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저자: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
제 5 장 30세 되던 해의 봄
1. 안식일 다음날,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에, 그 여자들은 무덤으로 갔다(루가 24, 1)
안식일47) 저녁에 요한은 거룩한 여인들을 찾아와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며 그들을 위로하였다. 그가 잠시 머물러 있다가 그곳을 떠났을 때 베드로와 큰 야고보도 같은 목적으로 그 여인들에게 왔다가 곧 되돌아갔다.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를 보고 싶어하는 열정으로 충만한 가운데 정성껏 기도하고 계실 때, 나는 한 천사가 그분께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그 천사는 성모께 지금 예수께서 니고데모의 저택, 쪽문 근처에 와 계시므로 그곳에 나가 보아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 순간 성모 마리아의 마음은 환희로 가득 찼으며, 곧 외투를 걸치시고는 아무에게도 당신의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 그곳을 나오셨다. 나는 성모께서 시(市)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성벽의 어떤 작은 문으로 홀로 서둘러 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성모께서 니고데모 저택의 쪽문 근처의 조용한 곳에 갑자기 멈추어 서 계셨을 때의 시간은 저녁 아홉시경이었다. 성모께서는 기쁨과 열망으로 충만하신 채 황홀하신 듯이 높은 담벽을 올려다 보시었다. 그때 나는 상흔(傷痕)이 드러나지 않은 한 영(靈)이 빛을 발하면서 선조들의 영들에 의해 안내를 받으며 마리아께 홀연히 나타나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그분은 선조들을 향하신 채 성모 마리아를 지칭하시면서, “마리아, 나의 어머니”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성모를 포옹하시고는 곧 사라지셨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그분이 서 계시던 장소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신 후 입을 맞추셨다. 성모께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안을 받으시고 여인들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되돌아오셨다. 여인들은 탁자 위에 향유와 향료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성모께서는 당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으셨지만, 매우 큰 힘을 얻으셨으므로 그들 모두를 위로해 주시며 굳센 믿음을 갖게 해주셨다.
성모께서 다시 돌아오셨을 때 거룩한 여인들은 탁자보가 바닥까지 드리워져 있는 기다란 탁자 곁에 서 있었다. 그들은 이 탁자위에 놓인 온갖 종류의 약초 다발에서 약초들을 하나하나씩 골라내어 합쳐 놓기도 하고 가지런히 놓기도 했는데, 거기에는 향유와 나르드 향수가 든 작은 병들도 있었다. 또한 거기에는 싱싱한 꽃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나는 체크 무늬의 아이리스와 백합을 기억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께서 외출하셨던 사이에 막달레나와 마리아 글레오파, 살로메와 쿠자 그리고 마리아 살로메가 시내에 가서 이 모든 것들을 사 가지고 왔다. 그들은 내일 아침 일찍 수의로 싸여있는 주님의 성시(聖屍)에 그것들을 발라 드리거나 뿌려 드릴 생각이었다.
나는 이때 즉시 주님의 묘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온한 가운데 있었다. 일곱 명 가량의 경비병이 무덤 맞은편에 앉아 있거나, 주위에 서 있었다. 카시우스는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으며 깊은 감동에 젖어 있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주님께 대한 사랑과 보고픈 열정에 불타오르시어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었다. 밤 열한시쯤 되었을 때 성모께서는 회색 외투로 안전하게 몸을 감싸시고 홀로 집을 나오셨다. 그때 나는 ‘아, 어쩌면 사람들은 큰 놀라움과 충격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를 저렇게 홀로 나가시도록 방관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나는 성모께서 슬픔에 잠기신 채 가야파의 저택과 빌라도의 관저 앞을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분은 예수께서 외로이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던 그 수난의 길을 모두 거니셨다. 그 적막하기만 한 거리를 지나서 성모께서는 고통과 학대가 가해졌던 모든 장소들을 찾아가시어 머무르셨다. 그것은 예수를 학대한 사람들이 잃었던 소중한 것을 그분이 찾으시려는 것 같았다. 종종 성모께서는 땅바닥에 엎드리시어 손으로 돌들을 만지시며 입을 맞추시었다. 마치 지성소를 모시듯이 땅위에 물들여진 주님의 피를 더듬으시며 흠숭의 마음으로 입을 맞추시었다. 성모께서는 갈바리아 언덕까지 모든 행로를 그렇게 끝내시었다.
하얀 빛살이 아침 하늘을 수놓으며 동이 터 오고 있을 때, 막달레나와 마리아 글레오파 그리고 요한나 쿠자와 살로메는 외투로 완전히 몸을 감싼 후 체나쿨룸의 방을 나섰다. 그들은 큰 보자기에 싼 향료들과 그 밖의 모든 것들을 외투 밑에 숨겨 가지고 갔으며, 한 사람은 불이 켜진 등을 들고 갔다. 나는 이 거룩한 여인들이 큰 불안에 싸인 채 니고데모 저택의 쪽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주님께서 광휘를 발하시며 무덤의 바위를 통과하여 공중으로 떠가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땅이 크게 흔들리며 한 천사가 흡사 전쟁 상황을 방불하게 하는 호전적인 모습으로 번개처럼 하늘로부터 무덤쪽으로 내려왔다. 그 천사는 바위를 오른쪽으로 옮겨 놓고 그 위에 앉았다.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경비병들은 혼비 백산하여 흡사 죽은 듯이 몸이 굳어져 울퉁불퉁한 땅바닥에 쓰러졌다. 카시오스는 모든 것이 빛으로 충만해 있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는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무덤 쪽으로 갔다. 그는 무덤의 문이 조금 열려진 채 수의만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이 사건을 보고하기 위해 빌라도에게로 갔다. 그 후 처음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관해 일부는 카시우스가 그리고 일부는 경비병들이 제자들에게 설명하였다.
천사가 무덤 쪽으로 내려오면서 그곳의 땅이 뒤흔들렸던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바리아 언덕에 계신 성모 마리아께 나타나시는 것을 보았다. 주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셨고 진지하셨으며, 광휘를 발하고 계셨다. 그분의 상처들은 매우 컸으며 그곳에서 빛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분의 양손에 손가락 하나를 넉넉히 넣을 수 있을 만큼이나 큰 상처였다. 손바닥 가운데서 손가락 쪽을 향해 빛이 나왔다. 선조들의 영체들이 예수의 어머니 앞에서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하였다. 주님께서는 성모께 다시 만나게 될 일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해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주님께서 당신의 상처들을 그들에게 내보이시자 그들은 엎드려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고는 사라지셨다. 나는 멀리 무덤 주위에 반짝이는 불꽃들이 다발처럼 모여 있는 것과 동쪽 예루살렘의 아침 하늘에 흰빛의 섬광들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룩한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니고데모의 저택 쪽문 근처에서 나타내 보이셨던 표적에 관해 아무것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으며, 무덤의 경비병들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제는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무덤에 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 모두가 비탄에 빠져 꼼짝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걱정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 중에 누가 무덤 앞에 있는 바위를 굴려 내지?”
그들은 지금까지 주님의 거룩하신 시신에 대해 그들의 흠숭을 표시해 드리려는 열정에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바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성시에 나르드 향수와 향유를 뿌려 드리고 약초들과 꽃들을 얹어 드릴 계획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니고데모 혼자서 주님의 성시를 모시는 준비를 했기 때문에 그들은 향료로써 주님의 장례 준비에 도움을 드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라도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귀중한 것을 주님이시며 선생님이신 그분의 성시에 바치려고 하였다. 그것을 가장 많이 구입한 사람은 살로메였는데 그녀는 요한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살로메였다. 그녀는 예루살렘에서 온 부유한 부인으로서 성 요셉의 친척이었다. 그들은 이제 슬픔 속에서 무덤 앞의 돌 위에 향료를 얹어 놓은 다음, 제자들 중의 누군가가 문을 열어 주기 위해 그곳에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하였다.
나는 그 거룩한 여인들이 동산에 가까이 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경비 초소의 횃불과 그 주변에 있는 군인들을 보고는 겁이 나서 동산을 약간 우회하여 골고타 쪽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막달레나는 모든 위험을 잊은 채 동산 쪽으로 곧바로 서둘러 갔다. 살로메가 조금 떨어져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 두 여인은 오로지 성시에 향유를 부어 드리는 일만을 걱정하였다. 두 여인은 동산에 가까이 이를수록 점점 더 겁이 나서 잠시 동산 앞쪽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이 경비병들 앞에 가까이 갔을 때 나는 막달레나가 놀라서 살로메 쪽으로 급히 되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겁을 먹은 채 경비병들 사이를 지나 무덤 쪽으로 갔다. 그들은 이미 바위가 옆으로 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무덤의 문들은 닫혀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카시우스가 그렇게 해 놓은 것 같았다. 그때 막달레나는 불안해 하면서 문을 열고는 성시가 놓여 있었던 와상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녀는 비어 있는 수의가 따로따로 개어진 채 놓여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무덤 안은 온통 빛으로 충만해 있었으며 와상의 오른쪽에 한 천사가 앉아 있었다. 막달레나는 몹시 당황하였다. 나는 그녀가 천사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서둘러 동산에서 나와 니고데모 저택의 쪽문을 지나 사도들이 모여 있는 시내로 달려갔다.
47) 안식일은 일몰과 함께 시작되어 다음날 같은 시각에 끝난다(편집자 주).
출처
1. 안식일 다음날,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에, 그 여자들은 무덤으로 갔다(루가 24, 1) | CatholicOne (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