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51, 인간이 저지르는 죄의 압도적인 무게.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잠을 자는 것도 신적 정의의 징벌을 막는 방벽이 된다.
1924년 4월 8일
1. 예수님의 부재가 계속되고 있어서 나날이 산(生)연옥에서 지내고 있는 셈이다. 죽어 가고 있음을 통감하면서도 정작 죽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분을 부르며, 미친 듯 소리소리 질러대도 헛일이다. 마음속에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이 만약 외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라면, 너무 불쌍한 나머지 돌덩이마저 눈물을 줄줄 흘릴 것이다.하지만, 아아, 슬프다! 아무도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나를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하셨던 예수님 자신마저!
2. 한데 내가 고통의 절정에 있었을 무렵, 나의 생명, 나의 전부, 나의 사랑이신 예수님께서 내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더니 양팔로 요람을 만드시고 “자장자장, 내 아기, 네 예수의 팔 안에서 잘도 잔다. 자장자장, 내 아기.”하시며 나를 살살 흔들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것을 보시면 또 “자장자장, 내 아기.”를 되풀이하셨다.
3. 그러므로 저항할 수 없어진 나는 훌쩍훌쩍 울면서도 마지못해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곤 하였다. 도무지 깨어날 수가 없어서 그렇게 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자고 나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붙안으시고 내 가슴께에 기대셨는데, 그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 으깨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래도 완전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오! 그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건만, 쏟아지는 잠 때문에 입 한 번 벙긋할 수 없었던 것이다.
4. 이와 같이 각성과 수면 상태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몹시 애를 쓴 끝에 정신을 차려 보니,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심한 고통을 겪고 계시는 중이었고, 그 와중에 기도(氣道)가 막혀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저의 사랑이시여, 그렇게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을 겪으시면서 저는 잠들기를 바라십니까? 왜 그것을 저랑 같이 겪지 않으십니까? 저는 잠자기를 원하시면서 당신께서는 어째서 저와 함께 주무시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은 무척 괴로워하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사람들이 내게 주는 모욕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그 고통에 빠져 익사할 것만 같다. 이 고통을 너와 나누려고 한다면, 너는 견딜 수도 살아남을 수도 없을 것이다. 너는 내가 그들의 엄청난 무게에 짓눌리고 있음이 느껴지지 않느냐? 내가 네 안에 있으니 너도 어쩔 수없이 그 무게를 함께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잠을 함께 잘 수 없는 것은, 내가 그러기를 원한다면 내 정의가 인간에 맞서 거침없이 징벌을 토해 낼 것이고, 그러면 세상은 마구 굴러 떨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 눈을 감으시자, 과연 세상이 마구 구르고 만물이 창조 질서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물과 불과 땅과 산 등등이 뒤죽박죽 서로 뒤섞이고 있었고, 급기야 살기(殺氣)를 내뿜으며 인간을 해치려고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요란한 난장판을 대체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자지러지도록 깜짝 놀란 나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 눈 좀 뜨십시오! 주무시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얼마나 어지러이 뒤섞여 있는지 보이지 않으십니까?”
7.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보았느냐, 딸아? 그러니까 내가 잠잘 수 없는 것이다. 그저 눈만 감고 있어도... 얼마나 많은 재앙이 닥치는지 네가 안다면... 그럴수록 너는 잠잘 필요가 있다. 완전히 죽어 쓰러지는 모습을 내가 보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알아 두어라. 나는 너를 내 뜻의 중심에 두어, 너의 잠도 내 정의를 막는 하나의 방벽이 되게 하였다. 내 정의가 인간에게 쏟아 마땅한 징벌을 다시 내리고자 할 때 말이다.”
16권-52,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산 제물로 사는 영혼의 역할.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처럼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영혼에게는 발길을 돌리실 뿐 강요하지 않으신다.
1924년 4월 11일
1. 계속 멍하고 졸리는 상태다. 내 능력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잠시 정신이 깨어 뭔가를 좀이라도 이해하게 되면, 그때에는 어떤 그늘이 나를 에워싸고 있음을 느낀다. 이 그늘은 나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심줄까지 나를 완전히 덮어 보호하면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그리워하며 열망하게 한다. 오!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벗어날까 봐 얼마나 두려운지!
2. 그런데, 예수님께서 앞서 말씀하셨던 징벌과 만물의 그 요란한 난장판을 본 것으로 인해 걱정이 태산인 차에, 지난 며칠 동안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큰 재난 소식도 몇몇 사람들을 통하여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 지역들이 온통 쑥대밭이 될 정도로 심각한 재난이었다.
3. 하지만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이르셨다.
“딸아, 이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더 세게 나아가 땅의 표면을 깨끗이 정화할 작정이다. 너무 역겨워서 참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4. 나는 어느 때보다 마음이 더 답답해졌고, 그래선지 며칠 전에 보았던 자연의 요란한 공격이, 그 끔찍한 광경이 뇌리에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방식대로 기도를 다시 시작하면서 사랑하올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5. “당신께서는 징벌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셨으니, 저는 이제 고통을 받을 수도 사람들이 받아 마땅한 재앙을 면하게 할 수도 할 수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 산 제물의 신분에서 저를 자유롭게 하실 수도 있고, 아니면 잠시 그 결정을 보류하실 수도 있습니다. 보류해 주신다면 제가 재앙을 면하게 할 사람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6. 그러자 예수님께서 “딸아, 나는 네 마음을 언짢게 하고 싶지 않다. 이 신분으로 남아 있기를 네가 원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하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될까 두려워 즉시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의 사랑이시여, ‘네가 원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시지 말고, ‘나는 네가 이 신분으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라고 해 주십시오. 그것이 제 뜻이 아니고 당신 뜻에서 온 것이라면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기쁘게 하려고 하시지 말고 제 안에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하였다.
7. “너를 언짢게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를 기쁘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니 네가 그대로 있기를 원하면 그대로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내 정의가 스스로의 진로를 따라가기를 원하는 만큼 너와 나는 부분적으로 항복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의 확실한 권한이 있으니, 이를 완전히 도외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8. 그렇지만 나는 너를 내 뜻의 중심에서 산 제물의 신분으로 있도록 두었기에, 네가 잠을 자든 고통을 받든 기도를 하든 어느 때나 내 정의에게 방벽이 된다. 거의 전면적인 파괴의 진로를 막기 위한 방벽 말이다. 왜냐하면 이는 징벌일뿐만 아니라 멸망에 관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9. 그러나 이것을 알아 두어라. 나는 너에게 강요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격다짐으로 요구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겠느냐?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태 안에 강생한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자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원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나는 거기로 갔고, 태어날 자리를 얻으려고 이 집 저 집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러고자 했다면 내 전능으로 완력을 써서, 태어나기에 보다 안락한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
10. 강요하지 않고 다만 문을 두드리며 묵어갈 방을 청하는 것으로 그쳤고, 또 다른 집들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발길을 돌렸을 뿐이다. 결국 아무도 나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누군가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차라리 동굴로 가서 태어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이 동굴에서는 짐승들이 기꺼이 나를 맞아들였고, 그들의 창조주인 내게 첫 경배를 하기도 하였다.
11. 그렇지만 베들레헴 사람들은 그 거절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왜냐하면 내 발바닥이 그들의 땅을 밟는 은혜든지, 또는 내가 그들 가운데 있음을 보는 은혜를 다시는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2. 나는 강요받지 않고 움직이는 자발성을 좋아한다. 그러니 영혼이 내가 원하는 것을 그 자신의 것으로 삼고, 마치 내 것이 아니고 자기 것인 양, 나에 대한 사랑으로 그것을 아낌없이 내게 주는 것을 좋아한다. 강요는 노예나 종이나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나를 자기 안에 받아들여 내가 원하는 것을 함께할 완전한 자유를 내게 줄 용의가 없는 영혼들에게서는 발길을 돌리고 만다.”
16권-53, 예수님과 함께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는 고통을 겪다.
고통이 예수님에게서 오는지 아닌지 식별하는 방법.
1924년 4월 23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깊은 잠까지 보태지는 바람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 되곤 한다. 내 예수님의 그늘이 나를 에워싸고 있음을 느끼지만, 그분께서 나에게 철제 윗옷을 입히신 모양이어서 이것이 나를 옴짝도 못하게 하고 내게서 생명을 앗아가며 정신을 멍하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2. 내 안에 얼마나 통탄할 변화가 일어났는지! 잠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내가 아닌가? 사실 나는 옅은 잠만 들어도 깜짝 놀랐고, 자고 있는 동안에도 내적인 의식은 잠들지 않았으므로 내 심근(心筋)의 움직임과 내 생각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그것을 돌려드리기 위함이었고, 그분 수난의 모든 시간과 그 고통을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또는 그분 뜻의 무한성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그분께서 모든 피조물로부터 받기를 원하시는 모든 것과 그 행위들을 돌려드리곤 하였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이 끝나고 만 것이다.
3. ‘저의 예수님, 이 가련한 영혼이 얼마나 쓰라린 고통, 얼마나 비통한 바다 속을 헤젓고 다니기를 원하십니까! 오, 부디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저를 떠나지 마십시오. 버리지 마십시오. 당신께서 친히 저는 작다고, 아니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작다고, 갓 태어난 아기라고 말씀하신 일이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그러니 당신께서 저를 떠나신다면, 도와주시지도 않고 더 이상 저에게 힘을 주시지도 않는다면, 이 갓난쟁이는 영락없이 죽고 말 것입니다.’
4. 그런 처지에 놓여 있어선지, ‘이 그늘로 나를 덮어 옴짝도 못할 상태로 있게 하는 것이 악마가 아닌지 누가 알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어느 때보다 더 엄청난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바퀴 하나를 들고 오셔서 한쪽 가장자리를 내게 기대어 놓으시고, 완전히 비탄에 잠긴 어조로 말씀하셨다.
5. “딸아, 인내하여라. 이것은 우리를 짓누르는 세상의 무게다. 그러나 한쪽 끝만 너에게 기대어 놓아도 내가 온 세상을 끝장내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아!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기와 거짓과 악행들을 저질러대는지를 네가 안다면! 얼마나 음흉한 파멸의 음모들을 은밀히 꾸며대며 멸망의 구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있는지를 안다면... 그것이 하느님 정의의 저울눈을 초과할 정도이니, 갈수록 육중하게 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된다. 이런 이유로 온 세상에 큰 재앙들이 닥칠 것이다.
6. 그 외에도, 너는 어째서 너를 이 상태에 두는 것이 원수일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것이냐?
원수가 사람을 괴롭힐 때에는 자포자기와 성마름과 내적 혼란을 던져 넣는다.
반면에 그것이 나일 경우에는 사랑과 인내와 평화와 빛과 진리를 불어넣는다.
네가 원수일지 모른다고 두려워할 만큼, 성마름과 자포자기를 경험한 적이 있었느냐?”
7. “그런 적은 없습니다. 저의 예수님, 오히려 끝없이 깊은 바다 속에, 곧 당신의 뜻 안에 푹 잠겨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두려워한 것은 오직 이 끝없이 깊은 바다 밖으로 나가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할 때면, 파도가 더욱 세차게 저를 덮쳐 한층 더 깊이 잠기게 했습니다.” 하고 내가 대답하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8. “바로 그 때문에 원수가 근접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내 뜻의 바다의 끝없이 깊은 심연에 잠겨 있는 동안, 이 바다의 파도가 너를 보호하며 원수의 그림자마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원수는 사실 영혼이 내 뜻 안에서 행하는 것과 겪는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내 뜻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수단이나 길 또는 문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내 뜻이야말로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9. 그러므로 이따금 내 지혜가 영혼이 내 뜻 안에서 행하는 어떤 것을 드러내 보이면, 원수는 그의 지옥 고통이 배가됨을 느낄 정도로 길길이 뛰며 격분한다. 내 뜻은 이를 사랑하며 이루는 영혼 안에 낙원을 만들어 세우지만, 사랑하지도 이루지도 않는 영혼 안에는 지옥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니 악마의 덫에 걸리지 않고 안전하게 있고자 한다면, 내 뜻을 마음에 새기고 끊임없이 이 뜻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16권-54, 지상의 당신 인성 안에서 보셨던 영예와 영광을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영혼 안에서 보시는 예수님
1924년 5월 9일
1. 날이면 날마다 더할 수 없이 깊은 고통과 예수님의 깊은 침묵 속에서, 그리고 사랑하올 그분의 현존이 거의 완전히 박탈된 상태로 지내고 있다. 내가 느끼는 이 고통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고, 표현하면 훨씬 더 심한 고통이 될 터이니, 차라리 입 다물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2. 그렇게 고달프기 짝이 없는 날들을 보내고 나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 나의 내면에 나타나시어 당신 자신으로 나를 완전히 채워 주셨다. 예수님의 이 뜻밖의 현존과 마주친 나는 그럼에도 그 동안의 부재에 대하여 불만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분은 그러나 내게 그럴 겨를을 주시지 않고 침통하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정말 너무 괴롭구나! 피조물이 내게 세 개의 못을 박았다. 양손이 아니라 내 심장과 가슴에 박았고, 이것이 죽음의 고통을 겪게 한다. 그들은 더없이 흉악한 세 가지 음모를 꾸미고 있고, 이 음모들은 내 교회를 겨냥하고 있다. 인간은 악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는다. 반대로 그 악한 질주에 박차를 가하려고 든다.”
4.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비밀 집회들을 보여 주셨는데, 그들은 어떻게 교회를 공격할 것인가에 대해 모의하고 있었다. 어떤 자들은 새로운 전쟁을, 또 어떤 자들은 새로운 혁명을 음모하고 있었으니, 끔찍한 죄악들이 많기도 많아 보이는 것이었다. 그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말씀을 다시 계속하셨다.
5. “딸아, 내 정의가 무장을 하고 인간을 치는 것이, 땅을 더럽히는 수많은 생명들을 거의 전멸시키고 그들과 함께 전 지역들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그래야 이토록 많은 유해한 생명들을, 얄팍한 선의 탈을 쓰고 교회와 사회의 파멸을 꾀하는 숱한 악마의 화신들을 땅에서 깨끗이 없앨 수 있지 않겠느냐?
6. 네 생각에 나의 부재가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 같으냐? 아니다. 아니다. 그 반대다. 내가 너에게 부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징벌이 그만큼 더 심각해질 것이다. 내가 너에게 내 뜻에 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해 보아라. 그러니 재앙과 파괴들도 내가 했던 말을 - 내 뜻이 땅에도 와서 다스릴 것을 이루는 데에 쓰일 것이다. 내 뜻은 땅이 정화되어 있는 것을 보기를 원하고, 땅을 정화하려면 파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7. 그러니, 딸아, 인내하고, 절대로 내 뜻 밖으로 나가지 마라. 네 안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내 뜻이 승리를 거둔 듯 주권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 가운데서 다스리게 할 이 사업에 소용될 것이다.”
8. 나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순순히 몸을 맡겼다. 그렇다. 하지만 몹시 고통스럽다. 세상에 닥칠 심각한 재앙과 그분의 부재가, 생각만 해도 쌍날칼같이 나를 죽이고, 더욱 괴롭게도 죽게 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9. 다정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튿날 아침에도 나의 내면에 나타나셨다. 마치 그 안에 깊숙이 잠겨 계신 듯한 모습으로 내게 이르셨다. “딸아, 나는 네 안에 위치하고 있다. 네 안에서, 세상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고 있다. 네 안에 내 뜻의 공기가 있기에, 내가 내게 어울리는 품위를 갖추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10. 내 뜻은 어디든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 내 뜻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사람이 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보이는 곳에서는 얼마나 특별한 모양으로 있는지 모른다! 다른 곳에서는 내 뜻이 사람들 가운데 있으나 홀로 고립된 채 모욕을 받고 있어서 스스로 지닌 재산을 가져다줄 수 없고, 온전히 내 뜻으로부터 내 뜻을 위한 생명을 형성할 수도 없다.
11. 그와 반대로 내 뜻이 아닌 생명은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내 눈에 띄는 곳에서는 내 뜻이 동반자를 얻고 사랑을 받기에, 스스로 지닌 재산을 내놓고 이 재산을 그 사람과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내 뜻으로부터 내 뜻을 위한 생명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12. 그리고 그 영혼 안에 나 자신의 것들이, 즉 나의 거룩함과 빛과 그 안에서 활동하는 나의 뜻이 있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이 영예와 영광에 싸여 있음을 느낀다. 이는 내가 지상에서 사는 동안 내 인성 안에 있었던 것과 똑같다. 내 인성 안에서 살고 있었던 내 신성이 내 인성이라는 옷에 감싸여 이 안에 위치해 있었으니 말이다. 이와 한가지로 나는 내 뜻을 이루는 영혼을 옷 삼아 나 자신을 감싸고 있다. 나 자신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그 사람 안에 숨어 살고, 그의 내면에서 사람들의 죄악을 보고 울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13. 만약 그들 중 한 사람이 이 땅에서도 내 뜻을 생명으로 지니고 있음을 보면,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수많은 재앙과 징벌을 거두어들이지 않겠느냐? 저질러지는 중대한 악행들 때문에 내가 그들을 죽이고 숫제 끝장을 내려고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너를 보고, 또 내 뜻과 내 뜻의 성채가 네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내 자리에 앉아 그렇게 하기를 그만두곤 한 것이다.
14. 딸아, 그러니 참고 견뎌라. 그리고 내 뜻이 언제나 네 안에서 완전한 생명을 가지고 있게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