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41, 예수 성심의 무한한 고통과 무한한 기쁨.
사랑과 순종으로 이 고통에 참여하는 이는 그분 성심의 무한한 기쁨에도 참여한다.
1924년 2월 16일
1.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마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오! 그분의 고통에 비하면 나의 고통이라는 것은 흔적도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2. “딸아, 내 마음의 고통은 형언할 수도 사람이 이해할 수도 없을 정도로 크다. 우선 이것을 알아두어라.
내 심장이 뛸 때마다 그 각각의 고통이 저마다 구분되는 고통이다. 각각의 고통이 새로운 고통을,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고통을 내게 가져오는 것이다.
3. 인간의 생명은 심장 박동의 연속이다. 이 박동이 멎으면 생명이 끝난다. 그렇다면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내 심장 박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엄청난 고통을 내게 끼쳤겠는지 상상해 보아라. 잉태된 순간부터 마지막 박동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그 새로운 아픔과 모든 고통을 내게 가져오지 않는 것이 없었다.
4. 하지만 이것도 알아두어라. 나와 갈라질 수 없는 신성이 내 심장을 지켜보면서 그 박동마다 새로운 고통이 들어오게 하는 한편, 새로운 기쁨, 새로운 만족, 새로운 조화와 천상적 신비도 들어오게 하였다. 심장 안에 끝없는 고통의 바다를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는 고통이 그만큼 많았지만, 또한 행복과 무한한 기쁨과 비할 데 없는 감미로움도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5. 그러니 내 마음을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한 신성이 만약 각각의 심장 박동마다 고통과 기쁨, 쓰디씀과 감미로움, 슬픔과 만족, 죽음과 삶, 수치와 영광, 인간의 저버림과 하느님의 위로라는 두가지 판이한 고동 소리를 이 마음 안에 울려 퍼지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고통의 첫 고동 소리가 들리는 순간에 죽고 말았을 것이다.
6. 네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여기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 가능한 모든 고통과 내 마음 안에 수많은 바다들처럼 흘러드는 모든 만족과 신적인 풍요 말이다. 이 고통에서 사람들은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고, 이 만족과 풍요를 내가 온 인류 가족의 선익을 위하여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7. 그러나 내 마음의 이 무한한 보화를 더 많이 나누어가지는 사람은 누구이겠느냐? 더 많은 고통을 받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고통이나 슬픔에 특유한 기쁨이 내 마음 안에 있고, 이것이 그 고통이나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고통이 그 사람을 더욱 고결하고 더욱 사랑스럽고 더욱 소중한 사람으로, 더 큰 호의를 받을 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8. 내 마음이 고통에 의하여 하느님의 모든 호의를 스스로 위에 끌어당겼던 것과 한가지로, 나는 사람이 내 마음의 특징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랑을 더하여 그 고통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이 지닌 기쁨과 만족을 그 위에 쏟아 붓는다.
9. 하지만 더없이 유감스럽게도, 내 마음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보낸 다음 기쁨이 그 뒤를 따라가게 하기를 원하지만, 내 마음처럼 고통에 대한 사랑과 참된 감수(甘受)가 그들 안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기쁨이 고통을 따라가 보아도 그 고통이 사랑과 영예와 지고한 순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음을 보기에 그 고통스러워하는 마음 안으로 들어갈 길을 찾아내지 못한 채, 슬퍼하며 내 마음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10. 그러므로 고통을 감수하며 사랑하는 영혼을 만나면, 나는 그가 내 마음 안에 다시 살아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 고통과 기쁨이, 쓰디씀과 감미로움이 얼마나 서로 번갈아들곤 하는지! 내가 아무것도 보류하지 않고 모든 재화를 그 사람 안에 쏟아 부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6권-42, 만물은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간에 사람에게 주님의 '너를 사랑한다.'는 오직 하나의 소리만을 실어다 준다.
1924년 2월 18일
1. 나의 일상적인 방식에 따라 하느님의 뜻 안에 녹아들고 있었다. 나 자신과 모든 사람을 위해, 모든 피조물을 찾아내어 내 사랑의 보답을 (주님께)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 ‘예수님께서는 나와 각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 대부분을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바다 속을 쏜살같이 누비고 다니는 저 많은 물고기들, 공중을 날아다니는 저 많은 새들, 저 많은 초목들, 저 많은 꽃들 - 온 우주 안에 가지각색으로 다양하게 산재하는 저 어마어마한 수의 아름다움들을 대체 누가 다 알 수 있겠는가? 그 가운데에서 고작 몇 가지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내가 그들을 모른다면, 특히 한 두 해가 아닌 오랜 세월 동안 침대에만 붙박여 지내고 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면, 그분께서 어떻게 모든 조물들이 나에 대한 그분의 ‘너를 사랑한다.’를, 그 표시나 날인을 지니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일까?'
3.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그 속말에 귀를 기울이시는 모습으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딸아, 각 조물이 너에 대한 독특한 사랑(의 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네가 그들을 다 알지는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네가 다 모른다고 해서 그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오히려 네 가까이서건 멀리에서건, 또 은밀하게건 드러나게건 간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낭랑한 소리로 너에게 말하면서 내 사랑을 한층 더 많이 나타내 보인다.
4. 나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까이 있을 때에는 서로 다정하기 그지없지만, 멀리 떠나고 나면 마음이 냉랭해져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다. 나의 사랑은 한결같고 영속적이다. 멀리 으슥한 곳에 숨어 있어 눈에 뜨지 않을 때나 가까이 있을 때나 한결같고, 결코 중단되지 않는 오직 하나의 소리, 곧 나의 ‘너를 사랑한다.’... 만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5. 생각해 보아라. 너는 태양의 빛을 알고 있다. 이는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만큼 그것의 빛과 열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빛은 너를 뛰어넘어 온 땅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다. 네가 더 많은 빛을 원하면 태양은 너에게 그만큼의 빛을 줄뿐더러 전부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태양의 그 모든 빛은, 가까이 있든지 멀리 있든지 나의 ‘너를 사랑한다.’를 너에게 말한다.
6. 더구나 그것은 대지를 뒤덮으면서 나의 ‘너를 사랑한다.’가 작은 소나타가 되어 너에게 울려오게 한다. 너는 그러나 그 빛이 덮고 있는 길들도, 그것이 비추고 있는 지역들도 알지 못하고, 태양 광선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빛이 행하는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너는 같은 빛 안에 있다.
7. 네가 그 빛을 몽땅 가질 수 없는 것은 너 자신 안에 다 흡수할 수 있는 용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모든 빛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너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크게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니, 그 빛이 대지에 퍼지면서 모든 이에게 나의 ‘너를 사랑한다.’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8. 모든 물방울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너는 모든 물을 다 마실 수도 없고 네 안에 다 수용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이 너에게 나의 ‘너를 사랑한다.’를 말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모든 조물들도 그렇다. 네가 알건 모르건 간에 모든 것이 나의 ‘너를 사랑한다.’ 표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우주의 조화와 피조물의 품위와 우리 성삼위의 창조적인 손의 지배를 위해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9. 나는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부유하고 자상한 아버지처럼 행동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 자신의 처소를 정해야 할 때가 되자 호화로운 궁전을 지어 주었는데, 여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이 있고, 방마다 아들에게 소용될 수 있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10. 그런데 아들은 방이 하도 많아서 늘 다 들어가 보지 못했고, 어떤 방들은 써야 할 필요성이 발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숫제 알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각각의 방들 안에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있겠느냐? 아버지의 자애가 아들에게 필요한 것과 또는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는 것도 다 마련해 두었다는 것을 말이다?
11. 그렇게 행동한 것이 나다. 나의 태 안에서 나온 아들이니만치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온갖 다양한 것들을 많이 지어내어, 어떤 이들은 이것을 다른 이들은 저것을 누리게 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오직 하나의 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16권-43,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새롭고 특별한 방식의 삶은
창조 사업의 목적과 기쁨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
이 삶에 최초로 부름 받은 사람에 대한 주님의 천명.
1924년 2월 20일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에 대한 말씀을 마치시자 나는 속으로 이런 의문이 생겼다.
2. ‘이제까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산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내가 그 첫 사람이라는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나 이전에도 다른 많은 이들이 있어서 나보다도 더 완전하고 더 활동적인 방식으로 이를 살았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3. 내가 그러고 있을 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너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아주 특별하고도 새로운 방식의 삶에 부름을 받은 너의 사명을, 그 선물, 그 은총을 왜 인정하려고 들지를 않느냐?
4. 만일 너 이전에도 교회 안에 그런 영혼들이 있었다면,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일이며 내가 극진히 보살피는 가장 큰 관심사인 만치, 내 뜻 안의 삶을 살 행운을 누렸던 사람들로부터 그 발자취와 규범과 가르침이 내 교회 안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내 뜻 안에서 사는 이 삶에 포함된 지식과 매력, 효과와 선익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5. 그 외에도 다른 많은 표시들이 있었다면, 나의 권능으로 이 삶의 숭고한 길을 빛나게 했을 것이 아니냐? 나의 큰 만족을 보고, (곧) 영혼이 내 뜻의 영광으로 나를 영예롭게 할 것을 보고, 그로 하여금 내가 바라는 바를 저항 없이 나타내보이도록 촉구했을 것이다.
6. 또한 맡김, 인내, 순종 등의 생활화에 대한 금언이나 교훈이 있는 것과 같이, 이에 대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감추어 두었다면 참으로 이상야릇한 일이 아니었겠느냐?
7. 사람은 무엇인가를 좋아하면 그럴수록 더욱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하나의 삶 방식이 나에게 더 큰 만족과 영광을 가져올수록 그만큼 더 널리 퍼뜨리고 싶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숨기는 것은 참사랑의 본성 안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8. 내가 너를 내 의지 안에 살게 하기 위하여 내 뜻의 갓난아기가 태어날 이때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얼마나 풍성한 은총의 행렬을 준비했는지 네가 안다면, 정신이 아찔하도록 놀라면서 그만큼 더 고마운 마음으로 나에게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9. 아! 너는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것은 창조의 목적인 순수한 기쁨을, 내가 사람을 창조한 까닭인 티없는 즐거움을 내게 되돌려 주는 것을 뜻한다.
10. 그것은 거의 창조 당초부터 배반적인 인간의 뜻이 내게 끼친 쓰디씀을 지워 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의 뜻을 하느님의 뜻과 끊임없이 바꾸는 것을 뜻한다. 영혼이 그 자신의 뜻을 꺼리며 나의 뜻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뜻은 끊임없이 그를 기쁨과 사랑과 무한한 선들로 채워 준다.
11. 오, 이 영혼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을 때에 나는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는지 모른다! 나의 뜻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폭이 넓기 때문이다.
12. 그러므로 나와 그 영혼 사이에는 더 이상 갈라짐이 없다. 굳건히 일치하며 일하고 생각하고 사랑할 뿐이다. 내 뜻이 모든 것을 보완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일치 안에서 모든 선을 나누어 가지게 되는 것이다.
13. 인간 창조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리 (성삼위)의 자녀로서 살게 하고 우리의 선들을 공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인간은 모든 것 속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고, 그의 행복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기쁨을 느낄 것이다.
14. 그러니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바로 창조 사업의 목적과 기쁨과 즐거움을 우리 성삼위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를 드러내지 않고 내 교회 안에 감추어 두었을 것이라고 네가 말할 수 있겠느냐?
15. 내가 그렇게 했다면 일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무엇이 창조 사업의 완성이 될지를 알게 하려고 저항할 수 없는 완력을 써서 인간을 압도하기도 했을 것이다. 너는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지 모르겠느냐? 이는 나의 모든 사업이 완성되도록 그 모든 것에 인장을 찍는 것이 아니겠느냐?
16. 네가 보기에 그것이 별것 아닐 수도 있고, 교회 안에 유사한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아니다,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오히려 내 사업 전부이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너에게 바라는 사명을 다하도록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