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강의
(2010. 9. 20. H.D.W. Inchon)
36. In Him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희에게 아드님의 얼굴을 보여 주소서.
저희는 오직 그분을 통해서,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만
아버지께 이를 수 있겠나이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뜻 안으로 들어가오니,
아버지께서 제게 손을 내밀어 주시어
아버지 뜻의 무한성 안으로 이끌어 주소서.
그리하면 아버지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이 아닌 것은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겠나이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저 자신을 아버지께 바치나이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하기에 아버지 뜻의 나라를 청하나이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는 당신의 보호 아래 피신하오니
이 가련한 자녀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모든 위험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오,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3번째 강의는 In Him ‘그분 안에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의에서는 우리가 루이사의 글 10권까지에 들어있는 말씀에 대해서 가르침과 설명을 나누었습니다. 그 첫 번째 열 권 안에서 ‘그분을 위해서’ ‘그분과 함께’ 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함께 살도록, 당신의 삶을 나누도록 우리를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나라, 그분의 뜻의 나라 안에서 같이 함께 살도록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죄가 하느님의 거룩한 계획을 거부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보시고 이 죄로 인한 모든 인류의 우주적인 비극을 보시고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왕국을 재건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우리 행위 하나하나 안에 당신의 왕국을 재건하고자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구원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를 당신께 일치시키고 우리를 당신 안에서 변화시켜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를 성부님의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분의 첫째 사명은 우리들 중의 하나가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성을 우리와 함께 나누어 가지시고 죄를 빼고는 우리의 모든 한계점도 다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으로 인간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신성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고 부유하게 만들려고 우리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취하시고 인간적인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으로 사신 그분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고 완전히 조화를 이루면서 이루어졌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원한 영혼 안에서 사셨습니다.
그분의 두 번째 사명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당신 안에서 인간의 모든 생명을, 인간의 모든 삶을 다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인류의 머리이시고 구원자이시고 구속자이신 그분께서는 완전히 인간으로 사시면서도 또한 하느님이셨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불러서 자유롭게 해주고, 풍요롭게 해주고, 하느님의 신성 안에서 다시 살게 해주려고 하셨습니다.
성부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인간적인 삶과 생명 안에서 우리 모든 인간들을 다 껴안으시고 또 인간의 모든 것들을 고쳐주시고 재정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셔서 아주 완전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다시 바치셨습니다.
모든 것을 완성하고 모든 인간의 삶을 그분 안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 다음 그분의 세 번째 사명은 - 성 바오로 사도가 말했듯이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부께서 원하셨던 우리의 진정한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되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해 주신 것이 성령의 활동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분 안에서, 그분의 삶 안에서 모두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그분이 태어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이미 사셨던 모든 삶의 신비를 우리가 다 껴안고 재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활동은 태초부터 벌써 시작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성령의 활동은 우리의 삶 안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서 성령의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고 성사들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딸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보배가 우리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보배를 알기 시작하고 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제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뜻 안에 완전히 열어놓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인성을 깨끗하게 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현존에 우리 자신을 열어놓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 인성을 정화하고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은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설명하신대로 우리가 모든 것을 그분을 위해서 함으로써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우리 영혼 안에 있으면 그것을 점차적으로 다 비우고 깨끗이 해야 합니다.
이런 정화의 열매가 우리 영혼이 예수님의 현존으로 더욱더 가득 차게 해 줍니다. 이런 것은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영혼에게 점점 더 밝은 빛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영혼은 자기 자신이 무(無),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모든 것을 그분의 인성을 통해서 ‘그분과 함께’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인간의 행동이 예수님의 행동인 것처럼 그런 가치와 본질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공로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예수님과 일치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11권에서 19권까지에 있는 글들을 보면서 ‘그분 안에서’ 라는 말의 의미를 발견하고 이해하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루이사의 글들 중에서 10권까지에는 처음의 두 말씀에 해당하는 것들을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피조물들을 불러서 그분과 하나가 되어서 그분과 함께 모든 것을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우리가 그분에 의해서 정화되고, 그분에 의해서 빛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인성을 옷 입듯이 입고 그분의 인성 안에서 우리가 변화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하느님 뜻의 궁전으로 들어갈 수 있게 우리를 준비시켜 줍니다. 그렇게 하면 이제 우리가 하느님 뜻의 궁전으로 들어갈 준비가 된 겁니다.
11권부터 36권까지는 영적 생활의 첫 부분을 설명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11권에만 우리가 설명한 첫째 단계인 그 영적 생활에 대한 것이 조금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느님 뜻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 열망을 가지고 예수님에 의해서 영혼의 빛을 받을 준비가 됩니다.
이 첫 번째 책들에서는 하느님 뜻의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지려고 준비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의 책 열권과 11권의 일부에는 우리가 하느님께 복종해야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느님 뜻을 완전히 믿으면서 우리의 뜻을 완전히 버리는, 예수님께서 성부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셨듯이 우리도 그런 식으로 예수님께 일치하도록 하는 그런 설명이 있는데,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없었습니다.
이 모든 글들과 하느님 뜻의 선물에 대한 주요 내용은 하느님 뜻이 피조물인 인간 안에서 작용하고 인간이 하느님 뜻 안에서 작용한 것에 대해서, 우리의 행위 안에서 하느님 뜻이 행동의 주체가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느님 뜻과 함께 행동하도록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행동이 하느님이 하신 일과 같은 그런 가치를 받게 해줍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작은 인성 안으로, 우리의 작은 인간 안으로 오시도록 예수님을 환영해 드렸습니다. 우리 안에 그분의 뜻이 오시는 것을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 뜻 안으로 부르시고 환영해 주시고 당신 뜻 안으로 데려 가려고 하십니다.
11권에 굉장히 흥미로운 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께로 접근해 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설명하시고 그분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자동적으로 생기는 일이 아니고 우리 자신 각자의 동의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응답을 요구합니다. 그분이 그분의 무한한 사랑과 그 뜻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뜻으로 그 사랑에 응답해 드리기를 바라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 없이 너를 만들어 냈지만 너 없이는 너를 구원할 수가 없다.”
즉, 구원은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꼭 결혼과 같이 영원한 것입니다. 지난 번 강의에서 결혼은 양쪽이 합의를 해야 성사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억지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또 지옥에도 억지로 강요당해서 가는 게 아닙니다. 지옥을 가든 하늘나라로 가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원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정신 속에 분명하게 해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루이사의 글에 있는 내용들을 보면 어떤 일에서는 우리 뜻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은,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은 우리 뜻이 없이는 안 됩니다.
우리가 루이사의 글을 보면 인간의 의지는 완전히 말살되고 없어져야 한다는 인상을 주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별하고 굉장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인간적인 것을 굉장히 나쁘게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가 없어져야 된다고 느껴지는 그런 글들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인간의 의지가 없어져야 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의 행동이나 삶이나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뜻에 합치되지 않고 반대되는 그런 것들은 완전히 부서지고 없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의지 자체가 없어져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인간적인 것, 하느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없애버려야 되는데 그럴 때는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이 합쳐서 함께 그 단순하고 인간적인 것, 하느님 뜻에 안 맞는 것을 없애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 내 의지도 함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1권 35장 1912년 9월 6일 : 예수님의 현존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사람
2 “딸아, 나는 영혼들과 함께 있고, 그들의 안팎에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 현존의 효과를 체험하겠느냐? 그의 뜻이 나의 뜻과 긴밀히 일치해 있는 사람이다. 나를 부르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나의 능력과 내가 자기에게 베풀 수 있는 선을 아는 사람이다.
3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기 집에 물이 있는데도 다가가서 따라 마실 생각은 않고 갈증으로 타는 듯한 고통을 겪는 사람과 같다. 물이 있어도 물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이 있는데도 다가가서 쬘 생각은 않고 덜덜 떨고 있는 사람 역시 불과 그 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한가지로 말할 수 있다.
4 나는 내 은혜를 베풀고 싶은데 받아 누리는 사람이 없다면, 내 마음이 어찌 답답하지 않겠느냐?”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에서 나의 의지는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루이사한테 다른 장에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인간의 죽은 의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의지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간의 의지를 원한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그런 인간 의지가 아니라 자기의 삶을 완전히 하느님께 드리는 그런 인간의 의지를 원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1권 122장 1916년 5월 3일에 In Him ‘그분 안에서’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그분 안에서’ 라는 말을 계속 발전시켜서 설명해주십니다. 이 말은 루이사의 글에서 처음으로 새롭게 나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 안에서, 그분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는 것의 중요성과 예수님에 대한 중요한 설명이 이제 확실히 나타납니다.
루이사의 영혼이 ‘그분을 위해서’ ‘그분과 함께’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된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모든 것에서 행동하셨던 그 방법을 이제 루이사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행동을 하느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하셨습니다. 그것을 이제 루이사에게 가르쳐주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이 장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이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 뜻 안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우리 행동들이 예수님의 행동의 고귀함과 그 가치들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과 같아지는 그런 행동 중의 하나는 보편성입니다. 모든 사람을, 또 모든 것들을 다 껴안는 것입니다.
11권 122장 1916년 5월 3일 :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예수님의 삶을 살면서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고 모든 이의 모든 죄를 아버지 대전에서 보속한다.
1 기도 중에 있는데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 곁에 자리하셨다. 그분께서도 기도하시는 소리가 들리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런 후 그분은, “딸아, 기도하여라. 그러나 내가 기도하는 것처럼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2 “다시 말하자면, 내 뜻 안에 너 자신 전체를 쏟아 부어라. 그러면 네가 이 뜻 안에서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모든 것을 너 자신의 것으로 삼아서 마치 한 사람의 것인 양 하느님께 바쳐라. 하느님의 의지가 그 모두의 주인이시니 말이다.
13 나와 하나 되어, 나의 뜻 안에서, 너의 생각 안에 모든 사람의 생각을 담고, 너의 눈 안에 모든 사람의 눈길을 담고, 너의 말과 동작과 애정과 갈망 안에 네 형제자매들의 그 모든 것을 담아, 지존하신 하느님 대전으로 가져가거라. 그 모든 행위들을 보속하면서 그들에게 빛과 은총과 사랑을 얻어 주기 위함이다.
11권 140장 1916년 12월 22일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언제나 실천에 옮기고 모든 것을 그분과 함께 함으로써 루이사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예수님의 모든 행동이 다 그 안에 현존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런 예수님의 행동들을 루이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그 모든 행동들을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느님 뜻의 왕궁으로 들어가면, 하느님 뜻은 모든 행동들을 품고 있는 영원한 행위이기 때문에, 하느님 뜻 안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피조물들과 성모님과 예수님의 모든 생애까지도 그 안에 현재처럼 현존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뜻 안에서 산다는 것은 그 하느님 뜻 안에서 모든 것들을 보고 발견하고, 그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영원한 행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들이 다 하느님께도 속하고 나에게도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당신 것도 없고 내 것도 없고 다 우리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 뜻 안의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의 삶을 그분께 드리기 위해서 하느님 대전으로 갑니다.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의 행위들도 다 내 것으로 만들어서 하느님한테 바치는데, 좋은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바치는 것이고, 나쁜 것들은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런 것들을 어떻게 고칩니까?
예수님이 그 대답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 대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의 삶을 다시 사시기 때문입니다. 창조 때에 처음 태어난 존재부터 모든 존재에 이르기까지 그분께서 다시 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부님께 모든 피조물들의 완전한 영광을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인간의 완전한 삶을 볼 수 있고, 예수님께서 모두 보속하셔서 완성하신 모든 것을 하느님의 완전한 영광을 위해서 내가 하느님께 바칩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이 성취하는 또 다른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획득하신 빛과 은총과 생명입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제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고 우리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함께 나눕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자매들과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세상 마지막 날에 태어날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 보배를 다 나누는 겁니다. 이것이 하느님 뜻 안에서 기도하는 방식입니다. 성화의 "보편적인 면"이란 말은 하느님과 모든 사람에게도 바치고, 똑같이 고쳐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11권 140장 1916년 12월 22일 :
하느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는 영혼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것을 함께 하시게 한다.
1 영성체를 하고 나자 나 자신 전체가 예수님과 결합되면서 그분의 뜻 안에 온전히 쏟아 부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하시는 대로 행하고 당신 말씀을 그대로 따라 해야 할 큰 필요를 느낍니다.
3 당신 뜻 안에서 저는 당신께서 당신 자신을 성사적으로 영하셨을 때에 하셨던 행위들이 마치 현행적인 행위처럼 재현되는 것을 봅니다. 저는 그 행위들을 제 것으로 삼아 당신께 반복해 드립니다...”
4 이와 같이 나는 예수님께서 성사적으로 당신 자신을 영하시면서 하셨던 모든 것 안에 애써 나 자신을 섞어 넣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5 “얘야, 나의 뜻을 행하며 모든 것을 나의 뜻 안에서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로 하여금 그가 하는 일을 함께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6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나의 뜻 안에서 영성체를 하면 나도 나의 뜻 안에서 나 자신을 영했던 때의 행위를 거듭하여, 내 성사적 생명의 완전한 열매를 새로이 이룬다.
7 그가 나의 뜻 안에서 기도하면 나도 함께 기도하면서 내 기도의 열매를 새로이 이루고, 그가 나의 뜻 안에서 고통받고 일하고 말을 하면, 나도 그와 함께 고통받으며 내 고난의 열매를 새로이 이루고, 그와 함께 일하고 말하면서 나의 일과 말의 열매를 새로이 이룬다.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한가지로 한다.”
12권 41장 1918년 4월 8일 : 예수님과 함께 일치해서 사는 것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과의 차이를 루이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루이사를 당신의 뜻 안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분을 위해서’ ‘그분과 함께’ 하는 우리의 모든 행위는 하느님과의 일치의 상태 속에 있는 것과 합치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행동한다는 것은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왕궁으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서는 것과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이제 왕궁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서 그 길을 가는 것은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그분을 위해서’ 하고, ‘그분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위해서’ ‘그분과 함께’,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왕궁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왕궁으로 내가 완전히 들어가면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그 차이는 그 집 안에서 사는 것과 그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 길을 걸어가는 것과의 그런 차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여러 번 이 두 가지 상태의 차이에 대해서 아주 '무한한 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보다 더 큰 거리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위해서 영웅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성덕의 고귀함과 아름다움, 그 다음에 모든 것을 그분의 뜻 안에서 하는 사람의 성덕의 차이는 한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뜻 안에서 그분의 왕궁에서 행해진 단 하나의 행위가 하느님의 궁전으로 가는 길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한 모든 행동보다 더 가치가 크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왕궁으로 가는 길에서 한 행동의 주체는 인간의 의지이고, 하느님 뜻 안에서의 행동의 주체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의 행위 하나가 그 가치나 그 차원에 있어서 모든 피조물들의 모든 행동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크다.”
이것이 하느님 뜻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우리 역사의 시초에 하느님으로부터 피조물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선물을 우리가 잃어버렸습니다. 한없는 가치를 가진 선물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사람의 손에 들어 있는 게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와 사랑만이 이 선물을 다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주님께서 강생하신 이유입니다.
모든 인류 역사의 시작 때 주어졌던 그 선물을 우리에게 다시 주기 위해서 구속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리고 수천 년의 순례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준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늘의 성부님의 궁전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이 필요했던 겁니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왕궁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잔치를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초대하려고 하인들을 보내는 비유에서와 같이 주님께서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으므로 우리 모두가 잔치에 초대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복음에서 보면 초대받은 사람들은 다른 일이 더 중요하고 다 바빴습니다. 주님이 초대를 했는데 아무도 응답하지 않으니까 주님께서 화가 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화가 나셔서 심부름꾼들을 한길로, 광장으로 보냈습니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이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루카 14,23)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비유가 말하는 바로 이 시점에 와 있습니다. 모든 인류를 위해서 하느님 뜻의 잔치가 지금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딱 하나입니다. 잔치에 가기를 원해야 합니다. 또 이 잔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해야 합니다. 원해서 알게 되면, 그러면 이제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즐기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이것은 큰 은총입니다. 이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이 이제 세말이 다가왔다고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 내 딸아. 이제 시작될 것이다. 지금이 시작이다. 인간들의 진정한 역사는 내 집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 창조 때부터 나는 인간들이 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궁전, 내 뜻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된다. 그리고 아주 큰 희생을 할 마음이 있어야 된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를 희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께서 말한 것과 같이 루이사가 말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러셨습니다.
“이것은 그냥 어려운 것이 아니다. 너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뭐든지 가능하다.”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도 하셨습니다.
이 글들은 우리에게 빛이며,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군대처럼 그렇게 강력한 것입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빛과 은총으로 인간들을 둘러싸서 보호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내 뜻의 모든 보배를 발견하는 것은 그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 그들이 이렇게 좋은 것을 알면 그들은 분명히 큰 어려움 없이 대단한 희생을 할 것이다.”
이 말씀은 이제 민족들 안에서 막 전파되면서 세상의 얼굴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이 선물로 살아감으로써 우리는 이 말씀들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방법, 즉 이 말씀들을 글로 쓰고, 또 말씀을 서로 나누는 등의 방법으로 이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성령께서 우리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잠깐 쉬고 난 다음에 다음 장을 조금 읽고 그다음에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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