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 토마스의 불신. 현대의 토마스들에 대한 예수의 경고
1945. 4. 7.
열 명의 사도들이 최후의 만찬의 집 마당에 있다. 그들은 서로 대화하다가 기도드린다. 그러다가 그들은 대화를 재개한다.
열성당원 시몬이 말한다.
“토마스가 사라진 것이 정말로 고통스러워. 나는 어디서 그들 찾아야 할지 더 이상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요한이 말한다.
“그는 자기의 부모님과 함께 있지도 않아.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어. 그가 붙잡히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만약 사정이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나는 여기 없는 너희 동료가 돌아오면 나머지를 말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거야.”
“그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나는 다시 베타니아에 가보겠어. 아마도 그는 산들을 배회하며 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을 거야.”
“시몬, 가게, 가봐. 자네는 우리 모두를 다시 모았고… 우리를 모으는 일로 우리를 구했어. 왜냐하면 자네는 우리를 라자로의 집으로 데려갔으니까 말이야. 자네는 선생님께서 라자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걸 들었나? 그분께서는 ‘내 이름으로 용서하고, 인도한 첫 번째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어. 그분께서는 왜 그를 가리옷 사람의 자리에 두지 않으실까?”
마태오가 묻는다.
“왜냐하면 아마도 그분께서는 그분의 완전한 친구에게 배반자의 자리를 주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겠지.”
필립보가 대답한다.
“방금 전에 내가 시장들을 돌면서 생선장수들에게 말했을 때 들었는데… 물론 나는 그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있어, 성전 사람들이 유다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난감해한다는 거야. 나는 누가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오늘 새벽에 성전 경비병들이 성전 경내에서 여전히 밧줄이 목에 걸려 있는 그의 썩은 시체를 발견했다는 거야. 나는 이교도들이 그 시체를 끌어내려서 성전 경내로 집어던졌다고 생각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내가 모르지만 말이야.”
베드로가 말한다.
“나는 어제 저녁에 샘에서 들었는데, 어제 저녁에 사람들이 배반자의 내장을 한나스의 집에 던졌다는 거야. 그들은 틀림없이 이교도들이었을 거야. 왜냐하면 어떤 히브리 사람도 닷새 이상이 지난 그 시체를 만지지 않았을 테니까. 얼마나 심하게 썩었는지 누가 알겠어!”
이번에는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오! 안식일부터라니 끔찍해!”
요한이 그 생각으로 얼굴이 창백해지며 말한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거기서 죽었지? 그곳이 그의 땅이었나?”
“가리옷 유다에 대하여 정확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어? 그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이었는지 기억해보게.”
“자네는 ‘얼마나 거짓말쟁이였는지’라고 말해도 돼, 바르톨로메오. 그는 진실했던 적이 전혀 없었어. 그는 3년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우리와 모든 것을 공유했지만, 우리는 그의 앞에서 마치 요새의 높은 성벽 앞에 있는 사람들과도 같았어.”
“요새라고? 오! 시몬! 미궁이라고 말하게!”
알패오의 유다가 외친다.
“오! 들어봐! 그 사람에 대하여 말하지 말세! 나는 우리가 그를 불러서, 그가 와서 우리를 힘들게 할 것 같아. 나는 그의 기억을 나와 히브리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히브리인들의 경우에는 우리 민족이 그런 괴물을 낳았다는 것 때문에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방인들의 경우에는 그들 중 아무도 어느 날 ‘그 분을 배반한 자는 이스라엘 사람이었다’고 말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야.
나는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 나는 자네들 앞에서 가장 먼저 말해서는 안 될 거야. 나는 꼴찌이고, 베드로 자네는 첫째야. 그리고 여기 유식한 열성당원과 바르톨로메오가 있고, 주님의 형제들도 있어.
그렇지만 지금 나는 열두 번째 자리에 어떤 거룩한 사람을 빨리 넣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우리 무리 가운데에서 이 빈자리를 보면, 나는 우리 가운데에서 지옥이 아가리를 벌리고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것을 보는 것 같아. 그리고 나는 그 때문에 우리가 길을 잘못 들까봐 두려워…”
“아니야, 요한! 자네는 소름끼치는 그의 범죄와 목매 죽은 그의 시체로 인하여 충격 받은 거야.”
“아니야, 아니야. 어머니께서도 말씀하셨어. ‘내가 가리옷의 유다를 볼 때 나는 사탄을 보았다.’ 오! 그 자리에 둘 거룩한 사람을 서둘러 찾세!”
“이거 봐. 나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겠어.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가리옷 사람 같은 자를 택하셨으니, 보잘것없는 베드로가 어떤 사람을 택해야겠나?”
“그렇지만 자네는 그렇게 해야 할 거야…”
“안 돼, 이 사람아, 나는 아무것도 택하지 않겠어. 나는 주님께 청하겠어. 베드로는 죄를 충분히 지었어!”
“우리는 청해야할 것이 너무 많아. 저번 날 저녁 우리는 얼빠진 사람들 같았어. 그러나 우리는 배워야 해. 왜냐하면… 어떻게 우리가 무엇이 진짜 죄인지 여부를 알 수 있을까? 자네들은 주님께서 이교도들에 대하여 우리가 말하는 것과 얼마나 다르게 말씀하시는지 보아왔어. 자네들은 그분의 용서의 가능성에 대한 의심보다 비겁함과 부인을 얼마나 더 관대하게 보아주시는지를 보았어… 오! 나는 잘못을 저지를까봐 겁이 나.”
알패오의 야고보가 낙심하여 말한다.
“정말이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도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일주일째 얼이 빠져 있어!”
다른 야고보가 암담하게 말한다.
“나도 그래.”
“나도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모두가 같은 처지이다. 그래서 그들은 완전히 갈팡질팡하며 서로를 바라본다. 그들은 지금 관례적인 해결책에 의존하기로 한다. 그들이 말한다.
“우리는 라자로에게 가세. 거기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 뵐지도 몰라… 그리고 라자로가 우리를 도와줄 거야.”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린다. 그들 모두는 침묵하며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가 그들은 엘리야가 토마스와 함께 현관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른다.
“오!”
딴 사람처럼 보이는 너무 낯선 토마스이다.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기쁨을 외치며 그를 에워싼다.
“자네는 그분께서 부활하셔서 여기 오셨다는 것을 아나?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다시 돌아오시려고 자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셔!”
“그래. 엘리야도 나에게 그렇게 말했어.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아. 나는 내가 보는 것을 믿어. 그런데 지금 나는 우리는 끝장났다는 것을 봐. 나는 우리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을 보고, 우리가 그분의 죽음을 애도할 알려진 무덤조차도 없어졌다는 것을 보네. 나는 산헤드린이 자신들의 공범을 마치 그가 더러운 짐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장하라고 명령하여 제거하고, 나자렛 선생의 추종자들도 제거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고 있어.
금요일에 나는 성문에서 붙잡혔는데, 그들이 나에게 말했어. ‘너도 그자의 제자였지? 지금 그자는 죽었어. 돌아가서 금세공이나 해.’ 그래서 나는 도망쳤어…”
“어디로? 우리는 사방으로 자네를 찾아다녔었는데!”
“어디로? 나는 라마에 있는 내 누이의 집 쪽으로 갔었어. 그러나 나는 감히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어. 왜냐하면… 나는 여자에게 책망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유다의 산들을 배회하다가 어제 마침내 베들레헴의 그분의 동굴에 갔었어. 나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나는 폐허 속에서 잠들었어. 그런데 엘리야가 그리로 왔다가… 거기서 나를 찾아낸 거야. 그가 왜 거기 갔는지는 모르겠어.”
“왜냐고요? 왜냐하면 너무 기쁘거나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들에는 하느님께서 더 느껴지는 곳에 가는 법이니까요.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번 그분의 울음소리의 추억으로 내 영혼이 어루만져지는 것을 느끼기 위하여 도둑처럼 밤에 거기 갔어요. 그 다음에 나는 돌에 맞아 죽지 않으려고 동틀 때 도망쳐 나오곤 했어요.
그러나 나는 이미 위로받았습니다. 이번에 나는 그곳에 가서 ‘나는 행복하다’하고 말하고, 거기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을 가져오려고 갔었어요. 그것은 우리가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믿음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힘 수 있는 힘은 그곳 담벼락의 한 조각, 그곳의 한 줌의 흙, 그 말뚝들 한 조각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감히 칼바리아의 흙을 가져올 만큼 거룩하지 못합니다…”
“엘리야, 당신의 말이 옳아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런데 토마스는?…”
“토마스는 자면서도 울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어요. ‘일어나시오. 그리고 울음을 멈추시오. 그분께서는 부활하셨어요.’ 그는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집요하게 주장하여 그를 설득했지요. 그래서 그가 온 겁니다. 지금 그가 여러분 가운데 있으니 나는 물러가겠습니다. 나는 갈릴래아로 가려는 내 동료들과 합류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평화.”
엘리야는 떠나간다.
“토마스, 그분께서는 부활하셨어. 나는 자네에게 말하고 있어.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셨어. 그분께서는 약간의 음식도 드시고, 말씀도 하셨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강복하셨어. 그분께서는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어. 오! 자네는 왜 더 일찍 오지 않았나?”
토마스는 실망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는 고집스럽게 머리를 가로젓는다.
“나는 믿지 않아. 자네들은 유령을 본 거야. 자네들 모두는 미쳤어. 여자들을 비롯해서 말이야. 죽은 사람은 자기 스스로 다시 살아나지 못해.”
“사람은 그렇지. 그러나 그분께서는 하느님이셔. 자네는 그것을 믿지 않나?”
“아니야. 나는 그분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어. 그렇지만 바로 내가 그것을 믿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건데, 그분께서 아무리 착하시다 해도 그분께서는 그분을 그토록 적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실 정도로 착하실 수는 없어. 그리고 단언컨대, 그분께서 아무리 겸손하시다 해도 우리의 추악한 육체 안에서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낮추셨음에 틀림없어.
아니야. 그분께서는 아마, 아니 틀림없이 하늘나라로 개선하셨어. 그리고 아마도 그분께서는 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 거야. 나는 아마라고 말했어. 우리는 그것마저도 받을 자격도 없어! 그렇지만 살과 뼈를 가지고 부활하셨다는 건, 아니야, 아니야.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아.”
“그렇지만 우리는 그분께 입 맞추고, 그분께서 음식을 드시는 걸 뵙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손의 감촉을 느꼈고, 그분의 상처들을 보았어!”
“아무것도.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아. 나는 믿을 수 없어. 믿으려면 내가 봐야 해. 만일 내가 그분의 두 손의 못 구멍들을 보고, 내 손가락을 거기에 넣어보지 않는다면, 만일 내가 그분의 두 발의 상처들을 만져보지 않고, 창이 그분의 가슴을 열었던 곳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는다면, 나는 믿지 않을 거야.
나는 어린이나 여자가 아니야. 나는 증거를 원해. 나는 내 이성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거절해. 그래서 나는 자네들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런데 토마스! 자네는 우리가 자네를 속이려 한다고 생각하나?”
“불쌍한 내 동료들이여, 아니야. 정반대야! 자네들은 자네들이 이 환상을 통하여 스스로에게 주는 데 성공하여 자네들이 가지게 된 그 평화로 나를 데려가기를 원할 만큼 친절하니 축복받기를. 그렇지만… 나는 그분의 부활을 믿지 않아.”
“자네는 그분께 벌 받을 것이 두렵지 않나?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듣고 보셔. 알겠나?”
“나는 그분께서 나를 확신시켜주시기를 원해. 내가 이성을 부여받았으니 나는 그 이성을 활용하는 거야. 만일 내 이성이 길을 잃었다면, 사람의 이성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내 이성을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라네.”
“그렇지만 이성은 자유롭다고 그분께서 말씀하셨어.”
“그건 내가 이성을 집단적인 암시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야 하는 더 큰 이유가 되는 셈이야. 나는 자네들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분을 섬길 것이고, 자네들이 그분을 섬기도록 돕기 위하여 자네들과 함께 머물겠네. 나는 그분의 가르침을 전파하겠어. 그렇지만 나는 보아야만 믿을 수 있겠어.”
고집 센 토마스는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다른 사도들은 그분을 뵌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주님을 뵈었는지를 그에게 말한다. 그들은 어머니와 말씀을 나누라고 그에게 권한다. 그러나 그는 머리를 흔들며 돌 의자 위에 앉아 있는데, 자기가 앉아 있는 돌보다 더 완고하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이 고집스럽게 되풀이한다.
“만일 내가 본다면, 나는 믿을 거야…”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믿는 것이 그토록 유쾌하고 거룩할 텐데도, 그것을 부인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작은 요한아, 한 주기가 끝났다. 이것 다음 너는 1944. 8. 9.에 네가 본 믿지 않는 토마스에 대한 나의 발현을 삽입해라. 그러나 복음 전체가 쓰인 다음에는, 내가 처음부터 말했듯이 성지주일, 성주간의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과 목요일 아침에 대하여 여전히 많은 것들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작년에 본 것 중에서 취하여 삽입되어야 할 부분들은 내가 이미 너에게 가리켜주었다. 만일 밀리오리니 신부가 원한다면, 그는 내가 지금 너에게 일러주는 작년의 구술들을 삽입해도 된다.〔…〕
그리고 나는 론지노가 준 물 한 모금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받아쓰기의 한 문장에 대하여 현대의 너무 많은 토마스들과 율법학자들이 비판할 것을 예견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예방하기 위하여 말하고, 설명한다.
오! 작은 요한아, 반대로 초자연적인 것을 부정하는 자들과 완전에 대한 합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관대하심과 네 희생의 이 작품의 놀라운 복합체 안에서 하나의 균열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하겠느냐? 그들은 그들의 치명적인 합리주의의 곡괭이를 이 균열에 넣고 그것을 지렛대 삼아 이것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한 영혼을 진리로 이끌려는 사랑에 설득되어야 하는 그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무자비한 채찍질로 짓이겨져 호흡과 삼키는 것이 극히 힘들었던 가운데에서 마셨던 그 보잘것없는 한 모금의 물, 고열의 불과 텅 빈 혈관들의 메마름에 한 방울의 물은 나에게 초자연적인 위안만을 주었다. 내 육체를 위하여 그것이 고통이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해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내 목마름을 가라앉히려면, 강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심장 앞부분의 통증으로 인한 심한 고통 때문에 마실 수 없었다. 그런데 너는 그 고통에 대하여 알고 있다… 여러 강들은 나중에 필요했을 터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심해지는 호흡곤란 때문에 물을 주어도 받아 마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물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겠느냐! 나는 사랑으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었다. 주어지지 않은 사랑 때문에. 연민도 사랑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연민이 없었다.
너희 착한 사람들이 이 ‘한 모금’의 물을 바라볼 때, 아니면 회의적인 철학자들인 너희가 이것을 분석할 때 그것을 음료가 아니라 올바른 이름인 ‘연민’이라고 불러라. 그러므로 ‘나는 최후의 만찬부터 위로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고, 그렇게 말해도 잘못이 아닐 것이다. 내가 향을 가미한 포도주를 마시기를 원치 않았듯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던 그 모든 사람들 중 아무도 나에게 위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식초와 조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배반당하고, 매 맞았다. 내가 가진 것은 이것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없었다.
너는 물었다. ‘저는 왜 작년에는 론지노의 이 행위를 보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네가 본 내 고문들에 대한 환상으로 인하여 너는 공포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너는 아직 묘사하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임박한 네 수난을 위하여 너에게 위안을 주려고 횟수들을 단축했다. 그러나 너는 내가 더 완전하고 더 평화롭게 받았던 모든 고문 전체로 되돌아가기 위하여 너를 다시 데리고 다녀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평화가 완전한 것이냐? 오! 아니다. 사람은 비록 내 품안에 안겨 나와 하나가 된다 해도 여전히 사람이고, 따라서 항상 사람으로서의 반응들을 보이고, 사람으로서의 능력들을 가질 것이다. 그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사람-하느님의 감정들과 고통들을 절대적인 진실성과 완전성을 가지고 이해하고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그것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에게 이 지식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께 무릎 꿇고, 그분을 찬미하는 것만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인데도, 그렇게 하는 대신 다수의 사람들은 책들, 헌 책들과 새 책들을 집어 들고, 조사하고, 헤아려보고, 빛에 비추어보며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무엇을 바랄 것이라는 말이냐? 비슷한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들을 찾아내 뒤엎고, 뒤엎고, 또 뒤엎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의) 이성의 이름으로, (인간의) 비평의 이름으로, 인간의 교만의 세 배로. 얼마나 많은 거룩한 작품들이 사람에 의하여 부서져 그 잔해들로 거룩하지 않은 건물들이 지어졌느냐?
불쌍한 인간들아, 너희는 순금을 제거했다. 순수하고 귀중한 지혜의 금을. 너희는 금가루로 거칠게 칠한 치장 벽토와 회반죽을 입혔는데, 그것은 생활과 사람들과 인간적인 폭풍우들의 영향으로 즉시 씻겨나가고, 이내 부서지는 문둥병의 부식을 남기고, 너희의 지식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시킨다.
오! 불쌍한 토마스들아! 너희는 너희가 이해하고, 너희 자신들 안에서 느끼는 것만을 믿는다. 그러나 하느님을 찬미하고, 내가 너희의 손을 잡아줄 테니 올라오려고 노력해라. 믿음 안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올라오려고 말이다. 나는 사도들이 굴욕당하는 것을 원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영혼들의 아버지들’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는 특히 너희 내 사제들에게 말한다. ‘영혼들의 아버지들’이 되기 위하여 평신도들의 뒷자리에 앉는 굴욕을 받아들여라.
이 작품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복음서는 특히 너희에게 바쳐진 것으로서, 그것 안에서 선생님이 자기의 사제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생도들의 대열들을 통과하여 인도하여 그들 사제들이 생도들을 인도할 수 있는 선생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 안에서 의사(the Doctor)께서 너희를 병자들에게로―모든 사람은 자기의 영적 질병을 가지고 있다―데려가 너희에게 증상들을 보여주고, 치료법을 가르쳐주려는 것이다!
그러니 힘을 내라. 와서 보아라. 와서 먹어라. 와서 마셔라. 그리고 거절하지 마라. 그리고 작은 요한을 미워하지 마라. 너희 가운데 착한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거룩한 기쁨을 얻어낼 것이고, 성실한 학자들은 빛을 얻어낼 것이며, 방심하기는 하지만 악하지 않은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어낼 것이며, 악한 사람들은 그들의 악한 지식을 터뜨릴 방법을 얻을 낼 것이다.
그러나 작은 요한은 다만 고통과 피로만을 가져 왔고, 그리하여 작품의 끝에 이른 지금 그는 질병으로 쇠약해져 가는 사람과도 같다.
그럼 나는 내 친구이며 그의 친구들인 막달라 마리아와 요한, 마르타와 라자로와 시몬, 그리고 그의 작업 중에 그를 지켜준 천사들에게 무어라고 말해야겠느냐?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우리 친구인 작은 요한이 쇠약해지고 있다. 그에게 영원한 강들의 물을 가져가서 말하자.
‘작은 요한아, 이리 오너라, 태양을 바라보고 일어나라.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네가 보는 것을 보고 싶어 하겠지만, 오로지 총애 받는 자들만이 영원하신 주님과 세상에서의 그의 날들을 미리 아는 것을 허락받기 때문이다.
오너라. 구세주께서 네가 그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가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그의 친구들과 함께 네 집으로 오신다.’
평안히 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1945. 4. 7. 오후 5시.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 > 영광'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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