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2권 공생활 첫해

하사시 2권 p536~p547[124. 맑은 내의 베일 쓴 여자 125. 맑은 내’에서의 예수“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Skyblue fiat 2025. 2. 7. 16:20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536~p547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124. 맑은 내의 베일 쓴 여자

1945. 3. 5.

일기가 너무 불순하여 순례자가 단 한사람도 없다. 비가 양동이로 들이 붓는 것처럼 퍼붓고 있어 타작마당은 웅덩이가 되어 있고, 낙엽들이 그 위에 떠다니고 있다. 나는 그 모든 낙엽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는데, 그중 일부는 윙윙 소리를 내며 문과 창을 마구 흔들어대는 바람에 불려 날아온 것이다.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문을 닫아두어야 하기 때문에 부엌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둡고, 바람이 굴뚝을 통하여 불어 들어와 연기가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제자들이 기침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솔로몬이 옳았어. 남자를 집밖으로 내모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다투기 좋아하는 아내와… 그래서 나는 내 아내를 자기의 남자형제들과 싸우도록 함께 카파르나움에 남겨두었어. 연기 나는 아궁이와 비새는 지붕. 우리는 지금 마지막 두 가지를 가지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내일 이 굴뚝을 고치겠어. 나는 지붕에 올라갈 테니, 야고보, 요한, 안드레아는 나를 따라오게. 굴뚝을 세우고 슬레이트로 굴뚝 꼭대기에 덮개를 만들세.”


베드로가 말한다.

“자넨 슬레이트들을 어디서 구할 텐가?”
토마스가 묻는다.

“우리는 그것들을 헛간 지붕에서 뜯어낼 거야. 거기는 비가 새도 재앙이 일어나지는 않아. 하지만 여기는… 자네는 자네의 음식 접시들이 더 이상 시꺼먼 물방울들로 장식되지 않아서 유감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아! 나는 자네가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 내 꼬락서니를 좀 보게. 내가 불 옆에 있을 때 내 머리 위에 빗방울이 떨어진단 말씀이야.”

“자네는 이집트의 괴물처럼 보여.”
요한이 웃으며 말한다.

사실 토마스의 호인다운 통통한 얼굴에 검고 지저분한 이상야릇한 쉼표와 같은 것들이 묻어 있다. 평소의 명랑한 성격대로 그는 가장 먼저 그것을 재미있어 하며 웃는데, 그가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또 하나의 검정 물방울이 그에게 떨어져 콧등을 검게 물들였기 때문에 예수께서도 웃으신다.

“날씨 전문가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날씨가 오래갈 것 같은가?”
며칠 전부터 완전히 변한 가리옷 사람이 베드로에게 묻는다.

“조금 있다가 말해줄게. 나는 점성가 놀음을 한 번 해보겠네.”
베드로가 대답한다. 그는 문으로 가서 약간 열고 자기의 머리와 손을 밖으로 내민다. 그 다음에 그가 말한다.

“맞바람이 낮게 불고, 무덥고 짙은 안개라… 흠! 약간…”
베드로는 입을 다물고 천천히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은 다음 문을 반쯤 열어놓은 채 곁눈질한다.

“무슨 일이야?”
서너 명의 제자들이 묻는다.
그러나 베드로는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하고는 내다본다. 그러더니 그가 중얼거린다.

“그 여자가 여기 있어. 그녀는 우물에서 약간의 물을 마시고, 마당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주웠어. 나무가 비에 젖어서 불붙지 않을 텐데… 그 여자가 가고 있구먼. 가서 보아야겠어…” 그가 조심스럽게 나간다.

“그 여자가 항상 이 근처에 있다면 그 여자는 어디서 살고 있지?”
토마스가 묻는다.

“게다가 저 여자는 이런 날씨에 여기 머물러 있다니!”
마태오가 말한다.

“그 여자는 틀림없이 마을로 갈 거야. 왜냐하면 그저께 그 여자는 거기서 빵을 사고 있었으니까.”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그 여자가 줄곧 베일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정말로 결심이 대단해.”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아니면 그 여자는 그것에 대하여 분명한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거나.”
토마스가 말한다.

“그렇지만 저 여자는 어제 그 유다인이 말했던 그 여자가 틀림없을까? 그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라서!”
요한이 묻는다.

예수께서는 마치 귀머거리이신 것처럼 줄곧 침묵을 지키고 계신다. 그들 모두가 그분께서는 완전히 알고 계신다고 확신하며 그분을 쳐다본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날카로운 칼로 연한 나뭇조각을 가공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끓는 물에서 야채를 꺼내는 데 아주 유용한 긴 포크로 천천히 변해간다. 그분께서는 그 작업을 마치신 다음 그분의 작품을 요리에 몰두하고 있는 토마스에게 주신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정말로 솜씨가 좋으십니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저 여자가 누군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한 영혼이다. 나에게는 너희도 모두 ‘영혼들’이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영혼들, 오로지 영혼들이다. 아기들은 하얀 영혼들, 어린이들은 파란 영혼들, 젊은이들은 분홍빛 영혼들, 의인들은 금빛 영혼들, 죄인들은 시커먼 영혼들이다. 그러나 오로지 영혼들일 뿐이다.

나는 하얀 영혼들에게는 미소 짓는데, 그 이유는 내가 천사들에게 미소 짓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젊은이들의 파란 꽃들과 분홍빛 꽃들 사이에서는 쉬고, 의인들의 귀중한 영혼을 보고는 기뻐한다.

그리고 나는 죄인들의 영혼들을 귀중하고 빛나는 영혼들이 되게 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고통당한다.

얼굴들은?… 몸들은?…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너희의 영혼들을 통하여 너희를 알고 알아본다.”

“그럼 저 여자는 어떤 종류의 영혼입니까?”
토마스가 묻는다.

“내 친구들의 영혼들보다 호기심이 덜한 영혼이다. 왜냐하면 저 여자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질문하지 않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쳐다보지도 않고 왔다 가기 때문이다.”

“저는 저 여자가 창녀이거나 나병환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제 생각을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 만일 제가 당신께 무언가를 말씀드린다면, 당신께서는 저를 꾸짖지 않으시겠습니까?”

가리옷 사람은 예수의 무릎 앞 땅바닥에 앉으며 질문한다. 그는 완전히 변하여 겸손하고 착한데, 그가 건방지고 거만한 유다였던 때보다 이렇게 겸허한 태도를 가진 유다가 훨씬 더 잘생겨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너를 나무라지 않겠다. 말해라.”

“저는 저 여자가 어디서 사는지를 압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물 길러 나가는 체하면서 저 여자를 따라갔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 여자가 항상 어두울 때 우물에 오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어느 날 아침 저는 은 머리핀이 우물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저는 그것이 저 여자가 떨어뜨린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 여자는 숲속에 있는 나무로 지어진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농부들이 사용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그 집은 반쯤 썩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여자는 그 위에 나뭇가지들을 올려놓아 지붕으로 삼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 여자가 그 나뭇가지들을 가져간 모양입니다.

그건 들짐승의 소굴입니다. 저는 저 여자가 어떻게 거기서 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집은 기껏해야 큰 개나 작은 나귀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때 달빛이 있어 저는 그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것은 블랙베리 가시덤불에 거의 파묻혀 있는데, 속은 비어 있고 문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여자가 창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너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솔직히 말해라. 너는 다른 짓은 하지 않았느냐?”

“선생님,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예리코에서부터 눈여겨보았고, 그 여자가 걸을 때의 경쾌한 걸음걸이를 알아볼 것 같아서 그 여자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 여자의 몸은 나긋나긋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녀의 많은 옷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여자가 바닥에 누우려 해서 저는 감히 엿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저 여자는 베일을 벗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 여자를 존중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응시하신 다음에 말씀하신다.

“그리고 너는 그로 인하여 힘들어 했다. 그러나 너는 진실을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말하겠는데, 나는 너로 인하여 기쁘다. 다음번에는 네가 착하게 되는 것이 아주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첫걸음이다. 잘했다. 유다야!”

예수께서는 그를 어루만지신다.
베드로가 다시 들어온다.

“선생님! 저 여자는 미쳤습니다! 당신께서는 저 여자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거의 강둑 위, 관목 숲 아래 나무 움막에 있습니다. 아마 한 때 그것은 어부들이나 나무꾼들에게 사용되었던 것 같은데, 누가 알겠습니까? 저는 가시덤불 아래 개울에 묻혀 있는 습기 찬 그곳에 한 가엾은 여자가 살 수 있을 거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에게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시오. 당신은 나병환자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조그맣게 ‘아니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맹세하시오’ 하고 말했더니 그 여자는 ‘저는 맹세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조심하시오. 만일 당신이 나병환자이면서도 아니라고 말하고, 우리 집 근처에 왔을 때 당신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된다면, 나는 당신을 돌로 쳐 죽이게 할 거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박해받고 있다면, 당신이 도둑이거나 살인자여서 우리가 무서워 여기 머무르고 있다면, 어떤 화도 입지 않을 테니 염려하지 마시오.

그렇지만 거기서 나오시오. 당신은 당신이 물속에 누워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오? 당신은 배고프오? 춥소? 당신은 떨고 있구려.
당신이 보다시피 나는 나이 든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수작을 걸고 있는 게 아니오. 나는 나이 들고 정직하니 내 말을 들으시오.’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여자가 죽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여자는 물속에 누워 있으니까요.”

예수께서는 생각에 잠겨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을 응시하고 있는 열두 얼굴들을 응시하고 계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선생님, 이것은 당신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아니다. 나는 너희가 결정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너희의 평판에 관련되어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지키려는 너희의 권리에 대하여 강제해서는 안 된다.”

“저는 우리가 그 여자를 거기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자비의 이름으로 말하겠습니다.”
시몬이 말한다.

그러자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저는 우리가 오늘만큼은 그 여자를 큰방에 있게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순례자들이 그곳에 머무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여자도 거기 머무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여자도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이니까요.”
안드레아가 말한다.

“어쨌든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마태오가 지적한다.

“저는 우리가 그 여자를 여기서 재우고 나서 내일 관리인에게 말하자고 제안하겠습니다. 그는 친절한 사람입니다.”
유다 타대오가 말한다.

“자네의 말이 옳아, 좋아! 그리고 관리인은 빈 외양간들도 많이 가지고 있어. 외양간은 저 밑바닥이 빠진 작은 배에 비하면 그래도 왕궁이나 마찬가지야!”
베드로가 외친다.

“그럼 가서 그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게”
토마스가 베드로를 격려하며 말한다.

“젊은이들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지적하신다.

“저에 관한 한 당신께서 하시는 것은 다 좋습니다.”

그분의 사촌 야고보가 말한다. 그리고 다른 야고보와 그의 동생이 함께 말한다.

“저희도 찬성입니다.”

“저는 다만 불행히도 어떤 바리사이가 우연히 이 일을 알게 될 경우를 염려할 뿐입니다.”
필립보가 말한다.

“오! 설사 우리가 구름 속에서 산다 한들, 자네는 그들이 우리를 비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들이 하느님을 비난하지 않는 이유는 그분께서 멀리 떨어져 계시기 때문이야. 하지만 만일 그들이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처럼 그분을 그들 가까이에 모실 수 있다면, 그들은 그분도 비난할 거야… 그들에게 죄 없는 사람이 누구겠어?”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그럼 그 여자에게 가서 큰방에 와 있으라고 말해라. 베드로, 네가 시몬, 바르톨로메오와 함께 가거라. 너희는 나이 들었으니 그 여자는 너희를 덜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여자에게 따뜻한 음식과 마른 옷을 주겠다고 그 여자에게 말해라. 그 옷은 이사악이 두고 간 것이다. 보아라, 모든 것이 유용할 수 있다. 남자에게 주어진 여자의 옷마저도…”

젊은 제자들이 웃는다. 문제의 그 옷에 관하여 아마 틀림없이 모종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 먹은 세 사람이 나가더니… 잠시 후에 돌아온다.

“다소 설득이 필요했는데… 결국 그 여자는 왔습니다. 저희는 저희가 절대로 그 여자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그 여자에게 맹세했습니다. 지금 저는 그 여자에게 짚과 옷을 가져다주겠습니다. 야채와 빵 몇 개를 나에게 주게. 그 여자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답니다. 사실… 이 폭우에 누가 돌아다니겠습니까?”

친절한 베드로가 자기의 선물들을 가지고 나간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지금 나는 모든 사람에게 명령한다. 어떤 이유로도 그 방으로 가면 안 된다. 우리는 내일 필요한 일들을 하자. 너희는 선행을 할 때 어떤 호기심 없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어떤 즐거움이나 그 밖의 것을 바라지 말고, 선 자체를 위하여 선행을 하는 데 익숙해져라.

너희는 오늘 우리가 아무런 유익한 일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불평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었겠느냐?

만일 저 여자가 불행한 여자라면, 그리고 그녀는 분명히 그렇지만, 우리가 그녀에게 마련해준 약소한 음식이나 초라한 옷이나 비새지 않는 지붕보다 우리의 도움이 그녀에게 훨씬 더 큰 안도감과 따뜻함과 보호를 줄 수 있지 않겠느냐?

만일 저 여자가 비난받을 만한 죄 있는 여자로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사랑이 그녀를 하느님의 길로 인도하는 데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 가장 힘 있는 말, 가장 분명한 방향제시가 되지 않겠느냐?”

베드로가 아주 조용히 들어와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다.

“내 벗들아, 보아라. 이스라엘에는 많은 선생들이 있고, 그들은 줄곧 말한다… 그런데도 영혼들은 원래 그대로이다.

왜냐? 그 이유는 영혼들이 그들의 선생들의 말을 듣지만, 그 선생들의 행위들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행위들은 그들의 말들을 무효화하여 영혼들은 그들이 있었던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만일 그들이 후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어떤 선생이 자기가 말하는 대로 행하고, 그의 모든 행동들에 있어 성인처럼 행동한다면, 그가 고통 받는 이웃에게 빵과 옷을 주고 숙소를 제공하는 행동 같은 물질적인 행동만을 한다 해도, 그는 영혼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하느님께 이르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들 자체가 그의 형제들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존재하신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여기 계신다.’

오! 사랑!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한다.”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여자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구세주와 그분을 보내신 분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그리고 여러분 모두도 그분과 함께 축복받으시기를.’ 저는 비천한 사람인데도 그 여자는 제 발에 입 맞추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두꺼운 베일 뒤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밤새가 오기 않기를 바랄 수밖에요… 그렇지 않다면 누가 우리를 구원하겠습니까?”

“우리의 양심이 우리 아버지의 심판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음식에 강복하시고 그것을 바치신 다음 식탁에 앉으신다.
모든 것이 끝난다.

 


 

125. ‘맑은 내’에서의 예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1945. 3. 6.

여전히 비가 오고 있지만, 그리 심하게 오지는 않아서 사람들은 선생님께 올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한쪽에서 두세 사람의 말을 따로 듣고 계신다. 그 사람들은 중요한 일들에 대하여 그분께 말씀드린 다음 훨씬 더 침착한 모습으로 제 자리로 돌아간다.

그분께서는 두 다리가 심하게 골절되어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는 한 어린 소년을 축복해주신다. 사실 모든 의사들은 말했었다. ‘소용없소. 두 다리의 골절이 저 위 척추 가까이까지 미쳤소.’ 그 아이의 어머니가 울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애는 자기의 어린 여동생과 함께 마을길에서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헤로데 당원이 전속력으로 마차를 달리게 하여 이 애를 친 다음 달려가 버렸습니다.

저는 이 애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상태가 죽은 것보다 더 못합니다. 보시지요. 저는 이 애를 이 널빤지 위에 눕혀놓고 있습니다…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까요.

뼈가 이 애의 살을 찌르기 때문에 이 애는 고통스러워합니다. 나중에 뼈가 더 이상 이 애의 살을 찌르지 않게 되더라도 이 애는 줄곧 똑바로 누워 있어야만 할 것이기 때문에 이 애는 계속 고통당할 것입니다.”

“너는 많이 아프니?”
예수께서는 측은해 하시며 울고 있는 어린이에게 물으신다.

“예.”
“어디가?”


“여기… 그리고 여기. 널빤지는 딱딱해요. 그리고 나는 움직이고 싶어요. 나는…”
아이가 작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자기의 콩팥들이 있는 부위와 등을 만진 다음 절망적으로 운다.

“내가 너를 안아줄까? 너는 이리 오겠니? 나는 너를 저 위로 데리고 갈게. 그러면 너는 내가 말하는 동안 모든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거다.”

“예…”
그 아이의 대답에는 강렬한 갈망이 가득하다. 가엾은 어린것이 애원하며 양팔을 내민다.

“그럼 오너라.”

“그렇지만 선생님, 이 애는 할 수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이애는 너무 아파요… 저는 씻어주기 위해서 이 애를 움직이지도 못하는걸요.

“나는 이 애를 아프게 하지 않을 겁니다.”


“의사는…”


“의사는 의사고, 나는 납니다. 당신은 왜 왔습니까?”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메시아시니까요.”


그 여자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얼굴이 창백해지다가 빨개지며 대답한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소중한 아이야, 이리 오너라.”

예수께서는 한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두 다리 밑으로 넣으시고, 다른 한 팔은 아이의 양어깨 밑으로 넣으신 다음 아이에게 물으신다.

“내가 너를 아프게 하니? 아니야? 그럼 네 엄마한테 작별인사해라. 가자.”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지나가시도록 길을 터주는 군중 사이로 아이를 안고 가신다. 그분께서는 방의 끝까지 가셔서 사도들이 그분을 위하여 만들어놓은 일종의 연단으로 올라가신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이, 심지어 마당에서도 보이시게 된다. 그분께서는 스툴 하나를 가져오게 하여 앉으시고, 어린이를 그분의 무릎 위에 올려놓으시며 물으신다.

“너는 이것이 좋니? 자, 너도 앉아서 들어라.”

그분께서는 그분의 오른손만으로 손짓을 하시며 말씀을 시작하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그분의 왼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린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그는 무언가를 보는 것을 아주 즐거워하며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방의 반대쪽 끝에 있는 엄마를 보고 방긋 웃는다. 그녀의 심장은 희망으로 뛰고 있다. 아이는 예수의 튜닉의 끈과 그분의 부드러운 황금색 수염과 긴 머리채 하나를 가지고 손장난하며 놀고 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직한 일을 해라. 그리고 일곱째 날은 주님과 네 영혼에게 바쳐라.’(탈출20,8-11) 이것이 안식일의 휴식에 대한 계명입니다.사람은 하느님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하셨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감히 아버지를 본받지 않고, 방자하게도 그분의 계명을 위반하겠습니까? 그것이 어리석은 명령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와 정신과 영혼에게 진정 유익한 명령입니다.

피곤한 몸은 피조세계의 다른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밭에서 일한 소는 쉬고, 우리도 그놈을 쉬게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놈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나귀나, 우리에게 젖을 주는 새끼를 낳은 양도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밭의 땅도 쉬고, 우리도 그것을 쉬게 합니다.

씨가 없는 몇 달 동안에 땅은 양분을 얻고, 비에 들어 있거나 땅에서 올라오는 소금을 흡수합니다. 지혜로운 번식의 영원한 법칙들에 복종하는 동물들과 식물들은 우리의 동의 없이도 잘 쉽니다.

본능적인 명령만을 받았을 뿐인 식물과 동물 등의 하등 피조물들은 그것을 따르고 그것에 복종할 줄 아는데, 왜 사람은 일곱째 날 쉬셨던 창조주를 본받기를 원치 않습니까?

이것은 육체적인 계명일 뿐 아니라 정신적인 계명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엿새 동안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골몰했습니다. 베틀의 실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느라 이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나 자신도 돌보고,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도 돌봐야겠다. 나는 아버지이니, 오늘 나는 내 자녀들에게 속해 있다. 나는 남편이니, 오늘 나는 내 아내에게 헌신할 것이다. 나는 형제이니, 내 형제들과 기뻐할 것이다. 나는 아들이니, 연로하신 내 부모님들을 돌봐드려야겠다.’

이것은 영적인 계명입니다. 일은 거룩하지만, 사랑은 더 거룩하고,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우리를 살아 있게 해주시는 착하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께 이레 중에 적어도 하루는 드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우리 아버지, 우리 자녀들, 형제들, 아내, 우리 자신의 육체보다 하느님을 덜 존경해야 합니까?

주님의 날은 그분의 것이어야 합니다. 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에 애정이 가득한 가정에서 쉰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오랜 여행 후에 가정에 돌아오는 것은 유쾌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엿새 동안 일한 다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엿새 동안의 여행에서 돌아와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제가 쉬는 날을 당신과 함께 지내기를 원합니다’ 하고 말하는 아들처럼 되지 말아야겠습니까?

잘 들으시오. 나는 ‘정직한 일을 하라(do an honest job)’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율법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한다는 것을 압니다. 정직한 일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일부를 이룹니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은 사업에 있어 도둑질하지 않고, 노동자의 임금을 속이지 않고, 그를 부당하게 착취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인과 노동자도 자기처럼 육체와 영혼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인과 일꾼을 자기의 발로 차거나 쇠 채찍으로 때려도 되는 생명 없는 돌들처럼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하느님의 눈앞에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가 그 이득의 일부를 성전에 바친다 해도, 그것은 저주받은 것입니다.

오! 얼마나 거짓된 헌금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감히 그것에서 착취당한 아랫사람의 눈물과 피가 흐르거나 그것의 이름이 ‘도둑질’, 즉 자기의 이웃에 대한 배신으로 인하여 생긴 돈인데 그것을 제단 아래 가져다놓을 수 있겠습니까? 도둑은 자기의 이웃에 대한 배신자니까요. 사람이 자기를 성찰하고, 자기를 향상시키고, 지난 엿새 동안에 지은 죄를 보속하는 데 안식일을 사용하지 않는 한 그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고방식을 조금도 바꾸지 않는 단순한 외적 준수가 아니라 위와 같이 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 있는 행위들(living deeds)을 원하시지, 모조행위들(sham deeds)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율법에 대한 거짓 존중은 단순한 흉내일 뿐입니다. 안식일을 거짓으로 거룩하게 지키는 것 즉 사람들의 눈에 계명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휴식을 취하긴 하지만, 한가한 시간들을 악습, 정욕, 연회로 써버리고 다가오는 일주일 동안 어떻게 하면 자기의 이웃을 착취하고 손해를 끼칠 수 있을까를 계획하며 취한 휴식은 안식일을 지키는 가짜입니다.

안식일의 물리적인 휴식이 자신의 비참함에 대한 겸손한 고백과 다가오는 일주일 동안에는 자신을 더 향상시키겠다는 확고한 결심과 함께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이고 영적인 성화시키는 성찰과 병행되지 않을 때 그것은 가짜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죄에 빠지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은 한 번 넘어진 다음 다시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른 한 걸음을 내딛지 않으려 하는 어린이에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 애는 어리석다고 말하겠지요.

우리 모두가 어렸을 때 그와 같았고, 넘어졌다고 해서 우리 아버지들이 우리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니 우리는 그 애가 걸음걸이가 확실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겠지요.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어머니가 얼마나 수없이 입 맞춰주고, 아버지가 얼마나 쓰다듬어주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늘에 계시는 지극히 다정하신 아버지께서도 똑같이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땅에 넘어져서 울고 있는 그분의 어린 자녀에게 몸을 굽히시고 말씀하십니다. ‘울지 마라. 내가 너를 일으켜주마. 다음번에 너는 더 조심해라. 지금 내 품으로 오너라. 여기서 네 모든 고통은 그칠 것이고, 너는 튼튼해지고 나아서 기뻐하며 떠날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말이기도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여러분은 매사에 성공할 것입니다. 믿음, 기억하시오. 어린이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이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는 무엇이 일어날지, 어떻게 일어날지 묻지 않습니다. 그는 일들의 깊이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신뢰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을 믿고, 그들이 자기에게 말하는 대로 합니다.

여러분도 지극히 높으신 분에 대하여 어린이들처럼 되시오. 그분께서는 땅의 아름다움인 저 길 잃은 천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요! 그분께서는 이와 같이 어린이처럼 순진하고, 착하고, 순결한 영혼들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는 것을 배우는 한 어린이의 믿음을 보기를 원합니까? 보시오. 여러분 모두는 내가 내 품에 안고 있는 이 아이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의사들과 이 아이의 엄마의 말과는 달리 이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아 있을 때 울지 않았습니다. 보이세요? 이 아이는 오랫동안 전혀 쉬지 못하고 밤낮으로 울기만 했었는데, 여기서는 울지 않고 내 가슴에 기대 평온하게 잠들었습니다.

내가 이 아이에게 ‘너는 내 품에 안기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이 아이는 자기의 비참한 상태나 자기가 움직이는 과정에서 느낄 수도 있는 고통을 따져보지 않고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 아이는 내 얼굴에서 사랑을 보았고, 그래서 ‘예’ 하고 대답하고 나에게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저 널빤지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던 아이가 여기 높은 곳에 와서 보는 것을 기뻐했고, 딱딱한 나무 대신 부드럽고 따뜻한 몸 위에 누워 있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는 방긋 웃었고, 자기의 작은 손으로 내 머리카락 한 줌을 잡은 채 잠들었습니다.

지금 나는 입맞춤으로 이 아이를 깨우겠습니다…”

예수께서 아이의 갈색 머리카락에 입 맞추시자 그가 미소 지으며 깨어난다.

“네 이름이 뭐니?”
“요한.”

“요한아, 들어라. 너는 걷고 싶으냐? 너는 네 엄마한테 가서 ‘메시아가 엄마의 믿음 때문에 엄마를 축복하신대’ 하고 말하고 싶으냐?”


“예!”
아이가 자기의 작은 두 손으로 손뼉 치며 대답하고 나서 예수께 묻는다.

“당신은 나를 걷게 해주실 거예요? 풀밭에서? 더 이상 이 보기 흉하고 딱딱한 널빤지 없이? 나를 아프게 하는 의사들도 더 이상 안 보고?”

“안 본다. 다시는 안 봐.”

“아! 나는 당신을 많이 사랑해요!”

아이는 자기의 두 팔로 예수의 목을 얼싸안고 그분께 입 맞춘다. 그는 더 잘 입 맞추려고 예수의 무릎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팔짝팔짝 뛰며 예수의 이마, 두 눈, 두 뺨에 수없이 입 맞춘다.


아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지금 이 순간까지 마비되어 있었던 자기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엄마와 군중이 지르는 외침에 놀라 돌아보고 깜짝 놀란다. 아이의 양윈 얼굴 위의 무죄한 큰 눈들은 질문하듯 주위를 둘러본다.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자기의 한 팔로 예수의 목을 얼싸안고 웅성거리는 군중과 반대쪽 끝에서 자기의 이름과 예수의 이름을 번갈아가며 ‘요한아! 예수님! 요한아! 예수님!’ 하고 부르는 자기의 엄마를 가리키면서 은밀히 그분께 묻는다.

“왜 사람들과 우리 엄마가 소리 지르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당신이 예수에요?”

“그래, 나는 예수다. 사람들은 네가 걸을 수 있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에 소리 지르고 있다. 잘 가거라. 어린 요한아. 네 엄마에게 가거라. 그리고 착하게 살아라.”

예수께서는 그에게 입 맞추시고 그를 축복하신다.
아이는 자신 있게 예수의 무릎에서 내려간 다음 자기의 엄마에게로 달려가 그녀의 목을 얼싸안고 말한다.

“예수가 엄마를 축복한대. 그런데 엄마는 왜 울고 있어?”

사람들이 약간 진정되자 예수께서는 우레 같은 소리로 말씀하신다.

 

“죄짓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힌 여러분은 어린 요한처럼 행동하시오. 하느님의 사랑을 믿으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환호하는 군중의 함성이 한 어머니의 행복한 눈물로 섞여드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의 호위를 받으시며 방을 떠나시고, 환상은 모두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