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영혼을위하여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 -미사

Skyblue fiat 2017. 2. 14. 23:45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 <연옥실화>

 

 

미사  

 

  하느님께 대한 최상의 기도이며 또 연옥의 문을 여는 황금 열쇠는 성체의 희생 곧 미사 성제이다.
   아아, 성체 !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도 이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는 없다. 만일 이것을 잘 깨달았더라면 우리 마음은 사랑에 녹아 버렸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만찬 때에 빵과 포도주를 당신 몸과 피로 변화시키시고, 또 세상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으로 주기 위하여 그 권리를 사제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한 번 십자가 위에서 행하여진 희생은, 봉헌하는 방식은 다르더라도, 그 가치는 조금도 변함이 없어 밤낮 없이 지구 위 어디선가 봉헌되고 있다. 50만이 넘는 사제들은 매일 한 번은 미사 성제를 드린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은 성부 대전에 우리 죄의 사함과 연옥 영혼의 구원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말한다.
   “어떤 연옥 영혼을 위하여 미사가 봉헌되면 그 동안은 그 영혼의 괴로움은 아주 중지되든가 또는 적어도 얼마만큼 가벼워지는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말한다.
   “연옥 영혼을 위하여 미사가 봉헌되면 그 동안 그들은 조금도 고통을 받지 않는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한다.
   “연옥에서 영혼을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론 미사이다.”
   연옥에 있던 성 토마스의 누이는 오라버니에게 나타나 몇 대의 미사를 청했다. 그 미사가 봉헌되자 천국에 들어갔다는 알림이 있었다.
   성 요한 다빌라의 임종 때에 곁에 있던 이가 물었다.
   “당신이 돌아가신 뒤에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미사, 미사, 미사 성제를 청합니다.”
   매일 전 세계에서 봉헌되고 있는 하나하나의 미사 뒤에는 연옥에서 구출되어 천국에 올라가는 영혼이 많이 있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어느 날 미사 중에 제대의 성작 속에서 천사들이 금잔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을 퍼내어 연옥 영혼 위에 부어 주자 그들이 차츰차츰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광경을 보았다.

 

 

   포로의 쇠사슬  

한 군인이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손발을 무거운 쇠사슬로 묶인 채 감옥에 갇혔다. 오랜 세월 동안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내는 죽은 줄 알고 그의 영혼을 위하여 미사를 청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하게도 포로의 손발에서 저절로 쇠사슬이 풀렸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그 이상한 사건을 이야기했다. 날짜를 따져 보니 그것은 마침 그 사람을 위해 미사가 봉헌된 날이었다.

 

 

   방탕한 부인  

로마에서 한 방탕한 부인이 청년을 타락시키고 쾌락에 빠져 있었다. 자기 구령 같은 건 조금도 개의치 않았으나 다만 때때로 연옥 영혼을 위하여 미사를 청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부인은 급작스레 그 천한 생활이 싫어졌다. 그리고 이 때까지 범한 죄가 무서워져 통회하고 고백하여 올바른 생활을 하였다. 연옥 영혼이 은인을 위하여 기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후에 이 여인은 감탄할 만한 최후를 마쳤고 그의 구령에 대해서 의심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생미사  

일반 신학자들의 설에 의하면, 선종하기 위해서는 미사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성녀 메히틸드에게 말씀하셨다.
   “살아 있을 때에 열심히 미사 참례를 한 사람은 임종 때에 마귀의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성인들과 천사들의 보호를 받는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묵시를 받아 1921년 5월 31일 ‘선종회’의 회장에게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미사의 은덕은 사후보다도 생존 중에 더 많다. 그것은 사후보다도 더 직접적이요 더 확실하다. 미사는 우리에게 신앙을 굳게 하는 은혜를 주는데, 그것은 또 현세에서 하느님의 의노를 푸는 가장 적당한 방법이다. 그것은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연옥 보속의 많은 부분을 감한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죽은 이를 위해 미사 청하기를 게을리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은 뒤에보다 살아 생전에 미사를 드리는 편이 훨씬 더 은혜가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만약에 우리가 지옥에 떨어졌다면 그 뒤에 미사를 드린들 아무 소용이 없다. 구령에 대해서는 남에게 부탁하기 보다 먼저 제 자신이 걱정해야 한다. 선종할 수 있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미사를 청해야 한다.

 

 

   현명한 상인  

이탈리아 제노바의 어떤 상인은 자기가 죽은 뒤에 기도를 청할 일에 대해서 조금도 준비하지 않았었다. 돈이 많은 열심한 신자로서 남을 위하여 그토록 자비로웠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어찌 된 영문인가 하고 사람들은 이상히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장례 후에 이 상인의 어느 장부에 다음과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내 구령을 위하여 미사 예물 10만 리라, 가난한 사람의 딸들 지참금 50만 리라, 신학생을 위하여 25만 리라, 성당에 기부 3리라…”
   그리고 맨끝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업을 하고 싶은 자가 죽은 후에 남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착오이다. 내가 살아 있을 동안에 행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낙이요 또 확실한 일이다.”
   성 안셀모는 말했다.
   “생존 시의 한 대의 생미사 봉헌이나 미사 참례는 사후의 천 대의 미사보다 유익하다.”
   이탈리아 속담에 “눈앞에 켜진 한 개의 촛불은 등뒤에 켜진 횃불보다 더 밝다.” 라는 말이 있다.

 

 

 

   재산 분배 1

 

870년 보불(普佛) 전쟁 때에 어떤 이의 두 아들이 전사하였다. 20년 동안이나 이 모친은 아들을 위하여 미사를 바쳤다. 어떤 사람이 이상히 여겨 물어 보았더니 모친은 대답했다.
   “내가 죽으면 다른 자식은 재산을 분배받습니다. 죽은 아들에겐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미사를 드려 주는 것입니다.”

 

 

 

   복자 베르노의 모친  

 

클루니 수도원의 창립자 복자 베르노의 모친은 대단히 열심한 신자였다. 남편이 죽었을 때에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많은 미사를 청하고 많은 돈을 가난한 이에게 주었으나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신분과 재산을 완전히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결심하였다. 친척과 하인들은 모두가 이를 말렸다. 그랬더니 복자의 모친은 말했다.
   “너희에게 무기, 말, 돈, 토지 등을 준 내 남편은 그 답례로서 너희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가…? 그를 위해 미사도 기도도 드려 주지 않았다면 하물며 나를 위해서는 무엇을 하여 주겠는가…?”
   그녀는 끝내 결심을 이루어 수녀가 되고 마침내 수녀원장이 되어서 선업과 공덕이 차서 이 세상을 떠났다. 아들 복자는 동회의 모든 수도원장에게 모친의 영혼을 위하여 서른 번의 미사를 드려 달라고 부탁하고, 열두 사람의 가난한 이를 돌보고 각 수도원에 미사 두 대씩 봉헌하도록 명했던 것이다.

 

 

 

   게을리 한 미사 일곱 대  

 

1859년 9월 18일에서 11월 19일 사이에 매일 오전 11시쯤부터 정오까지, 또는 밤 12시부터 2시까지 베네딕토회의 한 수사가 빈첸시오회의 한 수련자에게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드려야 할 미사 일곱 대를 게을리 했기 때문에 77년 전부터 연옥에서 고생하고 있다. 11년마다 일곱 차례 일곱 명의 수도자에게 나타났지만 헛일이었다. 이번에도 들어 주지 않는다면 11년 후에 다시 한 번 나타나야 한다. 부디 내 뜻대로 미사 일곱 대를 바쳐 다오. 그리고 수련자는 7일간 완전한 침묵을 지키며 묵상하고 33일간 맨발에 두팔을 벌려 십자 모양으로 하고 통회의 시편 50 ‘Miserere mei, Deus(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를 하루에 세 번 바쳐 다오.”
   죽은 이의 청은 11월 21일부터 12월 25일까지 전부 실행되었다. 그랬더니 마지막 봉헌된 미사 후에 사라졌다.

 

 

 

   성 비안네의 기도  

 

성 비안네는 몹시 사랑하던 그의 벗이 연옥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를 위해 미사를 드리고 거양 성체 때에 성체를 받들면서 말했다.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성부여, 바꾸어 주십시오. 당신은 제 친구의 영혼을 연옥에 가지고 계시오나 저는 지금 제 손에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한히 자비로우신 성부여, 제 친구의 영혼을 구해 주소서. 그 대신 저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의 공덕을 당신께 바치나이다.”
   이 기도는 들어 허락되었다. 사제는 영성체 후 기도 중에 벗의 영혼이 영광에 충만하여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 것이다.

 

 

 

   빅토르 위고를 위한 미사 석 대  

 

1904년 어느 날, 대서양의 안티르 섬에서 도미니코회의 베르트란 유톤지히 신부는 한 흑인 노파의 방문을 받았다. 그녀는 유명한 시인 빅토르 위고(1802-1885)를 위하여 미사 석 대를 청하며 말했다.
   “옛날 나는 파리에서 시인의 딸의 까다로운 병을 간호하여 많은 사례금을 받았습니다. 고향에 돌아오기 위해 하직 인사를 하러 가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 고향에 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거든 나를 위하여 미사 석 대를 바쳐 주오.’ 나는 상당히 늦게서야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약속을 이행하는 터입니다.”
   이것을 보면 위고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스왕 신부가 이 시인의 집을 구경하러 갔더니 옛날 이 집을 보살피던 안내하는 부인이 말했다.
   “주인은 스스로 자유 사상가라 하였지만 우리에게는 퍽 좋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층방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것을 우리는 가끔 보았습니다.”

 

 

 

   미사, 미사 !  

 

 어느 날 도미니코회의 성 수소에게 죽은 친구 하나가 나타나 성인이 자기를 위해 미사를 드려 주지 않는 것을 몹시 슬퍼했다. 성인은 용서를 청하면서 그 대신 갖가지 선업을 한 것을 말했다. 그러자 죽은 이는
   “미사, 미사 ! 미사가 없으면 나는 흡족한 위로를 받을 수 없소. 약속대로 미사를 드려 주시소.” 라고 부르짖고 사라졌다.

 

 

 

   죽은 이의 금고  

 

어머니는 열두 살이 되는 누이와 그 동생을 남기고 이승을 떠났다. 둘이서 의논하여 죽은 이의 금고를 만들고 선업을 모아 두기로 하고 다음 규칙을 정했다.
   1) 십자가 앞의 ‘죽은 이의 금고’에 매일 저녁 두 사람이 같이 기도한 후에 조금씩이라도 영적 기부를 넣는다.
   2) 첫영성체 날에는 여기 와서 어머니 무덤 위에 놓은 마음의 꽃다발을 바친다.
   3) 만일 어머니가 아직 천국 영복을 얻지 못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얻을 수 있도록 절약한 용돈을 반은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반은 어머니를 위해 미사를 청하기로 한다.
   6개월 후 누나는 훌륭히 첫영성체를 했고, 동생은 하느님의 뜻으로 천국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거룩한 효성  

 

베트남의 어느 가난한 집 딸은 영세한 지 얼마되지 않아 어머니가 죽었다. 14세의 이 소녀는 노동으로 하루 백 원을 벌어서 두 동생을 길러야만 했다. 어머니가 죽은 지 한 주일 후 이 소녀는 어머니를 위해 미사를 드려 주십사고 돈 4백 원을 가직 왔다. 사제는 승낙하고 어떻게 해서 이 돈이 생겼을까 하고 조사해 보았더니 세 남매가 어머니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일 주일 동안 대제를 지킨 것을 알았다.
   미사 문제를 끝맺으면서 연옥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교회가 예로부터 사용하고 있는 특별한 공덕이 있는 방법 한 가지를 들어 보자.

 

 

 

   성 그레고리오의 서른 대의 미사  

 

교황 성 그레고리오는 ‘문답’ 이라는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의학을 배운 수도자 유스토는 임종 때에 ‘나는 금화 세 개를 숨기고 있었다.’라고 고백하였다. 정녕 병실에는 세 닢의 금화가 숨겨져 있었다. 청빈 허원을 한 수도자의 이 죄를 보고 나는 몹시 분개하였다. 다른 이에게 교훈이 되도록 죄인 옆에는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였다. 외딴곳에 무덤을 파고 시체를 묻을 때에는 금화 세 닢을 그 위에 던지며 ‘너와 함께 이 금화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수도자 일동이 말하도록 명했다.


    본인은 훌륭한 통회를 하고 세상을 떠났다. 또 시체는 명령대로 매장되었다. 이 수도자가 받은 벌 때문에 다른 수도자들은 대단히 감동하여 허가된 사소한 것까지 원장에게 가지고 왔다. 유스토가 죽은 지 30일 후, 그의 고통을 불쌍히 여겨 30일 동안 계속하여 그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도록 했다. 어느 날 밤 유스토가 한 수도자에게 나타났다. 수도자는 그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 때까지 고통을 받고 있었으나 오늘 영복을 받았다.’라고 대답했다. 날수를 헤아려 보니 그것은 마침 30일째의 미사가 봉헌된 날이었다.”
   그레고리오의 서른 대의 미사는 이 신비롭고도 두려운, 그러나 기쁜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전기에 의하면 성 그레고리오(540-604)는 어느 날, 자기가 죽은 후에는 연옥 영혼을 도와 줄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슬픔에 잠겨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셨다.
   “벗아, 나는 네게 특권을 주겠다. 즉 연옥 영혼을 위하여 너의 기념으로 30일을 계속하여 서른 대의 미사를 봉헌한다면 그 영혼이 아무리 무거운 빚을 지고 있더라도 즉시 구해 주겠다.”


   그 때부터 30일간 계속해서 한 영혼을 위하여 서른 번의 미사를 봉헌하는 관습이 교회에 전파되었다. 또 이 방법은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기 때문에 연옥에서 고생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이 미사 봉헌을 위해 살아 있을 때에 준비를 한다.
   이 거룩한 관습은 먼저 베네딕토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충실히 지켜지고 있다. 즉 수도자 한 사람이 죽으면 30일 동안 계속 그 영혼을 위하여 미사가 봉헌된다. 그리고 그 동안 생존자와 마찬가지로 음식이 나온다. 그러나 본인 대신 그 자리에는 큰 나무 십자가를 둔다. 그리고 음식은 가난한 이에게 베푼다.


    이 선업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임은 가끔 입증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신심이 대단히 성하다. 유럽 전란 후 이 관습은 각국에서 성행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레고리오의 서른 대의 미사는 한 망자를 위하여 30일간 계속해서 서른 번의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사제, 제단, 성당은 달라도 상관없다. 30일간 계속하면 넉넉하다. 그러나 부활 전 성 목, 금, 토의 3일을 제외하고는 만일 부탁받은 사제가 잊어버리고 한 번이라도 그 미사를 빠뜨렸으면 다시 새로 시작하는 중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보통 미사 예물의 두 배 또는 적어도 한 배 반을 내는 것이 관습이다.

 

 

 

   영성체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최상의 방법은 미사이지만 버금가는 것은 영성체이다. 성 보나벤투라는 말한다.
   “미사를 제외하면 영성체는 최상의 구속 사업이다.”
   성체를 영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 전능하신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없는 공덕을 바친다면 적어도 몇 사람의 연옥 영혼을 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복자 루이 드 블루아의 벗  

 

복자가 기록한 바에 의하면 그의 벗이 한 연옥 영혼의 방문을 받았다. 이 영혼은 충분한 준비 없이 소홀히 성체를 영했기 때문에 연옥에서 불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 영혼이 벗에게 말했다.
   “친구의 정의로 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성체를 영해 다오. 그렇게 하면 나의 냉담은 다 기워 갚아진다.”
   그의 원대로 해주었더니 망자는 영광에 빛나며 감사하고 사라졌다.

 

 

 

   천사가 가지고 온 성체  

 

생존 시 성체에 대하여 두터운 신앙을 가지고 있던 어떤 사람이 사후에 연옥에 갔다. 그리고 십자가의 성 요한이 성체를 영함으로써 그 영혼은 구원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천사가 그 때문에 성체를 모셔 왔다.
   어떤 수녀가 성인 방에 들어가니까 성인이 막으며 말한다.
   “돌아가십시오. 이 백포 위의 거룩한 물건에 손을 대지 마시오. 그건 천사가 가지고 온 성체입니다.”
   수녀는 놀라서 말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성인은 말했다.
   “어떤 죄인이 겉으로만 회개하고 성체를 영했습니다. 성체를 입에 문 채 그 영혼은 지금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더럽혀진 입에 성체를 둘 수가 없어 천사가 그것을 여기에 모셔 왔습니다. 이것은 생존 시에 성체께 대하여 두터운 신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 아직도 연옥에 있는 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내일 아침 영하기로 명령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성체를 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영하도록 해야 한다.

 

 

 

   미사 참례  

 

부모가 못에 빠졌다.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정도는 아니고 조금 손을 내밀면 구할 수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 우리는 못 본 체할 수 있겠는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부모, 형제, 벗들이 불바다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그것은 조그마한 수고, 예를 든다면 조금 일찍 일어나서 미사에 참례하는 일 등으로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적다.
   만일 이 세계에서 백 년마다 한 번 또는 단 한 곳에서만 미사 성제가 거행된다면 어떠할까? 수천만 명이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거기에 가는 수고를 조금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날마다 이 성제가 봉헌됨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하고 주일의 중한 본분마저 까닭 없이 게을리 함은 얼마나 유감스럽고도 참혹한 일인가?

 

 


    매일 미사 참례  

 

슬픔이 있는 사람, 청원이 있는 사람, 자비를 받고 싶은 사람, 감사를 드리고 싶은 사람은 모두 미사 성제에 참례하라. 성녀 데레사는 갖가지 은혜를 받고, “주여, 저 같은 사람이 어찌 이를 맞갖게 감사드릴 수 있겠나이까?” 하고 부르짖었다. 그러자 “미사에 한 번 참례하라.”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미사 참례를 한 날에는 여느 때보다 더 많이 하느님의 은혜가 내린다. 어떤 부인은 말한다.
   “나는 미사 참례를 한 날은 다른 날보다 일이 더 잘 됩니다.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원의만 있으면 매일이라도 미사 참례를 못할 것은 없다. 좀 일찍 일어나서 집안 일을 하고 미사 참례한다면 고요한,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이루 말할 수 없는 귀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부인이 미사 참례하러 가다가 이웃에 사는 두 부인을 만났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행복하시군요. 우리는 아침엔 일이 많아 미사 참례할 겨를이 없다우.”


   부인이 30분 후에 미사에서 돌아왔다. 겨를이 없다던 두 여인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부인을 보고는 부끄러워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자의 본분을 채우는 데는 시간이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많은 이가 하느님께 대한 본분을 채울 겨를은 없어도 이를 거스르는 짓을 할 시간은 많이 있다.
   만일 예수께서 근처에 나타나시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자. 우리는 얼마나 기뻐 날뛰며 주 대전에 달려갈 것인가? 그런데 예수님은 매일 아침 성당 안에 나타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제대 위에서 희생이 되어 우리를 대신하여 성부께 흠숭을 드리고 감사드리며 속죄하고 은혜를 간구하고 계신다. 참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피는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예배하는 데 드는 시간은 백 배로 갚음을 받는다.


    성 이시도로는 가난한 농부로서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고 있는 몸이었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미사 참례를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그 동안 천사를 보내어 밭을 갈게 하셨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적을 행하시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다. 어떻게든 우리에게 갚아 주실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3).
   참으로 원의만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17세 된 어떤 목동은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소젖을 짜고 그 후에 자전거를 타고 30마장 떨어진 성당에 가서 복사를 하고 성체를 영한 후에 집에 돌아와 일을 하였다.

 

 

 

   성체 조배  

 

어느 큰 도시에서 한 사제가 사순절 강론을 하였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대도시에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체 성사에 계시어 끊임없이 우리의 예배와 기원을 기다리고 계시다는 일입니다. 이보다 더 고마운 은혜는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주일 외에 성체 조배를 하는 신자는 아주 적다. 그러나 물건 사러 가는 길에라도 성체 대전에 엎디어 주의 기도 한 번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자기와 연옥 영혼을 위하는 일인지 모른다. 어려운 때에 제일 위로해 주는 분은 성체 성사에 계시는 주님이시다.
   루이 파스퇴르는 연구소에 갈 때에 일부러 둘러서 성 에티엔 뒤 몽 성당에 가서 입구 오른편 소제대 앞에 끓어 잠시 기도하였다. 이 학자가 여러 가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성체 대전에서 기도한 때문이었다.
   전기(電氣)에 관한 여러 가지를 발견한 앙페르도 마찬가지로 성체 조배하기를 일과로 삼고 있었다.

 

 

 

   십자가의 길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성모 마리아와 예루살렘 부녀들과 함께 처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그 때부터 많은 신자들은 이를 기념하여 예루살렘에 가서 그 발자취를 밟고 그 고난을 묵상하여 크나큰 은사를 얻었다.
   17세기에 교황 인노첸시오 11세는 비로소 프란치스코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 14처를 세우도록 허락하였고, 그 후에 점점 전파되어 지금에 와서는 어느 성당이든지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 그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옛날 일부러 예루살렘을 참배하던 사람과 똑같은 은사를 얻을 수 있다. 교황이 권장한 일반 신심 중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는 첫째이다.


    요즈음에는 교황의 윤허로, 신자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의 모상이 붙어 있는 십자가에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제가 강복하면 성당의 14처와 똑같은 은사가 붙게 된다. 성당에 갈 수 없는 병자가 그 십자가를 들고 수난을 묵상하면 십자가의 길 기도의 모든 은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대사와 한대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고난의 묵상은 고행, 헌신, 순명, 겸손, 인내, 회개 등을 낳는다.
   어떤 수도자가 하느님께 “어떻게 하면 당신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겠나이까?” 하고 기도드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라.”는 대답이 들렸다.


    성 보나벤투라는 말한다.
   “선에 나아가고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라.”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흘리는 한 방울의 눈물은 예루살렘 참배나 1년간의 대재보다 더 낫다.”
   성 보나벤투라가 어느 날 토마스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그런 심오한 연구를 하실 수 있었습니까?”
   성 토마스는 십자가를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책이 아닙니다. 저 아래서 묵상했습니다.”
   성 바오로는 말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나는 유식한 말이나 지혜를 가지고 하느님의 그 심오한 진리를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1고린 2, 1-1).

 

 

 

-「연옥 실화」- ‘제9장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의 일부를 옮겼습니다.

 

 

 

http://peace.new21.net/?p=18502

 

 

 

'연옥실화'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들이 나오는데, 주된 내용들은 연옥 영혼(주로 사제, 수도자)들이 사후에 동료 사제나 수도자들에게 나타나서 천국에 들어갈수 있도록 기도와 미사를 부탁한다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보면 연옥영혼들이 떠나기 전 책이나 옷 등에 손자국 등을 남기고 떠났는데 그 자리가 불에 탄 것처럼 검게 남았다는 내용들이 가끔 있습니다.

전 중학생때 이 책을 읽었는데, 며칠동안 무서워서 잠을 못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연옥실화들의 증거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이탈리아에 있어 흥미로워서 올려 봅니다.

 

이탈리아의 '연옥영혼 박물관 (Piccolo Museo Del Purgatorio(Museum of the Holy Souls in Purgatory))'에는 '연옥영혼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라고 하는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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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ry finger prints by the deceased Joseph Schitz when he touched with his right hand the (German) prayer book of his brother George on 21 December 1838 at Sarralbe (Lorraine). The deceased man asked for prayer in expiation of his lack of piety during his life on earth.

1838.12.21 요세프 쉬츠가 그의 형제 조지에게 나타나 그의 지상의 삶에서 경건함의 부족에 대한 보속으로 기도를 부탁한 후 그의 독일어 기도책에 불에 탄 손가락 자국을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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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s left on a small wooden table and on the sleeve and chemise of the Venerable Mother Isabella Fornari, abbess of the Poor Clares of the Monastery of St. Francis in Todi. The four marks were left by the deceased Fr. Panzini, former Abbot Olivetano of Mantua, on the 1st November 1731.

복녀 이사벨라 포르나리 - 토디의 성 글라라 수녀원 원장 - 의 수도복과 나무 탁자에 남겨진 불에 탄 손자국. 1731년 만투아의 올리베따노 수도원 원장이었던 판찌니 신부가 그녀에게 나타나 남기고 간 것으로 전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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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영혼들이 불에 타는 고통을 겪고 있어서 타는 자국처럼 남았다고 하던데... 

천국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하는 생각도 납니다.

결국 이런 일들도 하느님이 허락하셔야 일어나는 거겠지요!

 

(물론 위의 사진들이 연옥영혼들의 흔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아도 아무 상관은 없습니다.....가볍게 보아 주세요

이태리에 여행가시는 분들은 한번쯤 들러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