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141, 주님 강복의 의미와 효과.
1920년 11월 28일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고통스러운 수난에 들어가시기 전 당신 엄마께 축복을 청하려고 가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이 신비는 매우 많은 점을 드러낸다. 내가 축복을 청하고자 내 사랑하올 엄마에게 간 것은 내게 축복을 청할 기회를 엄마에게도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분께서 이제부터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견디셔야 하기에 나의 강복으로 힘을 북돋아 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3. 이와 같이, 주고자 할 때 청하는 것이 나의 통상적인 방식이다. 내 엄마는 그런 내 의중을 단박 헤아리시고 나를 축복하시기 전에 나의 강복부터 청하셨다. 내가 강복해 드린 후에야 비로소 나를 축복하셨던 것이다.
4.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위하여 나는 한 번의 ‘피앗’을 발하였고, 그 한 번의 ‘피앗’으로 하늘과 땅을 다시 정돈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인간창조에서는 나의 전능한 입김으로 인간 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5. 수난이 시작될 무렵 내가 내 전능하고 창조적인 말로 내 엄마에게 강복하려고 한 것은 비단 엄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 안에서 모든 피조물을 보았던 것이다.
6. 엄마에게는 만물에 대한 최고의 지배권이 있기에 나는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축복하였고, 그 생각과 말과 행위 등도 하나하나 다 축복하였다. 또한 사람에게 쓰이도록 되어 있는 조물도 각각으로 다 축복하였다.
7. 나의 전능한 ‘피앗’에 의해 창조된 태양이 그 빛이나 열이 감소됨 없이 모든 사람과 각 사람을 위해 여전히 자신의 궤도를 운행하고 있듯이, 나의 창조적인 말도 축복을 통해 계속적인 축복 행위로 남아 있다. 태양이 만물에 빛을 주기를 그치지 않는 것처럼 이 축복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8. 뿐만 아니라, 나는 나의 강복으로 인간창조의 고상한 성격을 새로이 하고자 했으니, 인간에게 능력을 주려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부르며 강복을 청하였고, 지혜와 사랑을 주려고 나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강복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인간의 기억과 지성과 의지를 새로이 하여 만물의 왕으로 복권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9. 그러니 너는 알아야 한다. 나는 주면서 받기를 원하기도 한다는 것을. 내 사랑하올 엄마께서는 이를 알아차리시고 즉시 나를 축복하셨는데 당신 혼자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셨다.
10. 오! 나의 이 축복을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마시는 물에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불에서, 먹는 음식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고통에서, 자기의 기도 소리에서, 죄를 짓고 느끼는 양심의 가책에서, 사람들의 저버림 속에서 그것을 느낄 것이다.
11. 그리하여 모든 것 속에서 내가 그들에게 건네는 이 창조적인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듣지 못한다! -
‘나는 성부와 나 자신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너에게 강복한다.
너를 돕고 너를 보호하며 너를 용서하고 너를 위로해 주려고 너에게 강복한다.
또한 네가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너에게 강복한다.’
그러니 사람도 모든 것 속에서 나의 강복에 감사함으로써 내 강복이 메아리치게 할 것이다.
12. 이러한 것들이 내 강복의 효과이다. 내게서 가르침을 받은 교회가 이를 반향하고 있으니, 교회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성사 집전과 다른 것들을 통하여 교회의 축복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12권-142, 그것이 회리바람처럼 들이닥치리라.
하느님께서 흐뭇해하시는 보답 방식.
1920년 12월 18일
1. 예수님이 없이 혼자 무척 괴로워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분께서 곁에 계시는 느낌이 들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아! 딸아,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그것이 회리바람처럼 들이닥쳐 모든 것을 뒤흔들 것이다. 회리바람이 일체를 휩쓸듯이 휩쓸 것이고, 회리바람이 끝나는 것과 꼭 같은 모양으로 끝날 것이다.
3. 이탈리아 정부는 발판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리라. 하늘이 내리는 벌이다!”
4. 그 후 나는 나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 같았는데 과연 다정하신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분께 아주 단단히 달라붙어 있는데다 그분도 그러하셨으므로 그분의 거룩하신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었다.
5. “예수님, 이처럼 당신께 밀착되어 있는 동안 제 사랑과 감사를 증거하고,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모든 것을 증거하고 싶습니다.
6. 왜냐하면 당신께서 우리의 원죄 없으신 여왕이시며 엄마이신 분을 -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거룩하며 은총의 놀라운 기적이신 분을 창조하셨고, 그분을 모든 선물로 부요하게 하시며 또한 우리 어머니도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7. 이를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피조물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피조물의 각 행위를, 각각의 말과 생각과 심장 박동과 걸음을 하나하나 붙잡고 그 각각의 이름으로, ‘당신께서 하늘에 계신 당신 엄마이시며 저의 엄마이신 분 안에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당신을 찬미합니다, 흠숭합니다.’ 하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8.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흐뭇해하셨고, 흐뭇하신 나머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는 모든 세대의 이름으로 행하는 너의 이 행위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9. 내 정의와 내 사랑이 이런 보답의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내 엄마를 그토록 부요하게 한 이상 모든 사람에게 내리는 은총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10. 또 다른 어느 날은 내가 사랑하올 예수님께, “제게는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고통도 당신의 방문을 받는 것도 다 끝났습니다.” 한 적이 있었다.
11. 그분께서 즉시, “아마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내 뜻을 행하는 것을 멈춘 모양이지?” 하셨다. “아닙니다. 결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하고 내가 대답하자, “그러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하셨다.
12권-143, 하느님의 뜻 안에만 창조 능력이 있다.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죽음.
1920년 12월 22일
1.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에 대해 생각하다가 혼잣말로, ‘이 하느님이 뜻은 참으로 기막힌 힘을 가지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능력, 강한 매력을!’하며 감탄하였다. 그러고 있는데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단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마디에만도 창조 능력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창조하고 변화시키며 태우는 능력과 영혼 안에 빛과 사랑과 거룩함의 새로운 강물이 흘러들게 하는 능력이 있다.
창조 능력은 오로지 ‘피앗’안에만 있는 것이다.
3. 그러니 사제가 성체를 축성하는 것은, 성체를 두고 외우는 그 성찬제정의 말에 나의 뜻이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피앗’으로부터 나오고, ‘피앗’안에 있다.
4. 또한 영혼이 나의 뜻을 행하겠다는 생각만 해도 위로와 힘을 얻고 변화를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내 뜻을 행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영혼을 모든 선을 얻는 길에 자리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5. 생각만으로 그러한데, 하물며 내 뜻을 실제로 행한다면 어떠하겠느냐?
6. 그 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면전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기억났다.
“그러면 우리는 함께 영원하신 분의 옥좌 앞으로 갈 터인데, 우리의 이마에는 지워지지 않는 글자로 이렇게 씌어 있을 것이다. ‘저희는 저희 형제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죽기를 원하고, 그들을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고통을 원합니다.’”(12권 93,15<1919년 3월 14일자>)
7. 나는 혼잣말로, ‘그분께서 오시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그분과 함께라면 몰라도 나 혼자서는 어림도 없지. 게다가 그토록 많은 죽음을 어떻게 죽는담?’하였다.
8. 그러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동하시며 입을 여셨다.
“딸아, 너는 언제나, 순간마다 그렇게 할 수 있다.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고 절대 떠나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러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지금 말해 주겠다.
9. 나는 내 뜻이 사람 안에서 어떤 선을 행하고자 내게서 출발하여 그 선을 행하는 데 필요한 은총과 도움을 내 뜻과 함께 그에게 가져다 줄 때 죽음을 겪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때 그 사람이 그 선을 행할 태세가 되어 있으면 내 뜻이 또 하나의 생명을 늘리는 셈이지만, 사람이 그렇게 할 마음이 없으면 죽음을 겪는 셈이라는 것이다.
10. 오! 내 뜻이 그런 죽음을 얼마나 많이 겪는지! 사람 안에서의 죽음은 그가 어떤 선을 행하는 것이 나의 바람인데 그의 뜻이 이를 행하지 않음으로써 그 선에 대해 죽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11. 그러므로 내 뜻을 계속 행하는 상태에 있지 않는 사람의 경우, 이를 행하지 않는 횟수와 같은 수의 죽음을 겪게 된다. 그 선을 행했다면 얻었을 빛에 대해 죽고, 그 은총에 대해 죽고, 그러한 카리스마들에 대해 죽는 것이다.
12. 이제 네가 우리 형제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죽음들이 어떤 것인지 말해 주겠다. 그것은 나의 부재로 인해 네 심장이 갈가리 찢어짐을 느낄 때, 그리고 무쇠 손이 그 심장을 꽉 쥐어짜는 느낌이 들 때 네가 겪는 죽음이다. 아니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죽음은 오히려 내게 생명이 될 것이니 말이다.
13. 이 죽음이 우리 형제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고통과 죽음에는 하느님의 생명과 무한한 빛과 창조적 능력이 -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원하고 무한한 가치를 지닌 죽음이며 고통이다. 그러니 네가 우리 형제들에게 참으로 많은 생명을 줄 수 있지 않았겠느냐?
14. 내가 이 죽음들을 너와 함께 치르면서 그것에 내 죽음의 가치를 주어 생명을 죽음에서 해방시키겠다. 너는 그저 네가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겪는지 보아라. 나를 원하건만 찾아내지 못할 때마다 매번 너에게는 정말 죽음이다. 네가 정말 나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으니 말이다.
15. 이것이 너의 죽음이다. - 순교이다. 너에게 죽음인 이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생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2권-144, 하느님이 아닌 모든 낙을 비우게 하는 인장.
동굴 안의 아기 예수님보다 훨씬 더 가혹한 성체 안의 예수님의 운명.
1920년 12월 25일
1.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다가 예수님과 함께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서 긴 여행길에 올랐다. 도중에 때로는 예수님과 함께 걷고, 때로는 여왕이신 엄마와 함께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라지시면 엄마와 함께 있고, 엄마께서 모습을 감추시면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식이었다.
2. 그렇게 함께 걷는 동안 그분들은 내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예수님도 엄마도 내가 넋이 빠질 정도로 상냥하게 대해 주셨다. 그 바람에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나의 쓰라린 고통과 심지어 그분들의 부재로 인한 고통마저... 다시는 그분들을 놓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 좋은 것 앞에서는 나쁜 것이 얼마나 쉽게 잊히는지!
3. 그런데 그 여로의 끝에 이르렀을 무렵 천상 엄마께서 나를 팔에 안으셨다. 나는 아주 작디작았는데, 엄마께서, “얘야, 네가 모든 것 속에서 튼튼해지도록 해 주고 싶구나.” 하셨다. 그리고 그 거룩하신 손으로 내 이마에 무슨 표시를 하시는 품이 아마 이마에 어떤 글귀를 쓰시고 인장을 찍으시나 보았다.
4. 그다음에는 내 눈에, 입에, 심장에, 손과 발에 차례차례 글귀를 쓰시고 인장을 찍으셨다. 나는 무엇을 쓰시는지 보고 싶었지만 그 글자를 읽을 수 없었다. 오직 내 입에 쓰인 글귀만 읽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맛의 소멸’이었다.
5. 나는 곧바로, “감사합니다, 오 엄마. 저에게서 예수님이 아닌 맛은 전부 거두어 가셨군요.” 하였다. 그리고 다른 것에 대해서도 좀 더 알고 싶었지만, “너는 알 필요가 없다. 나를 믿어. 네게 필요한 것을 했으니까.” 하셨다.
6. 엄마는 나를 축복해 주시고 모습을 감추셨고, 나는 나 자신 안에 돌아와 있었다.
7. 나중에 복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다. 추워서 몸을 떨며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연약한 아기의 모습이었다. 온기를 찾아 내 품안으로 뛰어드시기에 나는 힘주어 꼭꼭 부둥켜안은 채, 일상 하듯이 그분의 뜻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모든 이의 생각들을 나의 것과 함께 찾아내어, 창조된 모든 지성들의 경배로, 떨고 계신 예수님을 에워싸게 하기 위함이었다.
8. 또한 모든 이의 눈길을 찾아내어 예수님을 주목하게 함으로써 그분께서 울음을 그치시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입과 말과 음성을 찾아내어 모두가 그분께 입맞춤을 드리게 함으로써 그분의 울음소리가 잠잠해지고, 그들의 입김으로 그분의 몸에 훈기가 돌게 하기 위함이었다.
9. 내가 그렇게 하는 사이에 아기 예수님께서 울음과 그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그치시고 언 몸도 풀리신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10. “딸아, 무엇이 나로 하여금 몸을 떨며 자지러지게 울어대게 했는지 알겠느냐? 그것은 사람들의 저버림이다. 네가 그들을 내 주위에 자리하게 하자, 나는 그 모두의 주목과 입맞춤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울음을 뚝 그친 것이다.
11. 하지만 내 성체의 운명은 아기로서의 운명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내가 태어난 동굴은 추웠지만 그래도 넓은 편이어서 숨 쉬는 공기는 있었다. 성체는 춥기가 매한가지이면서도 공간이 너무 비좁아 공기가 거의 없다.
12. 동굴에는 약간의 마른풀을 잠자리로 펴 둔 구유가 있었지만, 내 성사적 삶에는 마른풀조차 없다. 딱딱하고 얼음같이 싸늘한 쇠붙이 침대만 있을 뿐이다.
13. 동굴에는 또 내 사랑하올 엄마가 계셔서 당신의 지극히 깨끗한 손으로 매우 자주 나를 안아 주셨고, 뜨거운 입맞춤으로 나를 온통 뒤덮어 몸을 따뜻하게 해 주셨으며, 그 다디단 젖으로 내 울음을 달래시며 나를 먹여 기르셨다.
14. 내 성사적 삶에는 모든 것이 이와 정반대이다. 엄마가 계시지 않는 것이다. 저들이 나를 안으면 세속 냄새와 오물 냄새 같은 것을 풍기는 부당한 손이 내 몸에 닿는 것을 느낀다. 오, 그 악취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15. 그것은 내가 묵었던 동굴의 짐승 배설물 냄새보다 더 독한 악취이다. 그들은 입맞춤 대신 불경한 행위들로 나를 뒤덮고, 젖 대신 모독과 무관심과 냉랭함의 쓸개즙을 내게 준다.
16. 동굴에서는 성 요셉의 밤이 되면 어김없이 내게 조그만 등불을 켜 주었지만 여기 성체 안에서는 내가 밤에도 자주 어둠 속에 버려져 있곤 한다. 오! 그러니 내 성사적 운명이 얼마나 더 가혹한 것인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숨은 눈물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17. 네가 아기인 나의 운명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든다면, 하물며 내 성사적 운명을 보고서야 얼마나 더 측은히 여겨야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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