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권 복음준비 51p~61p
예수의 자서전 / I 숨겨진 생활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8. 마리아, 성전에 바쳐지다
1944. 8. 30.
나는 마리아가 그녀의 부모의 사이에서 예루살렘의 거리들을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행인들은 눈같이 흰 옷을 입고 매우 가벼운 겉옷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를 보려고 걸음을 멈춘다. 연한 바탕에 약간 더 진한 나뭇가지들과 꽃들의 무늬를 보니 그것은 안나가 정결례 때 입었던 겉옷인 것 같다. 유일한 차이는 안나에게는 그것이 허리까지 내려왔었는데, 어린 소녀에 불과한 마리아에게는 거의 그녀의 발목까지 내려온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녀를 보기 드문 작고 가볍고 밝은 구름처럼 감싸고 있다.
그녀의 양어깨와 가냘픈 목덜미에 흘러내려져 있는 그녀의 금발은 무늬가 없고 아주 옅은 배경색만 있는 베일을 통하여 반짝인다. 베일은 아주 연한 하늘색 리본으로 그녀의 이마에 고정되어 있는데, 그 위에는 작은 백합꽃들이 은실로 수놓아져 있다. 틀림없이 그녀의 엄마의 작품일 것이다.
내가 말했듯 순백의 흰옷이 땅바닥까지 내려와 그녀가 걸을 때 하얀 샌들을 신은 그녀의 작은 발들이 보일 정도이다. 긴 소매들에서 삐져나온 그녀의 두 손은 두 개의 목련꽃잎 같다. 하늘빛 리본을 빼고는 다른 색이 없다. 모두 하얗다. 마리아는 눈으로 옷 입고 있는 것 같다.
요아킴은 정결례 때 그가 입었던 옷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반대로 안나는 매우 짙은 자줏빛 옷을 입고 있다. 그녀의 머리까지 덮고 있는 겉옷도 짙은 자주색이다. 그녀는 겉옷을 자기의 눈 밑까지 내린 채로 붙잡고 있다. 울어서 빨개진 한 엄마의 가엾은 두 눈, 울지 않으려고 하지만 겉옷으로 가린 채 울지 않을 수 없는 한 엄마의 가엾은 두 눈.
겉옷을 내려 쓴 조심성은 행인들과 요아킴도 그녀의 눈물을 보지 못하게 한다. 평소에는 맑은 요아킴의 두 눈은 오늘 이미 흘렸고, 아직도 흐르고 있는 눈물로 빨갛고 흐려져 있다. 그는 터번처럼 꾸민 베일을 쓰고 구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는데, 베일의 두 깃이 그의 얼굴 양쪽으로 늘어져 있다.
아주 늙어 보이는 요아킴이다. 그를 보는 사람은 누구든 그를 그가 손을 잡고 있는 어린 소녀의 조부나 증조부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가엾은 아버지는 딸을 잃는 슬픔으로 인하여 두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걷는데, 그는 몹시 낙심하여 나이에 비해 년이나 더 늙어 보인다. 그는 너무 슬프고 풀이 죽어 있어 마치 늙은 병자처럼 보인다. 그의 입은 그의 코 양쪽으로 오늘따라 매우 깊어진 두 개의 주름들 사이에서 가볍게 떨린다.
그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이 많은 사람에게 눈물을 감추는 데 성공한다 해도, 마리아에게는 성공할 수 없다. 그녀는 키가 작기 때문에 머리를 들어 아래에서 위로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린 딸이 그들을 쳐다보며 미소 지을 때마다 떨리는 입으로 미소 지으려고 애쓰며, 마리아의 작은 손을 꼭 쥐고 있는 자신들의 손에 더 힘을 준다. 그들은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 우리가 저 미소를 보는 것이 또 한 번 줄었구나.’
그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다. 그들은 가능한 한 그들의 여행을 질질 끌려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멈추어 설 핑계거리가 된다… 그러나 결국 여행은 끝나기 마련이다! 여행이 막 끝나려 한다. 저기 이 오르막길 마지막 한 토막과 성전의 벽들이 나타난다. 안나는 신음 소리를 내며 마리아의 손을 꼭 쥔다.
“사랑하는 안나 언니, 제가 언니와 함께 있어요!”
한 목소리가 교차로의 낮은 회랑의 그늘에서 나오며 말한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엘리사벳이 다가와 안나를 껴안는다. 안나가 울고 있기 때문에 엘리사벳이 말한다.
“잠시 이 친구의 집으로 들어갑시다. 그 다음에 우리 함께 가십시다. 즈카르야도 여기 있어요.”
그들 모두가 낮고 어두침침한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을 밝히는 불이라고는 큰 촛불 하나뿐이다. 분명히 엘리사벳의 친구겠지만, 안나가 알지 못하는 여주인은 친절하게 물러가 그들만이 있게 해준다.
“너는 내가 후회하고 있다거나 내 보배를 주님께 마지못해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오!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아이 없는 늙은이의 고독으로 돌아갈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만일 네가 그걸 느낀다면…”
안나가 울면서 말한다.
“사랑하는 안나 언니, 저도 알아요… 그러나 언니는 착하시니 하느님께서는 언니의 고독 가운데서 언니를 위로해주실 거예요. 마리아가 자기의 엄마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할 거예요. 그렇지, 마리아?”
마리아는 자기 엄마의 두 손을 쓰다듬고, 거기 입 맞춘다. 그녀는 그것들을 자기 얼굴로 가져가 쓰다듬게 하고, 안나는 두 손으로 딸의 작은 얼굴을 꼭 붙잡고 계속 입 맞춘다. 안나는 딸에게 입 맞추는 데 결코 지치지 않는다.
즈카르야가 들어오며 그들에게 인사한다.
“주님의 평화가 의인들에게 있기를.”
“그래, 우리를 위하여 평화를 빌어주게. 아브라함이 제물을 바치려고 산에 올라가는 동안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를 바치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떨리니 말이야. 그러나 우리는 이 아이를 대신하는 다른 제물을 발견하지 못했네. 우리는 주님께 충실하고자 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원치 않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즈카르야, 우리는 고통당하고 있네. 자네는 하느님의 사제이니 우리를 이해하고, 불편해하지 말게.”
요아킴이 대답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합리적인 한계들을 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흔들지 않는 형님의 고통은 지극히 높으신 분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저에게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여자 예언자 한나가 다윗과 아론의 이 꽃을 돌볼 것입니다. 지금 이 아이는 다윗의 거룩한 손 중 성전에 있는 유일한 백합꽃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왕의 진주처럼 보살펴질 것입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가 다가오고 있고, 다윗의 집에 속하는 여인들은 자기들의 딸들을 성전에 바치려고 애써야 할 터인데도 일반적인 믿음의 약화로 인하여 성전 안의 동정녀들의 자리들이 비어 있습니다. 봉헌된 동정녀들의 수가 너무 적고, 엘리사의 사라가 3년 전에 나가 결혼한 이래 다윗 왕의 후손은 하나도 없습니다.
정해진 때까지는 아직 삼십 년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자, 마리아가 다윗 가문의 동정녀들 중에서 거룩한 휘장 앞의 첫 번째 동정녀가 되기를 바랍시다. 그리고… 누가 압니까…”
즈카르야는 다른 말을 더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생각에 잠겨 마리아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한다.
“저도 마리아를 돌보겠습니다. 저는 사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천사를 위하여 그것을 활용하겠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도 자주 이 애를 보러 올 것입니다.”
“오, 그럼요! 저에게는 하느님이 대단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어린 소녀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영원하신 분께 말씀드려달라고 하겠어요.”
안나는 다시 용기를 낸다. 엘리사벳이 안나의 근심을 훨씬 더 덜어주기 위하여 그녀에게 묻는다.
“이건 언니의 신부 면사포 아니에요? 아니면 새 족사로 언니가 짠 거예요?”
“내 면사포다. 나는 이것을 이 아이와 함께 주님께 바친다. 내 두 눈은 더 이상 잘 보지 못하고… 세금과 불행들로 인하여 우리의 재산이 줄어들어서… 나는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애가 하느님의 집에 있는 동안과 그 후를 위하여… 이 애의 옷가지를 준비해두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애의 결혼식 때 내가 참석하여 이 애에게 옷 입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설사 이 애의 결혼식을 위하여 준비하고, 신부의 속옷들과 겉옷들을 길쌈하는 손이 차고 생기가 없다 해도, 그것이 이 애의 엄마의 손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오! 언니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랑하는 내 사촌, 나는 늙었네. 나는 내가 느끼는 이처럼 큰 고통을 느낀 적이 없었어. 나는 내 생애의 마지막 힘을 이 꽃을 임신하고 기르느라고 이 꽃에게 바쳤어. 그리고 지금 이 애를 잃는 고통이 내 마지막 힘을 뽑아서 흩어버리고 있다네.”
“요아킴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자네의 말이 옳네. 나는 내 남편을 위하여 노력하며 살겠네.”
요아킴은 즈카르야의 말을 듣는 데 골몰하느라 듣지 못한 체한다. 그러나 그는 들었다. 그는 눈물로 두 눈을 반짝이며 깊은 한숨을 쉰다.
“지금은 3시와 6시 중간입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 (유다인의 시간에 6을 더하면 지금의 우리 시간이 된다.)
즈카르야가 말한다. 그들 모두가 일어나 겉옷을 입고 출발한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마리아는 두 팔을 벌리고 문지방에 무릎 꿇는다. 그녀는 기도하는 작은 케루빔 천사 같다.
“아버지! 어머니! 저를 축복해주세요!”
용맹한 어린 소녀는 울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들은 떨고 있고, 흐느낌으로 끊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더 어린 비둘기의 떨리는 울음소리를 닮아 있다. 그녀의 얼굴은 더 창백하고, 그녀의 두 눈은 체념한 고통의 시선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칼바리아 위에서와 예수의 무덤에서 다시 보게 될 터인데, 거기서 그것은 훨씬 더 강렬하여 깊은 고통 없이는 그녀를 쳐다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부모들은 그녀를 축복하고 한 번, 두 번, 열 번 그녀에게 입 맞춘다. 그들은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엘리사벳은 말없이 울고 있고, 즈카르야는 깊이 감동한 채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간다. 마리아는 방금 전처럼 그녀의 아빠와 엄마 사이에 있다. 즈카르야와 그의 아내는 그들의 앞에 있다.
그들은 지금 성전의 내부에 있다.
“저는 대사제에게 갈 겁니다. 형님 가족은 큰 테라스까지 올라가세요.”
그들은 세 개의 마당들을 가로지르고, 하나가 다른 하나의 위에 있는 세 개의 홀들을 통과하여 지금 꼭대기가 금으로 덮인 거대한 대리석 입방체 밑에 있다. 지금 거대한 반쪽의 오렌지와도 같은 볼록한 돔 하나하나가 정오의 태양 빛에 불타고 있고, 장엄한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마당에 직사광선을 비추며 빛나고 있으며, 성전으로 이어지는 큰 정사각형의 넓은 계단들을 그 눈부신 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정면의 계단들을 마주보고 있는 현관만이 그늘져 있고, 아주 높은 청동과 황금의 문은 훨씬 더 어두워 그토록 환한 빛과 대조되어 더 장엄하게 보인다.
이토록 밝은 햇빛 아래 서 있는 마리아는 훨씬 더 하얗게 보인다. 그녀는 지금 계단들의 아래,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다. 이 세 사람의 가슴은 얼마나 세차게 뛰고 있을 것인가! 엘리사벳은 안나에게서 반걸음쯤 뒤에 서 있다.
은 나팔 소리들에 따라 문이 그 돌쩌귀들 위에서 돌아간다. 그것이 청동 공들 위에서 돌고 있는 동안에 그것은 시턴(현악기의 일종)의 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부가 먼 반대쪽 끝의 등불들과 함께 보이고, 한 행렬이 문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은 나팔 소리,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향, 불빛들의 장엄한 행렬이다.
지금 그 행렬은 문지방에 있다. 맨 앞에 대사제가 있다… 그는 아주 고운 아마포 옷을, 그 위에 짧은 아마포 튜닉을 입고 있고, 다시 그 위에 사제복과 부제복 중간 정도인 옷을 입고 있는 위엄 있는 노인이다. 그 옷은 여러 가지 색으로 되어 있다. 자주색과 금색, 보라색과 흰색이 번갈아가며 있는데, 그것은 햇빛에 보석들처럼 반짝인다.
두 개의 진짜 보석들이 그의 양어깨 위에서 더 밝게 반짝이고 있다. 그것들은 아마 귀금속들을 물린 고리들인 것 같다. 그의 가슴에는 황금사슬에 매달려 있는 보석들로 번쩍거리는 큰 금속판이 달려 있다. 펜던트들과 곁들여진 보석들은 그의 짧은 튜닉의 술 위에서 빛나고, 황금은 그의 이마 위 관 위에서 반짝이고 있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의 주교관처럼 위가 뾰족하지 않고 돔처럼 생긴 그 관은 나에게 정교회 신부들의 관을 상기시킨다.
그 장엄한 인물이 혼자 현관 앞 계단들이 시작되는 곳까지 앞으로 나와 황금빛 햇빛을 받으니 그가 한층 더 휘황찬란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문밖 그늘진 현관에 원형으로 서서 기다리고 있다. 왼편에는 온통 흰옷을 입은 한 무리의 처녀들이 여예언자 한나와 나이 든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는데, 그 여자들은 선생들임이 분명하다.
대사제는 어린 소녀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다. 그녀는 이집트의 신전에도 어울릴 만한 현관 앞 계단들 밑에 있어 몹시 작아 보일 것이다. 그는 기도하며 하늘로 자기의 양팔을 치켜든다. 그들 모두가 영원하신 왕과 소통하고 있는 사제의 위엄 앞에서 완전한 겸손으로 머리를 숙인다.
그 다음에 그가 마리아에게 손짓한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의 모친과 부친을 떠나 매혹된 듯 계단들을 올라간다. 그녀는 성전의 그늘진 곳, 귀중한 휘장이 걸려 있는 곳에서 미소 짓는다… 그녀는 지금 계단들의 꼭대기, 대사제의 발 앞에 서 있다. 그는 그녀의 머리에 자기의 한 손을 얹는다. 희생이 받아들여졌다. 성전은 이보다 더 깨끗한 제물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 다음에 그는 돌아서서 마치 그가 티 없는 어린양을 제단으로 데려가려는 듯 자기의 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고 그녀를 성전 문을 향하여 데려간다. 그녀를 안으로 들여보내기 전에 대사제가 그녀에게 묻는다.
“다윗의 마리아야, 너는 네 서원을 알고 있느냐?”
“예.”
그녀가 은처럼 낭랑한 소리로 대답하자 그가 외친다.
“그럼 들어오너라. 내 앞에서 걸어라. 그리고 완전해라.”
마리아가 들어가고 어둠에 집어삼켜진다. 동정녀들과 선생들의 무리와 그 뒤를 따라가는 레위 인들이 그녀를 가리고 점점 더 떼어놓는다… 그녀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문도 지금 그 감미로운 소리를 내는 돌쩌귀들 위에서 닫히고 있다. 점점 더 좁아져 가는 열린 틈으로 지성소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행렬이 보인다. 지금 그것은 좁은 틈으로 실처럼 가늘게 보이다가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이 닫힌 것이다.
돌쩌귀들의 조화로운 소리에 두 노부모의 흐느낌과 두 마디의 외침이 응답한다.
“마리아야! 딸아!”
그 다음에 서로를 부르는 두 개의 신음소리들이 들린다.
“안나!”
“요아킴!”
그것들은 속삭임으로 마무리된다.
“그 아이를 그분의 집에 받아들여 그분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영광을 드립시다.”
이렇게 하여 모든 것이 끝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대사제는 말했다. ‘내 앞에서 걸어라. 그리고 완전해라.’ 대사제는 자기가 완전함에 있어 하느님 바로 다음인 여자에게 말하고 있는 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의 명령은 신성한 것이었다. 그것은 항상 신성하지만, 특히 지혜가 가득한 동정녀(the Virgin Full of Wisdom)에게 그러했다.
마리아는 ‘지혜가 그녀 앞에서 인도하며, 맨 먼저 그녀에게 나타나게 할 만한’ 자격을 얻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녀의 날의 시작부터 지혜의 문을 지켜보았고, 사랑으로 인하여 배우기를 갈망했으며, 완전한 사랑을 얻고, 지혜를 자기의 선생으로 모실 자격을 얻기 위하여 순결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겸손하기 때문에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혜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과, 지혜와의 그 결합이 낙원에서의 신성한 박동들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그녀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하느님께서 그녀의 마음의 깊은 곳들 안에서 그녀에게 숭고한 말씀을 속삭이실 때 그것들을 교만의 생각들로 여기고, 하느님께로 자기의 죄 없는 마음을 들어 올리며 그분께 간구하였다.
‘주님, 당신의 종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오! 참으로 지혜로운 여자, 영원한 동정녀는 그녀의 날의 시작부터 유일한 생각만을 가져왔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인생의 아침부터 그녀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들어 올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기도하고, 주님을 위하여 살펴보며, 자기의 겸손이 자기에게 확신하게 하는 대로 자기 마음의 연약함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자기가 나중에 십자가의 발치 아래에서 죽어가는 자기의 아들과 함께 하게 될 죄인들의 용서를 청원하는 일을 미리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위대하신 주님께서 결정하실 때 그녀는 지성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그때 그녀는 자기의 위대한 사명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녀는 어린 소녀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성전의 거룩한 평화 속에서 자기의 하느님과의 점점 더 긴밀한 연결들, 애정들, 기억들을 형성하고, 재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내 작은 마리아(마리아 발또르따)야, 네 선생이 너를 위해서는 너에게 말할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없겠느냐? ‘내 앞에서 걸어라. 그래서 완전하게 되어라.’ 나는 거룩한 말을 약간 바꾸어 그것을 너에게 하나의 명령으로 준다. 사랑에 있어 완전하고, 너그러움에 있어 완전하고, 인내하는 데 있어 완전해라.
다시 한 번 내 어머니를 보아라. 그리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무시하기를 원하는 고통에 대하여 묵상해라. 왜냐하면 고통은 그들의 취향과 영혼에 너무 싫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그녀의 인생의 첫 시간부터 고통당했다. 그녀가 완전했다는 것은 그녀가 완전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함축한다. 결국 희생은 더 찌르는 것이었고, 그래서 더 공로가 되었다.
순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너그러움과 영웅적인 용맹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왜 희생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설사 십자가가 네 몸을 휘게 하고, 너를 부수고 죽인다 해도 네 영혼을 들어 올려라.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9. 요아킴과 안나의 죽음
1944. 8. 31.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마치 살을 에는 바람이 하늘에 구름들을 모을 때의 겨울의 빠른 황혼처럼, 내 조부모들의 인생은 그분들의 인생의 태양이 성전의 거룩한 휘장 앞에서 빛나려고 거기 자리 잡은 다음부터 급속히 쇠퇴했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있다.
‘지혜는 자기의 아들들을 기르고, 자기를 찾는 자들을 보호한다.
지혜는 자기의 아들들을 기르고, 자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돌본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 생명을 사랑하고, 그녀에게 시중드는 사람들은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녀를 섬기는 사람들은 거룩하신 분을 섬기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만일 그가 자신을 그녀에게 의탁한다면, 그는 그녀를 상속할 것이고,
그래서 그의 자손들은 그녀를 소유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의 시련들 가운데에서 그와 동행하기 때문이다.
맨 먼저 그녀는 그를 선택한 다음 두려움과 혼미함을 그에게로 가져와, 그녀의 훈계로 그를 갈아엎는데,
그녀가 그의 생각들을 시험하여, 그녀가 그를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한다.
마침내 그녀는 그를 견고하게 만들어, 곧은길로 돌아오도록 그를 인도하고, 그래서 그를 기쁘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비밀들을 그에게 드러내고, 지식의 보물들과 정의의 지식을 그의 안에 넣어준다.’(집회4,11-18)
그렇다. 이 모든 말들이 쓰여 있다. 지혜의 책들은 그것들 안에서 지침과 자기들의 행동을 위한 빛을 얻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지혜를 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 알려질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나는 나의 인성의 친척들 안에서 현인들로 나를 에워쌌다. 안나, 요아킴, 요셉, 즈카르야, 그리고 훨씬 더 엘리사벳, 그리고 다음에는 세례자. 이들이 진짜 현인들이 아니냐? 지혜의 거처(the abode of Wisdom)인 내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지혜는 내 조부모들에게 그분들의 젊은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생활방식을 영감으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의 힘들로부터 보호해주는 천막처럼 그분들을 죄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은 지혜의 나무의 뿌리와도 같다. 그것은 그 가지들을 멀리, 그리고 넓게 뻗치고, 그 꼭대기에는 평화 속에 고요한 사랑이, 그 안전 속에 평화로운 사랑이, 그 충실함 속에 안전한 사랑이, 그 강함 속에 충실한 사랑이 있다. 그것은 성인들의 전적이고, 너그럽고, 효과적인 사랑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상속할 것이다’(집회4,12)라고 집회서는 말한다. 이 문장은 ‘나로 인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는 사람은 그것을 구할 것이다’(마태16,26)라는 내 말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의 보잘것 없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한 시간의 기쁨들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아킴과 안나는 이렇게 지혜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지혜는 그분들의 시련들 가운데에서 그분들과 함께 있었다.
사람들이여, 너희는 고통스럽고 울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너희는 완전히 악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얼마나 많은 시련들을 겪으셨느냐! 그리하여 마침내 그분들은 마리아를 그분들의 딸로 가질 자격을 얻으시게 된 것이다. 그분들은 정치적인 박해들로 인하여 다윗 가문의 땅에서 쫓겨나셨고, 극도로 가난해지셨다. 그분들은 ‘제가 두 분을 계승합니다’ 하고 말할 꽃 한 송이 없이 자신들이 늙어가는 슬픔을 느끼셨다.
또한 그 다음에는 자신들의 노년에 그 꽃을 얻었기 때문에 그분들이 그 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는 걱정, 그 꽃을 그분들의 마음에서 억지로 떼어내 하느님의 제단으로 가져가야 하는 일, 그리고 그분들의 귀여운 비둘기의 노래와 그녀의 작은 발걸음들의 소리와 자기들의 딸의 미소와 입맞춤 따위에 익숙해진 지금, 훨씬 더 고통스러운 정적 속에서 살면서 그 추억과 함께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질병들, 기후불순에서 오는 재난들, 땅의 권력자들의 오만 따위가 그분들의 조촐한 재산이라는 허약한 성을 치는 공성구들의 수많은 타격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고독하고 가난하게 남아 있게 될 것이고, 자기들의 정성들과 희생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버지의 재산의 나머지만을 가지게 될 멀리 떨어져 있는 그분들의 딸에 대한 염려. 그리고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러 해 동안 경작되지 않고 방치된 채로 남아 있게 될 그 재산은 그녀가 돌아올 때 어떤 상태일까 하는 걱정, 두려움들, 시련들, 그리고 유혹들. 그런데 그분들은 영원히 하느님께 충실하셨다.
그분들의 가장 강한 유혹은 끝나가는 자신들의 생애에 그분들의 딸이 곁에 있음으로써 받는 위안을 거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녀들은 먼저 하느님의 것이고, 그 다음에 그들의 부모의 것이다. 그래서 모든 아들은 내가 내 어머니께 드렸던 말씀을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제가 제 아버지의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래서 모든 아버지와 모든 어머니는 성전에서의 마리아와 요셉을, 나자렛의 집에서의 요아킴과 안나를 보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분들의 집은 점점 더 버려지고 쓸쓸해져갔지만, 거기서 한 가지는 결코 줄어들지 않고 지속적으로 더 커졌는데, 그것은 두 마음들의 거룩함과 혼인의 거룩함이었다.
자기들이 죽으려 한다고 느끼는 두 노인들의 길고 고요한 밤들에 몸이 불편한 요아킴과 그의 슬퍼하는 아내에게 무슨 빛이 남아 있느냐?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들의 어린 딸의 작은 옷들과 처음에 신었던 작은 샌들, 소박한 장난감들과 그녀의 추억들, 추억들뿐이다… 그리고 그분들이 이렇게 말할 때의 평화이다. ‘우리는 고통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의무를 다했다.’
그때 그분들은 천상의 빛으로 빛나는 초자연적인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세상의 자녀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한 기쁨, 무거운 눈꺼풀이 죽어가는 두 눈에 덮일 때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한 기쁨을. 그 기쁨은 그분들의 일생을 통하여 그들 안에 숨겨져 있었던 진리를 조명하며 오히려 그 마지막 시간에 더 밝게 빛난다. 마치 고치 속의 나비처럼 그분들 안의 진리는 그것의 존재에 대한 희미한 암시들만을 주었고, 부드럽게 비추기만 했었는데, 지금 그것은 태양을 향하여 그 날개들을 펴고 그 아름다운 장식들을 보여준다.
그분들의 떨리는 입술들이 하느님에 대한 찬미의 말들을 중얼거리는 동안에 그분들의 목숨은 그분 자신들과 그분들의 후손들을 위한 행복한 미래의 확실성 속에서 꺼져 갔다.
내 조부모들의 죽음은 이러했다. 그분들의 거룩한 삶에 합당한 죽음이었다. 그분들은 그분들의 거룩함으로 인하여 하느님께 사랑받는 동정녀의 첫 번째 보호자들이 되는 자격을 얻으셨다. 그리고 그분들의 날들의 끝에 더 큰 태양이 와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분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은총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들의 성덕으로 인하여 안나는 그분의 아이를 낳는 데 있어 고통당하지 않으셨는데, 그것은 티 없는 아기를 잉태한 여인의 황홀이었다. 두 분 모두 임종의 고통을 겪지 않으셨고, 단지 마치 새벽에 해가 뜰 때 별이 부드럽게 사라지는 것처럼 사라지는 무기력만을 겪으셨다. 그리고 비록 그분들은 요셉처럼 육화된 지혜(Wisdom Incarnate)인 나를 가지는 위로는 받지 못하셨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현존으로 그분들 곁에 있으면서 승리의 날이 올 때까지 평화 속에 잠드시게 하기 위하여 그분들의 머리맡에 몸을 숙이고, 그분들의 승리를 기다리며 그분들을 잠드시도록 보내드리며 숭고한 말들을 속삭여드렸다.
누군가가 물을 수 있다. ‘그들도 아담의 후손들이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출산할 때와 죽을 때 고통을 겪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내 대답은 이것이다. ‘세례자도 아담의 아들이었고, 원죄를 가진 채로 잉태되었는데도, 단지 내가 그 어머니에게 다가갔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어머니의 태 안에서 나에 의하여 미리 성화되었는데, 거룩하고 흠 없는 분, 하느님에 의하여 보존되고, 그분의 거의 신성한 영혼과 그분의 지극히 깨끗한 마음 안에서 하느님을 낳고, 성부에 의하여 창조되고 한 태 안에 수태되었으며, 그 다음에 영광 중에서 영원히, 영원히 하느님을 소유하도록 하늘에 받아들여진 분의 어머니에게 아무런 은총이 허락되지 않았겠느냐?”
나는 또 대답한다. ‘올곧은 양심은 평온한 죽음을 주고, 성인들의 기도들은 너희를 위하여 그러한 죽음을 얻게 해준다.’
요아킴과 안나는 올곧은 양심으로 평생을 사셨다. 그러한 삶이 아름다운 정경처럼 일어나 그분들을 하늘로 인도했다. 그 동안에 그분들의 거룩한 딸은 하느님의 성막 앞에서 멀리 떨어져 계시는 자기의 부모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분들을 지고의 선(Summum Bonum)이신 하느님 다음 자리에 놓았고, 율법과 그녀의 감정이 명하는 대로 그분들을 사랑하되 완전한 초자연적 사랑으로 사랑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읽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음에 남는 구절을 아래에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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