜻의 태양이 그 영혼 안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7. 너는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느냐? 이는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되기도 하거니와, 내 뜻의 태양이 인간의 뜻을 태양으로 바꾸어 자신의 중심에서처럼 그것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8. 그런 다음 다정하신 예수님은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대해 내가 쓴 책들을 전부 모아 한꺼번에 가슴에 붙안으시고, 형언할 수 없도록 애정이 깃든 어조로 말씀을 이으셨다.
“나는 이 저술들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여기에 담긴 낱말 하나마다 다 축복한다. 이들이 내포한 효과와 가치에도 복을 내린다. 이 글들은 나 자신의 분신들이다.”
9. 그리고 그분께서는 천사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천사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이 저술들을 보기로 되어 있는 두 명의 사제가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천사들에게 그 사제들의 이마에 손을 대어 성령의 인장을 받게 하라고 명하셨다. 이 저술들 속에 있는 진리와 선을 깨닫게 할 빛을 그들 안에 불어넣기 위함이었다.
10. 천사들이 명령대로 시행하고 나자,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강복하시고 모습을 감추셨다.
17권-14,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과 이 뜻을 행하는 것의 차이.
1924년 9월 18일
1.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지금까지의 기록이 미흡해서 걱정스러웠으므로,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빛을 주시기를 예수님께 청하였다.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이 복된 삶에 대해 내가 더욱 분명하게 설명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그들은 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다스리는 것인 반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먼저 것은 소유하는 신분이고, 나중 것은 내 명령을 받고 그것을 실행하는 신분이다.
3.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내 뜻을 영혼 자신의 것인 양 소유하여 그것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다.
내 뜻을 행하는 것은 이 뜻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는 것이니 내키는 대로 처리할 수 없다.
4.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하나의 뜻으로, 곧 하느님의 뜻만으로 사는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고 지극히 순수하며 지극히 평화로운 하나의 뜻만이 다스리는 것이니, 갈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일체가 평화일 따름이다.
5. 이 지고한 뜻 앞에서 인간의 격정은 떨며 달아나려고 한다. 그러나 감히 걸음을 내디디지도 맞서지도 못한다. 하늘과 땅이 이 거룩한 뜻 앞에서 떠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6. 그러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첫걸음은 무엇을 하는 것이겠느냐? 그것은 영혼 깊은 곳에 신적 질서를 확립하면서 나쁜 경향이나 격정이나 기호 따위 인간적인 것을 비우는 것이다.
7. 한편 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두 가지 뜻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뜻을 행하도록 명령을 내리면 자기 자신의 뜻의 무게를 감지하게 되고, 이것이 갈등을 일으킨다. 비록 내 뜻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지라도 그 자신의 반역적인 본성과 격정과 경향이 무게를 느끼는 것이다.
8.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드높은 완덕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며 계속 압박하는 그들 자신의 뜻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에 빠진 몸에서’라는 말의 의미는 ‘내가 하고자 하는 선을 죽음에 부치기를 원하는 나의 이 뜻에서’ 인 것이다.
9.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아들로서 사는 것이고, 내 뜻을 행하는 것은 종으로서 사는 것이다. 먼저 것은 아버지의 것이 모두 아들의 것인 경우이지만, 종은 아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기 마련이다. 어차피 더 고달프고 더 천한 일들을 하고 추위와 더위를 겪으며 발로 걸어 다녀야 한다.
10. 사실, 내 성인들은 내 뜻의 명령을 실행하려고 참으로 많은 일을 하지 않았더냐? 그 반면에 아들은 자기를 돌보며 입맞춤과 어루만짐으로 격려해 주는 아버지와 함께 있고, 아버지가 하듯이 종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출타할 때면 발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탈것을 이용한다.
11. 또한 이들은 아버지의 것을 다 소유하지만 종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한 품삵만을 받는다. 주인을 위하여 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보수도 받을 자격이 없다.
12. 이와 반대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있고, 이 권리는 아무도 무효화할 수 없다. 천상법이건 지상법이건 그 어떤 법도 무효화할 수 없고, 아들이라는 신분 역시 무효화할 수 없는 것이다.
13. 딸아,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하늘의 복된 이들과 더할 수 없이 근접해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내 뜻을 행하며 내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하늘이 땅에서 먼 것과 같이, 아들과 종, 왕과 신하 사이의 거리가 먼 것같이 말이다.
14. 게다가 이는 이 통탄할 시대에 내가 주고자 하는 선물이다. 사람들이 단지 내 뜻을 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유하게 하려는 것이다.
15.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사람에게 줄 자유가 없겠느냐? 주인은 종에게, ‘내 집에서 먹고 살며 재산을 소유하고, 또 하나의 나처럼 명령을 내려라.’하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 이 주인은 아무도 종이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하려고 그를 아들로 입적시켜 소유권을 준다. 일개 부자도 그렇게 하거든, 하물며 나는 한층 더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
16.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선물들 중에서 가장 큰 선물이다. 나의 선성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한층 더 크게 펼치기를 원한다. 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주었으므로 이제 나의 뜻을 선물로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소유함으로써 자기네가 소유하게 된 위대한 선을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다.
17. 그러니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더라도 너는 이상하게 여길 것 없다.
이를 알아들으려면, 거룩한 일에서조차 자기의 뜻에는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려고 하는 최대의 희생을 치를 각오가 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뜻의 소유를 실감할 것이고,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의미를 손으로 직접 만져 보는 느낌이 들 것이다.
18. 아무튼 너는 주의를 집중하고, 그들이 일으키는 곤란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라. 나로서는 내 뜻 안에서의 삶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조금씩 길을 열어갈 작정이다.”
17권-15, 하느님의 뜻에 대해 기록하는 것에 악마가 격분하는 까닭.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희생이 요구되는 삶에 대하여.
1924년 9월 22일
1. 위에서 언급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 동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가슴께에 입을 갖다 대시고 내가 쓰고 있는 낱말들을 내게 먹여 주시는 모습이 보였다.
2. 때를 같이하여 멀리서 몹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마치 사람들이 싸우면서 서로 마구 두들겨 패는 것 같았고, 어찌나 악을 쓰며 울부짖는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3. 나는 그래서 예수님을 향하여, “저의 사랑이신 예수님, 저렇게 소동을 부리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마치 성난 마귀들 같습니다. 무엇을 원하기에 저리도 사납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딸아, 과연 그들은 마귀들이고, 네가 나의 뜻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니 네가 나의 뜻 안에서의 삶에 대한 더욱 중요한 진리들을 글로 옮기는 것을 보면, 그들은 두 배의 지옥을 겪으며, 지옥에 떨어진 모든 자들을 한층 더 괴롭힌다.
5. 나의 뜻에 대한 이 글이 출판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배척하고 인간 자신의 뜻 쪽으로 자유로운 발길을 내딛기 시작했을 때 세상의 왕국을 손에 넣은 그들이, 이제 그 왕국을 잃게 될 자신들을 보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 바로 그때였다. 원수가 지상에 제 왕국을 세운 것은!
6. 그러나 내 뜻이 지상에 군림하게 되면, 원수는 자진해서 끝없이 깊은 구렁 속에 갇히고 말 것이다. 이것이 저토록 격분해서 날뛰는 이유이다. 그들은 이 글에서 내 뜻의 능력을 감지하기에 출판되리라는 생각만 해도 분통이 치밀고, 그러니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토록 큰 선을 방해하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7. 하지만 너는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말고, 이 일을 보면서 나의 가르침에 감사하는 법을 배울 일이다.”
8. 나는 “저의 예수님, 당신의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말씀을 제가 글로 옮기기 위해서는 당신의 전능하신 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9. “저 사람들이 일으키는 많은 어려움들 앞에서, 특히 그들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서 산 사람이 그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어찌 있을 수 있는 일이오?’ 하고 저에게 말할 때마다, 저는 아주 으깨지는 느낌이어서 이 땅 표면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아무도 다시는 저를 볼 수 없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저의 뜻을 거슬러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딸아,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이 삶과 더불어 영혼 자신의 뜻에 대한 모든 권한의 상실을 가져온다. 즉, 모든 권한이 이 거룩한 뜻에 귀속된다. 영혼이 자신의 권한을 잃지 않으면, 진실로 내 뜻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기껏해야 하느님 뜻에 맡기는 삶, 따르는 삶이 될 뿐이다.
11. 사실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단순히 내 뜻에 따라 활동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내면 전체가 내 뜻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 것에는 어떤 애정도 생각도 갈망도 심지어 숨 한 번도 주지 않는 것이다. 내 뜻은 자신이 그 생명이 아닌 인간적인 애정은 단 하나도 너그럽게 보아주지 못한다. 영혼이 내 뜻 안에서 살면서 그 자신의 인간적인 뜻의 애정이나 생각이나 다른 것들을 품고 있다면 내 뜻이 역겨움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12. 그런데 너는 영혼이 자진해서 기꺼이 자기의 권한을 잃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오!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뜻에 대한 모든 권한을 잃는 수준에 도달했다가도 되돌아가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13. 자신의 권한을 잃는 것은 실제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희생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나의 자애로 하여금 내 뜻의 문을 열고 그를 이 뜻 안에 들어와 살게 하면서 그에게 나의 신적 권한을 보답으로 주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너는 주의하여라. 절대로 내 뜻의 영역 밖으로 나가지 마라.”
17권-16, 성부의 능력과 성자의 지혜와 성령의 사랑으로
하느님 뜻 안에서 바치는 흠숭과 경배의 효과
1924년 10월 2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무척 괴로웠다. 오! 나의 전 생명을 이루시는 분이 안 계시면 이 귀양살이가 얼마나 더 힘들고 쓰디쓴 것이 되는지! 그러므로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나를 나 자신의 뜻에 맡겨 두시지 말기를 간청하였다.
2. 그렇게 말씀드리고 있었을 때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 심장을 양손으로 꽉 쥐어짜셨다. 그리고 빛의 끈으로 내 온몸을 칭칭 묶으셨는데, 어찌나 세게 묶으셨는지 나는 옴짝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그분은 나의 내면에 팔다리를 펴고 누우셨고, 그런 그분과 함께 나도 고통을 받았다.
3. 그러는 동안 나 자신 밖으로 옮겨져 하늘 궁창 쪽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리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성령님과 마주치게 된 것 같았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시면서 그 두 분 사이에 자리를 잡으셨고, 나를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히셨다. 아버지께서는 매우 큰 사랑으로 기다리신 듯 나를 가슴에 딱 붙여 안으시더니, 그분의 뜻과 하나 되게 하시면서 내 안에 그분의 능력을 불어넣으셨다. 성자와 성령께서도 그렇게 하시면서 (지혜와 사랑을 불어넣으셨다).
4. 그러나 성삼위께서 한 분씩 내게 자신을 부어 주셨지만 모두 한 분이 되셨으므로, 나는 성부의 뜻의 능력과 성자의 뜻의 지혜와 성령의 뜻의 사랑을 한꺼번에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 영혼 안에 성삼위의 뜻이 그렇게 부어지는 순간에 내가 느꼈던 것을 누가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때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게 이르셨다.
5. “우리 영원한 뜻의 딸아, 우리의 지고한 어좌 앞에 엎드려, 우리 뜻의 능력과 지혜로, 또 우리의 지고한 사랑의 끈으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너의 흠숭과 경배와 찬미를 바쳐라. 그러면 우리가 네 안에서 우리를 흠숭하는 우리 뜻의 능력을,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는 우리 뜻의 지혜를, 우리를 사랑하며 찬미하는 우리 뜻의 사랑을 느낄 것이다.
6. 또한 우리 성삼위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은 모든 피조물의 지성과 기억과 의지와 서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너의 흠숭과 경배와 찬미가 피조물의 모든 지성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하늘과 땅 사이에 떠올라,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의 메아리를 듣게 하면서 우리를 흠숭하고 찬미하며 사랑할 것이다.
7. 이것이 네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흠숭, 가장 고결한 경배, 가장 거룩한 사랑과 찬미이다. 다른 어떤 행위도 이 행위들과 대등할 수 없다. 그만큼 큰 영광과 사랑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성삼위의 능력과 지혜와 상호 사랑이 이 사람의 행위 안을 감돌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즉, 그의 행위 안에서 우리 자신의 행위를 보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이를 즐기지 않겠으며, 다른 모든 행위들을 웃도는 최상의 지위를 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
8. 그래서 나는 지고하신 임금님 앞에 엎드려, 내 마음 안에 계심이 느껴지는 성삼위의 뜻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으로, 모든 이를 대신하여, 그분을 흠숭하고 찬미하며 사랑하였다. 하지만 이 행위의 효과들에 대해서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도무지 표현할 재간이 없으니,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9. 나중에 영성체를 한 뒤 나의 가장 높은 선이신 예수님의 뜻 안에 녹아들었다. 그분의 뜻 안에서 모든 피조물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출석 점호를 하듯이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모두가 나와 함께 이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발치에 엎드려 그분을 흠숭하고 사랑하며 찬미하려고 했던 것이다.
10. 하지만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찬미와 흠숭을 하나 되게 하려고 그렇게 만물을 그분의 거룩하신 뜻 안에서 찾아내려고 하던 중 어쩐 일인지 정신이 자꾸 헷갈렸다. 예수님께서 그런 나를 보시고 모든 피조물을 그분 무릎 위에 모아 놓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11. “딸아, 네가 모든 피조물을 더 쉽게 찾아내고 불러내어 너와 함께 하도록 하려고 내가 그 모두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너를 통하여, 나에게서 나온 것 중 어느 하나도 내게 합당한 사랑의 보답과 흠숭을 주지 않는 것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 것인 만큼 그 중 하나라도 빠져 있으면 내가 네 안에서 완전히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나는 네 안에서, 곧 네 안의 내 뜻 안에서 모든 것을 보기를 원한다."
12. 과연 모든 피조물을 찾아내어 나와 함께하도록 부르기가 훨씬 쉬워졌으므로, 우리는 모두 내 가장 높은 선이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 오, 얼마나 놀랍던지! - 각 조물이 예수님의 뚜렷한 반영과 독특한 사랑을 내포하고 있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반영과 당신의 사랑을 보답으로 받으시는 것이었다. 그분께서, 오, 얼마나 흐뭇해하시던지! 그러나 그렇게 하다 보니 나는 나 자신 안에 들어와 있었다.
17권-17, 사람과 모든 피조물의 첫 심장 박동인 하느님 뜻
1924년 10월 6일
1. 온 존재로 거룩하고 신성하신 의지 안에 녹아들고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동하시며 이르셨다. “딸아, 내 뜻 안에 녹아드는 영혼을 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
2. 영혼이 내 뜻 안에 녹아듦에 따라, 창조된 심장 박동이 창조되지 않은 심장 박동 안에 그 자리를 잡고 생명을 취하면서 일치를 이룬다. 그리고 창조되지 않은 심장 박동과 함께 움직이며 고동친다.
3. 사람의 심장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니, 창조주의 영원한 심장 박동 안에서 뛰는 것이다. 내 뜻이 사람의 심장 박동을 고양시키고, 그러면 그것이 날아올라 제 창조주의 중심에 밀착되는 것이다.”
4. 그때 나는 그분께,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의 의지는 얼마나 자주 모든 피조물의 내면을 두루 돌아보곤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5. “딸아, 사람의 심장이 한 번씩 고동칠 때마다 내 뜻은 모든 피조물 속을 한 바퀴 돈다. 그리고 심장이 끊임없이 뛰고 또 그 고동이 멎으면 생명이 끝나는 것과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내 뜻은 각 사람의 심장 안을 순환하며 그 안에 내 뜻의 고동을 형성한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주기 위해서다. 그러니 내 뜻이 개개의 피조물 안에서 첫 심장 박동이 된다. 사람의 박동은 이차적인 것이고, 사람이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는 것은 내 뜻의 박동 덕분이다.
6. 더구나 나의 이 뜻은 사람 안에 두 가지 고동을 형성한다. 하나는 사람 몸의 생명인 심장 박동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영혼을 위한 것으로서 영혼의 심장 박동과 생명을 이룬다. 그렇다면 내 뜻의 이 고동이 사람 안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겠느냐?
7. 그가 생각을 하면, 내 뜻이 그 영혼의 혈관 속을 흐르는 피처럼 순환하기 시작하면서 그에게 신적인 생각을 준다. 그가 인간적인 생각을 제쳐놓고 내 뜻의 생각에 자리를 내주게 하려는 것이다. 그가 말을 하면 내 뜻의 말이 자기 자리를 원하고, 그가 일은 하거나 걷거나 사랑하면, 내 뜻이 자기의 일과 걸음과 사랑의 자리를 원한다.
8. 내 뜻의 사랑과 질투는 매우 크기 때문에, 이 뜻이 사람 안에서 고동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생각하기를 원하면 내 뜻 자신이 생각이 되고, 그가 보기를 원하면 내 뜻이 눈이 되고, 그가 말하기를 원하면 내 뜻이 말이 되고, 일하기를 원하면 내 뜻이 일이 되고, 걷기를 원하면 내 뜻이 발이 되고, 사랑하기를 원하면 내 뜻이 불이 된다. 요컨대 내 뜻이 사람의 각 행위 안을 두루 돌면서 자신에게 합당한 첫 자리를 잡는 것이다.
9. 그러나 우리 성삼위의 가장 큰 비통은, 사람이 이 영예로운 자리를 내 뜻에 주기를 거부하고 그 자신의 인간적인 뜻에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 뜻은 그 영혼의 중심에서 스스로의 생명을 펼치지 못한 채 마치 생각도 눈도 말도 손도 발도 없는 것처럼 정체된 상태로 그 안에 머무르지 않을 수 없어진다. 얼마나 큰 비통인지! 얼마나 지독한 배은망덕인지!
10. 그런데 누가 나에게 자유로운 터를 주어 내 뜻이 그 영혼의 생명의 고동으로 활동하게 하는지 알고 싶으냐? 바로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오! 이 사람 안에서는 내 뜻이 스스로의 생명을 얼마나 잘 펼칠 수 있는지! 스스로 그의 생각이 되고, 그의 눈의 눈이 되고, 그의 입의 말이 되고, 그의 심장의 고동이 되고, 여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와 나는 얼마나 재빨리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지 모른다!
내 뜻은 이리하여 사람의 영혼 안에 스스로의 생명을 기르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11. 내 뜻은 이와 같이 사람 안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심장 박동과 같이 그 영혼의 생명을 순환시키고, 그의 모든 행위에 생명을 준다. 하지만 내 뜻은 이성을 가진 피조물, 곧 사람 안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피조물 안에서도 첫 자리를 차지하고 생명의 박동으로서 순환한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어떤 조물도 내 뜻의 능력과 무한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12. 이를테면 내 뜻은 푸른 하늘의 생명이고, 이 창공의 하늘색을 언제나 새롭고 생생하게 유지한다. 내 뜻이 그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니, 그 색깔이 바래거나 변하거나 희미해지지 않는다. 내 뜻은 한번 정한 것을 바꾸는 법이 없다.
13. 내 뜻은 또 태양의 빛과 열의 생명이니 이 생명의 고동으로 그것의 빛과 열을 언제나 똑같고 활기차게 유지한다. 내 뜻 안에 고정시켜 변화를 타지 않게 하며, 그것이 온 세상에 베풀기로 되어 있는 선을 증감시키지 않게 하는 것이다.
14. 그리고 내 뜻은 바다의 생명으로서 철썩이는 물소리와 고기들의 재빠른 몸놀림과 파도들의 노호를 이룬다. 오, 내 뜻은 자신이 지닌 능력을 한껏 드러내 보이면서 어찌나 장엄하고 절대적인 지배력으로 조물들 안에 그 생명을 펼치는지 바닷물은 철썩대지 않고 있을 수 없고 고기는 쏜살같이 달리지 않고 지낼 수 없다.
15. 더욱이 바다에서 철썩이는 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내 뜻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내 뜻이 고기들 안에서 쏜살같이 달리고, 내 뜻이 파도를 이루어 그 노호로 자신의 소리를 듣게 하며, 내 뜻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하면서 자신의 생명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16. 내 뜻은 또한 재잘대는 새 안에, 삐악삐악 하는 병아리 안에, 매하고 우는 어린양 안에, 구구거리는 멧비둘기 안에, 무성하게 자라는 풀잎 안에, 모든 이가 마시는 공기 안에 있는 생명의 박동이다. 말하자면 내 뜻은 모든 것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고, 그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원하는 행위들을 조성한다. 그러므로 창조된 만물 안에서 조화를 유지하면서 그들 각자가 지닌 다양한 효과와 색채와 역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17. 한데 내 뜻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것은 내가 지어낸 창조물의 수만큼 많은 내 뜻이 다양한 행위로 사람에게 나 자신을 알리고 그에게 가서 사랑을 청하며 그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내 사랑은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내 뜻을 생명의 박동으로 두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다른 모든 피조물 안에도 내 뜻을 두고자 하였고, 그리하여 내 뜻이 사람의 외부에서도 그를 떠나지 않게 하였다.
18. 그것은 내 뜻이 자신의 거룩함 안에 사람을 보존하며 성장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모든 피조물이 그를 격려하는 자극제와 본보기와 목소리로서 끊임없이 그를 부르게 하여 그가 언제나 내 뜻을 이루는 길을 달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창조한 오직 하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19. 그러나 사람은 모든 피조물의 그 숱한 소리에 귀를 막고, 그 숱한 본보기에 눈을 감고 있다. 눈을 뜰라치면, 보이는 모든 것을 그 자신의 뜻에 갖다 붙인다.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권고한다. 내 고통을 가중시키며 네가 창조된 목적을 잃고 싶지 않거든, 결코 내 뜻 밖으로 나가기를 원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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