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건 부제의 열두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4월 7일
발신지 : 서울
수신인 : 리부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리부아 신부님께,
조선 왕국의 대신들과 관장들 사이에는 어떤 계통, 즉 파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다만 공연한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 하나는 벽파(僻派)라 하고 하나는 시파(時派)라 하는데 서로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이 두 파가 서로 대립하는 근본 이유는 각각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이 당파 싸움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으나 지금은 가법게 볼 수없는 문제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파 사이에는 시기와 비난, 논쟁과 학살 등이 연출되어 서로 도발하고 고발하여 내몰고 귀양 보내기에 급급합니다.
그들 당파는 다시 노론(老論), 즉 북인(北人)과 남인(南人)의 구별이 있어 각각 다른 당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노론은 벽파와 손잡고, 남인은 시파와 손잡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그렇지 아니한 예도 있기는 있습니다. 천주교는 시파한테서는 용인되고 있으나 벽파한테서는 배척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벽파는 천주교를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김 대왕대비, 즉 현재 임금님의 조모는 시파에 속하고 젊은 대비, 즉 현재의 임금님의 모친은 벽파에 속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신들은 벽파입니다. 그리하여 벽파가'시파를 반대하여 궐기하려고 원하는 때는 그들의 모든 의견을 배척하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무죄한 천주교 신자들을 근절할 행동을 취하므로 여러 번 박해가 일어나 많은 순교자를 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천주교의 제일 큰 적은 조만영(趙萬永)인데 그는 젊은 대비의 부친입니다. 그가 오늘날 이 나라 정치의 최고 권력을 잡고 있으며, 그의 동생 조인영(趙寅永)은 영의정이고 그의 아들(조병규)은 병조판서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박해는 대부분 조만영과 조인영의 계획으로 벌어졌는데, 신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하고 신부님들을 죽이라고 명한 것도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신들은 신부님들을 죽이고 나서는 프랑스인들이 군함을 타고 들어와 복수를 할까 봐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나라에서 무고한 피를 너무 많이 흘리게 하였으므로 필연코 전쟁이 일어나 온 나라가 큰 재앙을 입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떠들어대고 있으며, 지금은 전쟁을 기다리기까지 합니다.
조선의 국법대로 하면 외국인들은 죽일 수가 없고 오히려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국인 · 달단인 · 일본인들은 필요한 것을 주어 반드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들을 죽인 것은 확실히 종교 때문에 죽인 것입니다. 조정에서는 신부님들이 조선에 온 것은 교황님과 프랑스 왕이 파견해서 온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을 죽인 후에 무서워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포졸이 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 조정은 신부님들을 죽임으로써 프랑스 왕을 모욕하는 불경죄를 범한 것인데, 그들은 일찍이 영국인으로부터 서양의 왕들은 자기 백성이 피살된 경우에는 전쟁을 일으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번민하던 우리나라 대신들은 여러 척의 함선이 지나간다는 보고를 받고 프랑스인들이 보복하러 온 것으로 알고 불안에 떨었으며, 또한 백성들도 서양 함선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영국 함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프랑스 측에서 이미 여러 해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프랑스라는 나라는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 무서워할 바가못 되는 나라라는 근거 없는 그릇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모든 공포를 떨치고 또다시 신부님들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만일 대신들을 저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면 신부님들이나 우리 신자들이나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실상 왕은 이런 일에 대하여 대체로 무죄합니다. 하느님께서 섭리하여 주소서!
만일 프랑스 군함이 조선에 와서도 신부님들을 살해한 사건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신자들의 처지가 더욱 참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정부에서 우리가 귀국하는 대로 사형에 처할 작정으로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그들 가까이 있어도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경계도 충분하지는 못한 듯합니다. 그러니까 만일 대신들이 제가 조선에 돌아온 줄 알게 되면 즉시 사방으로 수색할 것입니다.
신부님들이 순교한 다음에도 신자들은 2년 동안 박해를 더 받았습니다. 4년 전부터는 안온한 상태에 있는데 신자들의 기운을 회복시키고 외교인들을 입교시키며 모두를 완성시켜 줄 선교사 신부님들을 하루빨리 조선에 모시기를 모두가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신자의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으며 신부님들이 순교한 후 오늘까지 줄어들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증가하여 최소한 만 명은 될 듯합니다. 외교인들은 우리 종교의 진리를 깨닫고 하느님께로 귀화하는 사람이 매우 많으며 그 중에는 몇 마디 권고만 듣고 즉시 입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전부터 우리 종교의 진리를 들어보고자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니 지금 누가 용감히 나서서 그들에게 전교만 하면 종교를 수용할 사람이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신자 10명은 아직 감옥에 갇혀 있고, 5명은 귀양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왕의 조모 김 대왕대비는 아직 생존해 있으나 여러 가지 고통으로 번민하여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으려고 불교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대왕대비가 사망하면 우리 신자들에게 큰 환난이 닥쳐을 것입니다. 왕은 건강하지만 왕위에서 쫓겨날 위험이 있답니다. 대신들은 어느 날 밤 회의를 열어 왕을 옥좌에서 몰아내고 그 대신에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고 모의를 하였다 합니다.
왕은 19세 된 젊은이지만 상당히 신중하고 얼굴에는 병으로 인한 흔적이 뚜렷하나 코가 높고 인물은 그다지 못생기지 않았다 합니다. 먼젓번 왕비가 사망한 후 15세 된 홍씨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다 합니다.
우리 교회를 박해하는 대신 조만영과 조인영은 아직 살아 있어서 대단한 권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비신자인 2품 대신 김정희(金正喜) 판서는 아직 귀양에서 풀려나지 못하였습니다.
조선 백성들은 평화를 누리고 배불리 먹고 지내면서 전쟁 소문을 퍼뜨리기를 일삼고 있습니다.
배반자 김여상은 아직 귀양살이를 하면서 첩과 함께 살아 있다고 하는데 그 역시 많은 혹형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포졸들과 관장들은 그를 미워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그를 매질하면서 "이놈아, 너는 유다보다 더 악한 놈이다. 유다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러 오신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하거니와 이놈아, 너는 살려고 조선에 온 신부님들을 배반하여 죽였으니 너는 인간도 아니다. "라고 엄히 꾸짖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눈병이 낫지 않았고 그 동안 중병에 걸려 몹시 앓았으나, 요새는 힘없는 머리를 겨우 쳐들고 있을 정도로 원기가 조금 회복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태산같이 많으나 몸은 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 마음은 설치지만 활동은 미미합니다.
현재를 위해서나 장래를 위해서나 이곳 형편을 위해서나 북방의 길을 열어놓을 일이나 강남으로 출발할 일을 생각하면 제가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지만 병으로 허약해진 몸이 일을 행하기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병중에 무능해진 저는 다만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저는 지금 14세 된 학생 두 명을 가르치고 있으며, 또 다른 아이 두 명을 지명하여 두었으나 아직 저에게로 오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제가 병중에 있으나 가능한 대로 강남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출발할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은 금년에 메스트르 신부님과 토마스(최양업 부제)를 영접하기 위하여 북방으로 출발할 것입니다.
중국 함선이나 서양 함선 편으로 무슨 물건이든 조선에 보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임을 신부님께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지금 조정에서는 도처에 군졸을 배치하여 경비하고 있습니다. 외국 함선이 오는 때 혹시라도 그들과 연락을 취하는 조선 사람이 있을까 하여 감시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 조선 종이 20장이 들어 있는 봉투, 조선 그림 석 장이 들어 있는 작은 봉투, 병풍이라고 하는 여덟 폭으로 된 그림, 밤에 사용하는 놋그릇(요강), 신부님들의 유해가 들어 있는 누런 주머니 세 개, 조선 지도, 빗 제 개와 빗을 소제하는 기구, 붓을 쓸 때 붓끝만 풀어서 쓰는 붓 네 자루, 돗자리 하나를 보내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공경하올 스승님께, 가장 순명하고 무익한 김해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출처: 한국성지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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