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책 22권
22
1927년 8월 28일
하느님의 뜻이 각 피조물 안에서 겪으시는 고통.
예수님의 잉태. 영혼의 사랑.
‘피앗’만이 사람을 신적 경지까지 드높일 수 있다.
1 여느 때와 같이 지고하신 의지의 행위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나오셨는데, 몹시 시달리고 지치신 모습이었다.
한숨마저 쉬시며 비통해하시기에, “무슨 일이십니까? 저의 사랑이시여, 왜 그러십니까? 어찌하여 괴로움에 시달리시며 그처럼 슬퍼하십니까?” 하고 내가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2 “딸아, 내 뜻이 얼마나 심한 고통을 당하는지를 안다면, 너도 나와 함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내 뜻은 모든 조물 안에서 움직이며 끊임없이 활동한다. 모든 것을 싸안고, 모든 조물 안에서 각 사람에게 내 뜻 자신의 끊임없는 행위를 주려고 손을 내뻗는다.
3 그러나 내 뜻의 행위를 주려면 내 뜻 자신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 안에는 그것이 없는 대신 진창투성이가 된 듯한 그들의 뜻만이 있다. 내 뜻이 자신의 행위를 거기에 넣고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신성한 뜻이 자신의 고귀하고 거룩하며 순수한 행위들을 그 진창투성이 안에 넣어야 하는 비통으로 말미암아 심히 괴로워하는 것이다.
4 내 뜻은 또한 사람에게 맡긴 내 뜻 자신의 행위 안에서 내 뜻을 따라다니는 수행원을 보지 못해 무척 괴로워한다. 나는 그러므로 내 뜻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게 하는 각 행위마다에서뿐만 아니라, 내 뜻 자신의 행위 하나하나에서도 내 뜻의 고통을 느낀다.
5 실상 사람이 말하고 활동하며 걸어 다니는 것은, 내 거룩한 뜻이 그 말과 활동과 걸음의 원초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내 의지가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 양 쳐다보지도 않고 옆으로 제쳐 둔다. 나의 의지는 인간 행위의 극히 중대하고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는 것인데도 말이다.
오! 그러니 내 뜻은 이를 알아보지도 사랑하지도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을 보면서 그들의 각 행위마다에서 얼마나 큰 슬픔을 느끼는지 모른다!
6 내 뜻은 창조된 만물 안에서 모든 활동을 한다. 태양 안에서는 만물에게 빛을 주기 위하여 끊임없이 빛을 발하는 활동을 하고, 만물 안에서는 그 자신의 의지를 찾는다. 이 빛을 따라다니는 수행 행렬과 그 영광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것을 볼 수 없어 몹시 가슴 아파한다. 그들 안에서 내 뜻의 빛과 어울리는 것을 보기는 고사하고 내 뜻의 빛과 열을 모독하는 어둠과 차가움을 보기 때문이다. 얼마나 큰 고통인지!
7 나의 의지는 또 대기 중에서 계속 활동한다. 내 의지가 스스로 안에서 숨 쉬며 생명 유지에 불가결한 활동을 대기 중에서 함으로써 피조물이 숨 쉴 때 생명을 받게 하는 것이다.
내 의지는 그렇게 생명을 주지만, 그들 안에서 거룩한 의지 자신의 숨을 보지는 못한다. 거룩한 의지는 피조물과 함께 숨 쉬면서 그 안에 거룩한 생명을 형성하건만 말이다. 생명을 주면서도 그들 안에 생명을 형성할 수 없으니, 얼마나 큰 고통인지!
8 또한 내 뜻은 양식을 만든다. 여러 원소들, 곧 땅과 바람과 태양과 공기와 물과 씨앗이 함께 작용하여 이 양식을 형성하게 한 뒤 피조물에게 준다. 그들 안에서 내 뜻 자신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헛일이다. 내 뜻은 보이지 않는다. 내 뜻의 고통은 그래서 더욱 커진다.
9 내 뜻이 피조물 안에서 무엇을 하지 않겠느냐? 그것은 모든 것 속에서 그 생명의 원초적 행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바람 속에서, 물속에서, 땅속에서, 꽃 핀 들판 속에서, 바다의 파도들 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하늘 속에서, 곧 모든 것 속에서 달리고 또 달린다. 사람들 안에서 그 자신의 뜻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10 하지만 내 뜻은 그 자신을 찾아내지 못해 만물 안에서 고통을 겪고, 그 자신의 행위들이 그 자신의 의지에 봉사하지 못한 채 강탈당했다고 느낀다.
오! 사람이 내 ‘거룩한 피앗’의 글자를 읽을 줄 안다면, 그가 보고 듣고 만지고 취하는 모든 것 속에서 나의 이 의지의 끊임없는 고통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11 나의 의지는 그들 안에서 오로지 내 뜻을 찾아내기 위하여 달리고 또 항상 달리리니, 그것이 내가 사람과 만물을 창조한 단 하나의 목적인 까닭이다. 그리고 사람을 보호하며 남겨 두는 것 역시 그 목적에 도달하여 이토록 오랜 고통을 정지시키기 위함이다.
12 이것이, 내 거룩한 뜻을 알리고 이 뜻이 다스리며 지배하게 하려고 내가 온 관심을 기울여 온 이유이다.
그러니 내 뜻의 자녀들은 모든 것을 받을 것이다. 그들만이 창조된 만물 안에서 고통의 글자들을 지우고, 기쁨과 영광과 행복의 글자들을 써 넣을 수 있고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이 자기들 안에서 그 거룩한 뜻을 찾아내게 하면서 내 뜻이 만물 안에서 하는 활동들에 합당한 공경과 영광을 바칠 것이다.”
13 나는 그 후 지고하신 의지의 행위들을 계속 따라다니다가, 존귀하신 여왕님이 지극히 정결하신 모태에 임신하신 시점에 이르자,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숭고하기 짝이 없는 내 천상 어머니는 당신 안에 '말씀'의 잉태를 이루기 위하여 당신의 피와 사랑 및 당신 안에서 당신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뜻을 제공하셨다.
14 나도 어머니께서 잉태하실 때 나의 사랑과 고통 및 나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뜻을 제공하여, 예수님께서 잉태되실 때 그 속에 나 자신의 자리도 마련하고 싶다.
그토록 위대한 행위 안에서 '영원한 피앗'을 흠숭하기 위함이요, 또 내가 나 자신의 것들을 제공했으니, 예수님께서 내게도 잉태되시게 하기 위함이다.’
15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건 내가 곧잘 하는 이상한 말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께 드리기를 원하는 것은 사랑과 그분 자신의 거룩하신 뜻이다. 그분 잉태의 영예를 위하여 그분의 뜻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16 “딸아, 네 영혼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것을 할 마음이 나게 하는 것은 바로 나다. 하지만 나는 흔히 그 이유는 말해 주지 않는다.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영원한 말씀’인 나의 잉태 속에서 첫 행위를 한 것은 내 거룩한 뜻이다.
그러니 너의 사랑과 행위는 의로운 행위이고, 네 예수의 인성에 그 거룩한 뜻의 잉태가 이루어지게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다. 내 인성 안에 그 뜻이 세운 첫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17 내 거룩한 뜻이 내 인성 안에 잉태되면서 너의 사랑을 요구한 것은 의로운 일이었으니, 그것은 내 뜻이 네 안에서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너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의 ‘지고한 피앗’은 과거나 미래가 없고 모든 것이 현재인 까닭에, 나는 존귀하신 여왕 안에 잉태되는 한편, 너의 사랑과 고통 안에, 장차 너를 다스릴 바로 그 의지 안에 잉태되기도 하였다.
18 그러므로 너는 이제 너를 다스릴 그 의지에게 그의 권리를, 즉, 그 의지가 네 안에 잉태되는 데에 필요한 것을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네가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의 나라를 세워 절대적인 왕권과 지배권을 장악하게 할 권리를 받은 셈이 된다.
19 그 결과 네가 보기에 아무것도 아니거나 이상한 무엇이 하느님 뜻의 첫 행위 안으로 들어간다. 네 예수는 그런 너의 손을 잡고 자기가 모태에 잉태되었던 바로 그 행위 속으로 데려가서 거기에 너의 사랑과 고통을 넣게 한다.
인류 가족 안에 하느님 뜻의 나라가 시작되는 그 위대한 행위 속에 너의 행위가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지상에 있는 동안 행한 모든 행위들 속에 너의 사랑을 불러 이 행위들과 한데 묶고 단 하나도 너에게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내 뜻이 요구하는 의로움의 권리들이요, 내 뜻이 너를 다스릴 권리를 너에게 주기 위한 연결 고리들이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네 예수를 따라다녀라.”
21 나중에 나는 하느님의 뜻이 피조물 안에서 느끼시는 고통에 대한 생각으로 되돌아갔는데, 이 뜻이 느끼시는 고통의 수만큼 많은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 좋을 성싶었다. 그토록 오랜 기간에 걸친 고통을 누그러뜨리려면 말이다.
‘피앗’은 정녕 피조물 가운데에서 얼마나 괴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자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2 “딸아, 내 거룩한 의지는 내 뜻이 없는 피조물 안에는 그 자신의 행위들을 넣지 못한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한다. 피조물은 이 지고한 뜻의 행위를 단 하나도 수용할 능력이 없고, 그럴 수 있는 품위도 거룩함도 공간도 없다. 그러니 이것이 내 뜻이 겪는 또 다른 고통이다.
23 그러나 내 뜻은 본성상 선하기에 좋은 일을 해 준다. 태양으로 말하자면, 땅에 좋은 결과를 나타내 보이고 태양 자신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러기에 땅은 눈부시게 빛나지만, 태양이 지고 나면 어두운 물체로 남는다. 땅은 태양의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보존되어 초목과 꽃과 열매들을 내는 것이다.
24 물도 마찬가지다. 땅에 좋은 결과를 나타내지만, 땅은 생명의 샘이 없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으면 메말라서 풀잎 하나 자라게 할 힘이 없어진다.
땅은 이처럼 태양의 생명도 물의 생명도 없기 때문에 날마다 좋은 일을 해 주는 태양이 필요하고, 보존과 생산을 위하여 자주 대어 주는 물이 필요하다.
25 내 거룩한 뜻의 행위들에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내 뜻은 그 자신을 내어 주어 사람이 태양이 되기를 원한다. 내 뜻의 생명을 이룰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내 뜻은 사람 안에 내 뜻이 보이지 않아 고통을 느낀다.
그럼에도 지나칠 정도의 선함으로 말미암아 내 뜻 자신의 효과를 건네주는데, 이 효과가 내 뜻에 고통을 끼치는 대상을, (곧 사람을) 보존·보호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다.
26 아무도 - 너의 예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너에게 ‘거룩한 피앗’의 한 행위가 내포할 수 있는 가치와 능력과 거룩함과 빛과 무한성에 대하여 말해 줄 수 없다. 그리고 오로지 거룩한 의지를 소유한 사람만이 그 의지의 행위들을 자신 안에 담고 있을 수 있다.
27 그러므로 ‘피앗’만이 사람을 하느님의 거룩함과 숭고함에 이르기까지 드높일 수 있다. 그것이 사람에게 그의 창조주의 모상을 주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은 그 능력과 독창성과 가르침과 항구한 끈기 때문에 제아무리 좋고 칭송받을 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땅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빛의 샘도 물의 샘도 가지고 있지 않아, 불쌍한 거지들같이 늘 내 지고한 뜻의 효과를 받아야 하는 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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