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37, 맡김은 거룩하신 뜻과 함께 날기 위한 날개를 이룬다.
영원 및 영원한 순례란 무엇인가?
1924년 2월 2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 외에도 여기에 쓸 필요가 없는 다른 이유들 때문에 무척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셔서 기운을 북돋아 주시기 위해 나를 꽉 껴안으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괴로움에 눌려 쓰러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2. “딸아, 내 뜻은 만물의 생명이며 활동이다. 한데 너는 알고 있느냐? 누가 내 뜻의 활동에 따라 내 영원한 의지 안을 날아다니는지, 곧 내 뜻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영원의 영역 안에서 이 뜻이 행하는 대로 행하며 돌아다니는지를? 그것은 내 거룩한 뜻 안에 자신을 완전히 맡긴 사람이다. 맡김은 내 뜻과 함께 날기 위한 날개다. 이 맡김을 그치면 못 날게 되고 날개는 망가진다.
3. 내 뜻에서 나오지 않은 활동이란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내 뜻의 움직임과 생명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오직 나에 대한 맡김의 날개를 가진 사람만이 내 뜻이 가는 길과 같은 길을 따라가면서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위를 감돌며 영원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고, 하느님 성삼위의 한가운데를 돌아다니며 성삼위의 지밀(至密)한 곳 안에도 들어가 그분들의 신비와 지복을 알게 된다.
4. 그러니, 주된 바퀴가 중심에 있고 다른 작은 바퀴들이 이 바퀴 둘레에 고정되어 있는 엔진에 일어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중심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작은 바퀴들도 전부 움직이지만, 이 바퀴들은 중심 바퀴에 닿는 일이 결코 없고, 중심 바퀴가 행하는 것과 지니고 있는 좋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5. 그러나 고정되어 있지 않은 또 하나의 작은 바퀴가 있다. 이 바퀴는 어떤 장치에 의해 끊임없이 다른 작은 바퀴들을 가로질러 그 하나하나의 주위를 돌아다니고, 중심 바퀴가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이며, 다시 작은 바퀴들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 순회하는 작은 바퀴는 중심 바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있고, 중심 바퀴가 지닌 좋은 것에 동참한다.
6. 그 중심 바퀴는 바로 나의 뜻이다. 고정되어 있는 작은 바퀴들은 자신을 그 자신에게 맡기고 사는 영혼들이니, 이 점이 선을 행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순회하는 작은 바퀴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이고,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장치는 나에 대한 전적인 맡김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맡김이 없을 때마다 영원한 영역 안의 순례를 못하게 된다. 영원한 순례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네가 안다면!"
7. 나는 그 말씀을 듣고 물었다. “하지만 저의 사랑이시여,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영원이란 무엇을 뜻하며, 이 영원한 순례란 또 무엇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8. “딸아, 영원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나는지 사람이 알 수 없는, 무한대의 원(원)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영역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한없는 행복과 지복과 기쁨과 부와 아름다움 등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결코 그치지 않는 거룩한 활동을 하시고, 그때마다 이 영원의 영역에서 새로운 행복, 새로운 지복, 새로운 아름다움 등을 내신다. 그러나 이 새로운 행위는 서로 다른 것이지만 절대로 중단되는 법이 없는 현행적인 행위다.
9. 이를테면 우리의 만족들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면서도 언제나 새롭고, 우리의 지복들도 어찌나 많은지 그 중 하나를 즐기고 있는 동안 또 다른 것이 불현듯 우리에게 온다. 언제나 그런 식이며 결코 끝나지 않으니, 이들은 우리 성삼위처럼 영원하고 무한하다. 그리고 영원한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들을 생겨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영원한 것 안에는 옛것의 반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0. 한데 누가 하늘에서 결코 고갈되지 않는 이 새로움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되는지 너는 아느냐? 그것은 땅에서 더 많은 선을 실천한 사람이다. 이 선은 씨앗과 같아서 우리의 지복과 기쁨과 아름다움과 사랑과 선성 등에 대한 지식을 그에게 가져온다.
11. 그 영혼이 땅에서 실천한 선에 따라서 - 이는 우리의 다양한 지복과 얼마큼 조화를 이루기에 -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게 되고, 그가 그 씨앗을 지닌 지복을 밖으로 넘쳐흐를 정도로 존재 가득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영혼은 이 영원의 영역이 내포하는 모든 것에 참여한다. 땅에서 획득했던 씨앗 대신에 그 모든 것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12. 음악이나 어떤 임무, 또는 과학의 한 분야를 연구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아라. 음악이 연주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들으며 즐긴다. 그러나 누가 이해하겠느냐? 누가 기쁨이나 슬픔을 나타내는 그 모든 선율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느끼겠느냐? 누가 그 음악이 표현하는 광경을 현장에 있는 것처럼 보며 그것으로 마음이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을 받겠느냐? 그것은 음악을 연구한 사람,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다. 다른 이들은 그냥 즐기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들의 즐거움은 소리의 울림을 듣는 귓속에 있을 뿐 그들의 내면 전체는 비어 있는 것이다.
13. 과학적인 지식을 배워 익힌 사람에 대해서도 한가지로 말할 수 있다. 지치도록 책과 씨름하면서 여러 가지 과학적인 사물들을 알려고 공부한 사람과 그런 것을 다만 보기만 한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큰 즐거움을 누리겠느냐? 사실 깊이 연구해 온 사람은 정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고, 특별한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과학에 관련된 것을 볼 때에 다만 눈으로만 즐길 수 있을 뿐이다.
14. 여타 모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지상에서 그러하다면, 하물며 천상에서는 얼마나 더욱 그러하겠느냐? 천상에서는 정의가 사랑의 저울로 피조물이 행한 작은 선 하나하나의 무게를 재고, 그 선행 위에 끝없는 행복과 기쁨과 아름다움을 놓는다.
15. 그러니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 - 그의 모든 행위들이 영원하고 거룩한 씨앗과 함께 내 뜻 안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는 어떠하겠느냐? 영원의 영역이 이 영혼 위에 그 자신을 쏟아 부을 것이다. 천상 예루살렘 전체가 놀라서 기절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새로운 축제를 즐기며, 새로운 영광을 받을 것이다.”
16권-38, 하느님 뜻의 불변성에 묶여 있는 영혼의 뜻.
비통이나 즐거움이 영혼에게 미치는 영향.
1924년 2월 5일
1. 내 지고하신 유일한 선이신 분의 부재로 괴로운데다, 내게는 모든 것이 끝장났고 나의 전 생명이신 분은 더 이상 오시지 않을 것이며 지난 일은 모조리 하나의 상상게임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 지금까지 써 온 모든 글이 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몽땅 불살라 나에 대한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내 본성도 느끼고 있었지만 말이다.
2. 좌우간 내가 무엇을 겪고 있었는지를 이 일기장에 옮겨 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 것 같다. 왜냐하면 종이마저 너무 잔인해서 내게 위로가 되는 말을 한마디도 해 주지 않고, 내가 이처럼 애타게 기다리는 분을 오시게 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고통만 더 심해지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접어 두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3. 내가 그토록 괴로운 상태로 있었을 때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불 회초리를 들고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이 회초리로 너의 어디를 때리면 좋겠느냐? 나는 세상을 치려고 한다. 그래서 너에게 왔다. 네가 사람들에게 안식을 줄 정도로 많은 매를 맞기를 원하는지 어떤지 보려고 온 것이다. 그러니 말해 보아라. 내가 너의 어디를 치면 좋겠느냐?”
4. 나는 더욱 괴로웠지만 그래도 “어디든지 당신께서 때리고 싶으신 데를 치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뜻만을 원할 따름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다시 “내가 너의 어디를 치면 좋겠는지 너한테서 듣고 싶다.” 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것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데가 제가 원하는 곳입니다.” 하였다. 예수님은 다시 내게 물으셨고, 내가 계속 “저는 당신의 뜻만을 원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또 물으셨다. “그러면 너는 내가 너의 어디를 치면 좋겠는지 말하는 것조차 원치 않는다는 것이냐?”
5. 그런 다음 그분께서는 더 이상 아무 말씀 없이 나를 치셨다. 치실 때마다 매우 아팠지만, 그 타격들이 예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내 안에 생명과 힘과 신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분께서 매질을 끝내신 후, 흠씬 두들겨 맞은 나는 그분의 목에 매달렸고, 그분의 입 가까이에 입을 대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애써 받아먹으려고 하였다.
6.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안 아주 달콤한 액체가 내 입 속으로 흘러들어 원기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었는데, 이는 나의 뜻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오히려 그분의 쓰디쓴 물이었다. 이것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에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7. “저의 사랑이시여, 얼마나 고달픈 것입니까, 저의 운명은! 당신의 부재가 저를 죽이고 있고, 당신의 뜻을 벗어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이 저를 짓눌러 으깨고 있습니다.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제가 어디에서 당신 마음을 상해 드렸습니까? 어찌하여 저를 떠나셨습니까?
8. 지금은 저와 함께 계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전과 같이 저와 함께 머무르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르신 듯합니다. 아! 제가 제 생명이신 당신 없이 어찌 지낼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럴 수 있겠는지, 당신께서 친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 말씀을 드리면서 나는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를 꽉 껴안으시며 이르셨다.
9. “내 불쌍한 딸아, 불쌍한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예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또 네가 내 뜻을 벗어날까 두려워하지도 마라. 너의 뜻은 내 뜻의 불변성에 묶여 있다. 기껏해야 생각이나 느낌으로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은 진짜 행위가 아니다. 사실 내 뜻의 불변성이 네 안에 있기 때문에, 네가 내 뜻 바깥으로 나갈라치면 이 불변성의 확고함과 힘을 절감하고 더 단단히 거기에 묶여 있게 될 것이다.
10. 더군다나 나는 네 마음 안에 있을 뿐더러 온 세상 안에도 있다는 것과 네 안에서 모든 피조물의 운명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느냐? 네가 느끼는 것은 바로 세상이 나와 함께 있는 방식과 내게 주는 고통이다. 내가 네 안에 있으니까 그것이 너에게 반사되는 것이다.
11. 아! 내 딸아,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끼치는지! 하지만, 자, 용기를 내어라. 네가 더 이상 참고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내가 오겠다. 내 딸과 함께 있으면서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또 세상이 내게 고통을 주는 고로 나 자신도 위로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 그분은 모습을 감추셨다.
12. 나는, 그렇다. 분명히 힘을 얻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죽어 가는 느낌이 들만큼 몹시 침통한 마음이었다. 흡사 쓰라림과 비통함의 물이 가득 찬 욕조에 푹 잠겨 있는 느낌이었다. 어찌나 슬픈지 예수님께 '제발 오십시오.' 라고 말씀드릴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나의 일상적인 기도를 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말씀하셨다.
13. “딸아, 말해 보아라. 왜 그리 슬퍼하느냐? 보아라.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왔다. 많은 이들이 배반하는 통에 마음이 꿰찔린 상태로, ‘내 딸에게 가자. 내 뜻의 갓난아이에게 가면 눈물을 닦아 줄 것이다. 내 뜻 안에서 행하는 그 애의 행위로, 다른 이들이 주지 않는 사랑과 또 모든 것을 내게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애 안에서 쉬면서 나의 현존으로 그 애를 위로해 주리라.’ 하고 혼잣말을 하며 왔다.
14. 그런데 너는 그러기는 고사하고 그토록 슬퍼하고 있으니, 내 아픔은 밀어두고 너의 비통부터 달래 주어야 할 판이다. 즐거움이 영혼에게는 꽃의 향기와 같고, 음식의 양념, 사람들의 생기 있는 안색, 과일의 부드러움, 식물이 받는 햇빛과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5. 이 비통으로 말미암아 너는 나를 상쾌하게 할 향기를 맡지 못하게 하고, 맛있는 음식도 무르익은 과일도 얻지 못하게 한다. 오히려 불쌍해 보일 정도로 네가 온통 시들시들 말라 있을 뿐이다. 가련한 딸아, 힘내고, 나한테 매달려라. 두려워하지 마라.”
16. 나는 그분께 매달렸다.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목이 꽉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힘을 내어 눈물을 참으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예수님, 저의 사랑이시여, 저의 비통은 당신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것을 더 많이 주실 마음이 없으시다면, 우리 함께 당신의 비통에 대해 생각하십시다. 제가 눈물을 닦아 드리고, 당신 마음의 아픔들을 나누겠습니다.”
17. 그리하여 그분은 나와 함께 당신의 비통을 나누셨다. 그리고 나에게 이 세상에 닥친 심각한 재난들과 앞으로 닥칠 재난들을 보여 주신 다음 사라지셨다.
16권-39,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작은 사람들의 사명.
이 뜻 안에서 행하는 그들 행위의 보편적 가치.
1924년 2월 8일
1.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 안에 온전히 녹아들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작은 자인 나 자신을 모든 세대들에 앞세웠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기도 전의 자리였다. 그들이 죄를 짓기 전에, 그들에 앞서, 거룩하신 임금님께 보속 행위를 미리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 안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모든 것이 현재이기 때문이었다.
2.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작은 자인 내가 거룩하신 임금님께 다가가서 그분과 함께 간청하고, 그분의 뜻 안에서 나의 작은 행위들을 하면서 피조물의 모든 행위를 그분의 거룩하신 뜻을 덮기 위함이었고, 그리하여 갈라져 나간 인간의 뜻을 하느님의 뜻과 묶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3. 한데 막 그렇게 하려고 한 순간, 아무것도 아닌 나의 허무와 비참과 극단적인 작음이 엄습하는 바람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서 나 자신이 모든 사람들을 앞설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람들 뒤에, 곧 세상에 태어날 마지막 사람 뒤에 있어야 하겠다. 나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천하고 가장 비참한 자이니, 맨 끝자리에 있는 것이 내게 합당하다.’
4.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내 손을 잡으시고 이르셨다.
“내 작은 딸아, 내 뜻 안에서는 작은 사람이 모든 이들을 앞서는 자리에 있어야 하고, 더구나 나의 태(胎) 안에도 있어야 한다. 간청하고 보속하며 그 자신의 뜻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뜻과 우리 (성삼위)의 뜻과 하나가 되게 할 사람은, 우리 신성의 모든 반영을 받아들여 자기 내면에 그대로 복사할 정도로 우리와 가까운 자리에, 우리와 일치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5. 그런 작은 사람인 너는 모든 이의 생각일 수 있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또 모든 이의, 모든 이를 대신한 말과 행위와 발걸음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뜻은 모든 이를 감싸고 있으므로 이 뜻 안에서는 모든 이의 생각일 수 있는 너의 그 생각이, 그리고 그 행위와 그 사랑이 모든 세대들의 각각의 생각과 말과 행위 안에서 빛날 수 있고, 또한 그것들이 우리 뜻의 능력으로 해독제, 방어자, 연인, 수술자 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사랑으로 너를 기다리고 계시는지를 네가 안다면! 아버지께서는 이리도 작은 네가 모든 피조물을 아버지께 돌아 오도록 하려고 그들을 그분의 무릎 위로 데려오는 것을 보시며 기쁨과 흐뭇함을 느끼신다... 창조 목적의 영광과 기쁨과 즐거움이 당신께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시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네가 모든 사람들을 앞서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7. 그렇게 앞서서 온 다음에는 우리의 뜻 안에서 몸을 돌려 맨 끝자리로 가야 한다. 거기에서 그들을 너의 무릎 위에 올려놓듯이 하여 모두 우리의 태 안으로 데려오너라.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뜻 안에서 행한 너의 행위들로 덮여 있는 것을 보고 더 큰 사랑으로 기꺼이 맞아들일 것이며, 우리 뜻의 완전한 지배를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의 뜻과 피조물의 뜻을 하나로 묶을 마음이 더 내키게 될 것이다.
8. 그런즉 너는 용기를 내어라. 작은 사람들은 군중 속에서 길을 잃을 위험이 있으므로, 우리 뜻 안의 임무인 너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네가 앞서 올 필요가 있다. 우리의 뜻 안에 있는 작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생각이나 그들 자신의 것이 없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모든 것을 공유한다.
9. 따라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선익을 위하여 태양을 창조하셨기에 모든 이가 넘쳐흐를 정도로 그 빛을 누리는 것과 같이, 모두가 우리의 뜻의 작은 딸이 행한 행위들을 이롭게 쓸 수 있다. 이 행위들은 태양의 빛살보다 더 세차게 모든 사람들 위를 내리쬐어, 영원한 의지의 태양을, 모든 세대들이 창조된 목적과 함께 다시 떠오르게 할 수 있다.
10. 너는 그러므로 너의 비참과 비천과 자성(自省)이라는 군중 속에서 길 잃고 헤매지 말고, 우리 뜻의 작은 자로서의 임무만 생각하면서 정신을 집중하여 너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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