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44, 하느님께서 창조의 순수한 기쁨을 누리신 것은 원조가 죄를 짓기 전과 복되신 동정녀의 탄생, 말씀께서 지상에 강생하셨을 때였다.
마침내 피조물이 당신 뜻 안에서 살게 될 때 이를 영구적으로 누리시리라.
하느님 뜻의 신적이고 천상적인 새로운 법에 대하여.
1924년 2월 22일
1. 위에서 쓴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복되신 주님께서 여러 세기가 흐른 이후에도 창조의 순수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셨다니, 그래서 이 기쁨과 영광 및 만물이 창조된 목적을 얻어 내시려고 사람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기를 기다리고 계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 나타나셔서 내 지성에 한 줄기 빛을 보내시며 이 빛을 통해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창조의 순수한 기쁨을, 피조물과 함께 티없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적 간격을 두고 누린 기쁨이었고 지속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안정감이나 지속성이 없는 것은 애틋함을 가중시키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람에게 다시 누리고 싶은 갈망을 더욱 키우는 원인이 되기에, 이를 영속화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3. 우선 나는 만물을 만들어 낸 뒤 사람을 창조했을 때 창조의 순수한 기쁨을 누렸다. 이 기쁨은 사람이 죄를 짓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때까지 사람과 우리 성삼위 사이에는 지고한 일치, 공유하는 기쁨, 무구(無垢)한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팔을 벌려 그를 껴안았고, 그에게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은총을 주었다. 주면서 우리는 너무나 즐거웠으므로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나 사람에게나 끊임없는 축제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주는 것이 기쁨이요 행복이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4.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짓고 그 자신의 뜻을 우리의 뜻에서 뜯어내자마자 그 즉시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다. 사람 안에 우리의 뜻이 완전하게 자리하지 않게 되었기에, 행복의 생명을 주고받으며 이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상호적인 흐름이 종적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람 안에 우리의 뜻이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선물들을 받아들여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사라지고 말았다.
5. 두 번째로 우리가 창조의 순수한 기쁨을 누린 것은, 오랜 세기가 흐른 뒤에 원죄 없는 동정녀가 탄생했을 때였다. 이 동정녀는 죄의 그림자도 없을 뿐더러 전적으로 완전하게 우리의 뜻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그사람과 우리 사이에, 그의 뜻과 우리의 뜻 사이에 추호의 틈도 없었다. 그 사람은 마치 창조의 모든 즐거움을 그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은 듯한 모양으로 우리에게 가져다주었고, 우리도 엄청나게 많은 것을 그에게 주었다.
6. 더 이상은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순간마다 새로운 은총과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풍요하게 해 주었으니, 우리는 그렇게 많이 주면서 즐거움을 누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만물의 여왕인 이 피조물은 지상에 오래도록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하늘로 들어오자, 지상에서 우리의 즐거움을 영속화하면서 우리에게 창조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피조물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7. 세 번째로 우리가 창조의 순수한 기쁨을 누렸던 것은, 영원한 말씀인 내가 하늘에서 내려와 인성을 취했을 때였다. 아! 내 사랑하올 엄마께서 내 뜻의 완전한 소유로 하늘과 땅 사이의 흐름을 개통하시어, 모두를 - 하늘과 땅의 모든 주민을 축제의 기쁨 속에 있게 하셨기에,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며 그토록 거룩한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나를 그 동정 모태에 잉태되게 하시고 그에게 신적인 다산(多産)의 능력을 주시어, 나로 하여금 위대한 구원 사업을 완성할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8. 만일, 내 뜻 안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면서 자기 자신의 뜻은 없는 사람처럼 살았던 이 동정녀 - 내 의지 안에서 완전한 삶을 삶으로써 창조의 기쁨과 우리 성삼위의 즐거움을 현행적인 것으로 만든 이 탁월한 동정녀가 없었다면, 영원한 말씀이 인류 구원 사업을 이루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9. 그러니 보아라. 내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굉장한 것이냐! 이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즐거운 것이고, 하느님의 마음을 가장 세게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러니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하느님을 이겨, 하느님으로 하여금 하늘과 땅이 깜짝 놀랄 만큼 큰 선물을 주시게 한다. 여러 세기가 흐르고 또 흐르는 동안 사람이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선물 말이다.
10. 오! 내 인성은 바로 지고한 뜻의 생명을 내포하고 지상에 있었으므로, - 더구나 그 뜻과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 모든 기쁨과 영광과 모든 피조물의 사랑의 보답을 전적으로 완전한 모양으로 하느님께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너무나 기쁘신 나머지 내게 모든 것을 지배할 최고권과 모든 민족들을 심판할 권리를 주셨다.
11. 또한, 오, 피조물은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 왜냐하면 그들을 끔찍이 사랑하기에 구원하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었던 그들 자신의 형제가 자기네 심판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모든 목적이 내 안에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시고, 당신 자신은 모든 것을 벗으신 것처럼 피조물에 대한 권한을 전부 나에게 주셨다.
12. 그러나 내 인성은 하늘로 올라갔다. 따라서 하느님 의지 안에서의 완전한 삶을 영속화하면서 우리의 뜻 안에서 만인과 만물 위로 떠올라 우리에게 순수한 기쁨을 가져오고 우리로 하여금 지상의 한 피조물과 무구한 즐거움을 계속 누리게 할 사람이 이 땅에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쁨은 중단되었고, 우리의 즐거움은 땅 표면에서 망가진 상태로 있었다.”
13. 나는 이 말씀을 듣고 그분께 "저의 예수님,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과연 우리 엄마께서 하늘로 올라가셨고, 당신 인성도 올라가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천상에서도 무구한 즐거움을 계속 누리실 수 있을 만큼 당신과 함께 기쁨을 가져오지 않으셨습니까?"
14.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상의 기쁨은 우리 자신의 것이니 아무도 이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고 감소시킬 수도 없다. 하지만 지상에서 오는 기쁨은 우리가 얻어 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이 게임은 바로 새로이 획득하는 기쁨으로 이루어진다. 새로운 획득 여부가 승패를 가르는 것이다. 패배할 경우에는 애통에 빠지기 마련이다.
15. 딸아,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내가 지상에 왔을 때에, 인간은 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었고, 온통 인간적인 뜻만이 가득한 상태여서, 내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자리할 곳을 찾아볼 수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구원 사업을 하면서 우선 내 뜻을 따르는 은총부터 받도록 빌어 주었다. 인간이 처해 있는 상태로 볼 때, 내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16. 그런 다음에야 나는 인간이 내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곧 모든 은총의 절정이며 완성인 최대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빌어 주었으니, 이는 우리 창조의 순수한 기쁨과 무구한 즐거움이 땅 표면에서 다시 시작되게 하려는 것이다. 보아라, 창조의 참되고 순수한 기쁨이 중단된 이래 근 이 십 세기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뜻을 소유하도록 맡길 만큼 충분한 수용력을 가진 인간을, 인간적인 뜻으로부터 온전히 이탈한 인간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7. 이제 우리는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인간 세대들과 보다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한 피조물을 선택해야 했다. 내가 만일 사람들 앞에 내 엄마를 모범으로 세웠다면 그들은 '그분은 아무런 흠도 없고 원죄마저 면함을 받으셨으니 어떻게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시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하면서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을 것이고, 한 번도 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내가 나의 인성을 모범으로 세웠다면 그들은 한층 더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분은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셨고, 하느님의 뜻이 그분 자신의 생명이었으니, 당연히 그 지고하신 의지 안에서 사셨을 거야'
18. 따라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이 삶이 내 교회 안에서 생명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나는 사닥다리를 딛고 내려가서, 더 아래로 내려가서, (보통)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한 사람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에게 충분한 은총을 주어 그 영혼 안에 내 길을 내면서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비우고 인간적인 뜻이 끼치는 큰 해악을 깨닫게 하여, 자신의 뜻을 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정도로 그것을 혐오하게 하였다.
19. 그런 다음 내 뜻을 선물로 주고, 내가 스승의 자세를 취하면서 그에게 내 영원한 뜻 안에서 사는 길과 그 모든 아름다움과 능력과 효과와 가치를 알게 하였다. 그 사람을 내 뜻 안에서 살게 하려고 그 안에 내 뜻의 법을 세워 주었던 것이니, 내가 구원 사업에서 복음과 성사들과 가르침을 구원 사업을 계속하기 위한 기초적 생명으로 제정했던 것과 같이, 여기에서도 내가 두 번깨 구원 사업을 하듯이 행동한 것이다.
20. 만약 내가 (구원 사업에서) 기초로 삼을 만한 것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무엇에 의지했겠느냐? 어떻게 행동해야 했겠느냐? 그러니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해서도 내가 마찬가지로 행동해 왔다는 것이다. 사실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너에게 주었더냐? 얼마나 여러 번 너의 손을 잡고 이끌어 내 영원한 의지 안을 날아다니게 했더냐? 그래서 너는 모든 피조물 위를 감돌며 창조의 순수한 기쁨을 하느님의 발치에 가져오고, 우리는 너와 함께 즐거워하곤 하지 않느냐?
21. 이제 사람들은 외관상 자기네와 별로 다르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택한 것을 보고 용기를 내게 되리니,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가르침과 길을 찾아내고, 이 삶에 내포된 크나큰 선을 알고, 이를 그들의 소유로 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창조의 순수한 기쁨과 우리의 무구한 즐거움이 더 이상 땅 표면에서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22. 그리고 우리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각 세대마다 한 명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축제일 것이고, 그 축제들 속에 언제나 더 큰 선물이 드러날 것이기에 그 사람은 더 관대하게 베풀게 될 것이다. 오! 그런 이들은 땅을 위해 좋은 것들을 많이도 얻어낼 것이고, 그러면 그들의 창조주는 땅의 드넓은 평원에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23. 그런즉, 사랑하는 딸아, 나의 가르침에 정신을 집중하여라. 이는 나로 하여금 하나의 법을 제정하게 할 가르침이다. 이 법은 지상적인 것이 아니라 천상적인 법이요, 단순한 성화의 법이 아니라 신적인 법이며, 더 이상 지상 주민과 천상 주민의 구분이 없게 할 법이다.
24. 그것은 사랑의 법으로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피조물과 그의 창조주 사이의 결합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애면서 창조주의 모든 재산을 공유하게 하고, 피조물에게서 모든 나약과 원죄의 비참을 제거할 법이다. 이 내 뜻의 법은 본성적인 악을 잠재우고 신적인 선의 감미로운 매력으로 대치할 정도로 영혼 안에 큰 힘을 넣어 줄 터이니, 이와 같이 영혼을 매력있게 만드는 데에 쓰일 것이다.
25. 상기해 보아라. 너는 네 영혼 깊은 곳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아주 여러 번 보지 않았느냐? 그것은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새로운 법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우선 즐겨 그것을 쓰면서 너의 수용 능력을 키웠고, 그다음에 스승의 자세를 취하면서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26. 또 너는 네 영혼 깊은 곳에서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나를 아주 여러 번 보지 않았느냐? 그것은 내가 내 뜻의 위대한 역사(役事)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너는 그러나 너에게 말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이제는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아아! 내 뜻이 네 위에 자신을 쏟아 부으며 너의 용량를 키우고, 너를 내 뜻 안에 굳건하게 하며, 내가 너를 가장 사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러니 너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탐색하려고 들지 말고, 언제나 내 뜻 안에서 마음 편히 쉬어라.“
6권-45, 구원 사업의 법과 재산을 어머니께 다 맡기신 것처럼 당신 뜻의 영원한 법의 기초와 그 이해에 필요한 가르침을 전부 루이사에게 맡기고자 하신 예수님.
하느님 뜻에 대한 말과 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는 오직 한마디, 단 하나의 행위도 무한한 선을 내포한다.
1924년 2월 24일
1. 하느님의 뜻 안에 잠겨 있음을 느끼면서 속으로 문득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뜻에 대한 말씀을 다른 영혼들에게는 얼마나 더 많이 하실까! 이리도 자격 없고 무능한 내게 그토록 많은 말씀을 주셨으니, 나보다 선량한 이들에게는 더 숭고한 말씀을 더 많이 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나는 구원 사업의 모든 법과 재산을 글로 써서 내 사랑하올 엄마의 성심에 맡겼다. 그것은 옳고도 마땅한 일이었다. 그분은 내 뜻 안에서 사신 첫 사람이어서 나를 하늘에서 당신 태 안으로 끌어당겨 잉태하셨으니, 구원 사업의 모든 법을 알고 그 모든 재산을 맡아 보존하는 보고(寶庫)가 되실 수 있었던 것이다.
3. 내가 공생활을 위해 밖으로 나가서 이를 사람들에게, 사도들에게 드러내었을 때에, 나는 거기에 점 하나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 나를 본받아) 사도들과 온 교회도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했던 말과 행위에 그 무엇도 달리 덧붙이지 않았다. 교회가 다른 어떤 복음을 덧붙이거나 다른 어떤 성사를 제정한 적이 없었고, 언제나 내가 행하고 말했던 것에 전적으로 의거애 온 것이다.
4. 이와 같이 처음으로 부름 받은 사람은 내가 온 인류에게 베풀고자 하는 그 모든 선의 토대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사실 복음에 주석을 붙이며 내가 행하고 말했던 모든 것에 대해 많은 글을 써 왔다. 그렇지만 결코 나의 원천, 곧 내 가르침의 원천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5. 내 뜻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네 안에서 내 뜻의 영원한 법의 기초를 넣어 두었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이해시키는 데에 필요한 것과 필요한 가르침도 넣어 두었다. 교회가 이에 대한 해설 및 주석을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원천에서 - 내가 제정한 원천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만약 이 원천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빛이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 머무르게 될 터, 빛을 원한다면 원천으로, 곧 나의 가르침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6. 이 말씀을 두고 나는 이렇게 내 심정을 토로하였다. “저의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임금들이 법을 제정할 때에는 제정하려는 법의 증인으로 대신들을 불러들입니다. 그 법을 대신들의 손에 맡기고 반포하도록 하여, 백성들이 준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저는 대신이 아닙니다. 대신이기는커녕 너무나 작고 무능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도무지 없습니다.”
7. 그러자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나는 큰 사람들을 마주하는 세상의 임금들과 같지 않다. 작은 사람들을 마주하기를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작은 사람들은 마음이 더욱 온순해서 아무것도 자신들의 공로로 돌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다 나의 자애 덕분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8. 하지만 이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한 사람의 대신을, 곧 나의 한 성직자를 뽑았다. 현재의 이 처지에 놓여 있는 너를 돕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이 성직자가 날마다 너를 깨우러 오는 것을 면해 달라고 네가 아무리 빌어도 나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또 네가 그 (마비) 상태에 다시 떨어지는 일이 없게 되더라도 그의 보조 없이 지내게 하지 않을 작정이다.
9. 네가 내 성직자 중 한 사람과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로 하여금 내 뜻의 법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가르침을 알게 된 그가 이토록 거룩한 법의 증인이며 수탁인이 될 것이고, 내 충실한 성직자로서 내가 내 뜻이 알려지게 하면서 내 교회에 베풀고자 하는 이 큰 선을 교회 안에 널리 공표하게 될 것이다.”
10. 그 후 나는 거룩하신 뜻 안에 잠겨 있었다. 어찌나 깊이 잠겨 있었는지 마치 끝없는 바다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하느님의 뜻을 한 방울씩 먹고 또 먹는식이어서,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 내 용량을 초과할 정도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11. ‘오, 저의 예수님, 당신의 뜻은 얼마나 크고, 깊고, 높고, 끝없고, 거룩하신지! 당신께서는 이 뜻에 관한 것을 저에게 통틀어 다 넣어 주기를 원하시지만, 저는 작아서 그 안에 빠져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이해시키고자 하시는 것을 제가 알아듣기를 원하신다면, 조금씩 차츰차츰 넣어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께서 제가 알리기를 원하시는 이에게 알려 줄 수 있겠습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딸아, 과연 내 뜻은 끝이 없다. 영원 전체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내 뜻에 대한 단 한마디의 말과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단 하나의 행위가 얼마나 큰 선을 내포하는지를 네가 안다면, 놀라 까무러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행위로 마치 자기 수중에 넣는 것처럼 하늘과 땅을 차지한다.
13. 그런데 내 뜻은 모든 것의 생명이요 어디든지 흘러들기에, 그 사람은 내 뜻과 함께 피조물의 감정마다, 심장 박동마다, 생각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마다 그 속으로 흘러든다. 또한 창조주의 행위마다, 내가 행하는 모든 선 안에, 내가 피조물의 지성에 보내는 빛 안에, 내가 베푸는 용서 안에, 내가 보내는 사랑 안에, 내가 열정의 불을 붙이는 영혼들 안에, 내가 복을 내리는 복된 이들 안에, 곧 모든 것 안에 흘러든다.
14. 그러므로 그는 내가 행하는 선과 영원의 모든 지점 안에 자기의 작은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이야말로 참으로 내 뜻에 충실한 사람이어서 절대로 내 뜻을 홀로 버려두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내 뜻 안을 뛰어다녀라. 그러면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너 자신의 손으로 만지게 될 것이다.”
15.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뒤 나는 그분 뜻의 끝없는 바다 속에 뛰어들어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누가 다 말할 수 있으랴? 모든 것에 다가가며 어디든지 흘러들었는데,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나 자신의 손으로 만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를 글로 옮길 재간이 없다. 예수님께서 원하신다면 내게 더 큰 능력을 주실 터이니, 지금은 이쯤에서 펜을 놓겠다.
16권-46, 하느님께서 창조때 인간에게 주려고 하셨던 모든 선은, 인간의 뜻이 원래의 질서로 돌아오도록 기다리면서 그분의 뜻 안에 보류되어 있다.
1924년 2월 28일
1. 기도 중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 안에 계심을 느꼈다. 그분은 때로는 기도하시고, 때로는 고통을 받으시고, 때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러면서 매우 자주 내 이름을 부르시기에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예수님,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 중이십니까? 제가 보기에 당신께서는 퍽 바쁘신 것 같고 고통도 많이 겪으시는 듯합니다. 저를 부르시고는 다시 일에 몰두하시는 바람에 부르셨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시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니 말입니다.”
3. 그제야 예수님은 말씀을 시작하셨다. “딸아, 나는 과연 네 안에서 퍽 바쁘다. 내 뜻 안의 삶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 일을 내가 먼저 네 안에서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너의 내면 전체를 내 뜻의 무한한 빛으로 둘러 묶는다. 너의 인간적인 뜻이 내 뜻과 연결되면서 내 뜻 안에 그 자신의 자리를 가지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너의 뜻이 나의 뜻 안에서 넓어져, 하느님의 뜻이 인간의 뜻에게 주고자 하시는 모든 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4. 너는 이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창조 사업을 하시기로 결정하시자 피조물에게 주시기로 한 모든 것이, 곧 피조물에게 드러내 보이시고자 한 선물과 은총과 어루만짐과 입맞춤과 사랑이 그분 자신으로부터 나왔다. 하느님께서 태양과 별들과 푸른 하늘과 여타 모든 것을 내신 것과 같이, 영혼들을 부요하게 할 모든 은총들도 내셨던 것이다.
5. 그런데 인간은 하느님의 지고하신 뜻과의 관계를 끊으면서 이 모든 선물들도 물리치고 말았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것들을 자신 안으로 거두어들이지 않으시고, 그분의 뜻 안에 보류하신 채 인간의 뜻이 그분의 뜻에 연결되기를, 그리고 그분께서 지어내신 원래의 질서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분께서 주시기로 정하셨던 모든 선물들이 인간의 본성 안에 흘러들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6. 그러므로 사랑의 모든 기량과 입맞춤과 어루만짐과 선물과 의사 소통이,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내가 그와 함께 누리려고 했던 내 무구한 기쁨이 내 뜻 안에 보류되어 있는 것이다. 내 뜻은 따라서 피조물에게 주기로 정했던 이 선들의 무거운 더미를 스스로에게서 내려놓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법을 제정하여, 보류되어 있는 그 모든 선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 효율적으로 시행되게 하려고 한다.
7. 그래서 내가 네 안에서 일하고 있다. 너의 뜻과 하느님 뜻의 관계를 재정리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내가 시작하면, 이제까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정지되어 있었던 그 많은 선을 다시 흐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뜻과 하느님 뜻의 관계를 재정리하는 이 일이 내게는 너무나 큰 관심사이기에, 인간의 뜻이 완전히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게 될 때까지, 이를 얻게 될 때까지, 창조 사업의 첫째가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8. 더욱이 내가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은 그것이 내게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나 자신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고도 남았으니 말이다. 내가 그것을 창조한 것은 우리 성삼위가 우리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모든 선과 함께 우리 자신 바깥의 즐거움도 원했기 때문이다. 만물은 그래서 창조되었다.
9. 그리고 우리는 지극히 순수한 사랑의 강렬한 분출 안에서 우리의 전능한 입김으로 인간을 지어내었다. 우리가 이 피조물과 함께 즐기기 위함이었고, 그는 우리와 함께, 또 우리가 그에 대한 사랑으로 창조한 만물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게 하기 위함이었다.
10. 오직 우리를 기쁘게 하고 우리와 함께 즐기는 일을 하도록 되어 있었던 인간이 우리의 뜻을 멀리함으로써 괴로움을 끼치고, 우리와 함께 즐기는 대신 우리를 떠나 우리가 지어낸 것들과 그 자신의 정욕을 즐기면서 우리를 제쳐놓았으니, 이것이 우리의 목적을 결딴내지 않았겠느냐? 창조 사업의 모든 목적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았겠느냐 말이다?
11. 그러니, 보아라, 우리의 권한을 되찾고 피조물이 우리의 태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일이냐! 그래야 우리의 즐거움이 다시 시작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인간은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던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와서, 영원히 풀리지 않는 끈으로 그 자신을 우리의 뜻에 묶어야 한다. 자기의 뜻은 깨끗이 버리고 우리의 뜻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12. 이것이 내가 너의 영혼 안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니 너는 네 예수의 일을 따라 하여라. 네 예수는 선물들을, 내 뜻 안에 보류되어 있는 은총들을 흘러나가게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