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3권 공생활 둘째해(상)

하사시 3권 p562~p573 [225. 벳자타 못의 마비환자]

Skyblue fiat 2025. 5. 9. 08:49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562~p573

 

 

225. 벳자타 못의 마비환자

1945. 7. 21.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안토니아 탑 가까이에 계신다. 가리옷 사람만 빼놓고는 모든 사도들이 예수와 함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성전을 향하여 간다. 사도들과 다른 순례자들이 모두 명절빔을 입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오순절 기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중 가운데에는 많은 거지들도 있다. 그들은 동정을 구하는 말로 자기들의 불행을 구슬프게 호소하며 회당 가까이나 군중이 지나가는 네거리 같은 가장 좋은 자리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들의 불행한 사연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동냥을 주시며 지나가신다.

사도들이 가말리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내가 들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예수께서 이미 성전에 가셨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가말리엘은 그 문하생 중의 한 사람인 스테파노가 그에게 예수를 가리켰는데도 그분과 사도들을 못 본 체한다.


나는 또한 바르롤로메오가 자기의 동료들에게 묻는 소리도 듣는다.

“저 율법학자가 '도살장의 숫양들의 무리'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이지?”

“그는 자기 자신의 관심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을 거야.”
토마스가 대답한다.

“아니야, 그는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어. 나는 그를 똑똑히 보았어. 여하튼 그가 두 번째로 한 말이 처음에 한 말을 확인하는 거였어. 그가 냉소적으로 말했어. ‘머지않아 어린양도 털이 깎이고, 도살될 거야.’”

“맞아, 나도 그의 말을 들었어.”
안드레아가 확인한다.

“그건 그렇고! 나는 뒤로 돌아가서 율법 학자의 동료에게 시몬의 아들 유다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는지 묻고 싶어 못 견디겠어”
베드로가 말한다.

“그는 아무것도 몰라! 이번에는 유다가 진짜 병이 들어서 여기 오지 않은 거야.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 아마 그는 이번 여행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모양이야. 우리는 더 잘 견디지만, 그는 여기서 편안하게 살았잖아. 그래서 그는 쉬 피로를 느끼는 거 같아.”
알패오의 야고보가 대답한다.

“그래, 우리도 알아. 하지만 그 율법학자는 말했어. ‘저 무리에 카멜레온이 빠졌는걸.’ 카멜레온은 자기 멋대로 색깔을 바꾸는 짐승이잖아?”
베드로가 묻는다.

“맞아, 시몬.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유다의 옷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을 거야. 그는 항상 새 옷을 입고 있잖아. 그는 자기의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쓰지. 그는 젊으니 우리는 그를 너그럽게 보아주어야 해.”
열성당원이 그들을 화해시키며 말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렇기는 해도!… 얼마나 이상한 표현이람!”
베드로가 결론짓는다.

“그들은 영원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어.”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문제는 우리는 우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과 위협이 없는 데서도 위협당한다고 상상한다는 거야…”
유다 타대오가 지적한다.

“우리는 잘못이 없는 데서도 잘못들을 봐.”
토마스가 결론짓는다.

“그래, 맞아! 의심은 불쾌한 거야… 유다의 건강이 오늘 어떤지 누가 알아? 중요한 건 그가 그 낙원과 그 천사들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야. 나도 병들어서 그런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어!”


베드로가 말하자 바르톨로메오가 덧붙인다.
“그가 빨리 낫기를 바라세. 더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는 우리의 여행을 끝내야 해.”

“오! 그는 잘 치료받고 있을 거야. 어쨌든… 필요하다면 선생님께서 그것을 돌보실 거야.”
안드레아가 단언한다.

“우리가 그와 헤어질 때 그는 고열에 시달렸었어. 나는 어떻게 해서 그가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러자 마태오가 그에게 대답한다.

“모든 사람은 때때로 열이 오르는 거야. 고통은 늘 있어. 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것이 아니야. 선생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걱정하시지 않아. 만일 그분께서 위험하다고 판단하셨다면, 그분께서는 요안나의 저택을 떠나지 않으셨을 거야.”

사실 예수께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마르지암과 요한에게 말씀하시며 동냥을 주시면서 앞서가신다. 그분께서 여기저기를 손으로 가리키시는 것을 보니, 그분께서는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시며 설명하시는 것이 틀림없다. 그분께서는 성전 동북쪽 모퉁이의 끝을 향하여 가신다. 거기에는 어떤 문 가까이에 주랑들이 있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 문이 ‘양의 문’이라고 불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실로암 못이라고도 하는 벳자타의 못이다. 주의 깊게 물을 살펴보아라. 물이 얼마나 고요한지 보이지? 너는 잠시 후에 그 물이 휘저어지고, 부풀어 오르고, 저 물에 젖어 있는 선(damp mark)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저것이 보이니? 주님의 천사가 내려오면, 물은 그를 알아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천사는 물에 빨리 몸을 담그는 사람을 낫게 하라는 명령을 그 물에게 가져다준다. 사람들이 보이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산만하여 그 물의 최초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다. 아니면 더 힘센 사람들이 동정심이 없어 힘없는 사람들을 밀어낸다.

하느님의 표징들이 있을 때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면 결코 안 된다. 하느님께서 그분 자신을 언제 보여주실지 아니면 그분의 천사를 보내실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항상 우리의 영혼이 깨어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건강상의 이유로라도 결코 이기적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 누구의 순서냐, 또는 누가 더 필요하냐 하는 것으로 인하여 말다툼하다가 이 불행한 사람들이 천사의 방문의 혜택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예수께서는 마르지암에게 참을성 있게 설명하시고, 마르지암은 정신을 집중하여 그분을 쳐다보는 동시에 물도 주시하고 있다.

“사람이 천사를 볼 수 있어요? 저는 천사를 보고 싶어요…”

“목동 레위는 네 나이 또래였을 때 천사를 보았다. 너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그리고 천사를 찬미할 준비를 하고 있어라.”

소년은 더 이상 딴 데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눈은 물과 물 위로 번갈아 쳐다본다. 그는 다른 소리는 듣지 못하고, 다른 것은 보지 못한다. 그 동안에 예수께서는 기다리고 있는 소수의 병약자, 소경, 지체장애자, 마비환자들을 바라보신다. 사도들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햇빛은 수면 위에서 춤추고 못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개의 주랑들을 환하게 비춘다.

“저기요! 저기요!”
마르지암이 외친다.

“물이 부풀어 오르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반짝여요! 얼마나 밝은지! 천사가!”
아이가 무릎을 꿇는다.

과연 못 안에서 물이 움직이는 동안 가장자리까지 부풀어 오르는 갑작스러운 거대한 물결에 의하여 들어 올려지는 것처럼 보이고, 태양빛을 받아 거울처럼 빛난다. 잠시 동안 눈부신 빛이 보인다.

다리를 저는 사람 한 명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물 밖으로 나오는데, 그의 다리는 전에는 위축되어 있었고 큰 상처로 보기 흉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나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불편하면서 치유된 사람과 다툰다. 그들은 그 사람은 일할 수 있지만, 자기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다툼은 계속된다.

예수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작은 병상에서 울고 있는 마비환자를 보신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다가가 상체를 숙여 그를 어루만지시며 물으신다.

“당신은 왜 울고 있소?”

“선생님, 아무도 저를 전혀 생각해주지 않습니다. 저는 줄곧 여기 남아 있는데, 저만 빼고는 모든 사람이 나았습니다. 저는 38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썼고, 제 부모들은 죽었습니다. 이제는 먼 친척에게 얹혀살고 있는데, 그가 아침에 저를 이리 데려오고, 저녁에 다시 데려갑니다… 하지만 제가 그에게 얼마나 큰 짐이겠습니까! 오! 저는 죽고 싶습니다!”

“슬퍼하지 마시오. 당신은 참으로 큰 참을성과 믿음을 가져 왔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요”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낙심될 때가 많습니다. 당신은 친절하십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병이 나은 사람들은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기 남아 그들의 불쌍한 형제들을 도와줄 수 있을 텐데요.”

“그들은 그렇게 해야 될 거요… 그러나 악감정을 가지지 마시오. 그들은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지,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오. 병이 나은 기쁨 때문에 그들은 이기주의자가 되는 거요. 그들을 용서하시오…”

“당신은 친절하십니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하시지는 않겠지요. 못의 물이 움직일 때면 저는 손으로 저기까지 기어가려고 해봅니다만, 항상 다른 사람이 저를 앞질러갑니다. 그런데 저는 못가에 남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저를 짓밟을 테니까요 설령 제가 거기 머물러 있다 한들, 누가 저를 물속으로 내려주겠습니까? 만일 제가 당신을 더 일찍 만났다면, 저는 당신께 청했을 겁니다…”

“당신은 정말로 낫기를 원하오? 그럼 일어나시오! 당신의 병상을 들고 걸으시오!”

예수께서는 명령하시려고 일어나셨다. 그분께서 일어서시면서 그 마비환자도 일으켜 세우신 것 같아서 그는 일어서더니 거의 믿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떠나가시는 예수를 뒤따라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을 내디디다가 자기가 정말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소리 지르자 모든 사람들이 돌아본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누구십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청하니,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당신께서는 혹시 하느님의 천사이십니까?”

“나는 천사 이상이오. 내 이름은 경건(Piety)이오. 평안히 가시오.”

사람들이 그들의 주위로 모여든다. 그들은 보기를 원하고, 말하기를 원하고, 치유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전의 경비원들이 달려온다. 내 생각에는 그들이 못도 감시하는 모양이어서 그들은 처벌하겠다고 위협하여 그 소란스러운 군중을 해산시킨다.

마비환자가 두 벌의 작은 바퀴에 얹어놓은 막대기 두 개에 낡은 천을 덮어놓고 못 박은 자기의 병상을 들고 행복하게 걸어가며 예수께 외친다.
“저는 다시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이름과 얼굴을 잊지 않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군중에 섞여 성곽을 향하여 반대쪽으로 가신다. 그러나 그분께서 아직 마지막 회랑을 통과하지 않으셨을 때, 최악의 계급의 유다인들이 예수를 모욕하려는 욕망에 불타서 돌풍에 불려오는 것처럼 몰려온다.
그들은 보고, 찾고,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가시는데, 그들은 실망하여 경비원들이 제공해주는 정보에 따라 방금 병이 나아서 기뻐하고 있는 마비환자에게 다가가 그를 비난하며 말한다.

“당신은 왜 이 침대를 가지고 가고 있소? 오늘은 안식일이오. 이것은 불법이오.”
그 사람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나를 낫게 한 분이 ‘병상을 들고 걸어라’ 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아는 것의 전부입니다.”

“그자는 틀림없이 마귀일 거요. 그자가 당신에게 안식일을 어기라고 명령했으니 말이오. 그자는 어떻게 생겼소? 그자는 누구였소? 유다인이었소, 갈릴래아인이었소? 개종자였소?”

“난 모릅니다. 그분은 여기 있다가 내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와서 나에게 말했고, 나를 고쳐주셨어요. 그분은 한 소년의 손을 잡고 갔습니다. 나는 그 애가 그분의 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그만한 나이의 아들을 둘 정도의 나이니까요”

“한 소년? 그럼 그자가 아니야!… 그자는 자기의 이름이 뭐라고 했소? 당신은 그자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소? 당신은 거짓말하면 안 되오!”

“그분은 자기의 이름이 경건이라고 나에게 말했어요.”

“당신은 바보요! 그것은 이름이 아니오!”


그 사람은 양어깨를 으쓱한 다음 가버린다.
다른 사람들이 말한다.

“그자가 틀림없어. 율법학자 하니아와 자캐오가 그자를 성전에서 보았대.”

“하지만 그자에게는 자녀들이 없어!”

“하지만 그자야. 그자는 자기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어.”

“유다는 거기 있지 않았어.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은… 무관한 사람들일 수도 있어.”

“아니야, 그것은 그들이었어.”

그들이 말다툼을 계속하는 동안 회랑에는 병자들로 가득 찬다.
예수께서는 다른 쪽에서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신다. 시내에 면해 있는 서쪽이다. 사도들이 그분을 따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방을 둘러보시다가 마침내 그분께서 찾고 계시는 사람을 발견하신다. 그는 요나탄인데, 그 역시 예수를 찾고 있었다.

“선생님, 그는 나아졌습니다. 그의 체온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께서도 다음 안식일까지는 그분 자신도 오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탄, 고맙소 당신은 시간을 잘 지켰소.”

“썩 잘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라자로의 막시미노가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솔로몬 회랑으로 갔습니다.”

“내가 그에게 가서 그를 만나겠소.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내 어머니와 여자제자들에게도 내 평화를 전하시오. 그리고 유다에게도.”

예수께서는 솔로몬 회랑 쪽으로 급히 가신다. 과연 그분은 거기서 막시미노를 만나신다.

“라자로는 당신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당신께 중요한 말씀을 드릴 것이 있어 당신을 뵙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는 오시겠습니까?”

“물론 나는 지체 없이 가겠소. 당신은 내가 이번 주 중에 그에게 갈 것이라고 말해도 되오.”


막시미노는 몇 마디를 더 말씀드린 다음에 떠나간다.

“우리는 여기까지 다시 왔으니, 가서 다시 기도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시며 유다인들의 안마당 쪽으로 발길을 돌리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바로 그 곁에 계실 때 주님께 감사하러 온 병이 고쳐진 마비환자를 만나신다. 그 행복한 사람은 예수를 군중 가운데서 보고 그분께 기쁘게 인사드린 다음 예수께서 떠나신 후에 못에서 일어났었던 일에 대하여 말씀드린다. 그리고 그가 결론짓는다.

“제가 건강한 몸으로 여기 온 것을 보고 놀란 어떤 사람이 당신께서 누구신지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당신께서는 메시아시라고요. 당신께서는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내가 메시아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물이나 다른 힘에 의하여 나았다 해도 당신은 하느님께 같은 의무를 가지고 있을 거요. 그것은 착한 일을 하는 데 당신의 건강을 써야 할 의무요. 당신은 나았소. 그러니 가서 좋은 의향을 가지고 생활 속에서 당신의 활동을 다시 시작하시오. 그리고 다시는 죄짓지 마시오. 하느님께서 당신을 더 가혹하게 벌하시지 않게 하시오. 안녕. 평안히 가시오.”

“저는 나이 들었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따르고, 당신을 섬기고 싶습니다.”

“나는 아무도 물리치지 않소. 오기 전에 그것에 대하여 숙고하시오. 그리고 만일 결심이 선다면, 오시오.”

“어디로요? 저는 당신께서 어디로 가시려는지 모릅니다…”

“나는 세상을 두루 다니오. 당신은 어디서나 내 제자들을 만나게 될 터인데, 그들이 당신을 나에게 보내줄 거요. 주님께서 당신을 비추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바라오…”

예수께서는 지금 그분의 자리로 가셔서 기도드리신다.

나는 치유된 사람이 자발적으로 유다인들을 찾아갔는지, 아니면 유다인들이 지켜보고 있다가 그를 붙잡고 지금 그에게 말한 사람이 그를 고쳐준 사람이냐고 물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가 유다인들과 말하고 나서 떠나갔고, 유다인들은 예수께서 다른 여러 마당으로 건너가거나 성전에서 나가시려면 반드시 거쳐서 내려오셔야 하는 계단을 향하여 간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시자, 그들은 인사도 없이 그분에게 거칠게 말한다.

“당신은 그토록 여러 번 질책 받고도 계속 안식일을 어깁니까? 그러면서도 당신은 하느님의 사자(messenger)로 존경받기를 바랍니까?”

“사자요? 그보다 훨씬 더요. 아들로서 공경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아버지이시니까요. 만일 당신들이 나를 존경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존경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그것으로 인하여 내 사명을 완수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순간도 일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아버지께서는 일하시고, 나도 일합니다. 왜냐하면 착한 아들은 자기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고, 나는 일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으니까요.”

사람들이 말다툼하는 것을 들으려고 그들에게 다가온다. 그들 중 몇 명은 예수를 아는 사람들이고, 몇 명은 예수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며, 몇 명은 예수를 처음 본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사랑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미워하며, 많은 사람들은 모호하다. 사도들이 예수와 한 무리를 이룬다. 마르지암은 겁먹다시피 하고, 그의 작은 얼굴은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 사두가이들의 혼합체인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목청껏 외친다.

“당신이 감히 그런 말을! 오! 이자는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군요! 이 무슨 신성모독인지! 하느님께서는 존재하시는 분이시고, 그분은 아들들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가말리엘을 부르게! 사독에게 사람을 보내게! 라삐들을 모아 이자의 말을 듣고, 그것을 반박하게 하게.”

“흥분하지 마시오. 그분들을 부르시오. 만일 그분들이 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들은 당신들에게 하느님은 한 분이시되 아버지와 아들, 성령의 삼위이시고, 말씀, 즉 생각(Thought)의 아들은 예언된 대로 이스라엘과 세상을 죄(Sin)에서 구하시려고 오셨다고 말할 것이오.

나는 말씀이오. 나는 예고된 메시아요.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이신 분을 내 아버지라고 불러도 신성모독이 되지 않아요. 당신들은 내가 기적들을 행하고, 그 기적들을 통하여 군중을 나에게 끌어들이고 그들을 설득하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어요. 당신들은 내가 기적을 행하기 때문에 나를 마귀라고 비난하고 있어요. 그러나 베엘제붑은 많은 세기들 전부터 세상에 있고, 사실 그에게는 충실한 숭배자들이 없지 않아요… 그럼 그는 왜 내가 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까?”

사람들이 속삭인다.
“그것은 사실이야! 정확한 사실이야! 저분께서 하시는 일을 누구도 하지 못해.”

예수께서는 계속 말씀하신다.

“나는 분명히 말하오. 그 까닭은 베엘제붑이 알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할 수 있기 때문이오. 내가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이유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이오.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본 것만을 자기 혼자서 할 수 있소.

아들인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본 그것밖에 하지 못하오. 나는 아버지와 영원히 하나이고, 본성과 능력에 있어 아버지와 같기 때문이오. 아버지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아들인 나도 하오. 내가 그분의 아들이기 때문이오. 베엘제붑도, 다른 어느 누구도 내가 하는 것을 할 수 없소. 그들은 내가 아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오.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아들인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그분을 사랑하듯이 한없이 나를 사랑하시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나에게 보여주셨고, 지금도 보여주시어 세상에 시간이 있기 전에 그분께서 하늘에서 하시는 일을 내가 이 은총의 때에 세상에서 하게 하셨소.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점점 더 큰일을 나에게 보여주시어 내가 그것을 행하게 하시고, 당신들이 그것을 보고 경탄하게 하실 거요.

그분의 생각은 그 깊이가 끝이 없소. 나도 그분께서 생각하시고 당신 생각으로 원하시는 것을 무한정으로 이루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분을 모방하오. 당신들은 사랑이 끝없이 무엇을 창조하는지 알지 못하오.

우리는 사랑이오. 우리에게는 한계가 없소. 그리고 사람의 세 가지 단계, 즉 하등 단계, 상등 단계, 영적 단계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 실제로 아버지께서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돌려주시는 것처럼, 아들인 나도 내가 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소.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가지고 계시는 무한한 사랑으로 인하여 하등부분에 생명을 주는 능력을 나에게 주셨을 뿐 아니라 상등 부분에도 생명을 주는 능력을 주셔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영혼의 오류와 나쁜 열정에서 구해내게 하셨고, 영적인 부분에도 생명을 주는 능력을 주어 사람의 영혼에 죄에 대한 자유를 돌려주게 하셨소.

사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오. 아들이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인류를 획득한(acquire) 사람이기 때문이오. 아버지께서는 정의에 따라 이렇게 하시는 것이오. 그 까닭은 자기 자신의 돈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그 물건을 주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오. 그렇게 하여 사람들이 이미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오.

만일 당신들이 아버지를 아들에게서, 또는 아들을 아버지에게서 갈라놓고 사랑(the Love)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하느님을 그분이 사랑받으셔야 마땅한 대로, 즉 진실과 지혜로 사랑하지 않고, 그분이 기묘한 삼위일체이신데도 한 분만을 공경하기 때문에 당신들은 이단의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아시오.

따라서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 것이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성삼위(the Three Divine Persons) 중 한분만이 흠숭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성삼위 모두가 흠숭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완전한 사랑으로(out of a perfect love)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느님께서 의로운 일들을 하실 줄 아신다는 것을 부인하는 셈이오.

내가 진실로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내 말을 귀담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단죄 받지 않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오. 하느님을 믿고 내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죽지 않는 생명을 자신 안에 받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오.

죽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이 임박했고, 자기의 마음 깊은 곳에 생명을 주는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살게 될 시간이 오고 있소. 아니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시간이 이미 와 있소. 율법학자님,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

“나는 죽은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그래서 당신은 미쳤다고 말하고 있소.”

“하늘은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과 당신의 지식은 하느님의 지식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줄 것이오. 당신들은 초자연적인 것을 너무 인간화하여 이제는 단어들을 직접적이고 현세적인 의미로만 해석하기에 이르게 되었소. 당신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징들을 이해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하가다(Haggadah)를 고착된 형식들(fixed formulae), 즉 당신들의 형식들에 따라 가르쳐왔고, 그래서 이제 당신들의 영혼은 자신을 짓누르는 인간적인 사고방식을 강요당하는 데 지쳐서 당신들은 당신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조차도 믿지 않게 되었소. 이것이야말로 당신들이 더 이상 주술적 힘들(occult powers)과 싸울 수 없게 된 이유요.

내가 말하는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이오. 자기 자신들의 귀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오. 그들의 영혼이 죽었다 해도 그들은 다시 생명을 얻을 것이오. 내 말은 그들에게 주입될 생명이기 때문이오.

나는 내가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생명을 줄 수 있소. 왜냐하면 내 안에 완전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오. 아버지께서 그분 안에 완전한 생명을 가지고 계시는 것처럼, 아들도 그분에게서 받아 자신 안에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고(complete), 영원하고, 무궁무진하고, 전해줄 수 있는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생명과 함께 심판할 권한도 주셨소. 왜냐하면 아버지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이고, 그래서 그는 사람을 심판할 수 있고, 심판해야 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내가 내 말로 행하는 이 첫째 부활, 즉 영적인 부활에 놀라지 마시오. 당신들은 당신들의 무딘 감각에 더 강한 것으로 보이는 더 강력한 부활들을 보게 될 것이오. 내가 진실로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인 영혼의 부활보다 더 위대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오. 머지않아 하느님의 아들의 목소리가 무덤들 속으로 뚫고 들어가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들을 날이 올 것이오. 선을 행한 사람들은 무덤에서 나와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갈 것이고, 악을 행한 사람들은 영원한 저주의 부활로 갈 것이오.

나는 이것을 나 홀로, 내 자신의 의지로만 행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내 뜻과 일치한 아버지의 뜻으로 행한다고 말하오. 나는 내가 듣는 것에 따라서 말하고 판단하는데, 내 판단은 옳소. 나는 내 뜻을 추구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오.

나는 아버지에게서 분리되어 있지 않소.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도 내 안에 계시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생각을 알고, 그것을 말과 행위로 나타내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은 나에게서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 아닌 어떤 것을 보기를 거절하는 당신들의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소.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다른 사람이 있소. 당신들은 그를 위대한 예언자로 존경한다고 말하오.

나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비록 당신들이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증언이 나에게 적대적인 당신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당신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요. 당신들은 의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예언자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소. 당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는 단지 사람일 뿐이고, 따라서 그도 실수할 수 있다고 당신들이 말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소.

당신들은 요한에게 묻기 위하여 사자들을 보냈었소. 당신들이 나에 대하여 원하는 말, 나에 대하여 생각하는 말, 나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원하는 말을 그가 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오. 그러나 요한은 진리에 대하여 자기의 증언을 했고, 당신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소. 나자렛의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예언자가 말하는데, 당신들은 군중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은밀하게 당신들의 마음속으로 그리스도가 미친 것처럼 예언자도 미쳤다고 말하오. 그러나 나는 사람의 증언에 의존하지 않소. 그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일지라도 말이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오. 요한은 불이 켜져서 빛을 발하는 등불이었소. 그러나 당신들은 잠시 동안만 그가 주는 빛을 즐기기를 원했소. 그의 빛이 나를 비추어서 그리스도를 실제 그대로 알리려고 했을 때 당신들은 그 빛을 말(bushel)로 덮어씌우는 것을 허용했고, 그 전에 이미 주의 그리스도를 그 빛 안에서 보지 않으려고 그 빛과 당신들 사이에 벽을 쌓아 올렸소.

나는 요한이 증언해준 것에 대하여 그에게 고맙게 생각하오. 아버지께서도 고맙게 생각하시오. 그래서 요한은 그의 증언으로 인하여 큰상을 받을 것이고, 그 때문에 하늘에서 빛날 터인데, 그는 하늘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첫째가 될 것이며, 진리(the Truth)에 충실하고 하느님을 위하여 굶주린 모든 사람들이 빛날 것처럼 빛날 것이오.

그러나 나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중요한 증언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한 일들의 증언이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들, 내가 행한 일들, 그것들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모든 권능(power)을 주시며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기 때문이오. 그렇게 하여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에 대하여 증언하시오.

당신들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그분의 얼굴을 뵌 적도 없소.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뵈었고, 지금도 뵙고 있으며,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소. 당신들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은 당신들 안에서 그 거처를 발견하지 못하오.

당신들은 성경을 아는 지식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에 성경을 공부하오. 그런데 당신들은 바로 그 성경이 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오?

그렇다면 당신들은 왜 계속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기를 거부하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겠소. 그 이유는 당신들의 고질적인 생각과 반대되는 것을 당신들이 배척하기 때문이오. 당신들은 겸손을 가지고 있지 않소. 당신들은 이렇게 말하지 못하오. ‘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사람, 또는 이 책이 맞고 나는 틀렸다.’ 당신들은 요한에게 그렇게 했고, 성경에 대해서도, 그리고 당신들에게 말하고 있는 말씀(the Word)에게도 그렇게 했소. 당신들은 교만에 사로잡혀 있고, 당신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머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소.

당신들은 내가 당신들에게 영광을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렇지 않소. 나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구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것에 유의하시오.

내가 찾고 원하는 것은 당신들의 영원한 구원이오. 이것이 내가 구하는 영광이오. 내가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지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구세주로서의 내 영광, 그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커지는 내 영광, 그 영광은 구원된 영혼들과 가장 순수한 영이신 아버지에 의하여 나에게 주어지게 되오.

그러나 당신들은 구원되지 않을 것이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들을 아오. 당신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소. 당신들에게는 사랑이 없소.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말하고 있는 사랑(the Love)에게로 오지 않고, 그래서 당신들은 사랑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오. 당신들은 거기서 알려져 있지 않소. 당신들이 아버지 안에 있는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도 당신들을 알지 못하시오. 당신들은 나를 알기를 원하지 않소. 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당신들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소.

반면에 당신들은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오는 누구라도 당신들의 마음에 드는 말을 하기만 하면,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고 있소. 당신들은 스스로 믿는 영혼들이라고 말하고 있소. 아니오. 당신들은 그렇지 않소. 서로에게 영광을 구걸하고,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오는 하늘의 영광은 구하지 않는 당신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하늘의 영광은 진리이지, 이 세상에서 끝나고 아담의 타락한 후손들의 악한 인간성만을 끌어들이는 세속적인 이해관계의 문제가 아니오.

나는 아버지 앞에서 당신들을 비난하지 않겠소. 당신들은 그것을 확신해도 되오. 당신들을 비난하는 사람이 이미 있소. 당신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모세가 바로 그 사람이오. 모세는 당신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를 믿지 않는다고 당신들을 비난할 것이오. 모세는 나에 대하여 썼는데(신명18,15), 당신들은 그가 쓴 것을 보고 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오. 당신들은 그 이름으로 맹세하는 위대한 예언자인 모세의 말을 믿지 않소. 그러니 당신들이 내 말, 즉 당신들이 믿지 않는 사람의 아들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논리적이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영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당신들의 영혼과 관련된 문제요.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의 영혼을 내가 한 일의 빛 안에서 자세히 살펴보시고, 당신들의 행동들을 내가 와서 당신들을 가르치는 것과 대조하시오.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을 심판하시오.
나는 가겠소. 당신들은 오랫동안 나를 만나지 못할 것이오. 그것을 당신들의 승리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반대로 그것은 벌이오. 가자.”

예수께서는 군중 사이로 길을 내시며 나아가신다. 어떤 사람들은 침묵하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의를 표현한다. 그러나 그들은 바리사이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속삭이기만 한다. 예수의 일행은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