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4동 성당 제 1 강의
(2013. 4. 평신도 피정 첫째 날 오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모송, 영광송.
다시 한 번, 안녕하세요. 이번 새 교황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저녁 인사로 “굿 이브닝. 안녕하십니까!” 라는 저녁 인사로 당신의 교황직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님도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한다는 말입니다.
이 강의의 첫 번째 부분은 일종의 도입, 입문입니다.
우리의 사도직, 하느님 뜻 영성을 전하는 사도직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겠고, 그리고는 루이사의 삶에 대해서, 루이사의 삶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겠습니다.
내 생각에 여러분들 중의 많은 분들이 벌써 이런 이야기들은 아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모르는 분들, 지난번에 안 들으신 분들은 이것을 아시는 것이 좋을 것이므로 아무래도 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아시는 분들은 좀 참고 계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하느님 뜻의 집을 창설하다.
1) 루이사의 글을 통해 하느님 뜻을 전파하는 사도직을 시작하다.
저는 카를로스 마씨에 신부입니다. 그리고 마리아 넬라 수녀님에 대해서도 좀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 수녀님은 저와 함께 ‘하느님 뜻의 집’을 창설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수녀님은 ‘하느님 뜻의 지속적인 흠숭자회’ 라는 수도회를 시작하신 분이며 창설자입니다. 마리아 넬라 수녀님도 이곳에 오라고 초대를 받으셨는데 그런데 새 수도원을 받았습니다. 이 수도회의 성소자들도 더 많아지고 또 그 성소자들이 와서 수도생활을 할 수 있는 새 집을 받아서 그것을 준비해야 되니까 못 오신 것입니다. 마리아 넬라 수녀님은 여기에서 이런 피정을 하고 있는 것을 아시니까 여러분들에게 자신의 인사를 보내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지금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여기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마리아 넬라 수녀님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또 ‘하느님 뜻의 지속적인 흠숭자회’ 수도 성소가 많아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로부터 ‘하느님 뜻의 지속적인 흠숭자 수도회’를 위해서 새로운 성소가 많이 일어날 것을 희망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 뜻의 지속적인 흠숭자’가 되도록 초대 받으셨습니다. 또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독신자만 수도회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수도회 수도성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멕시코시티에서 1953년, 거의 60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엔지니어가 되는 공부를 했으며 엔지니어가 되어서 엔지니어로 일을 한참 하다가 사제성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제가 되어야 되겠다는 성소를 분명하게 받기 전에, 회개의 부르심을 먼저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회개해야 된다는 부르심을 받을 때 루이사의 글도 제 손에 동시에 받았습니다. 루이사의 책을 받고는 제가 사는 멕시코에서 엔지니어로서의 직업도, 직장도 모든 걸 다 버리고 이태리로 갔습니다.
이태리어를 하나도 모르면서 이태리로 가서 이태리어 사전을 들고 루이사의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이태리 말을 배웠습니다. 이태리에서 2년 반을 그렇게 살고는 멕시코로 돌아왔습니다. 2년 반 동안 이태리에서 사는 동안에는 관상 생활을 한 셈이었습니다. 멕시코로 돌아온 다음에 저는 ‘아! 내가 사제가 되어야 되겠다.’ 라는 부르심을 확실히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1년 반 후에는 다시 엔지니어로서의 모든 걸 버리고 신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스페인의 톨리도라는 도시에 있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철학하고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1989년 8월 4일 저는 과달루페 성모님 대성전에서 서품을 받았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정말 훌륭한 장소인 과달루페 성모님 대성전은 전 세계적으로 첫째 둘째가는 그런 큰 아름다운 성지입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객들이 이 성전으로 옵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은 남미, 북미 전체 대륙의 수호자이고 또 필리핀의 수호자이십니다.
1993년에 영성 신학을 공부하러 다시 이태리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마리아 넬라 수녀님을 만났습니다. 마리아 넬라 수녀님은 쿠바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쿠바의 카스트로의 공산당 때문에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래서 마이애미에서 미국 사람으로 성장하고 미국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1993년에 마리아 넬라가 이태리로 왔습니다. 그때에 제가 또 이태리에 있었습니다. 마리아 넬라가 자기가 얼마나 루이사를 사랑하는지, 또 얼마나 루이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지를 저에게 설명을 했고 또 플로리다에는 루이사에 대한 가르침이 전달이 되긴 되는데 좀 혼란스럽고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이런 것들을 잘 정리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1993년부터 1995년 2년 동안 이태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태리에서는 방학이 길어, 제가 공부하는 동안 방학 때마다 마이애미로 오라고 마리아 넬라가 저를 초대했습니다. 그때부터 마리아 넬라와 저는 하느님 뜻을 전파하는 사도직을 같이 시작하였습니다.
2) 루이사 피카레타의 시복 과정이 추진되다.
1994년에 바티칸에서 루이사 피카레타의 시복시성을 위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니힐 옵스타트)을 줬습니다. 왜냐하면 교황청의 시복 조사 허락 없이는 아무도 시복을 위한 조사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루이사가 있는 트라니 교구가 50년 동안이나 시복조사를 하는 이 허락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또 배우는 게 있습니다. 로마에서는 우리가 인내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에서는 모든 일이 아주 천천히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한 번 일이 결정되면,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에서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지옥의 힘이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그런 말을 하신 대로,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있을 교회이기 때문에 뭐든지 아주 천천히 하고 있으며 교회는 이런 일을 할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로마로부터 시복조사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으므로, 루이사 피카레타가 살았던 트라니 대교구가 시복조사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1994년 11월 20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트라니 교구에서 루이사의 시복 조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 날이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었습니다. 시복 조사 과정을 시작한지 일주년 되는 날에, 일주년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트라니 대교구의 카싸티 대주교님께서 마리아 넬라와 저에게 미국에서 하느님 뜻 영성을 위한 국제 대회를 하도록 그것을 조직하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시복 조사 과정에 필요한 재판소의 모든 이들이 다 중앙 아메리카에 있는 코스타리카의 산호세로 왔습니다. 17개국에서 500여명의 많은 수도자와 평신도, 사제들이 코스타리카의 산호세에 와서 첫 번째 하느님 뜻 영성 국제 대회에 참석 했습니다.
한 달 후에 카싸티 주교님이 로마 교황청의 문서고에 있는 루이사의 글들을 복사하기 위해서 바티칸으로 사람을 보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왜냐하면 루이사가 직접 쓴 친필의 모든 책들이 다 바티칸의 신앙 성성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셨던 라칭거 추기경님이 그곳 신앙성성의 책임자였습니다.
교황청 문서고에 있는 루이사가 직접 쓴 글 10,000 페이지를 복사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곳에 갔습니다. 그래서 10,000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다 사진을 찍고 복사도 하였습니다. 시복과정을 위해서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모든 일을 할 수 있은 것은 시복 재판소의 멤버였던 존 브라운이라는 신부님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3) 하느님 뜻 집이 교회법적으로 설립되다
존 브라운 신부님은 그 시복 재판의 멤버로서 우리가 자신과 함께 로마에서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로마에서 우리가 이 일을 끝내자마자 트라니 교구의 카사티 대주교님이 우리 수도공동체에다가 제가 자기의 관할 하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트라니 대주교님이 우리 수도회 장상한테 제가 자신과 함께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의 장상 신부님이 “가서 대주교님과 함께 일하라.”고 허락해 주셔서 제가 4년 동안 이태리 트라니 대교구의 대주교님의 관할 하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제가 마리아 넬라 수녀님하고 같이 마이애미에서 ‘하느님 뜻 집’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트라니 교구의 주교님의 축복과 우리 수도회 장상 신부님의 축복과 마이애미 주교님의 축복을 받아서 ‘하느님 뜻 집’을 우리가 마이애미에서 시작했습니다. 마리아 넬라와 함께 일반법에 의한 단체인 ‘하느님 뜻 집’을 만들었습니다. ‘하느님 뜻 집’은 하느님 뜻을 전파하기 위해서 생긴 연합 단체입니다.
1996년에 ‘하느님 뜻 집’을 개설했습니다. 6년 후인 2002년에는 일반법에 의한 단체인 ‘하느님 뜻 집’이 아니라 이제는 교회법에 의한 ‘하느님 뜻 집’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교회법적인 ‘하느님 뜻 집’이 되었으니까 교회에 속하는 정식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바티칸에 있던 루이사의 친필 원고들을 모두 복사하고 사진 찍은 것을 트라니 대교구의 카사티 주교님이 컴퓨터 안에다 이태리어로 다 옮겨 쓰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받아서 2005년에 옮겨 쓰는 게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전부 9년이 걸린 것입니다. 2005년에 우리가 그렇게 옮겨 쓴 것을 모두 대주교님에게 드렸고 2005년 10월에 루이사의 시복 조사 과정이 교구 수준에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옮겨 쓴 것, 루이사의 글들과 여러 가지 증언들 전부 다 로마의 시성성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아시는 대로 두 신학자가 루이사의 글을 다 검토하게 됐습니다. 2년 전에 이 두 신학자가 ‘루이사의 글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라고 긍정적인 판결을 내려 줬습니다.
지금 이 시복과정에서 더 필요한 것은 3번째의 허락(니힐 옵스타트)이 필요한데, 신앙성에서 허락을 주어야 됩니다. 먼저 번에 받은 허락은 시성성에서 받은 허락이었고 지금은 3번째의 허락(니힐 옵스타트)을 이제 신앙성에서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이 신앙성에서 나오는 허락을 받으면 로마에서 시복 조사 과정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해야 되는 것은 루이사의 ‘영웅적인 신앙의 삶에 대한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정이 가능한 기적이 하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미 아주 흥미로운 기적이 하나 있습니다. 서류도 아주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3번째 허락이 나온 다음에라야 이것을 공식적으로 조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3번째 허락을 위하여 이런 모든 것을 조사하는 신앙성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루이사의 영웅적인 삶에 대한 기록이 다 확보되어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기적도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다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 신앙성에서 나오는 3번째 허락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3번째 허락을 받은 다음에만 루이사의 영웅적인 삶에 대한 증거와 이미 일어난 기적에 대한 것을 공식적으로 조사,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3번째 허락이 없어서 이미 준비된 루이사의 영웅적인 삶에 대한 기록과 기적에 대한 조사 결과가 공식적으로 인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라니 교구도 루이사의 삶이 거룩한 삶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루이사로 인해서 하나의 특별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고, 그것도 서류가 아주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3번째 허락이 없이는 벌써 문서로 다 되어 있는 루이사의 거룩한 삶과 기적을 공식적으로 조사, 연구하거나 증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3번째 허락 문제는 여기까지 이야기 하고,
우리는 로마에서 허락을 기다리고 있는데, 로마에서는 뭐든지 너무 천천히 하기 때문에, 로마에서 이렇게 천천히 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루이사의 글을 공부하고, 하느님 뜻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다 모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천천히 하는 로마에서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는 없고 로마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기다리면서 우리가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모인 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하느님 뜻의 귀한 보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달하고 퍼트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도직입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이 일을 교회의 모든 공식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이 사도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우리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교회법적으로 인정된 ‘하느님 뜻 집’ 이라는 공식 기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책임자 주교님과 또 다른 여러 주교님들이 우리를 지지해 주시고 밀어주고 계십니다.
35년 동안 루이사의 글을 알아가며, 루이사의 글과 함께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느님 뜻 집’의 사도직은 하느님 뜻의 그 무한한 깊이와 또 그 아름다운 것을 사람들이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뜻은 계명들을 죽 적어 놓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탈출 3,14)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이나 천사나 우주가 생기기 전에 하느님 뜻은 이미 있었습니다.
2. 하느님 뜻을 행하는 것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
1) 하느님의 뜻에 순명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
하느님 뜻은 하느님 뜻입니다. (The Divine will is will of God.)
지금 Divine Will 이라고 그랬는데 그것을 우리는 하느님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루이사가 가르치는 그 뜻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것을 하느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 뜻은 계명이 있기 전에 있었고, 구약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벌써 있었고, 성사 생활 이전에 벌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 뜻은 성사 생활을 지지해 주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은 모든 것의 생명과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도직은 하느님 뜻의 이 무한함과 신비스러움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사람들을 이 하느님 뜻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고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느님 뜻에 순명하라고 사람들한테 확실하게 말합니다. 하느님 뜻에 순명하기 위해서 성령께 순명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사람들이 교회법만이 아니라 나라의 법도 지키도록 권고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기 삶의 신분에서 오는 의무도 다 지키도록 권고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이런 모든 것보다도 더 위대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한다는 것은 하나의 길인데, 이 길의 끝은 결국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회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에 충실한 것, 이런 것은 다 하느님 뜻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곳에서 영원히 살도록 초대받은 그 궁전은 바로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 따라서, 교리에 따라서 어느 길이 우리의 길인지, 누가 우리의 길인지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이 “내가 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느님 성부께 순명하고, 하느님 성부의 뜻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당신 아버지의 뜻에 순명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친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이 길의 끝, 끝에서 만나는 그 궁전,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그 길을 가면 끝에는 아버지의 나라, 하느님 뜻의 궁전이 있습니다.
여기에 아주 두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길이고 하나는 길의 끝에 도착하는 집입니다. 가는 길은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것이고, 그 길의 끝에 도착하는 집은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집입니다.
이 길을 따라서 가지 않으면 하느님 뜻의 삶이라는 그 궁전에 도착을 못합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겁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나의 아버지께로 못 간다. 왜냐하면 내가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이 길입니까? 예수님이야말로 순명하는 사람, 바로 그 자체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어떤 부자 젊은이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 젊은이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 19,16) 하고 물어봤죠. 우리식으로 지금 다르게 표현하면, “제가 어떻게 그 궁전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 영원한 삶의 궁전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계명을 완전히 지켜라. 순명하라. 그리고 네가 만약 완전하게 되고 싶으면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버리고 나를 따라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명을 하며 가는 길과 도착하는 그 집, 이 두 가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건입니다.
2) 루이사의 소명
예수님께서 루이사를 통해서 우리한테 특별히 보여주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초대받고 가서 살아야 할 그 궁전 그 집입니다. 루이사의 글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순명을 해야 되고 가는 길에 뭐를 어떻게 해야 되고 그런 것은 많지 않고 대부분 그 집에 대한 설명입니다. 루이사의 글은 궁전 안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주로 많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궁전에 살기 위해서 가는 길, 그리고 그 가는 길에서 덕을 어떻게 실천하고 어떻게 순명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성인들의 글에서 특별한 가르침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이사 말고 다른 성인들의 글에서는 어떻게 그 궁전으로 들어가는지, 또 궁전 안에서 어떻게 살고, 우리가 그곳에 있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대부분 어떻게 그 길을 따라 가는지 그것을 우리에게 주로 가르쳐줍니다. 신비가들도 그런 것은 이야기 안했습니다. 비록 잠깐 동안 그 안을 볼 수는 있었지만,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아서 그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으므로, 신비가들도 그 안의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혹시나 신비가들이 우리가 지금 말하는 그 궁전 안으로 들어갔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쓰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명확하고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루이사와 루이사의 사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어떤 때에는 마치 루이사가 최고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고,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문제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루이사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한테 말했습니다.
“네가 나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글들을 다 읽어봐도 내가 지금 너한테 이야기 해준 것과 같은 것을 발견할 수는 없다.”
우리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나오는 많은 신비가들과 위대한 성인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벌써 하느님 뜻 궁전 안에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았는지, 하느님 뜻 궁전 안에서의 삶을 벌써 이 세상에서 살도록 허락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 모든 신비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 어느 누구도 루이사가 쓴 것과 같은 신비에 대해서는 쓰지를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루이사의 글을 보면 하느님 뜻의 궁전이 어떤 건지, 그리고 그 궁전으로 어떻게 들어 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궁전 안에 들어가서 살 때 우리와 우리의 행동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영혼 안에 일어나는 그 기적 같은 일, 그 거룩한 일들이 루이사의 글에 아주 명확하게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성인들은 다 가는 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지 그 궁전 안이나 그 궁전 안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 해줬습니다. 이것이 루이사의 유일성, 독창성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루이사에게 “하느님 뜻의 작은 딸”이라고 불러 주신 대로 “하느님 뜻의 작은 딸이 되는 것”은 루이사의 소명이었습니다. “하느님 뜻의 작은 딸”이란 이름은 루이사의 삶의 의미를 우리 모두에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루이사의 글에 자주 이용되고 있는 두 가지 말이 있는데, 하나는 하느님 뜻을 행하는 것하고 또 하나는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보통 다른 성인들의 모든 글이나 교회의 가르침과 루이사의 글의 많은 부분에서도 하느님 뜻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이사 글의 핵심은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루이사의 소명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 뜻을 행하지 않으면 하느님 뜻을 이해할 수 없고 하느님 뜻 안에서 살 수도 없습니다.
3) 예수님은 길입니다
한 가지 꼭 필요한 것은 우리는 일생 동안 항상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행하고 완성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느님 뜻 안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 뜻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루이사의 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나는 하느님 뜻은 행하지 않는다. 나는 하느님 뜻을 행함에 있어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순명으로 자신의 인성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은 성부님입니다. 예수님은 성부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살지 않으면 하느님 안에서 못 삽니다. 예수님은 성부님께 대한 순명이니까 성부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루이사의 글을 보고서 ‘야, 이것은 굉장하다, 루이사의 글은 대단하다. 나는 이제 하느님 뜻의 영원한 궁전 안에서의 삶을 살 수 있다. 순명이니 무슨 다른 덕과 같이 그 길을 가는데 필요한 요소들은 이제는 멀리 놓아두어도 된다.
나는 벌써 하느님 뜻 궁전 안에서의 삶에 대한 설명을 다 읽어서 알고 있고, 그 안에서의 삶이 얼마나 멋있고 훌륭한지 전부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나는 더 이상의 교리도, 성경도 필요 없고, 다른 성인들의 삶에 대해서도 더 이상 알 필요가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길하고 궁전, 이 두 가지는 서로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뜻 안의 삶은, 성부님의 집 안의 삶은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의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명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몇 마디로 말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우리의 삶 안에서도 이루어지소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한테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만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예수님께서 그것을 더 붙이셨습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는 이 말의 그 모든 것이 다 루이사의 글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는 그 말로 교회의 모든 가르침들이,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들에게 이 지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 말은 루이사의 모든 글의 기초가 되고 지탱을 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루이사의 글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그 말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우리에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론에서 말씀드린 것으로 돌아가 보면, 루이사가 본 것과 같은 그런 종류의 계시는 교회의 공적 계시에 무엇을 보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루이사가 받은 사적 계시는 우리가 받은 이미 교회 안에서 받은 공적 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4) 루이사의 삶과 사명에 대해서
루이사의 삶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루이사의 전기 등에서 읽을 수 있으므로 저는 상세한 것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루이사의 삶에 대한 간단한 결론 같은 것을 내려 본다면
루이사의 삶과 사명에 대해서 두 가지를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희생 제물로서의 루이사하고 ‘하느님 뜻의 작은 딸’ 이라는 루이사입니다.
희생제물로서의 루이사는 길에 해당됩니다.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루이사’란 말은 하느님 성부의 천상 궁전에서의 삶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루이사의 이런 삶은 예수님의 삶하고 닮았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어린 시절을 포함하는 삶과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 죽으셔야 되는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인간적인 삶은 순명, 희생, 덕행, 자기 자신을 우리와 성부를 위해서 완전히 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승리를 보여주고 하느님 뜻 안에서의 궁전의 삶을 보여줍니다.
수난하고 죽으실 때까지 예수님의 삶은 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입니다. 우리는 순명하고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부활하신 예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기도에 있는 두 가지 면을 의미합니다.
하나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는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서 사신 예수님의 삶이고,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이 둘은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루이사의 사명은 우리가 길을 따라가서 궁전에 도착해서 궁전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제 점심 먹으러 갑시다.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이것도 하느님의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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