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98, 예수님의 부활하신 인성은 하느님 뜻 안에서 살 이들의 상징이다.
1919년 4월 15일
1.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의 거룩하신 뜻 안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러자 나의 지성이 예수님과 함께 창조 사업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지고하신 임금님께 흠숭을 드리고 그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2. 예수님께서 그지없이 부드럽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는 하늘을 창조할 때 보다 작은 구체인 별들을 먼저 만들었고, 그다음에 보다 큰 구체인 태양을 만들었다. 이 태양에게 매우 큰 빛을 부여했으므로 모든 별들이 태양 안에 숨어 버린 듯 제 빛을 잃을 정도였다. 그렇게 태양을 별들의 왕으로, 자연계의 왕으로 지정했던 것이다.
3. 이와 같이 보다 큰 일에 대한 준비로 보다 작은 일을 먼저 하는 것이 나의 통례적인 방식이다. 그러면 보다 큰 일이 보다 작은 일을 마무르며 성취하는 것이다.
4. 태양은 나를 환하게 표현하는 한편, 내 뜻 안에서 성화(聖化)를 이룰 이들을 덮어 싸기도 한다. 내 뜻의 그늘 속에 있듯이 내 인성을 거울삼아 살았던 성인들은 별들이 될 것이고, 앞의 사람들은 시대적으로 더 나중에 오면서도 태양들이 될 것이다.
5. 나는 구원 사업에서도 그러한 질서를 유지하였다. 이를테면 나의 탄생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는 커녕 대수롭잖은 일로 간과되었다.
6. 내 유년 시절도 사람들 앞에 대단한 무엇의 광채로 빛나지 않았고, 나자렛생활도 어찌나 깊이 숨어 있는 생활이었는지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내가 인생살이의 극히 작고 평범한 일에 적응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7. 공생활 동안에 몇 가지 큰 일이 있었지만, 그때에도 누가 나의 신성을 알았더냐? 아무도, 사도들조차 통 몰랐다. 그저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군중 속을 지나가곤 했으므로 누구든지 내게 다가올 수 있었고, 말을 걸 수 있었고, 하고 싶으면 멸시하는 태도를 보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8. 그때 나는 그분의 말씀을 가로막으면서, “예수님, 제 사랑이시여, 그 시대는 참 행복한 시대였겠습니다! 그저 원하기만 하면 당신께 다가가 이야기할 수 있으며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더 행복했겠습니까!” 하였다.
9.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딸아, 홀로 나의 뜻만이 참행복을 가져올 뿐이다. 나의 뜻만이 영혼 안에 모든 선을 넣어 주고, 그 영혼을 에워싸고 스스로 화관이 되어 그를 참행복의 여왕으로 세운다. 이런 영혼들만이 내 옥좌의 여왕들이 되리니, 나의 뜻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10. 그러므로 저 시대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나를 보았지만 알아보지 못하였다. 나의 뜻이 생명의 중심으로 그들 앞에 있지 않아서, 나를 보면서도 불행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11. 오직 그 선을 받은 사람들만이, 즉, 마음속에 내 뜻의 씨앗이라는 선을 받은 사람들만이 부활한 나를 보는 은혜도 받을 수 있는 내적 채비가 되어 있었다.
12. 그런데 부활은 내 구원 사업의 가장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것은 빛나는 태양 이상으로 내 인성을 영광스럽게 하면서 나의 가장 작은 행위들마저 찬란하고 경이로운 광채로 빛나게 하여, 하늘과 땅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13. 이는 모든 선의 시작이요 기초이며 성취이고, 모든 복된 이들의 화관이요 영광이 되리니, 나의 부활이야말로 내 인성에 합당한 영광을 입게 한 참태양이다. 또한 가톨릭 신앙의 태양이요,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광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태양이 없는, 따라서 열과 생명도 없는 하늘과 같았을 것이다.
14. 그래서 나의 부활은 내 뜻 안에서 성화를 이룰 영혼들의 상징이다.
지난 세월의 성인들은 내 인성을 상징한다. 그들도 (내 뜻에) 맡기고 살았지만 내 뜻 안에서의 지속적인 행위 능력을 소유했던 것은 아니다.
15. 그들에게는 그러므로 내 부활의 태양이 각인되지 않았고, 부활전까지의 내 인성의 업적만 각인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수는 많아서 거의 별들과 같이 내 인성의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할 것이다.
16. 그러나 내 뜻 안에서의 삶을 살 성인들은 부활한 내 인성을 상징하기에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숱한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죽기 전의 내 인성을 보았지만, 내 부활을 본 것은 내적 준비가 가장 잘된 소수의 믿는 이들뿐이었다.
17. 이들은 내 뜻의 씨앗을 내부에 지닌 이들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씨앗이 없었다면, 부활하여 영광스럽게 된 내 인성을 보고 따라서 내 승천의 목격자가 되는 데 필요한 시력이 없었을 것이다.
18. 그러니 내 부활은 당연히 내 뜻 안에서의 삶을 살 성인들을 상징한다. 영혼이 내 뜻 안에서 행하는 각각의 행위와 말과 발걸음 등이 바로 그가 받게 되는 신적 부활이기 때문이다.
19. 그것이 그가 받을 영광의 각인이거니와 그런 영혼은 자기를 벗어난다. 하느님의 신성 안으로 들어가 내 의지의 찬란한 태양 안에 숨어 있으면서 사랑하고 일하며 생각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그가 완전히 일으켜져서 바로 내 영광의 태양에 융화되어 내 부활한 인성을 상징한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 하지만 그렇게 하려는 내적 준비를 갖춘 사람은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영혼들은 성덕에 있어서조차 그들 자신의 어떤 선을 원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 뜻 안에서의 삶은 자기 자신의 것을 전연 지니지 않는, 곧 일체가 하느님의 것인 성덕이다.
21. 영혼들이 이에 맞갖은 준비를 하려면 그들 자신의 선이라는 것도 벗어 버려야 하는데, 여기에 많은 희생이 요구되므로 그들의 수가 많지 않기 마련이다.
22. 한데 너는 저 다수에 속하지 않고 이 소수에 속한다. 그런즉 너의 소명과 계속적인 날아오르기에 항상 주의를 집중할 일이다.”
12권-99, 각 영혼이 창조주께 해야 했던 모든 것을 대신 행하시어,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깨어진 조화를 회복하신 예수님의 인성.
1919년 4월 19일
1. 평소와 같이, 그러나 매우 큰 괴로움을 느끼며 있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자마자 나를 꽉 껴안으셨다. 그리고 한쪽 팔을 내 목 언저리에 두르시고 말씀하셨다.
2. “딸아, 무슨 일이냐? 너의 고통이 내 마음을 짓누르면서 나 자신의 고통보다 더 날카롭게 나를 꿰찌른다. 가엾은 딸아, 네가 누차 내게 따뜻한 동정심을 표하며 내 고통을 떠맡았으니, 이제는 내가 너를 측은해하며 너의 고통을 떠맡으련다.”
3. 그러면서 그분은 나를 당신 가슴에 붙여 안으시고 나 자신 밖으로 나를 끌어내시며, “기운을 차려라, 딸아.” 하고 부언하셨다. “내 신성 안으로 들어오너라. 내 인성이 피조물을 위해 행한 바를 더 잘 이해하며 볼 수 있을 거다.”
4. 그래서 내가 이해하게 된 모든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여러 가지에 대하여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다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겠다.
5. “딸아, 내 인성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하모니를 다시 정돈한 오직 하나의 오르간이었다.
6. 나는 각 영혼을 대신하여 그들이 자기네 창조주께 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모든 것을 행하였고, 멸망한 영혼들의 것도 제외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해서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과 사랑과 보속을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7. 여기에는 다만 한 가지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즉, 창조주께 대한 본분을 그럭저럭 채운 영혼들은 - 거의 아무도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채우기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 그들의 영광을 나의 영광에 결합시키고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이 나의 행위들 속에 접(接)붙인 듯 남아 있게 되는 반면, 멸망한 영혼들은 바싹 마른 가지들처럼 생명의 수액(樹液)이 없기 때문에 내가 그들 대신 행한 선의 접을 받아들일 수 없고 단지 영원한 불 속에서 타는 것에나 적합하다는 점이다.
8. 그러므로 나의 인성은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깨어진 조화를 회복하였고, 피와 전대미문의 고통의 대가로 그것에 도장을 찍었던 것이다.”
12권-100, 예수님의 지상 옥좌가 있는 곳은 그분 뜻 안에서 사는 이의 마음속이다.
1919년 5월 4일
1. 예수님의 부재와 쓰라린 고통 가운데서 지내고 있는 중이다. 예수님의 뜻만이 나의 유일한 힘과 생명일 따름이다. 그런데 다정하신 그분께서 잠시 내 내면에 모습을 드러내셨다. 한 손으로 이마를 받치시고 고뇌와 시름에 잠겨 계신 모습이었다.
2. 나는 그렇게 괴로워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예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어찌하여 그리도 고뇌와 시름에 잠겨 계십니까?” 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나를 쳐다보시며 말씀하셨다.
3. “아, 딸아, 나는 네 마음 안에서 세상의 운명을 나누고 있다. 너의 마음은 내 지상의 옥좌가 있는 센터이다. 이 센터에서 내가 세상을 보고 피조물의 광기와 그들 스스로 마련하고 있는 낭떠러지를 보고 있다.
4. 그 사이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나 한 듯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빛을 - 은총의 빛만이 아니고 타고난 이성의 빛도- 그들에게서 거둘 수밖에 없다.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인간이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느껴 알게 하려는 것이다.
5. 이와 같이 나는 네 마음 안에서 인간을 보고, 은혜를 모르는 그들을 위해 울며 기도한다.
너도 나와 함께 울며 기도하고 괴로워하면서 나를 위로하고 동반하기 바란다.”
6. “가엾으신 예수님, 당신이 여간 애처롭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당신과 함께 울며 기도하겠습니다!
7. 하지만, 제 사랑이시여, 말씀해 주십시오. 제 마음이 어떻게 당신의 지상 옥좌가 있는 센터가 될 수 있습니까? 당신께서 그 안에 사시는 선한 영혼들이 많이 있는데, 저는 이리도 악한 인간이 아닙니까?” 하고 내가 말씀을 올리자 그분은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8. “나는 하늘에서도 나의 옥좌 센터를 가지고 있다. 내가 복된 이들 개개인의 생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주권, 전능, 무한성, 아름다움, 지혜 등이 머무는 중심 센터로서 하나의 옥좌를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9. 복된 이들 각자는 이 모든 것을 자신 안에 담을 수 없다. 내 존재의 무한성을 내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10. 마찬가지로 나는 지상에서도 내 중심 센터를 가지고 있다. 다른 이들 안에서도 거처하지만 이 중심 센터에서 내가 결정하고, 명령하고, 활동하고, 은혜를 베풀고, 징벌을 내리는데, 이런 일을 나의 다른 거처들 안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다.
11. 내가 그 중심 센터로 너를 간택한 까닭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왜냐하면 내가 너를 내 뜻 안에서의 삶을 살도록 간택했고,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나의 중심 센터로서 나의 전부를 자기 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 그런 이는 내 존재의 중심 안에서 살고, 나는 그 사람의 중심 안에서 산다. 하지만 그의 중심 안에서 살면서 바로 나 자신의 중심 안에 있는 것처럼 산다.
13. 이와 반대로 내 뜻 안에서 살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전부를 포함하지 못하기에 나는 기껏해야 그 안에 거처할 뿐 거기에 내 옥좌를 세울 수는 없어진다.
14. 아! 모든 사람이 내 뜻 안에서의 삶이 얼마나 큰 선인지를 깨닫는다면 이 삶을 살려고 서로 경쟁하련마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를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적어서, 대체로 내 안에서 살기보다는 그들 자신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천상의 책 > 천상의책11-15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상의책 (12권-104-106) 하느님 뜻 안의 삶을 살 영혼들은 창조된 만물이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완성한다. (0) | 2015.04.22 |
---|---|
천상의책 (12권-101-103) 하느님 뜻이 영혼 안에 있는 동안만 신적 생명이 그 영혼 안에 지속된다. (0) | 2015.04.19 |
천상의책 (12권-96-97) 만물의 기원인 하느님의 ‘피앗’/ 하느님 뜻 안에서 행하는 행위들의 효과. (0) | 2015.04.16 |
천상의책 (12권-92-95) 하느님 뜻 안에 살지 않는 사람의 비유/ 하느님 뜻 안에서의 중재 기도의 효과. (0) | 2015.04.16 |
천상의책 (12권-89-91) 지상 낙원과 신적 낙원/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도록 영혼을 준비시키시는 예수님. (0) | 2015.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