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저자: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
제 4 장 과월절의 어린 양
21. 그들은 물러가서 그 돌을 봉인하고 경비병을 세워 무덤을 단단히 지키게 하였다(마태 27, 66)
안식일이 시작되었다. 니고데모와 요셉은 작은 문을 지나서 도시를 향해 갔다. 내 생각에 그 작은 문은 개인적으로 특별히 사용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기도를 드리기 위해 다시 갈바리아 산으로 가시길 원하시는 성모 마리아와 그 밖에 막달레나, 요한 그리고 몇몇 여인들에게, 문을 세차게 두드리면 체나쿨룸으로 가는 작은 문과 성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하였다.
베드로와 큰 야고보 그리고 작은 야고보는 시내에서 요셉과 니고데모를 만났다. 그들은 모두 함께 울었다. 특히 온통 비애에 젖어 있는 베드로는 격렬하게 슬피 울며 그들을 포옹하였다. 그는 주님께서 죽음을 당하실 때 그분 곁에 있지 못했던 자신을 뼈저리게 한탄하며 애통해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의 묘소를 마련한 데 대해 감사를 표하였다. 그들은 모두 너무나 고통스러워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그들은 문을 세차게 두들겨서 체나쿨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한 다음, 아직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다른 제자들을 찾기 위해 서로 헤어졌다. 그 후 나는 성모 마리아께서 다른 동반자들과 함께 체나쿨룸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램프 아래 서서 안식일 예절을 행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거룩한 여인들 역시 성모 마리아와 함께 램프 아래서 기도를 드렸다. 얼마 후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라자로, 마르타, 과부인 나임의 마로니, 사마리아의 디나 그리고 수파니아의 마라가 베다니아에서 안식일을 지내고 그리로 찾아와 동석하였다.
나는 금요일부터 토요일 밤까지 가야파와 유다의 지도자들이 기적적인 사건들과 그로 인해 동요된 민중들의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모든 대책들을 강구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더 이상 이 사건에 관여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던 빌라도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도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그의 무덤을 감시해 보도록 하여라.”
그리고 나서 그는 카시우스를 감시병으로 보내어 모든 것을 관찰하여 그에게 보고하도록 하였다. 나는 뒤이어 그들 중에 열두명이 해 뜨기 전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밤에도 모든 것들을 잘 볼 수 있게 하고, 또 어두운 동굴 무덤 속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장대에 횃불을 켜 들고 갔다.
그들은 무덤에 도착한 후 시신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나서 동굴 묘소의 문 앞을 대각선으로 줄을 매어 봉인한 후 다시 두번째 줄로 앞에 있는 바위를 연결시켜 반월형으로 봉인하였다. 그 일을 마치고 그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갔으며 경비병들은 묘소 문 밖에서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때때로 몇몇 사람들이 도시에서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때 대여섯 명씩 임무를 교대하였다. 그러나 카시우스는 그의 초소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동굴 입구에서 있거나 또는 앉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느님의 위대한 은총들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신비에 싸인 영신적 관조들로 심취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전혀 생소하기만 한 그 같은 놀라운 상황 속에서 그는 대부분의 시간들을 내적 성찰과 깨달음과 감동에 젖은 채 보냈으며, 모든 외적인 일들을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이곳에서 비로소 새 인간으로 완전히 변화된 그는 참회와 감사와 흠숭의 나날을 보내었다.46)
나는 어제 저녁에 체나쿨룸에서 대략 스무 명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미 말한 바와같이 그들은 모두 허리띠가 매여진 길다란 흰옷을 입은 채 램프 아래서 안식일을 보내었다. 동정 마리아께서 머무르고 계신 집은 큰방과 여러 개의 작은 구석방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양탄자와 간막이 벽을 이용하여 개별적인 침실이 될 수 있게 나누어 놓은 것이었다. 묘소에서 돌아온 거룩한 여인들은 모든 도구들을 제자리에 정리했으며 큰방의 중앙에 걸려 있는 램프에 불을 붙였다. 램프의 불빛 아래서 그들은 성모 마리아의 주위에 모여 앉아 큰 슬픔에 잠긴 채 매우 경건한 기도를 바쳤다. 기도를 드리고 나서 그들은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하였다. 뒤이어 마르타, 마로니, 디나 그리고 마라가 그들에게로 왔는데, 그들은 라자로와 함께 베다니아에서 안식일을 보내고 온 참이었다. 그중에 몇 사람은 시내에 있는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전송하였다. 그 외에 함께 모여 있던 다른 여인들은 큰 거실에 칸막이로 차폐되어 있는 침실로 각기 들어가 침대 위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들은 자정이 지나자마자 다시 일어나 램프 아래서 성모 마리아를 둘러싸고 앉은 채 함께 기도를 바쳤다.
예수의 어머니와 다른 여인들은 그날 밤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렸다. 남자들도 체나쿨룸의 램프 밑에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요한은 몇몇 제자들과 함께 여인들이 기도하고 있는 큰방의 문을 두드렸다. 여인들은 즉시 외투를 덮어 쓴 후 성모 마리아와 함께 그들의 뒤를 따라 성전으로 갔다.
과월절을 기념하는 어린 양 고기를 먹은 후 아침 일찍 성전으로 가는 것은 유다인들의 관례가 되어 있었다. 성전의 문은 자정에 이미 열려 있었다. 제물 봉헌이 아주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기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죽은 사람들로 인해) 성전이 더럽혀지고 축제가 혼란에 빠진 채 모든 일들이 소홀히 다루어졌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동반자들과 함께 이제 성전과 결별하기를 원하시는 것같이 보였다. 그 성전은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의 태중에 지성소를 모시게 되었을 때까지, 가르침을 받으시며 경배를 드리시던 곳이었다. 관례대로 그날 성전은 열려 있었고 램프의 불빛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는 관례대로 사제관의 현관까지 군중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성전에는 몇몇 경비병들과 하인들 외에는 사람들이 없이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시므온의 아들들과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의 조카들은 성모 마리아와 그분을 동반한 여인들을 만나 함께 성전의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그것은 그들이 성전을 돌보는 직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모께서는 동반한 여인들과 함께 예수를 통해 거룩하게 되어진 모든 장소들을 방문하셨다. 그분은 신성한 장소에 엎드리시어 입을 맞추셨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시며 당신의 기억들을 짤막하면서도 감동 어린 말씀으로 들려주셨다. 그분을 따라온 여인들도 엎드려 거룩한 장소에다 입을 맞추었다.
유다인들은 신성한 일들이 일어났던 모든 장소들을 열렬히 경배했으며 얼굴을 땅에 맞대고 깊은 정성으로 입을 맞추었다. 나는 그 사실에 대해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집으로 삼으신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살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믿고, 그 사실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그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 인간들과 그 자손들의 아버지이시자 구세주이신 그 거룩하신 분을 믿는 사람은 그가 살아 계신 그분의 사랑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상히 여기지 않는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현재와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 교회의 성체 성사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계신 것과같이 유다인들에게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 성전과 거룩한 장소들에 현존하시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그와 같은 흠숭의 마음을 지니시고 동반한 여인들과 함께 성전의 여러 곳들을 찾아보셨다. 성모께서는 소녀 시절에 처음으로 성전에 발을 들여놓았던 곳과 결혼하실 때까지 교육을 받으셨던 성전의 남쪽 구역에 위치한 강학소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또한 성 요셉과 결혼식을 올리셨던 곳과 아기 예수를 봉헌하셨던 곳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가 예언을 했던 장소들도 알려 주셨는데, 그때 성모께서는 우셨다. 그분의 마음이 예리한 칼에 찔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은 이루어졌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조용히 많은 눈물을 흘리셨으며 진지한 모습으로 성전을 떠나셨다. 그토록 거룩한 날에 그같이 무질서하고 삭막한 성전의 모습은 곧 백성들의 죄를 증거하는 것이었다.
46)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은 “카시우스의 생애(Das Leben des Cassius)”의 장(章)에서 이렇게 언명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혹독한 수난(Das Bittere Leiden unseres Herrn Jesu Christi)>, 392-396면 참조(편집자 주).
출처
21. 그들은 물러가서 그 돌을 봉인하고 경비병을 세워 무덤을 단단히 지키게 하였다(마태 27, 66) | CatholicOne (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