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영광

626.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에서

Skyblue fiat 2024. 3. 30. 06:18

 

626.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에서

1947. 4. 11.

 

사도들이 겉옷을 입으며 여쭌다.

“주님, 저희는 어디로 가려 합니까?”

 

그들의 말투는 더 이상 수난 전의 말투처럼 스스럼없지 않다. 만일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나는 그들이 그들의 영혼으로 무릎 꿇고 말한다고 말하겠다. 부활하신 주님 앞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항상 약간 숙이고 있는 그들의 몸의 자세보다는, 그들이 그분을 만질 때의 조심성보다는, 그분께서 그들을 만지시거나, 어루만지시거나, 입 맞추시거나, 몇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실 때 보이는 그들의 떨리는 기쁨보다는, 그들의 태도 전체, 묘사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현저한 무언가가 그들의 인성보다는 그들의 영혼이 그들이 선생님과 그들의 관계 안에서 가졌던 태도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그들의 새로운 느낌들이 그들의 모든 인간적인 행위들에 배어든다고 말해준다.

 

과거에는 그분께서는 ‘선생님’이셨다. 그들의 신앙은 하느님으로 믿었지만, 그들의 오관으로는 그분께서는 항상 한 사람이셨다. 그런데 지금 그분께서는 ‘주님’이시고, 하느님이시다. 그것을 믿는 데는 신앙고백이 필요 없다. 증거가 그 필요를 없애버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주님께서 “내 오른편에 앉아라”고 말씀하신 대상이신 주님이시고, 그분의 말씀과 부활의 기적으로 그것을 선언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분에게서 아주 많이 받은 다음에 두려움으로 인하여 버렸던 하느님이시다.

 

그들은 항상 참된 신자가 성광 안에서 빛나고 있는 성체(the Host)나 매일 미사 때 사제가 들어 올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경건한 숭배의 눈길로 그분을 바라본다. 과거보다 훨씬 더 미남자이신 사랑하는 얼굴을 뵙고자 하는 그들의 눈길에는 감히 보지 못하는, 감히 눈길을 고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표정도 들어 있다…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사랑하는 분에게 그들의 마음을 고정하도록 몰아세우지만, 두려움은 마치 그들이 번개에 눈이 부시는 것처럼 그들로 하여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게 한다.

 

사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분이시지만 동시에 그분이 아니시기도 하다. 만일 그분을 자세히 쳐다본다면, 그분께서는 달라지셨다. 그분의 얼굴모습, 그분의 눈들과 모발의 색상, 그분의 키, 그분의 양손과 두 발은 똑같지만, 그분께서는 다르시다.

그분의 몸은 진짜 몸이어서 열린 창을 통하여 방으로 들어오는 지는 해의 빛을 차단한다. 그 빛은 그분의 뒤에 그분의 큰 키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다. 그런데도 그분께서는 다르시다. 그분께서는 거만해지거나 쌀쌀해지지 않으셨지만, 그런데도 달라지셨다.

때로는 참으로 조심스러우셔서 낙심하신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던 지칠 줄 모르시는 선생님의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이 지배하던 곳에 새롭고, 영속적인 위엄이 퍼진다. 마지막 날들의 야윈 모습이 사라졌고, 그분을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했던 육체적, 정신적 피로의 흔적도 사라졌고, 말씀은 하지 않으시면서도 “너희는 왜 나를 배척하느냐? 나를 받아들여다오…” 하고 청하셨던 고통스러워하시며 애원하셨던 눈길도 없어졌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더 키가 크고, 더 건장해 보이시며, 모든 부담들에서 자유로우시고, 자신만만하시고, 의기양양하시고, 위엄 있으시고, 숭고하게 보이신다. 그분께서 강력한 기적들을 행하시며 힘 있으실 때나 그분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에 위풍당당하실 때도 그분께서는 부활하셔서 영광스럽게 되신 지금과 같지는 않으셨다.

 

그분으로부터 빛이 배어나오지는 않는다. 그렇다. 빛이 그분의 변모 때나 그분의 부활 후 그분의 첫 번째 발현들에서처럼 배어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분께서는 빛나시는 것 같다. 그것은 참으로 영광스럽게 된 육체들의 아름다움을 가진 하느님의 육체이다. 그분께서는 매혹하시고, 그와 동시에 두렵게 하시기도 한다.

아마 그토록 깊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분의 두 손과 두 발에 참으로 현저하게 보이는 그 상처들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모른다. 나는 비록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참으로 친절하시고, 지난날들의 분위기를 재창조하시려고 애쓰시지만, 그들이 달라졌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과거에는 그렇게도 고집불통이고 수다스러웠는데, 지금은 별로 말하지 않고, 만일 그분께서 대답하지 않으신다면 고집부리지 않는다. 만일 그분께서 그들이나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미소 지으시면, 그들은 안색이 변하며, 그분의 미소에 감히 미소로 반응하지 못한다.

 

만일 그분께서 지금 하고 계시는 것처럼 그분의 흰 겉옷을―그분께서는 부활하신 이래 항상 흰 사틴보다 더 빛나는 흰 옷을 입고 계신다―집으려고 한 손을 내미시는데도, 그들이 전에 으레 했던 것처럼 그분을 도와드리는 기쁨과 영광을 얻으려고 경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들은 그분의 옷들과 몸을 만지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지금 그분께서 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셔야 한다.

 

“요한아, 와서 네 선생을 도와다오. 이 상처들은 진짜 상처들이다. 그래서 상처 입은 내 손이 전처럼 날렵하지 못하다…”

 

요한은 순종하여 예수를 도와 그분의 넓은 겉옷을 입혀드리는데, 그가 붉은 상흔들이 나 있는 그분의 두 손을 건드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그의 동작들이 어찌나 신중하고 부지런한지, 그는 마치 대사제에게 옷을 입혀드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몹시 조심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의 왼손을 친다. 그는 마치 자기가 상처 입은 듯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그 손에서 다시 피가 흐르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 손의 등을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그 끔찍한 상처는 몹시도 예민하다!

 

예수께서는 그의 머리에 그분의 한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네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나를 받았을 때 더 큰 용기를 가졌었다. 그때는 여전히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어 그것으로 네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일 정도였다. 사랑하는 새 제자 위에 내린 밤이슬처럼 말이다. 너는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를 따듯이 나를 거두었었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나는 너에게 순교자인 나의 이슬을 주었고, 너는 내 머리 위에 네 동정의 이슬을 뿌렸다. 그러나 그때 너는 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안 된다.

그리고 너 시몬 베드로는 왜 울고 있느냐? 너는 내 손을 치지 않았고, 죽은 나를 보지 못했다…”

 

“아! 나의 하느님! 저는 그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제 죄 때문에요.”

“요나의 아들 시몬아, 나는 너를 용서했다.”

“그렇지만 저는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아무것도 제 눈물을 그치게 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용서마저도.”

“그러나 내 영광은 그렇게 할 것이다.”

“당신께서는 영광스러우시지만, 저는 죄인입니다.”

 

“네가 내 어부가 된 후에는 너도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베드로야, 너는 크고, 풍성하고, 기적적인 고기잡이를 할 것이다. 그 다음에 나는 너에게 말할 것이다. ‘영원한 잔치에 오너라.’ 그러면 너는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 모두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구나. 그리고 내 형 야고보, 너는 마치 모든 축복들을 잃어버린 것처럼 그 구석에 엎드려 있구나. 왜?”

 

“왜냐하면 제가 바랐던 것은… 그럼 당신께서는 아직도 당신의 상처들을 느끼십니까? 당신은 아직도 그것들을 느끼세요? 저는 당신에게 모든 고통이 끝나고, 모든 표시가 지워질 거라고 기대했었는데요. 저희 죄인들을 위해서도 그 상처들은!… 그것들을 보는 것은 정말로 괴롭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왜 그것들을 지워 없애지 않으셨습니까? 라자로에게는 자국이 남지 않았는데요… 그것들은… 그 상처들은 꾸중과도 같습니다! 그것들은 무서운 목소리로 외칩니다! 그것들은 시나이 산의 벼락보다 더 번쩍거리고 더 무섭습니다.”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그것들은 저희의 비겁함을 소리 높여 외칩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그것들을 받고 계시는 동안에 저희는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필립보가 말한다.

 

“저희가 그 상처들을 보면 볼수록 저희의 양심들이 저희를 꾸짖고, 비열함, 어리석음, 불신을 저희의 얼굴들에 던집니다.”

토마스가 말한다.

 

“오, 주님, 당신께서는 세상을 용서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으니, 저희의 평화와 죄인인 이 백성의 평화를 위하여 세상에 대한 그 고발들을 없애주십시오!”

안드레아가 간청한다.

 

“이것들은 세상의 건강(the Health of the world)이다. 이것들 안에 구원이 있다. 미워하는 세상이 이 상처들을 냈지만, 사랑(the Love)은 이것들로 약과 빛(Medicine and Light)을 만들었다. 이것들을 통하여 원죄가 못 박혔다. 이것들을 통하여 사람들의 죄들이 중단되고 지탱되어 사랑의 불(the Fire of Love)이참다운 제단 위에서 그 죄들을 불사르게 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모세에게 계약의 궤와 분향단을 만들도록 명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것들이 들어 올려져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고리들로 꿰뚫리기를 원치 않으셨느냐? 나도 꿰뚫렸다.

나는 계약의 궤와 제단 이상이다. 나는 계약의 궤와 제단보다 훨씬 더 크다. 나는 하느님과 내 이웃을 위하여 내 사랑의 향을 피웠고, 세상의 모든 죄악들의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그러므로 세상은 자기가 한 하느님(a God)께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게 했는지를 기억하기 위하여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것을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하기 위하여. 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기억하기 위하여. 구원은 오직 한 분, 그들이 꿰뚫은 그분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1) 그래서 가톨릭의 십자가에는 거기 못 박히신 예수께서 매달려 계신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세상이 내 상처들의 붉은 자국을 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참으로 자기의 죄들을 위하여 한 하느님께서 그분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것을 금방 잊어버릴 것이고, 내가 참으로 가장 잔인한 고문을 받으며 죽었다는 것을 잊어버릴 것이며, 그것의 상처들을 위한 연고가 무엇인지를 잊어버릴 것이다.

여기 그 향유가 있다. 와서 그것에 입 맞춰라. 입맞춤 하나하나가 너희에 대한 정화와 은총의 증가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평화와 은총은 결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늘이 부어주는 것을 소진해버리기 때문에 세상의 폐허에 대하여 하늘과 그 보물들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나는 하늘이다. 모든 하늘이 내 안에 있고, 하늘의 보물들이 열린 상처들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사도들이 입 맞추도록 그분의 양손을 내미신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입술들에 그분의 상처 입은 양손을 대주셔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을 더 아프시게 해드릴까 봐 입술들을 그 상처들에 갖다 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딱딱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다. 고통은 다른 것이다!…”

“무엇입니까, 주님?”

알패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내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헛되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자. 아니 앞서 가거라. 우리는 겟세마니로 갈 것이다… 뭐라고? 너희는 무서우냐?”

“저희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 예루살렘의 유력자들이 과거보다 더 당신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너희를 지켜주시니 너희 자신들을 위해서도 염려하지 말고, 나에게는 인류의 속박들이 끝났으니 나를 위해서도 염려하지 마라. 나는 내 어머니께 갔다가 너희와 합류하겠다.

우리는 최근의 죄와 증오의 소름끼치는 많은 것들을 지워버려야 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죄의 반대의 것으로 그것을 할 것이다… 알겠느냐?

너희의 입맞춤들은 생살에 박히는 못들로 인한 고통과 그 결과들을 없애주고, 가라앉힌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것은 소름끼치는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죄로 더럽혀진 곳들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들을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될 것이다…”

“저희는 성전에도 갈 겁니까?”

모든 이들의 얼굴에 끔찍한 공포의 빛이 떠오른다.

“아니다. 나는 내 현존으로 성전을 성화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성화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것에는 더 이상 구속이 없다. 그것은 빠르게 썩고 있는 시체이다. 그것을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자. 그리하여 그들이 그것을 파묻게 하자. 실로 사자들과 독수리들이 무덤과 시체를 산산조각내서, 생명(the Life)을 원치 않고 죽은 거인의 해골마저 남지 않게 될 것이다.” 2)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유다교를 떠나셨다는 것에 대한 상징적인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지 않다면 달리 무슨 말씀이겠는가?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려온 메시아께서 이미 오셨다는 것을 믿고, 그리스도교로 돌아와야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모든 유다교인들에게 구원이 배제된다는 것을 이미하지는 않는다. 유다교뿐 아니라 여타의 모든 종교인들도 그들이 정의를 실천하고 성덕을 가지는 한 고성소에 갈 기회가 주어지고, 거기 간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 때에 모두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수께서는 작은 계단을 올라가 바깥으로 나가신다.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그분을 따른다. 그러나 그들이 현관 홀로 사용되는 복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예수께서는 더 이상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 집은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모든 문들이 닫혀 있다.

요한은 최후의 만찬실 앞의 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분께서는 항상 저기 계셔. 그분께서는 끊임없는 황홀경에 빠져 계시는 것 같아. 그분의 얼굴은 형언할 수 없는 빛으로 빛나고 있어. 그것은 그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야.

어제 그분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어. ‘요한아, 얼마나 큰 행복이 하느님의 모든 나라들에 퍼졌는지 생각해보아라.’ 나는 그분께 여쭈었어. ‘무슨 나라들 말입니까?’

나는 그분께서 죽음도 이기신 그분의 아드님의 나라에 대한 어떤 놀라운 계시를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어. 그분께서는 나에게 대답하셨어. ‘천국(Paradise), 연옥(Purgatory), 고성소(Limbo) 말이다. 연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용서가 주어지고, 모든 의인들과 모든 용서받은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가고, 천국은 복된 영혼들로 가득차고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다. 우리 조상들과 부모들은 천국의 환희 가운데 있다. 그리고 땅의 나라에도 행복이 있다. 지금 거기서 표가 빛나고 있다. 사탄을 이기고, 원죄와 죄들을 없애는 샘이 열렸다.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을 뿐 아니라 구속이 있고, 하느님의 자녀들로 다시 선택된다.

나는 무리들을 본다. 오!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이 샘으로 내려가 거기 뛰어들어 새롭고, 아름답고, 결혼예복과 왕의 옷을 입고 나온다. 그것은 영혼들의 은총(Grace)과의 결혼이고, 그들은 아버지의 자녀들, 예수의 형제들이 되는 왕족이 된다.’”

어두워질 무렵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며 거리로 나와 멀어져 간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 특히 이 시간에는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위하여 식탁 주위에 모여 있으니 더 그렇다. 예루살렘은 파스카에 강물처럼 가득 찼다가, 올해 그토록 비극적이었던 그 명절이 지나자 모두 빠져나가 여느 때보다 훨씬 더 비어 있는 것 같다. 토마스가 그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보게 한다.

열성당원이 말한다.

“그렇게 됐어. 외부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금요일이 지나자 다급하게 떠났고, 그날의 큰 공포에 저항했던 사람들도 두 번째 지진, 즉 틀림없이 주님이 무덤에서 나오실 때 일어난 지진에 도망쳐버렸어. 그리고 이방인이 아닌 사람들도 도망쳤대.

나는 확신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린양의 고기도 마저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보충 파스카를 지내려고 다시 와야 할 거야. 그리고 이곳 주민들도 도망치거나 떠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준비일의 지진 시에 죽은 그들의 가족을 치우느라고 그랬고,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의 분노가 두려워서 그랬다는 거야. 그것은 아주 강렬한 본보기기 되었어.”

“그건 잘된 일이야. 모든 죄인들 위에 벼락과 돌들이 떨어져야 해!”

바르톨로메오가 저주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말라니까! 다른 누구보다 우리가 더 하늘의 벌을 받아 마땅해. 우리도 죄인들이야… 자네는 이곳에서의 일을 기억하나? 얼마나 오래 전이야? 열흘? 열흘 밤… 아니면 10년, 아니면 열 시간? 내 죄가 나에게 아주 먼 옛날 같기도 하고, 아주 가까운 일인 것 같기도 해. 그날 저녁, 그 시간들도 말이야…

나는 전혀 모르겠어… 나는 멍청해! 우리는 그렇게도 자신만만하고, 그렇게도 호전적이고, 그렇게도 영웅적이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 아!…”

베드로가 그렇게 말하며 한 손으로 자기의 이마를 치며 그들이 이미 가본 작은 광장을 가리킨다.

“저기야. 난 여기서 이미 무서웠어!”

“그만해 둬! 시몬, 그만해두라고! 그분께서는 자네를 용서해주셨어. 그리고 그분보다 먼저 마리아께서 용서해주셨고. 그만해둬! 자네는 자네 자신을 괴롭히고 있어.”

요한이 말한다.

“오! 내가 그랬다면 얼마나 좋겠어! 요한, 자네는 항상 나를 부축해주게. 항상! 자네는 사람들을 인도할 줄 알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분의 어머니를 자네에게 맡기신 거야. 그건 옳은 일이야. 그렇지만 비겁하고 거짓말하는 벌레인 나는 마리아 어머니보다 더 인도받을 필요가 있어. 왜냐하면 나는 눈에 비늘들이 씌워져서 볼 수 없으니까.”

“만일 자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정말로 비늘들이 자네의 눈에 씌워질 거야. 자네는 정말로 자네의 두 눈을 태울 거고, 그러면 주님도 자네의 눈을 고쳐주시려고 이리로 오시지 않으실 거야…”

요한이 베드로를 위로하려고 그의 양어깨를 껴안으며 다시 말한다.

“내 영혼으로 잘 보기만 하면 나에게는 충분할 거야. 그 러면… 내 눈은 중요하지 않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눈은 중요해! 지금 병자들은 무엇을 할까? 형도 어제 그 여자가 얼마나 낙심하고 있는지 봤지!”

안드레아가 말한다.

“그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그들 모두가 함께 인정한다.

“그런데 우리 중 아무도 그 여자에게 안수해줄 자격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어…”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생긴 겸손이 그들을 짓이긴다.

그러나 토마스가 요한에게 말한다.

“그렇지만 자네는 그것을 할 수 있었어. 자네는 도망치지 않았고, 부인하지 않았고, 불신하지도 않았으니까…”

“나에게도 죄가 있어. 그런데 그것은 자네들의 죄처럼 사랑을 거스른 죄야. 나는 여호수아의 집 아치 곁에서 헬카이가 어머니를 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멱살을 잡고 목을 조를 뻔했어. 그리고 나는 가리옷의 유다를 미워하고 저주했어.”

요한이 말한다.

“조용히 해! 그 이름을 언급하지 마. 그건 마귀의 이름이야. 나는 그가 아직 지옥에 가지 않고, 여기 우리 주위를 배회하며 또 다시 우리를 죄짓게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베드로가 정말로 무서워하며 말한다.

“오! 그는 분명히 지옥에 있어! 그렇지만 설사 그가 여기 있다 해도, 그의 힘은 지금 끝났어. 그는 천사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마귀가 되고 말았어. 그런데 예수께서는 마귀를 이기셨어.”

안드레아가 말한다.

“좋아… 하지만 그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더 좋아. 난 무서워. 지금 나는 내가 얼마나 약한지 알아. 그리고 요한, 자네에 관한 한 자네는 죄책감을 가지지 마. 모든 사람이 선생님을 배반한 사람을 저주할 거야!”

“그렇게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야.”

가리옷 사람에 대하여 항상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타대오가 말한다.

“아니야. 마리아께서는 그에게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충분하다고, 그리고 우리에게는 배반자들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그분의 아드님이 고문당하시는 것을 보신 어머니이신 그분께서 저주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그렇게 해야겠어? 잊어버리세…”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그의 형 야고보가 외친다.

“그렇지만 이것은 유다의 죄들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이야.”

요한이 한숨을 쉬며 말한 다음 침묵한다.

“뭐라고? 다른 죄들이 더 있니? 넌 알지… 크게 말해라!”

“나는 잊어버리려고 애쓰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애쓰고 있어. 헬카이에 대해서는… 내가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날은 우리 각자가 자기 곁에 자기의 천사와 자기의 마귀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늘 빛의 천사의 말만을 듣지는 않았어…”

열성당원이 말한다.

“자네는 나훔이 절름발이가 됐고, 그의 아들은 벽인지, 산인지가 무너져 거기 깔려 죽었다는 것을 아나? 그분께서 돌아가셨던 날이었어. 그 아들의 시체는 나중에야 발견되었어. 오! 그는 한참 후에 이미 썩은 후에야 발견됐어. 그는 시장에 가는 어떤 사람에게 발견됐어.

그리고 나훔은 자기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가 바위에 얻어맞았는지, 중풍에 걸렸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아. 그는 짐승처럼 보이고, 침을 흘리고, 울부짖어.

그리고 어제 그는 자기의 집에 온 자기 선생의 멱살을 남은 성한 손으로 잡고 고래고래 외쳤어. ‘당신 때문이었소, 당신 때문이었소!’ 만일 하인들이 그리로 달려오지 않았다면…”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아나, 시몬?”

그들이 열성당원에게 묻는다.

“어제 나는 요셉을 보았어.”

시몬이 간결하게 대답한다.

“선생님께서 늦게 오시는 것 같은데. 불안한 걸.”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세…”

마태오가 제안한다.

“아니면 여기 작은 다리에서 멈추세.”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그들은 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제베대오의 야고보와 다른 야고보, 안드레아와 토마스는 돌아오면서 생각에 잠긴 채 땅을 내려다보고 집들을 바라본다.

안드레아는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흰 석회 위에 검붉은 반점이 두드러져 보이는 어떤 집의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이건 피야! 아마 그분의 피겠지? 그분께서는 여기서 벌써 피 흘리고 계셨나? 오! 나에게 말해줘!”

“우리 중 아무도 그분을 따라가지 않았는데, 자네는 우리가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해주기를 원하는 거야?”

알패오의 야고보가 맥없이 말한다.

“그렇지만 내 형하고, 특히 요한은 그분을 따라갔는데…”

“즉시는 아니었어. 즉시는 아니었다니까. 요한은 그들이 말라키의 집에서부터 줄곧 그분을 따라갔다고 나에게 말했어.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어. 우리 중 아무도…”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흰 벽 위, 땅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거무스름한 넓은 반점을 들여다본다. 토마스가 자기의 생각을 말한다.

“이것은 비가 왔는데도 지워지지 않았고, 요사이 우박이 그렇게 세게 왔는데도 벗겨지지 않았어… 만일 이것이 그분의 피라는 것을 내가 알게 된다면, 나는 이 벽에서 이걸 지워버리겠어…”

“이 집 사람들에게 물어보세. 아마 그 사람들은 알겠지…” 그들과 합류한 마태오가 제안한다.

“안 돼. 그들이 우리를 그분의 사도들로 알아볼지도 몰라. 그들은 그리스도의 원수일 수도 있어. 그리고…”

토마스가 대답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겁쟁이들이야…”

알패오의 야고보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들 모두가 아주 천천히 그 담에 다가와 그것을 들여다본다…

한 여자가 지나간다. 냉수가 뚝뚝 떨어지는 물병들을 가지고 샘에서 늦게 돌아오고 있는 여자이다. 그녀는 그들을 관찰하다가 물병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들에게 말을 건다.

“당신들은 그 벽 위의 얼룩을 들여다보고 있지요? 당신들은 선생님의 제자들이지요? 그런 것 같군요. 비록 당신들이 얼굴이 핼쑥해지고… 그분이 붙잡혀 사형당하시려고 끌려가실 때 나는 당신들이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보지는 못했어도 말이에요.

이것은 나를 불편하게 느끼게 해요. 왜냐하면 유쾌한 시간들에 선생님을 따라다니고, 그분의 제자인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자기들처럼 선생님을 따르기 위해서 재빨리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을 엄한 눈으로 보는 제자라면, 불쾌한 시간들에도 그분을 따라야 하니까요. 적어도 제자라면 그렇게 해야 했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당신들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요. 나는 당신들을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만일 내가 당신들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시돈 출신 여자인 내가 유다인들인 그분의 제자들이 따라가지 않았던 그분을 따라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분에게서 은혜를 받았어요. 당신들은… 아마 그분에게서 은혜를 받은 적이 없는가보지요? 그것 참 이상하군요. 왜냐하면 그분은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과 죄인들과 노상강도들도 도와주셨고, 만일 그분께서 그들에게 육체의 생명을 주실 수 없을 때에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까요.

혹시 그분께서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으셨나보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독사들이나 더러운 하이에나들보다 더 나빴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나는 그분께서는 독사들과 재칼들도 사랑하셨는데, 그것들이 독사들이나 재칼들이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것들이기 때문에 사랑하셨다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피입니다. 예, 이건 피예요. 큰 바다의 해변 출신 여자의 피입니다. 한때 그곳은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이었고, 그 주민들은 아직도 히브리인들에게서 왠지 업신여김을 받고 있지요. 그런데도 그 여자는 자기의 남편에게 살해될 때까지 선생님을 방어할 줄을 알았습니다. 그 여자의 남편이 그 여자를 때린 다음에 힘껏 집어던져 그 여자의 머리가 깨져서 골수와 피가 그 집의 벽에 튀었어요. 집에서는 지금 그 여자의 고아들이 울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은혜를 입었었어요. 선생님께서 끔찍한 병에 걸려 불결한 그 여자의 남편을 고쳐주셨으니까요. 그 여자는 선생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여자는 죽기까지 그분을 사랑했어요. 그 여자는 당신들의 말로 하자면 그분보다 먼저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습니다. 안나리아도 그분보다 먼저 갔습니다. 그녀가 미리 예기치 않게 죽지 않았다면, 그녀도 아마 그렇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어머니도 좀 더 위쪽에서 자기 피로 길을 씻었습니다. 선생님을 방어해드리려고 짐승 같은 그녀의 아들에 의하여 갈라진 그녀의 태의 피로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노파는 자기 아들의 눈을 다시 보게 해주셨던 그분께서 상처 입고 매 맞으시며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을 때 고통으로 죽었습니다.

어떤 노인 거지는 그분을 지켜드리려고 일어섰기 때문에 당신들의 주님의 머리를 겨냥하여 던진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그분께서 주님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왕의 용사들은 그 왕의 주위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당신들 중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당신들은 선생님을 때리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아! 아니지요! 한 사람은 죽었어요. 그는 자살했지요. 그렇지만 그는 선생님을 지켜드리기 위해서도, 슬픔으로 죽은 것도 아닙니다. 그는 첫째로 그분을 팔았고, 그 다음에는 입맞춤으로 그분을 알려주었고, 그 다음에는 자살했어요. 그에게는 달리 할 일이 없었지요. 그는 더 이상 더 큰 죄를 지을 수 없었어요. 그는 완전했어요. 베엘제붑처럼요. 세상은 그를 땅에서 제거하려고 돌로 쳐 죽였을 것입니다.

오! 나는 순교당하시는 선생님께서 얻어맞으시는 것을 막으려다가 죽은 동정심 많은 그 여자와, 그런 상태에 계시는 그분을 보고 고통으로 죽은 늙은 안나와, 늙은 거지와, 사무엘의 어머니와, 죽은 동정녀와, 어린양들과 멧비둘기들을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슴 아프기 때문에 성전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나는 그를 돌로 쳐 죽이는 용기를 가졌을 것이라고, 그가 우리의 돌들에 얻어맞는 것을 보아도 몸을 떨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를 죽이는 수고를 덜어주었고, 죄 없는 분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우리가 집행자들이 되는 고초를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멸시하며 사도들을 바라본다. 그녀의 경멸은 그녀가 말하는 동안에 점점 더 분명해졌다. 그 여자의 크고 검은 눈들은 사도들의 무리를 바라보는 동안 육식동물들의 눈의 냉혹함을 띄고 있고, 그녀가 그들을 바라보는 동안 사도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줄을 모르고 반응할 수도 없다… 마지막 말이 그 여자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사생아들!”

그녀는 자기들의 선생님을 저버린 제자들에게 자기의 멸시를 쏟아놓은 것을 기뻐하며 물병들을 다시 집어 들고 떠나간다…

그들은 처참하게 뭉개진다. 그들은 맥이 탁 풀려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두 팔을 힘없이 내려뜨리고 서 있다. 그들은 진실에 압도된다. 그들은 자기들의 비겁한 행동의 결과들에 대하여 숙고하고 있다…

그들은 침묵한다… 그들은 감히 서로를 쳐다보지 못한다. 이 죄를 짓지 않은 무죄한 두 사람인 요한과 열성당원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마 그들의 동료들이 이토록 굴욕당하는 것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그렇기도 하고, 그 여자의 솔직한 말로 생긴 상처들을 싸매줄 수 없기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지금 길은 어둑어둑하다. 그믐날이 가까워오기 때문에 달이 늦게 뜬다. 그래서 황혼이 쉬 깊어진다. 적막강산이다. 소음이나 사람의 목소리도 없다. 적막함 가운데서 키드론 개울의 물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그래서 예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마치 그것이 무서운 소리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이 그들을 펄쩍 뛰게 만든다.

“너희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나는 올리브나무들 사이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명(the Life)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때 너희는 왜 죽은 것들을 보고 있느냐? 나와 함께 가자.”

예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분의 목소리는 지극히 상냥하시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그들에게로 오고 계시는 것 같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에서 걸음을 멈추신다. 그분께서는 사도들이 겁에 질린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얼룩을 들여다보시며 말씀하신다.

“그 여자는 이미 평화 가운데 있으며, 자기의 고통을 잊었다. 그녀가 자기의 자녀들을 위하여 활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겠느냐? 아니다. 그녀는 두 배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그들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가 하느님께 청하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출발하시고, 사도들은 말없이 그분을 따라간다. 그분께서는 돌아서시며 말씀하신다.

“너희는 왜 너희 마음속으로 ‘그런데 그 여자는 왜 자기의 남편의 회개를 청하지 않을까? 만일 그 여자가 그를 미워한다면 그 여자는 성녀가 아닌데…’ 하고 생각하느냐? 그녀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죽일 때 이미 그를 용서했다. 그러나 빛의 나라에 들어간 영혼인 그녀는 지혜와 정의를 가지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의 남편을 위한 회개와 용서가 없다는 것을 본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의 기도로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아니다, 이것은 내 피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길에서도 아주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내 원수들의 발자국들이 그것을 흩뜨려 먼지와 오물과 섞어놓았고, 비가 그것을 녹여 먼지 층들로 운반해갔다. 그러나 아직도 보이는 피가 아주 많이 있다… 왜냐하면 아주 많은 피가 나에게서 흘러나와 발자국들과 물이 그것을 쉽게 지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가자. 그러면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흘린 내 피를 보게 될 것이다…”

“어디로? 저분께서는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나? 저분께서 우셨던 곳으로? 총독관저로?”

사도들이 서로에게 묻는다.

그러자 요한이 말한다.

“그런데 클라우디아는 안식일 이틀 후에 다시 떠났다는군. 사람들은 그녀가 분개했고, 자기의 남편의 곁에 남아 있는 것이 겁이 나기도 해서 그랬다는 거야… 로마 창기병이 나에게 말해주었어.

클라우디아는 자기의 책임을 자기 남편의 책임과 분리시킨 거야. 왜냐하면 그녀는 선생님을 메시아로 보내신 지극히 높으신 분께 박해당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박해당하는 편이 더 나으니 의인을 박해하지 말라고 그에게 경고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플라우티나도, 리디아도 여기 있지 않아. 그들은 클라우디아를 따라 카이사리아로 갔고, 발레리아는 요안나와 함께 베텔로 갔어. 만일 그들이 여기 있다면, 우리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나는 모르겠어… 론지노도 여기 없어. 클라우디아가 그가 자기를 수행하기를 원했으니까…”

“자네가 피에 젖어 있는 풀을 봤다는 곳이 거기일 거야…”

그들보다 앞서가셨던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말씀하신다.

“골고타로 간다. 거기에는 내 피가 아주 많아서 먼지가 딱딱한 철광석처럼 보일 지경이다. 너희보다 먼저 그곳에 간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곳은 부정한 곳인데요!”

바르톨로메오가 외친다.

예수께서 동정어린 미소를 지으시며 대답하신다.

“그 끔찍한 죄를 지은 후에 예루살렘의 모든 곳은 다 부정하다. 그런데도 너희는 이곳에 남아 있으면서도 군중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불편 외에 다른 불편은 느끼지 않고 있다…”

“노상강도들이 여전히 그곳에 죽은 채로 있는데요.”

“내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영원히 거룩하게 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시간들의 끝까지 그곳보다 더 거룩한 장소는 없을 것이고, 온 땅에서, 그리고 모든 시대에 군중들이 그 먼지에 입 맞추러 올 것이다. 그리고 조소와 복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정 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너희보다 먼저 그곳에 간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너희보다 먼저 간 그 사람은 그것을 두려워할 두 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주님, 그게 누굽니까?”

요한이 묻는다. 베드로가 여쭈어보라고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기 때문이다.

“라자로의 마리아다! 그녀가 파스카 전에 내가 그녀의 집에 들어갈 때 내 발에 밟힌 꽃들을 주워 자기의 기쁨의 기념품으로 자기 친구들에게 주었듯이, 그녀는 지금은 칼바리아로 올라가 내 피로 굳어진 땅을 그녀의 두 손으로 파서 그 흙을 가지고 내려와 내 어머니의 무릎 위에 가져다놓았다.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죄인’으로, 그리고 ‘제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해골산의 그 흙을 품안에 받아들이신 그분도 부정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내 피는 모든 것을 취소했고, 그래서 그것이 떨어진 땅의 흙덩이는 거룩하다. 내일 정오 전에 너희는 골고타로 올라가거라. 나는 너희와 합류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 피를 보고 싶다면, 그것은 여기 있다.”

그분께서는 작은 다리의 나간을 가리키신다.

“여기서 내 입이 얻어맞았다. 그래서 피가 나왔다… 내 입은 거룩한 말들과 사랑의 말들만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내 입은 얻어맞았으며, 왜 아무도 입맞춤으로 그것을 치료해주지 않았느냐?”

그들은 겟세마니로 들어간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먼저 올리브 동산의 입구를 막는 자물쇠를 여셔야 한다. 새 자물쇠이다. 끝들이 뾰족한 말뚝들로 된 높고 튼튼한 울타리인데, 아주 견고한 새 자물쇠로 잠겨 있다. 예수께서는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은 아주 새것이어서 강철처럼 반짝인다. 지금은 밤이어서 완전히 어둡기 때문에 볼 수 있도록 필립보가 불을 붙인 나뭇가지의 빛으로 그분께서는 자물쇠로 여신다.

“이것은 전에는 없었는데… 왜 만들어져 있지?…”

그들은 겟세마니를 격리시키는 울타리를 보면서 서로에게 속삭인다.

“라자로는 분명히 더 이상 누군가가 여기 오는 것을 원치 않았던 거야. 저기를 봐. 돌들과 벽돌들과 석회가 있어. 지금은 나무가 있는 걸 보니 나중에 담을 쌓을 모양이지…”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리로 오너라. 죽은 것들을 돌보지 말라는데도 그러는구나… 여기, 너희는 여기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에워싸여서 붙잡혔고, 너희는 저쪽으로 도망쳤다… 만일 그때 이 울타리가 있었다면… 그것은 너희가 즉시 도망치는 데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따라오기를 열망했던 라자로가 어떻게 너희가 도망치려고 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느냐?

내가 너희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느냐? 나는 그 전에 고통당했다. 그리고 나는 이 고통을 없애버리고자 한다. 베드로야, 나에게 입 맞추어라…”

“안 됩니다. 주님! 안 돼요! 여기서 같은 시간에 유다의 몸짓을 하다니, 그건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안 돼요!”

“나에게 입 맞추어라. 나는 너희가 진실한 사랑으로 유다의 진실하지 못한 몸짓을 해주기를 원한다. 그 다음에 너희는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더 행복할 것이다. 너희와 내가. 베드로야, 와서 나에게 입 맞추어라.”

베드로는 그분께 입 맞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눈물로 주님의 뺨을 적시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 물러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운다. 다른 사도들도 한 사람씩 번갈아 그분께 같은 자리에 입 맞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 모두가 눈물로 자신들의 얼굴을 적시고 있다…

“그럼 지금은 가자. 모두 함께. 그날 저녁에 나는 내 몸으로 너희를, 몇 시간 동안 굳세게 한 다음에 너희를 나에게서 떼어놓았다. 그러나 너희는 지체 없이 넘어졌다.

너희가 얼마나 약했는지를 항상 기억하고, 하느님의 도움이 없이는 너희가 한 시간도 정의 안에 머무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여기서.

여기서 나는 자신들을 가장 굳센 사람들이라고 여기고, 내 잔으로 마시기를 청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나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강인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기도하라고 권유하고 그들을 떠났다…

내가 그들을 떠나자 그들은 잠들었다. 이것을 기억해두어라. 그리고 예수가 남겨놓고 떠난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그와 접촉을 유지하지 않는 한 졸음에 압도당하고 붙잡힐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라.

사실 만일 내가 너희를 깨우지 않았다면, 너희는 너희가 자는 동안에 살해당하여 무거운 인성을 가지고 하느님의 법정에 출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리 오너라… 여기 있다. 필립보야, 나뭇가지를 내려라. 저기 있다! 내 피를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들여다보아라.

나는 여기서 극도의 고뇌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피땀을 흘렸다. 들여다보아라… 얼마나 피땀을 흘렸던지 그로 인하여 흙이 단단해질 정도였고, 풀은 아직도 빨갛다. 왜냐하면 비도 풀줄기들과 꽃부리들 가운데에서 엉겨 말라버린 핏덩이를 녹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저기 기댔었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내 뜻 안에서 나를 위로해주기 위하여 주님의 천사가 여기서 맴돌았다.

왜냐하면 이것을 기억해라. 만일 너희가 항상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한다면, 사람이 지탱할 수 없는 곳에서 하느님께서 그분의 천사와 함께 오셔서 기진맥진한 용사를 부축해주시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끈질기게 원하기만 한다면, 너희가 고뇌에 차 있을 때에도 비겁함이나 신앙포기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만일 너희가 그분의 뜻에 충실한 채로 남아 있다면, 그분께서는 너희를 영웅적인 거인들로 만드실 것이다.

이것을 기억해라! 이것을 명심해라! 나는 광야에서 유혹당한 다음에 천사들에게 도움 받았다고 너희에게 한 번 말했다. 지금 너희는 내가 여기서도 극도의 유혹을 당한 후에 한 천사에게 도움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똑같은 일이 너희에게도, 그리고 내 신자들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내가 받은 도움을 너희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미 아버지께서 그분의 다정한 정의 안에서 너희에게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나 자신이 그것을 너희에게 얻어줄 것이다. 다만 너희의 고통은 항상 내 고통보다 열등할 것이다…

앉아라. 동쪽에서 달이 떠오르고 있다. 달은 그 빛을 우리에게 비춰줄 것이다.

너희가 이직도 아주 많이 사람들이고, 전적으로 사람들일 뿐이지만, 오늘밤에 너희가 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너희가 전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활동하는 한 요소가 너희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너희는 자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가책이다. 그것은 하나의 고통이다.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선에 있어서나 악에 있어서 공히 더 높은 단계들로 이행하는 데 이바지한다.

가리옷의 유다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그에게는 그것이 실망과 영벌을 야기했다.

하느님과의 가까움에서 결코 멀리 가지 않았던 너희에게―나는 너희에게 단언한다. 왜냐하면 너희에게 너희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지와 완전한 숙고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것은 너희를 지혜와 정의로 이끌어줄 믿을 만한 뉘우침을 야기할 것이다. 너희는 여기 남아 있어라. 나는 돌을 던져 닿을 만한 거리가 되는 저기로 물러가서 새벽을 기다리겠다.”

“오! 주님! 저희를 떠나지 마십시오. 당신께서는 저희가 당신에게서 멀리 있을 때 저희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안드레아가 마치 자선을 베풀기를 청하는 것처럼 무릎 꿇고 두 손을 내밀며 애원한다.

“너희는 가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착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친구이다.”

“주님, 떠나지 마십시오! 당신께서는 우리가 함께 기도할 것이라고 저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타대오가 애원한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께 감히 친척으로서의 친근한 몸짓을 하지 못하고,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그 큰 키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다.

“묵상은 가장 적극적인 기도가 아니냐? 그리고 나는 내가 너희를 길에서 만났을 때부터 참된 거룩한 감정들의 행위들로 너희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너희로 하여금 관상하고 묵상하게 만들고, 묵상할 주제를 주지 않았느냐?

사람들아! 이것이 기도다. 그것은 영원하신 분과, 영혼을 땅 너머 먼 곳으로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과 접촉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완전들과 인간의 의지의 행위들을, 사람과 자신의 자아의 비참들에 대한 묵상으로부터 사랑하거나 보속하는, 그러나 항상 흠숭하는 의지의 행위들을 불러일으킨다. 설사 그것이 죄와 벌에 대한 묵상에서 생겨나는 의지라 해도 말이다.

악과 선은 사람이 그것들을 쓸 줄 안다면, 최종 목적에 이바지한다. 나는 너희에게 여러 번 말했다. 죄는 뉘우침과 보속이 뒤따르지 않을 때에만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 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에 마음의 뉘우침은 성덕의 기초를 촘촘하게 다지기 위한 견고한 회반죽을 만드는 것인데, 그 돌들은 좋은 결심들이다. 너희는 회반죽 없이 돌들을 서로 붙어 있게 할 수 있겠느냐? 깨끗한 돌들과 광택 나는 대리석들이 결합하여 건물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겉보기에 보기 흉하고 천한 원료 없이 말이다.”

예수께서 가시려는 찰나이다.

요한이 그의 형, 다른 야고보와 동시에 베드로, 바르톨로메오가 작은 소리로 무어라고 말하자, 일어나 그분을 따라가며 말씀드린다.

“예수님, 나의 하느님, 저희는 당신과 함께 당신의 아버지께 기도드리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요. 만일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 기도를 당신과 함께 드리게 해주지 않으신다면, 저희는 약간밖에 용서받지 못했다고 느끼게 됩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그것이 몹시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기도 안에서 결합하는 곳에 그들 가운데 있다. 그러니 너희끼리 함께 기도드려라. 그러면 나는 너희 가운데에 있을 것이다.”

“아! 당신께서는 저희가 더 이상 당신과 함께 기도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시는군요!”

베드로가 하느님의 피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풀에 얼굴을 파묻고, 비통하게 울며 외친다.

알패오의 야고보가 외친다.

“저희는 불행합니다. 아우… 주님.”

그는 ‘아우님’ 대신 ‘주님’이라고 즉시 고쳐 말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왜 나를 아우라고 부르지 않느냐, 내 혈족인 네가? 나는 모든 사람의 형제이지만, 너에게는 아담의 후손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이중, 삼중으로 형제이다. 네 말을 마쳐라.”

“아우님, 나의 주님, 저희는 불행하고, 어리석습니다. 당신께서 아시다시피. 그리고 저희가 빠져 있는 의기소침은 저희를 더 어리석게 만듭니다. 만일 저희가 주님의 기도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저희가 어떻게 그 기도를 저희의 영혼으로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나는 미성년 소년들에게처럼 얼마나 여러 번 그것을 너희에게 설명해주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한 교사의 가장 방심한 생도보다 더 완고하고 고집스러워서 내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의 생각들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저희의 가책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오! 저희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두를 대신하여 그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직도 당신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당신께 청하오니 저희를 둔하게 만드는 악에서부터 같은 저희의 악에 대한 관용을 가져가주십시오. 당신께서 임종하셨는데, 그 위대한 라삐가3) 라삐 가말리엘) 저기 당신의 십자가 아래서 이스라엘의 우둔함에 관한 진실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무소부재하시는 하느님,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되신 하느님의 영이신 당신께서는 그 말을 들으셨습니다. 영적인 맹목의 길고도 긴 세월이 내적인 눈 위에 있습니다.그래서 그는 당신께 이런 청원을 드렸습니다. ‘당신께서는 해방자시니 형식들의 죄수인 저의 보잘것없는 생각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오, 제가 흠숭하는 흠숭하올 예수님, 저희를 원죄(the original Sin)에서 구해주시고, 저희의 죄들을 짊어지시고 당신의 완전한 사랑의 작열하는 불로 태워 없애시는 주님, 완고한 이스라엘 사람들인 저희의 지성들도 불사르십시오.

저희에게 갓난아기의 영혼처럼 새롭고 순결한 사고방식들을 주십시오. 저희에게 저희의 묵은 기억들을 잃게 하시고, 저희를 당신의 지혜로만 채워주십시오.

과거의 참으로 많은 것들이 그 소름끼치는 날에 죽었습니다. 당신처럼 죽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부활하신 지금 새 생각이 저희 정신들 안으로 들어오게 해주십시오. 나의 주님, 저희에게 새로운 심장들과 새로운 정신들을 창조해주십시오. 그러면 저희는 당신을 이해할 것입니다.”

요한이 청한다.

“그 과업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가 최후의 만찬 시에 너희에게 말한 그분의 것이다. 나의 모든 말이 전체로나 부분적으로 너희의 생각들의 심연 속에 들어가 사라지거나 그 영혼 안에 그대로 갇히고 닫힌 채로 남아 있다. 파라클리토(Paraclet)께서 오실 때 그분만이 너희의 심연에서 내 말들을 꺼내고 그것들을 너희에게 열어, 너희가 그것들의 영을 깨닫게 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그분을 저희에게 불어 넣어주셨는데요.”

열성당원이 이의를 제기하며 말한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아버지께로 가셨을 때 진리의 성령이신 그분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오가 열성당원과 함께 이의를 제기한다.

“나에게 말해라,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그 아이는 자기 안에 주입된 영혼을 가지고 있느냐?”

“물론 그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대답한다.

“그런데 그 영혼이 하느님의 은총을 가지고 있느냐?”

“아닙니다. 원죄가 그 위에 있어 그것이 은총을 빼앗아갑니다.”

“그러면 영혼과 은총은 어디서 오느냐?”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그럼 왜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은총지위에 있는 영혼을 바로 주시지 않으냐?”

“왜냐하면 아담이 벌을 받았고, 저희는 그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구속주가 되신 지금은 그것은 그럴 것입니다.”

“아니다.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고 아담의 유산이 얼룩지게 한 그들의 영혼들 안에서 불순한 채로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날 내가 너희에게 설명할 한 의식(rite)에 의하여 사람 안으로 주입된 영혼은 은총에 의하여 되살아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주님의 성령께서 그것을 소유하실 것이다. 그러나 요한에게 물로 세례받은 너희는 하느님의 능력에 의하여 불로 세례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때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참으로 너희 안에 계실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사람들이 박해할 수도, 쫓아낼 수도 없는 선생님이실 것이고, 너희의 내면에서 내 말들의 영과 그밖에 많은 가르침들을 너희에게 설명해주실 것이다. 나는 그분을 너희 안으로 주입해준다. 왜냐하면 내 공로들을 통해서만 모든 것이 얻어질 수 있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느님을 차지할 것이고, 하느님의 대리자의 말이 유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께서는 아직 선생님으로서 너희 안에 계시지 않는다.”

“그럼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 성령께서는 적절한 때 오시겠지요. 그렇지만 그 동안에 저희가 당신께서 저희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세요. 나의 주님, 저희의 선생님이 되어주십시오. 다시, 또 다시요.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저희가 일곱 번의 일흔 배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요한이 조른다. 그리고 그는―그는 항상 가장 신뢰하는 가장 다정한 사도이다― 감히 두 손으로 예수의 아래로 늘어뜨린 왼손을 잡으며 결론짓는데, 그 손의 못 구멍이 달빛에 비추어져 더 크게 보인다.

“당신께서는 영원한 빛이시니, 당신의 종들이 어둠 속에 남아 있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요한은 상처 입었다가 낫기는 했지만, 여전히 힘줄이 약간 오그라든 사람의 손가락들과 똑같이 약간 구부러져 있는 그분의 손가락들의 끝에 가볍게 입 맞춘다.

“오너라. 좀 더 올라가서 함께 기도드리자.”

예수께서는 동의하시고, 그분의 한 손을 요한의 양손에 잡히신 채 겟세마니의 가장 높은 경계를 향하여 갈릴래아 사람들의 야영지를 지나 베타니아로 가는 보다 높은 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신다.

여기서도 라자로가 지시한 경계 획정공사가 진행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은 여기 올리브 동산지기의 집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 겟세마니의 경계였던 산울타리와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매끄럽고 높은 담이 세워놓았다.

아래 있는 예루살렘은 천천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서쪽 사면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지금 달은 남중하여 동방 하늘의 거짓말 같은 무수한 별들의 깜빡이는 빛나는 꽃부리들이 있는 어두운 창공에 놓인 금강석 화염처럼 밝게 그 가는 초승달의 흰 빛으로 모든 것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여느 때의 기도자세로 양팔을 내미시고 읊으신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예수께서는 중단하시고, 해설하신다.

“그분께서 아버지시라는 것은 그분께서 너희를 용서하심으로써 너희에게 증명되었다. 다른 누구보다 더 완전해야 하는 너희를, 그토록 많은 은전들(favors)을 받은 너희를, 너희가 말하듯이 임무에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너희를 너희의 아버지가 아닌 어떤 주인이 벌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를 벌하지 않았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벌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하고,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하는 것을 하시기 때문인데, 우리는 사랑 안에서 결합된 유일한 천주성(one only Divinity)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나와 함께 계신다. 말씀(the Word)은 항상 시작이 없는 분이신 하느님 곁에 있다. 그리고 말씀은 모든 것들 전에 있다. 항상으로부터(since always), 항상(always)이라는 이름의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곁에 영원한 현재로부터 있으며, 하느님의 생각(the divine Thought)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느님과 같이 하느님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고 난 다음에 너희가 이렇게 우리의, 나의, 너희의 아버지께 기도할 때, 즉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형제들인데 나는 맏아들이고, 너희는 동생들이 되는 내 아버지와 너희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드릴 때 나와 너희 아버지 안에서 항상 기꺼이 나를 보아라.

너희에게는 ‘선생’이 되었었고,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리고 죽음을 넘어 너희를 사랑하여 그 자신을 너희에게 음식으로 남겨주어, 귀양살이가 계속되기까지 너희는 내 안에, 나는 너희 안에 있게 하고, 그 다음에는 너희와 내가 하느님 나라에 있게 하려고 한 말씀(the Word)을 기꺼이 보아라.

그 나라를 위하여 나는 너희의 일이 땅 위와 하늘에서 그분께 영광을 드림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해주시도록 간청한 다음에 ‘그 나라가 임하시며’ 하고 기도하라고 너희를 가르쳤다. 그렇다. 만일 너희가 하느님의 율법과 내 말의 진정한 실천을 통하여 먼저 너희 자신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원치 않는다면, 너희를 위한 나라, 너희처럼 믿을 사람들을 위한 나라는 하늘에 없을 것이다.

내 말은 율법의 완성으로서 은총의 때에 선택된 사람들의 율법을 주었다. 선택된 사람들의 율법이란 모세의 때의 민사적(civil), 윤리적(moral), 종교적 헌법들을 초월하여 이미 그리스도의 때의 영적인 율법 안에 있는 사람들의 법을 말하는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는 것이 무엇이고, 하느님을 너희 안에 모시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즉 하느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말씀의 진정한 실천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본다. 사람은 자기 가까이에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지만 자기의 마음속에는 모시지 않음으로써, 다시 말해 말씀(the word)의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순종이 없어 모든 죄들을 저질렀다. 모든 것을!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저질러진다. 우둔함과 범죄행위, 하느님 살해(deicide), 고문들, 죄 없는 이(the Innocent)와 그를 죽인 카인의 죽음 따위 모든 것이 이것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유다처럼 나에게 사랑받았느냐? 그러나 그는 하느님인 나를 자기의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일곱 가지 사죄들(칠죄종, seven deadly sins)과 그의 다른 모든 죄 외에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제자로서, 자살자로서, 그리고 하느님 살해자로서 지옥형을 받은 하느님 살해자, 무한히 죄 있는 자인 것이다.

지금 너희는 너희 자신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좀 더 쉽게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내 죽음으로써 너희를 위하여 그것을 얻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고통으로 너희를 구속했다. 그것을 너희의 마음에 새겨라. 그래서 아무도 은총을 짓밟지 못하게 해라. 왜냐하면 그것은 한 하느님의 생명과 피를 대가로 하여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여, 하느님의 나라가 은총(Grace)을 통하여 너희 안에 있게 해라. 땅 위에서는 교회(the Church)를 통하여 그것이 있게 하고, 하늘에서는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았던 복된 영혼들을 위하여 그것이 있게 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에 결합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인 포도나무에 결합하여 모든 것들이 만들어진 목적이신 분의 나라에서 쉴 자격을 얻는다. 그는 너희에게 말하고 있고,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바친 자인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고 너희가 말해야 한다고 위선 없이 너희에게 가르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내 아버지의 뜻을 행했는지는 팔레스티나의 땅의 흙덩이들, 식물들, 꽃들, 돌들, 상처 입은 내 몸, 그리고 온 백성이 말할 수 있다.

내가 했었던 것을 너희도 해라. 끝까지, 만일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왜냐하면 기억해라, 내가 그것을 행했고, 나보다 더 자비를 얻을 자격이 있는 자격이 있는 제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가장 큰 고통을 끝까지 당했고, 끊임없는 포기들로 순종했다. 너희도 그것을 알고 있다. 너희는 미래에 너희가 내 고난의 잔에서 한 모금 마심으로써 나를 닮게 될 때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분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를 구해주셨다’는 이 생각이 끊임없이 너희에게 있게 해라. 그리고 만일 너희가 구원자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해왔던 것을 해라. 어떤 이들은 십자가를 알게 될 것이고, 어떤 이들은 폭군들의 고문을 당하고, 어떤 이들은 하늘나라에 올라가기 전에 아주 고령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지향하는 천국으로부터 유배당하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어찌됐든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라. 너희는 내가 있는 곳에 오기 위하여 죽기를 원하는데 죽음의 고통이든, 살게 되는 고통이든 모두 기쁜 순종으로 당한다면, 하느님의 눈에는 똑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그분의 뜻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거룩하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매일, 매시간. 하루의 빵을 청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것은 겸손이다. 그것은 희망이다. 그것은 오늘은 달고 내일은 쓸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고, 양념이 되어 있거나 재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항상 있는 그대로 옳은 것이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그것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좋은 것이다.

다음번에 나는 다른 빵에 대하여 너희에게 말하겠는데, 그것은 날마다 먹는 것과, 아버지께 그것을 유지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 건강에 좋은 빵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뜻으로 인하여 그 빵을 갖지 못하게 될 그날과 그 장소들은 불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는 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어둠의 행위들에 있어 얼마나 능력 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 그분께서 그분의 빵(His Bread)을지켜주시고, 그것을 너희에게 주시기를 청해라. 어둠이 준비일에 했었던 것처럼 그것은 빛과 생명(the Light and the Life)을 질식시키려고 애쓸 것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기를 청해야 한다.

두 번째 준비일(the second Preparation Day)에는 부활이 없을 것이다. 너희 모두는 이것을 기억해라. 말씀은 더 이상 다시 살해당할 수 없겠지만,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살해당할 수 있을 것이고, 너무 많은 사람들 안에서 그를 사랑할 자유와 뜻이 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생명과 빛도 사람들에게 끝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불행할 것이다! 성전이 너희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성전은 큰 시체이다’라고 내가 말했던 것을 기억해라.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너희는 모두 죄인들이니 죄인들에게 온유해라. ‘너희는 먼저 너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치우지 않으면서 왜 네 형제의 눈의 티를 들여다보느냐?’라고 한 내 말을 기억해라. 내가 너희에게 불어넣어준 성령과 너희에게 준 그 명령은 너희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희 이웃의 죄를 사해줄 권위를 준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너희의 죄를 사해주지 않으신다면, 너희가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겠느냐?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다시 말하겠다. 지금 당장은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용서받기 위하여, 그리고 사죄하거나 단죄할 자격을 가지기 위하여 너희를 모욕하는 자들을 용서해라. 죄가 없는 사람은 완전한 정의를 가지고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죄 가운데 있고, 분개하는 체하며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위선자이고, 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피보호자에게는 여전히 자비가 있어도, 그들을 도와주시는 성령을 충만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똑같거나 더 큰 죄들을 짓는 보호자들에게는 준엄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게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주십시오.’ 이것이 완덕의 기초석인 겸손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축복해라. 왜냐하면 그들이 너희의 천상 옥좌들에 필요한 것을 너희에게 주기 때문이다.

아니다. 유혹은 파멸이 아니다. 만일 사람이 겸손하게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 그분께 사탄과 세속과 육신이 자기에게 승리하도록 허락하지 마십사고 청한다면 말이다. 복된 영혼들의 관(冠)들은 그들이 이겨낸 유혹들의 보석들로 꾸며져 있다.

유혹들을 찾지는 마라. 그러나 그것들이 올 때 비겁해지지 마라. 겸손하게, 따라서 강하게 나와 너희의 아버지께 부르짖어라. ‘저희를 악에서 구해주십시오.’ 그러면 너희는 악을 이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진실로 너희 행위들로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를 보고 ‘하느님께서는 존재하신다. 왜냐하면 저 사람들의 행동이 저토록 완전하니 저들은 신들(gods)로 산다’고 말할 것이고, 그들이 하느님께로 와서 하느님의 나라의 주민들의 수를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무릎 꿇어라. 내가 너희에게 강복하여 내 강복이 너희 정신을 열어 묵상하게 하겠다.”

그들이 땅에 엎드리자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마치 달빛에 빨려 들어가시듯이 사라지신다.

잠시 후에 사도들은 더 이상 말이 들리지 않는 것에 놀라 고개를 들어 예수께서 사라지셨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과 접촉하였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의 해묵은 공포에 사로잡혀 다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