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21-23권

천상의책 23권 37.예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영혼의 처참한 고통. 피조물이 물리친 모든 행위로 나라를 세우신 예수님.

Skyblue fiat 2019. 12. 10. 00:08


천상의책 23권

37 

                                                       1928 2 12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영혼의 처참한 고통.

피조물이 물리친 모든 행위로 나라를 세우신 예수님.

하느님의피앗과 그 동시 공존의 능력을 가진 사람.

 

 

1  나의 가련한 정신은지고하신 피앗의 끝없는 경계 안을 줄곧 돌아다니고 있지만, 내 하찮은 마음은 악몽과도 같은 처참한 고통으로 미어지고 있다. 사랑하올 예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나 괴로운지) 한 순간이 삼 년같이 길게 느껴지고, 밤은 지루하도록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

 

2  그런데 이 작은 영혼을 덮친 고통은 신적인 것이어서 그 무한성이 나를 잠그고 짓눌러 부서뜨리며 영원한 고통의 모든 무게를 느끼게 한다.

 ! 거룩하신 하느님, 제가 소유하기를 원하시는 바로 그 생명을 저에게서 앗아가시다니,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제 안에 당신 생명의 샘이 없으니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고, 살아 있다고 해도 죽어가고 있을 뿐 아닙니까?

 

3  ! 예수님, 돌아오십시오. 저 혼자 버려두지 마십시오. 생명(이신 당신)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당신을 알게 된 것으로 인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생명을 주시려고 저의 생명을 얼마나 많이 잡아 찢으셨습니까!

 

4  그러나 저는 지금 생명이 정지되어 있습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묘한 방책에 따라 저의 생명을 제게서 몰래 가져가셨기 때문에 그것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생명도 간신히 조금 느낄 뿐인데, 그것도 당신 뜻의 강렬한 빛의 그늘에 가려져 찢어진 듯한 모습입니다.

 

 5  그러니 제게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습니다. 희망을 접고, 당신의 흠숭하올 뜻의 반사를 통하여 - 그 빛살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습니다.

 예수님, 돌아오십시오. 당신께서 그토록 사랑하셨고 또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으나 지금은 혼자 버려두고 계신 저에게 이번만은 꼭 돌아오십시오. 오셔서 다시는 저를 떠나시지 않기로 마음을 정해 주십시오.’

 

6  하지만 내가 그렇게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고 있었을 때 그분께서 내 마음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그분을 가리고 있었던 그 강렬한 빛을 부드럽게 완화시키시면서 내 쪽으로 두 팔을 뻗쳐 나를 꼭 끌어안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7  내 딸아, 내 가엾은 작은 것아, 용기를 내어라. 네 안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하는 것이 내 뜻이지만, 그러나 나는 너를 떠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할 필요가 없다.

 네가 더는 나를 떠나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을 때 내 마음도 정해졌으니 말이다. 그때 우리가 서로의 생명을 몰래 가졌으니, 나는 너의 생명을, 너는 나의 생명을 슬쩍 취한 것이다. 

 

8  하지만 거기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 네가 그 전에는 내 피앗의 빛이 가리지 않은 나를 보곤 했고, 그것은 흡사 나의 내부가 내 피앗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피앗이 이제는 네 안에서 생명을 취하려고 나의 외부로도 넘쳐흘렀고, 그렇게 양쪽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면서 그 빛으로 내 인성을 둘러쌌다. 이 때문에 네가 내 피앗의 빛의 반사를 통하여 내 생명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내가 너를 떠날까 두려워하느냐?      

 

9  이제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내 인성은 사람들이 거부한 모든 행위들을 다시 하였다. 그것은 내 뜻이 그 자신을 내주면서 그들에게 하기를 원한 행위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모두를 다시 한 것은, 이 행위들을 나 자신 안에 모아들이고 쌓아 내 뜻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 적절한 때가 오면 그것들을 내놓아 사람들 안에 쌓이게 함으로써 그것이 내 나라의 기초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10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 뜻의 나라가 사람들 가운데에 설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요 하느님인 나만이 사람을 대신하여 보상할 수 있고, 하느님 뜻의 모든 활동을 나 자신 안에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원래 사람들이 나를 통하여 받아들이고 행하며 전하기로 되어 있었던 활동들이었지만 말이다.

 

11  사실, 에덴동산에서는 두 뜻이, 곧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서로 못마땅해 하며 성난 얼굴로 노려보는 듯한 형국이었다. 인간의 뜻이 하느님의 뜻에 맞서고 있어서, 다른 모든 죄는 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12  나는 그러므로 우선하느님의 피앗에 맞서는 그 모든 행위를 다시 하면서 이 피앗이 내 안에 그의 나라를 세우게 하였다. 노기를 띠고 서로 노려보는 이 두 뜻을 화해시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구원 사업을 이룰 수 있었겠느냐?

 

13  따라서 내가 지상에 와서 행한 모든 것 중 첫째가는 행위는 그 두 뜻 사이의 일치와 질서를 재확립하는 일이었고, 그리하여 내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다. 구원 사업은 그것의 결과였다.

 인간의 뜻에 의해 생겨난 모든 죄악의 결과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는데, 내가 가장 효과적인 약을 주었으니, 그런 다음에 위대한 선인 내 뜻의 나라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였다. 

 

14  그러므로 내 뜻의 빛의 반사는 바로 내 인성 안에 쌓아 둔 저 행위들을 너에게 가져오는 현상이다. 네 안의 모든 것이 하느님 뜻(의 행위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즉 주의를 기울여 이를 따르고, 두려워하지 마라.”

 

15  그 뒤 나는 창조된 만물 사이를 잇달아 돌아다녔다. 각 조물이 내포한 신적인 속성들에 대한 모든 공경을 내 창조주께 드리기 위해서였다.

 만물이 그것을 내포하는 이유, 그들이거룩하신 피앗에서 나왔고, 이 피앗이 그들의 생명을 유지할뿐더러 그들 각자의 첫 행위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16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노라니 마음속에, ‘조물들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저는 당신께 태양 빛의 공경을 드립니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의 공경을 드립니다.......' 등등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가? 과연 옳게 말씀드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17  그러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내 뜻을 소유하고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고, 과연 옳게 말하는 것이다. ‘태양은 내 것이다. 하늘도 바다도 - 모든 것이 내 것이다. 내 것이기에 나는 그 모든 것을 거룩하신 임금님 주위로 가져간다. 각 조물 속에 담겨 있는 영광을 그분께 드리기 위함이다.’ 

        

18  사실, 모든 조물이 내전능한 피앗의 작품이 아니냐? 만물을 움직이고 정돈하며 일치시키는 이 피앗의 고동치는 생명이, 그 생명의 온기가, 그 끊임없는 활동이, 오직 하나의 행위 안에 흘러들 듯이 모든 조물 안에 흘러들지 않느냐?

 

19  그러니 내 거룩한 뜻을 생명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늘과 태양과 바다와 또 모든 것이 그의 외부에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만물이 내 피앗에 속해 있듯이, 그에게 속해 있으니 말이다. 그는 내 피앗에서 태어났고 또한 내 피앗을 소유하기도 했으니, 실상 이로 인해 내 피앗에서 태어난 모든 것, 곧 모든 조물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  따라서 그는 자기 창조주에게 옳고도 참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저는 당신께 영원한 빛의 상징인 태양의 빛과 그 모든 효과가 바치는 모든 공경을 바칩니다. 가없는 하늘의 무한한 영광을 바칩니다....... ’ 그리고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로 바칠 수 있다.  

 

21  이와 같이 내 뜻을 소유한다는 것은 영혼이 내적으로 하느님의 생명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능력무한성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22  우리 (성삼위)는 그 안에서 우리를 양쪽에 공존하게 하면서 우리의 모든 속성들을 준비시키는 우리의 힘을 느끼고, 그는 우리의 속성들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우리에게 바친다.

 바로 양쪽에 공존하는 법을 알고 또 그럴 능력이 있는 거룩한 피앗에 합당한 신적인 공경을 바치는 것인데, 이 거룩한 피앗이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고 했던 창조의 첫 행위 속으로 사람을 다시 부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