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305~p315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92. 그분의 집 근처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다
1945. 1. 30.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마리아의 정원 위쪽에 있는 커다란 호두나무 그늘로 데려가 다시 가르치시는데, 그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정원의 일부를 그늘지게 하고 있다. 오늘은 바람이 부는 날인데 금방 폭우가 쏟아질 것 같다. 아마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분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지 않으신 것 같다. 마리아께서는 집에서 정원으로 왔다 갔다 하시는데, 매번 고개를 들어 나무 옆의 풀에 앉아 제자들에 둘러싸여 계시는 그분의 예수를 바라보고 미소 지으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어제 나는 오늘의 가르침은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불러 일으켰던 것에 관한 것이라고 너희에게 말했다. 그 가르침은 이러하다.
너희는 감추어진 것이 영원히 감추어진 채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것이 너희의 규칙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그분의 기적들을 통해서나 한 형제의 공로를 인정하는 의인들의 말을 통하여 그분의 자녀들 중 한 사람의 업적이 알려지도록 배려하실 수 있다.
혹은 사탄이 그렇게 할 수도 있는데, 사탄은 조심성 없는 사람의 ―나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입을 통하여 선인들은 애덕을 어기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하여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일을 폭로하거나, 사람들의 생각에 혼란을 일으키도록 진실을 왜곡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추어져 있는 것들이 알려지는 때가 반드시 오는 것이다.
너희는 항상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너희가 선행을 회피하도록 만들지 않고, 악행을 억제하게 만들기 바란다. 사람은 얼마나 자주 착한 마음으로, 참으로 착한 마음으로, 그러나 인간적인 착한 마음으로 행동하느냐! 그런데 그 행동이 인간적이어서, 다시 말해서 그 의도가 완전하지 않아서 그는 자기의 선행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하고, 그것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면 화내고, 그 선행이 알려지도록 노력한다. 아니다. 내 벗들아, 그래서는 안 된다.
선을 행하고, 그것을 영원하신 주님께 드려라. 그분께서는 너희의 유익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질 방법을 알고 계신다. 반면 만일 그것이 교만한 자기만족을 터뜨려 너희의 의로운 행동들을 방해한다면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비밀로 해두셨다가 하늘나라에서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의 면전에서 너희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또한 결코 외양으로 타인의 행동을 판단하지 마라. 사람들의 행동들이 때로 나쁘게 보이지만 다른 이유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결코 누군가를 비난하지 마라. 예를 들어 어떤 아버지가 게으르고 방탕한 아들에게 ‘나가라’ 하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냉혹함과 그의 아버지로서의 의무들에 배치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나가라’는 그의 말 속에는 아들보다 그가 흘린 쓴 눈물이 들어 있고, ‘네 방종을 뉘우친 다음에 돌아오너라’ 하는 말과 그 말이 실현되기를 원하는 소원이 곁들여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아들들에 대한 의로운 행동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의 방탕한 아들이 다른 아들들의 것까지도 방탕함으로 낭비해버리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반면 만일 그 말이 그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하느님보다 더 높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아들의 영혼에 대해서도 권리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하느님과 자기의 자녀들에게 죄를 범하고 있는 아버지에 의하여 말해진 것이라면, 그것은 나쁘다. 안 된다.
영혼은 하느님께 속해 있는데, 하느님께서도 자신을 드리거나 드리지 않을 수 있는 영혼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신다. 세상에게는 모든 행동들이 똑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얼마나 서로 다르냐! 하나는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죄 되는 자의적 행동이다. 그러므로 결코 아무도 판단하지 마라.
어제 베드로는 유다에게 ‘자네의 선생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도 자기가 타인에게서 보는 것으로 인하여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선생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말을 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열 사람은 의인이 되고, 열사람은 악인이 되느냐? 왜냐하면 각자는 자기의 마음속에 가진 자기 자신의 것을 보태는데, 그것이 선이나 악을 향하여 눈금을 기울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지나친 악으로 인하여 선생이 주입했던 선이 없어진다 해서 어떻게 선생이 잘못 가르쳤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수 있겠느냐?
성공의 첫째 요인은 너희에게 달려 있다. 선생은 너희의 자아에 작용한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개선에 민감하지 않다면, 선생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나는 무엇이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나보다 더 참을성 있고, 지혜롭고, 완전한 선생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제자들 중 몇몇은 ‘저 사람의 선생은 누구였느냐?’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너희는 판단할 때 결코 개인적인 이유들에 압도되지 마라. 어제 유다는 자기 지방을 공정한 것 이상으로 사랑하여 내가 그것에 대하여 불공평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자기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나 어떤 생각에 대한 집착 같은 그런 헤아릴 수 없는 요소들에 지배되어 방향감각을 잃은 물총새처럼 자기의 목적지에서 벗어난다.
하느님이 목적지시다. 제대로 보려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어떤 것도 하느님 위에 두지 말고 모든 것을 그분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
그리고 혹시 어떤 사람이 실수한다면… 베드로와 너희 모두는 편협하지 마라. 다른 누군가가 저질러서 너희를 심하게 상처 입히는 잘못을 너희는 정말 한 번도 저지른 적이 없느냐? 너희는 확신하느냐? 만일 너희가 그런 잘못을 한 번도 저지른 일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너희는 무엇을 해야 하겠느냐? 하느님께 감사해라. 그뿐이다.
그리고 너희가 지금까지 피해온 것에 내일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의 깊게 살펴라. 보이느냐? 당장 우박이 쏟아질 것 같기 때문에 오늘은 하늘이 어둡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살펴보고 ‘집에서 너무 멀리 가지 말자’고 말했다.
자, 죄지어 하느님의 우정을 잃는 것에 비하여 아무리 위험해 봐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우리가 판단할 줄 안다면, 우리는 왜 우리의 영혼들에 대한 위험이 어디 있는지 분별할 줄 모르느냐?
보아라, 저기 내 어머니께서 계신다. 너희는 그분 안에 악의 경향이 있다고 느낄 수 있느냐? 사랑이 나를 따라오시도록 그분을 강권하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내 사랑이 그것을 원할 때 그분의 집을 떠나실 것이다.
이 가르침을 그분의 태중에 가지고 계셨고, 하느님의 육화된 말씀의 미래의 어머니에게 그보다 훨씬 전에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로 그분의 영혼 안에 그 가르침을 가지고 계셨던 그분께서는 내 선생님이신데도 ‘아들아, 네 어미도 네 제자들 가운데에 있게 해다오. 나도 네 가르침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하시곤 하셨다.
오늘 아침에 그분께서는 다시 한 번 그것을 부탁하신 다음에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느님과 나의 일치를 잃지 않고, 세상에 있는 것과 악취가 코를 찌른다고 네가 말한 것으로 인하여 내 마음이 부패하지 않고 너에게 갈 수 있는지를 판단해라. 왜냐하면 내 마음은 항상 하느님의 것이었고, 지금도 그분의 것이고, 앞으로도 그분의 것이 되기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을 살펴보는데, 내가 아는 한 나는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이 대목에서 그분께서는 무심코 그분 자신에게 가장 고귀한 찬사를 주셨다) 나는 내가 성전의 한 송이 꽃이었던 시절의 흠 없는 평화와 30년이 넘는 동안 주부로 지내오는 지금 내 안에 가지고 있는 평화 사이에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영의 일들을 알지 못하고, 그 일들을 판단하는 것은 더욱 잘하지 못하는 자격 없는 여종이다.
너는 말씀, 지혜, 빛이다. 그러니 너는 주님께 감사하지 않기보다는 더 이상 너를 보지 못하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네 가엾은 어미의 빛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감탄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그분께 말씀드려야 했다. ‘어머니, 제가 당신께 말씀드리는데 당신께서는 세상으로 인하여 부패하시지 않으실 것이고, 세상이 당신으로 인하여 정화될 것입니다.’
너희가 방금 들었다시피 내 어머니께서는 세상에서 사는 것의 위험들을, 그리고 그분 자신의 위험들도 볼 줄 아셨다. 그런데 너희 남자들은 그것들을 보지 못한단 말이냐? 오! 사탄은 참으로 누워서 기다리고 있다. 깨어 있는 사람들만이 승리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 너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묻고 있느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쓰인 대로 될 것이다.”
“선생님, 무엇이 쓰여 있습니까?”
“‘카인은 달려들어 아벨을 죽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너는 그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그의 피의 목소리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64)창세4,9 이하) 그러므로 너는 자기 아우의 혈관들을 끊은 형의 두 손으로 흘린 사람의 피를 맛본 온 땅 위에서 저주받을 것이며, 사람의 피에 대한 땅의 그 소름끼치는 갈증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피로 중독된 땅은 나이 들어 시든 여인보다 더 불모의 땅이 될 것이다. 너는 평화와 빵을 찾는 도망자가 될 터이나, 그것들을 얻지 못할 것이다.너는 네 양심의 가책으로 인하여 모든 꽃, 풀잎과 모든 물, 음식에서 피를 보게 될 것이다. 하늘이 너에게는 피로 보일 것이고, 바다도 피로 보일 것이며, 하늘로부터, 땅으로부터, 그리고 바다로부터 하느님의 목소리, 무죄한 네 아우의 목소리, 마귀의 목소리, 이 세 목소리들이 너에게 들려올 것이다. 그래서 너는 그것들을 듣지 않으려고 스스로 네 목숨을 끊을 것이다.'”
“창세기에는 그렇게 쓰여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말한다.
“그렇다. 창세기에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실수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새 아벨들의 새 카인들을 위하여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들과 원수(the Enemy)를 감시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와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 저희 중 아무도 그렇게 되지 않겠지요. 맞습니까?”
“요한아, 성전의 장막이 찢어질 때 큰 진리가 온 시온 위에 밝게 쓰일 것이다.”
“나의 주님, 어떤 진리입니까?”
“어둠의 자식들이 빛과 접촉했지만 허사였다는 진리이다. 요한아, 이것을 기억해라.”
(요한은 예수의 이 말씀을 기억하여 요한1,9-10을 기록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제가 어둠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아니다, 너는 아니다. 그러나 그 죄(the Crime)를 세상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그것을 기억해라.”
“어떤 죄입니까, 주님? 카인의 죄입니까?”
“아니다. 그것은 사탄의 찬미가의 첫 번째 화음이다. 나는 완전한 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죄, 그것을 이해하려면 하느님의 사랑의 태양과 사탄의 생각을 통하여 그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증오만이, 무한한 선과 무한한 악만이 그러한 봉헌(such Offer)과 그러한 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것을 듣고 있느냐? 사탄이 듣고 있는 듯하고, 그것을 저지를 욕망으로 포효하고 있는 듯하다. 구름이 번개와 우박 돌들로 터지기 전에 가자.”
그리하여 그들은 폭풍우가 포효하기 시작하는 동안에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와 마리아의 정원으로 뛰어든다.
93. 나자렛의 정원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와 제자들을 가르치시다
1945. 1. 31.
예수께서는 전날 저녁의 소나기로 깨끗하게 씻긴 것처럼 보이는 텃밭으로 나오시다 작은 식물들 위에 몸을 숙이고 계시는 그분의 어머니를 발견하신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분의 어머니께 가서 그분께 인사드리신다. 그분들의 입맞춤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예수께서는 그분의 어머니의 어깨를 왼팔로 끌어안으시고 끌어당기시어 이마의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는 부분에 입 맞추시고 나서, 그분의 어머니께서 자신의 뺨에 입 맞추시도록 그분 자신의 몸을 숙이신다.
그러나 이 행위의 우아함을 완성하는 것은 그 입맞춤에 동반하는 시선이다. 예수의 입맞춤은 위엄 있고 보호자답지만, 사랑으로 가득하다. 마리아의 입맞춤은 전적인 흠숭이고 사랑이다. 두 분 중 예수께서 연세가 더 많으신 것 같고, 마리아께서는 아버지나 훨씬 나이 많은 오빠에게 아침인사로 입맞춤을 받는 어린 소녀와 같으시다.
“당신의 꽃나무들이 어제저녁의 우박과 간밤의 바람으로 상했습니까?”
예수께서 물으신다.
“선생님. 아무 손해도 없었습니다. 가지들만 심하게 헝클어졌을 뿐입니다.”
마리아보다 먼저 베드로의 다소 쉰 목소리가 대답한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들어 시몬 베드로를 바라보신다. 그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짧은 튜닉을 입은 채 위쪽으로 굽은 무화과나무 가지들을 바로잡느라 바쁘다.
“너는 벌써 일하고 있느냐?”
“예! 저희 어부들은 물고기들처럼 아무 때라도 어디서라도 잘 수 있는 동안에만 잡니다. 저희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새벽에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고 저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시몬아, 어머니께서 벌써 일어나셨다. 서둘러라! 가서 네 힘센 손으로 그분을 도와드려라.’ 저는 바람이 심하게 분 간밤에 그분께서는 그분의 꽃들을 걱정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여자들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면 제 아내도 마치 그물에 걸려든 고기들처럼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는데, 그 사람은 자기의 화초들을 생각하느라 그러는 것입니다… 가엾게도!
가끔 저는 그 사람에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의 시몬이 호수에서 풍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에도 당신은 이렇게 뒤척이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해’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착한 아내니까요. 그 사람의 어머니는 아마도…
이제 그만 입 다물어라, 베드로야. 그것은 지금 말하는 것과는 상관없다. 불평하거나 지나친 친절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조심성 없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보십시오, 선생님! 당신의 말씀이 우둔한 제 머리에도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는 웃으시며 대답하신다.
“네가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으니 나는 네 말을 인정하고, 농부로서의 네 지혜를 감탄하는 일만을 할 수 있다.”
“이 사람은 풀어졌던 포도나무 햇가지들을 벌써 다 다시 묶어놓았고, 열매가 너무 많이 달린 배나무에 지주를 세우고, 한쪽으로만 자란 석류나무 밑동을 밧줄로 동여맸단다.”
마리아가 말씀하신다.
“예! 이 나무는 늙은 바리사이와 같습니다. 이놈은 제멋대로 기울어지거든요. 저는 그놈이 마치 돛이라도 되는 듯 정리해준 다음에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네가 원만한 중용(happy medium)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이 돌대가리야, 네가 네 지나친 무게로 찢어져 내리지 않으려면 이리로 오너라.’
지금 저는 이 무화과나무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기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의 입맛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싱싱한 무화과들과 따끈한 빵! 아! 안티파스라도 이런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화과나무의 가지들은 첫사랑을 고백하는 소녀의 마음처럼 부드러운데, 무겁고, 가장 맛있는 무화과들은 꼭대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것들은 오늘 아침의 첫 햇살에 벌써 말랐습니다. 저놈들은 틀림없이 맛있을 겁니다. 오! 젊은이, 우두커니 서서 나를 쳐다보지만 말고, 잠에서 깨어나 그 바구니를 나에게 주게!”
작업장에서 막 나온 요한이 복종하여 자기도 그 큰 무화과나무로 기어 올라간다. 두 어부가 나무에서 내려올 때 열성당원 시몬과 요셉과 가리옷의 유다도 작업장에서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마리아께서는 몇 개의 신선한 빵들을 가져오신다. 둥글고 작은 갈색 빵들이다. 베드로는 자기의 주머니칼로 빵들을 자르고 그 위에 쪼갠 무화과를 얹은 다음 먼저 예수께, 그 다음에 마리아께 드리고 연이어 다른 사람들에게 준다.
그들은 밝은 아침 햇살과 공기를 맑게 한 어제 비로 인해서 아름다워지고 시원해진 정원에서 맛있게 식사한다.
베드로가 말한다.
“선생님, 오늘은 금요일이고… 내일은 안식일인데요…”
“우리 모두가 그것을 알아.”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내 말의 뜻을 알고 계셔…”
“그래, 나는 안다. 오늘 저녁 네가 네 배를 매어 둔 호수로 가 배편으로 카파르나움으로 가자. 내일 나는 그곳에서 말하겠다.”
베드로가 몹시 기뻐한다.
토마스, 안드레아, 야고보,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유다 타대오가 함께 들어오는데, 분명히 다른 데 가서 잔 모양이다. 그들이 서로 인사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모두 함께 여기 머물러 있자. 새 제자 한 명이 더 올 것이다. 어머니, 오세요.”
어떤 사람은 바위에, 어떤 사람은 등 없는 의자에 예수 주위에 원형으로 앉는다. 예수께서는 집에 기대어 놓여 있는 돌 의자에 그분의 어머니와 나란히 앉으시고, 요한은 가까이 있고 싶어서 땅바닥에 앉아 있는 것을 선호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다.
예수께서는 평소처럼 조용히 엄숙하게 말씀하신다.
“내가 사도직 교육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보아라. 땅은 겨울에는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씨앗들이 활동하고 있고, 꽃피는 계절이 되었을 때 땅 위의 가지들을 위하여 땅속의 가지들―나는 뿌리들을 이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에 풍부하게 저장해둔 수분을 먹는다.
너희도 황량하고 헐벗고 볼품없는 겨울 땅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러나 씨 뿌리는 사람이 너희 위로 지나가며 씨를 뿌렸고, 경작하는 사람이 너희 가까이로 와서 그 나무들이 심겨진 땅처럼 단단하고 거친 너희 줄기 주위의 땅을 파헤쳐, 뿌리가 구름과 공기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하여 장차 맺을 열매들을 위하여 줄기들이 튼튼해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너희는 하느님의 일에서 열매를 맺고 싶어 하기 때문에 씨앗과 밭갈이를 받아들였다.
나는 또한 너희의 사도직 교육을 초목들을 때리고 넘어뜨려 무익한 폭력처럼 여겨진 폭풍우와 비교하겠다.
그러나 그 폭풍우가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는지 보아라. 오늘 공기는 더 맑고, 더 상쾌하고, 먼지나 무더위가 없다. 태양은 어제의 태양과 똑같지만, 고온일 때라도 어제처럼 그렇게 찌는 듯하지는 않다. 그 빛살들이 맑아지고 시원해진 공기층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기 때문이다. 풀들과 나무들도 사람들처럼 고통이 덜어졌는데, 깨끗함과 맑음이 모든 것을 원기 있게 하기 때문이다.
대조들도 더 정확한 지식과 명료함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조라는 것이 서로 다른 종류의 구름들을 휘젓는 폭풍우들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느냐? 그 구름들은 무익한 언짢은 기분과 사소한 질투들과 헛된 교만 안에서 천천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쌓이지 않느냐? 그러다가 은총의 바람이 불어와 그 언짢은 기분들을 깨끗하게 하여 다시 맑게 만들어놓는다.
너희의 사도직 형성은 또한 오늘 아침 베드로가 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던 일과 비슷한데, 그것은 서로 다른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강화시키고, 묶어주고, 지탱해주고, 풀어주어 너희를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어 ‘강한 일꾼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릇된 생각들을 바로 잡아주어야 하고, 반역하는 육체를 묶고 억제해야 하고, 약함을 지탱해주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악한 성향들을 잘라내야 하고, 속박과 소심성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너희는 자유롭고, 강해야 한다. 자기들이 태어난 산꼭대기를 버리고 점점 더 높이 날아오르는 독수리들처럼 말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나는 것이고, 애정들은 산꼭대기들이다.
오늘 너희 중 한 사람은 슬프다. 왜냐하면 자기의 아버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진리(the Truth)와 그 진리를 따르고 있는 자기의 아들에게 마음을 닫은 채 아니 적대적인 채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버지는 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하느님보다 더 높다고 주장하면서 ‘나가라’는 불의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닫힌 그의 마음과 꽉 다문 그의 입술은 최소한 ‘너를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가라’고 말할 줄 모른다. 그 아들이나 너희에게 말하는 나는 그가 ‘오너라. 너와 함께 선생님도 오시게 해라. 하느님께서 우리 집안에서 그분의 종을 선택하여 주님의 말씀과의 혈연관계보다 더 고상한 친척관계를 만들어주신 것으로 인하여 그분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하고 말하는 것을 듣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그의 아들은 더 복잡한 이유들로 인하여 그에게서 적의를 품은 말들을 듣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아들은 울면 안 된다. 그는 내가 자기의 아버지에게 원한도, 악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에게 연민만을 느낀다. 나는 왔고, 증오로 마음이 굳어 있어 기다려봐야 소용없을 줄 알면서도 그의 아들이 ‘오! 당신은 왜 오지 않았어?’ 하고 나에게 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서 기다렸다. 나는 사람이 증오로 마음이 냉혹해지면 모든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그가 충분히 확신하게 하기 위해서 왔다.
나는 가족의 분열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은 한 착한 여인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왔다. 아들과 착한 어머니는 내가 증오를 증오로 갚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기를. 그의 믿음이 정도에서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자기의 종교였던 것에 충실한 늙은 신자의 정직성을 존중한다.
이스라엘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가 아브라함의 자손들보다 이교도들에게 더 잘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너희에게 말하는 것이다. 인류는 구세주에 대한 사상을 왜곡하여 구세주의 초자연적인 왕권을 인간주권이라는 보잘것없는 생각으로 전락시켰다. 나는 히브리주의(Hebraism)의 단단한 껍질을 쪼개고 관통하고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다시 쪼개서 정확히 히브리주의의 심장이 있는 곳에 풍성한 새 율법을 놓아야 한다.
오! 시나이 산의 율법의 핵심 주위에서 자라난 이스라엘은, 과육이 점점 더 섬유가 많아지고, 단단해지고, 바깥쪽에서는 아무것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안에서 싹이 터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껍질이 덮여 있는 괴물 같은 실과처럼 되어, 영원하신 아버지께서는 한분이시고 삼위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새로운 나무를 창조하실 때가 왔다고 여기신다.
나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히브리주의가 그리스도교(Christianity)가 되게 하기 위하여 구멍을 파고 뚫고 스며들어가 바로 그 돌에까지 들어가서 그것을 내 사랑으로 덥혀 깨어나게 하고, 부풀어 오르게 하고, 싹트게 하고, 점점 더 자라게 하여 완전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종교인 그리스도교라는 강력한 나무가 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히브리주의는 백에 하나 꼴밖에는 뚫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기의 아들을 나에게 주기도 원치 않는 이 이스라엘 사람을 하느님께 버림받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자기를 낳아준 혈육에게 거절당하여 고통당하는 혈육으로 인하여 울지 말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 영혼으로 인하여 울지 말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어떤 것보다 네 고통이 네 영혼과 그의 영혼 즉 이해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네 아버지의 영혼에게 유익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이것도 말하겠다. 네가 네 아버지에게보다 하느님께 더 속해 있는 것으로 인하여 가책을 느끼지 마라.
그리고 나는 너희 모두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보다 더 크시다. 나는 세상과 혈육에 따라서가 아니라 영과 하늘에 따라 사람들을 결합시키려고 왔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에 있을 때도 나와 함께 할 하늘에 적합한 영혼들, 하늘의 종들을 얻기 위하여 혈육을 분리시켜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강한 자들’을 부르고, 그들을 훨씬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왔는데, 온유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내 군대는 그들의 형제들에게는 온유하고 자기 자신의 자아와 혈연의 이기주의에 대해서는 ‘강한’ 자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내 사촌이여, 울지 마라. 나는 네 고통이 너의 어떤 말보다, 네 말뿐 아니라 내 말보다 네 아버지와 네 형제들을 위하여 하느님 앞에서 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너에게 확언한다. 말들은 선입견들이 장벽을 형성하고 있는 곳에는 뚫고 들어갈 수 없으나, 은총은 들어간다. 그리고 희생은 은총들을 끌어당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내가 누군가를 제자로 부를 때 이 부름에 대한 순종보다 더 큰 순종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께 가는 것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얼마나 반응할지 계산하느라고 머뭇거리지 말고 응해야 한다. 심지어 자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라도 머뭇거리면 안 된다.
너희는 이 영웅적인 행위(heroism)에 대하여 보상을 받을 터인데, 그 보상은 너희 자신들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너희가 마음 아프게 이별하는 사람들, 배은망덕한 자식들이라고 너희를 비난하고 자기들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반역자들이라고 너희를 저주하기 때문에 뺨을 때리는 것보다 말로 자주 너희를 더 아프게 때리는 사람들을 위한 것도 되는 것이다. 아니다. 너희는 반역자들이 아니라 성인들이다.
부름 받은 사람들의 최초의 원수들은 그들의 부모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과 사랑(하느님에 대한 초자연적 사랑과 인간에 대한 자연적 사랑, 본문에 계속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것을 바로 알 수 있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것들의 주인을 그 주인의 하인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들을 하느님 안에서 사랑해야 하지만, 하느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침묵하신 다음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고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그분의 사촌 곁으로 가서 그를 쓰다듬으신다.
“유다야… 나는 내 사명을 따르기 위하여 내 어머니를 떠났다. 이것으로 네 행동의 정직성에 대한 모든 의심들을 물리쳐야 한다. 만일 그것이 좋은 행위가 아니었다면, 내가 결국 나 하나밖에 가지지 못한 내 어머니에게 그렇게 했겠느냐?”
유다는 예수의 손을 잡아 자기의 얼굴로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알패오 아저씨가 나를 나자렛에서 가장 분별 있는 소년이라고 생각하셨을 때처럼 우리 두 사람이 함께 가자. 노인에게 금빛 나는 이 아름다운 포도송이들을 가져다드려서 내가 그분을 소홀히 하거나 그분께 적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게 하자. 네 어머니도, 야고보도 기뻐할 것이다.
내일 나는 내가 카파르나움으로 가겠다고, 그분의 아들은 온전히 그분께 헌신할 것이라고 그분께 말씀드리겠다. 너도 알다시피 노인들은 어린이들 같아서 시샘이 많다. 그리고 그분들은 항상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분들을 동정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분 자신으로 인하여 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생긴 고통과 갈등이 드러난 것으로 인하여 말을 잃고 있는 제자들을 정원에 남겨두신 채 사라지신다. 마리아께서는 예수를 대문까지 배웅하시고는 지금 고통스럽게 한숨을 쉬시며 돌아오신다.
모든 것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