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33, 예수님께서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하며 맺으신 아버지와의 계약
1924년 1월 4일
1.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말씀하셨다.
2. “딸아, 내가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한 것이 내 수난의 잔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뜻이라는 잔 때문이었다. 고약한 악덕이 어찌나 넘치도록 가득 찬 잔인지 하느님의 뜻과 일치해 있었던 나의 인간적인 뜻이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을 정도로 큰 역겨움과 공포와 경악을 느꼈던 것이다.
3. 하느님의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의 뜻은 추악하기 그지없다. 하느님의 뜻은 그러나 거의 잔 속에 있는 것처럼 개개의 피조물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사악치고 그의 뜻이 그것의 기원이고 씨앗이며 샘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내 뜻의 거룩함 앞에서 인간의 뜻이 낳은 그 모든 사악한 것들로 뒤덮여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죽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느꼈다. 신성이 나를 지탱해 주지 않았다면 실제로 죽었을 것이다.
4. 그런데 내가 왜 세 번이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했는지 아느냐? 나는 피조물의 모든 뜻이 결탁하여, 그리고 그들의 모든 악이 한꺼번에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아버지께 그 모두를 대신하여 ‘더 이상은 땅에서 인간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인간의 뜻은 사라지고, 아버지의 뜻이 다스리소서!’ 하고 부르짖었다.
5. 그때, 곧 내 수난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나 자신이 모두를 대신하여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하고 말하기를 원한 것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를 부르는 일이 나의 가장 중요하고도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나는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Fiat Voluntas Tua’ 시대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6. 그것도 세 번이나 거듭 말함으로써 첫 번째는 아버지의 뜻을 간청하고, 두 번째는 그 뜻을 내려오게 하고, 세 번째는 그 뜻을 통치자며 지배자로 정하였다. 그리고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뜻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으로 채우고자 하였다.
7. 숨을 거두기 전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나는 내가 세상에 온 일차적인 목적 - 하느님의 뜻이 피조물 가운데서 영예로운 첫 자리를 차지하게 하려는 그 목적에 대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협의하고자 하였다. 이 지고한 뜻을 배척한 것이 인간의 첫 행위였고, 따라서 그것이 우리 성삼위가 받은 첫 모욕이었으며, 인간의 다른 모든 악은 이차적인 것이었으니 말이다.
8. 그러므로 나는 먼저 ‘Fiat Voluntas Tua’ 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야 했고, 이 목적을 이룬 연후에 나의 피로 구원 사업을 이루어야 했다. 사실 구원 사업은 이차적인 일이었다. 내 뜻이 언제나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우선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구원 사업이 맺은 열매의 효과가 먼저 보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내 거룩하신 아버지와 맺은 계약에 의한 것이었다.
9. 그 계약은 ‘아버지의 피앗’이 인간 창조의 참된 목적과 내가 지상에 온 일차적인 목적을 구현하면서 땅으로 와서 다스리심으로써 인간이 구원 사업의 열매를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 지혜에 질서가 없지 않겠느냐? 악의 시초가 인간의 뜻이었으니 내가 질서를 잡고 회복해야 했던 것이 이 뜻이었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다시 하나로 결합되게 해야 했던 것이다.
10. 구원 사업의 열매를 먼저 볼 수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먼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 뜻이 임금과 같이, 만인 가운데 맨 첫째이면서도 임금으로서의 영예와 품위에 어울리게 자기 백성과 군대와 대신과 제후들 및 궁중의 모든 조신들을 앞세우고 맨 나중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런즉, 구원 사업의 열매가 먼저 필요했다면 그것은 지고한 임금인 내 뜻이 조신과 백성과 군대와 대신들을 찾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11. 그러나 너는 아느냐? 누가 나와 함께 맨 먼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라고 부르짖게 되어 있었는지를? 그것은 내 뜻의 갓난아기, 내 작은 딸이었다. 자기의 뜻에 대해 너무나 큰 역겨움과 공포를 느끼기에 벌벌 떨면서 내게 들러붙어 나와 함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을 딸이었다. 그리고 울면서 나와 함께 이렇게 말을 이를 것이다.
‘Non mea voluntas, sed Tua fiat’
12. 아! 그렇다. 내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맨 먼저 맺은 저 계약 안에 네가 나와 함께 있었다. 이 계약을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 적어도 한 피조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그 계약을 주겠느냐? 누구에게 맡기겠느냐? 이를 더 안전하게 맡기려고 나는 너에게 내 수난이 모든 열매들을 선물로 주어, 이 열매들로 하여금 굉장히 강력한 군대처럼 네 둘레에 대열를 이루게 하였다. 이들이 내 뜻의 당당한 호위대를 이루면서 너의 뜻과 맹렬한 전투를 벌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13. 그러니 네가 지금 놓여 있는 처지에서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일랑은 깨끗이 사라지게 하여라. 그것은 내뜻에 해로울 것이다. 내가 내 뜻의 계약을 네 안에 맡겨 두고 있으니 말이다. 평안히 머물러 있어라. 내 뜻이 너를 정화하고 또 너의 뜻이라고는 추호도 없게 하려고 너를 시험하고 있는 것인즉, 온전히 평온한 마음으로 내 의지 안을 계속 날아다니며,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라.
14. 네 예수가, 너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한층 더 뚜렷하게 내 뜻을 드러내게 하면서 너의 인간적인 뜻 안에 내 뜻의 영역을 넓힐 것이다. 너의 내면에서 나 자신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며 나아가리니, 네 안의 모든 것을 내 뜻에 따라 이끌어가기 위함이다.
15. 나는 다만 내 아버지의 뜻에 열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에도 종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 안에 모든 것이 있다. 그런고로 나는 모든 것에 종사하였다. 또한 나는 하나의 기도를 가르쳤다. 그 기도가 바로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였다. 그런고로 그 기도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기도였다.
16. 나는 따라서 지고하신 뜻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말과 내 고통이, 내 일과 내 심장 고동이 온통 ‘하늘의 뜻’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17. 너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내 뜻과 불이 그 영원한 입김으로 너를 태울 정도로 이 뜻 안을 돌아다녀라. 그리하여 다른 지식은 다 잊어버리고 언제나 오로지 내 뜻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16권-34, 예수님께서 옷 벗김과 매질을 당하신 것은,
참담한 알몸이 된 인간에게 하느님 뜻의 왕다운 옷을 되찾아 주시기 위함이었다.
1924년 1월 14일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원수들 한가운데서 옷 벗김을 당하시고 얼굴을 붉히시며 폭우처럼 쏟아지는 매질을 당하신 신비를 묵상하면서, 측은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그분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채찍질을 당하셨던 당시의 모습으로 나의 내면에서 나오셔서 이르셨다.
2. “딸아, 내가 매질을 당하기 전에 왜 옷 벗김을 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으냐? 내 수난의 각 신비마다 내가 가장 먼저 행한 것은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 사이의 갈라진 틈을 다시 붙이는 일이었고, 그다음에는 이 단절이 초래한 죗값을 갚는 일이었다
3.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의 지고한 뜻과 자기의 뜻을 묶는 일치의 유대를 끊어 버렸다. 그때 그는 내 뜻의 왕다운 옷을 벗어던지고 그의 뜻이라는 참담한 누더기를 걸치게 되었으니, 그것은 나약하고 변덕스러운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이었다.
4. 내 뜻은 그 감미로운 매력으로 사람을 황홀하게 하였고, 그를 극히 순수한 빛 안에 잠겨 있게 했으며, 그로 하여금 자기가 태어난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게 했고, 그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행복을 주었다. 사람은 자기 하느님이 주시는 그 많은 것들 속에 얼마나 깊이 빨려 들었는지 그 자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오, 사람은 그토록 행복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까지 당신 존재의 많은 부분을 사람에게 주어 당신을 닮게 하시는 것에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느끼셨는지 모른다!
5. 그러나 사람이 우리 (성삼위)의 뜻과 그의 뜻의 일치를 깨어 버리자 즉시 왕다운 옷을 잃었고, 그 황홀과 그 빛과 그 행복을 잃었다. 나의 빛 없이 그 자신을 보았고, 그를 빨아들이고 있었던 황홀도 없이 보았기 때문에 자신을 알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하느님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본성 자체도 이 일의 통탄할 결과를 느꼈으니, 추위와 자신이 알몸임을, 따라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덮어 싸지 않을 수 없는 욕구를 느꼈던 것이다.
6. 우리의 뜻이 사람을 무한한 행복의 항구 안에 있게 했던 것과 같이, 사람의 뜻은 사람을 비참의 항구 안에 집어넣고 말았다. 우리의 뜻은 사람에게 모든 것이었으니, 사람은 이 뜻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에게서 태어나 우리의 뜻 안에서 어린 아기로 지냈으니 우리의 뜻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고, 그러면 이 뜻이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었을 것이다.
7. 그런고로 사람이 제 뜻으로 살기를 원하자 모든 것이 아쉬운 신세가 되었다. 사람의 뜻은 모든 필요를 채워 줄 능력이 없고, 그 자체 안에 선의 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활필수품을 얻기 위해서도 허덕이며 고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의 뜻이 나의 뜻과 일치해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알겠느냐? 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안다면, 내 뜻이 땅에도 와서 다스리기를, 오직 이것만을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
8. 만약 아담이 이 거룩한 뜻을 배척하지 않았다면, 그의 본성도 옷가지를 걸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발가벗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것이고,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나약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연적인 모든 것들은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그의 영혼이 잃고 만 크나큰 선의 상징이었을 뿐이다.
9. 딸아, 그런 이유로 나는 기둥에 묶여 매질을 당하기 전에 옷 벗김부터 당하기를 원하였다. 사람이 스스로 내 뜻의 왕다운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된 것을 겪으며 보속하기 위함이었다. 나를 조롱하는 원수들 가운데에서 발가벗겨진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큰 수치와 고통을 느낀 나머지 사람의 알몸을 두고 탄식하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나의 알몸을 바쳤다. 사람이 다시금 내 뜻의 왕다운 옷을 입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10. 그리고 나의 이 간청이 거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속전으로 내 피를, 갈기갈기 찢어진 살을 바치기도 하였다. 내 옷뿐 아니라 살갗도 벗김을 당하게 하여, 사람이 스스로 알몸이 된 그 죗값을 치르며 보속했던 것이다.
11. 그런데 나는 이 신비에서 다른 어디에서보다 더 많은 피를 쏟았다. 그것은 사람을 또 하나의 옷인 피 옷으로 덮어 싸기에 넉넉한 양이었다. 이 옷으로 그를 감싸 따뜻하게 하고 깨끗이 씻어 주면서 내 뜻의 왕다운 옷을 받아 입을 준비를 시키기 위함이었다.”
12. 나는 이 말씀을 듣고 다소 아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랑하올 저의 예수님, 사람은 당신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에 옷을 입을 필요와 부끄러움과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셨고 아버지와 하나이셨으며, 당신의 엄마께서도 그분 자신의 뜻을 행하신 적이 결코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두 분 다 옷과 음식을 필요로 하셨고 추위와 더위를 느끼셨으니, 어떻게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딸아, 바로 네 말대로 사람이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워하고 여러 가지 자연적인 불행을 겪게 된 것은 바로 내 뜻의 감미로운 매력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악을 저지른 것은 그의 혼이었지 몸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몸도 사람의 사악한 뜻의 공범자가 된 것처럼 간접적으로 그렇게 하였다. 사람의 본성이 그의 악한 의지에 의해 더럽혀진 듯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혼과 몸이, 저질러진 악의 고통을 같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4. 나로 말하자면, 과연 항상 지고한 뜻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 와서 만나고자 한 것은 무죄한 인간이 아니라 죄 앞에 있는 인간이었다. 즉, 죄 있는 인간과 그의 모든 비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모든 죄악을 스스로 떠맡고, 그들 중의 한 사람인 것처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의 제약을 받으면서 그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했다.
15. 그러나 내 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옷이든 음식이든 다른 무엇이든 아무것도 아쉽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나의 뜨거운 사랑을 증명하려고, 모든 것 속에서, 심지어 내가 창조했던 지극히 깨끗한 것들 속에서도 나 자신을 희생하기를 원하였다.
16. 게다가 그 희생은 내 거룩하신 아버지로부터 이것을 얻어 내기 위한 간청으로 쓰였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시고, 아버지께 완전히 바쳐진 나의 뜻을 보시고, 인간에게 우리 뜻의 기품 있고 왕다운 옷을 다시 입혀 주시는 것 말이다.”
16권-35, 항구도 해변도 없는, 빛과 불의 바다.
1924년 1월 20일
1. 선 자체이신 내 사랑하올 분의 일상적인 부재로 힘든 처지에 놓여 있었다. 내 가련한 영혼 속에 태양과 따뜻함과 미소와 행복이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 없이 쓰디쓴 고통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그분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어느 때나 내게는 한밤중이었고, 그분 부재의 추위로 꽁꽁 얼어 감각이 마비된다. 어쩔 수 없이 불행해진다. 그렇게 괴로움에 짓눌린 상태로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2. “내 딸아, 용기를 내어라. 괴로움에 잡아먹히지 마라. 괴로워하는 너를 볼 때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를 네가 안다면... 어찌나 괴로운지 그런 너를 보지 않으려고 잠들게 할 정도다. 그렇지만 나는 네 옆에 남아 있다. 너를 떠나지 않는다. 네가 잠자는 동안, 깨어 있다면 나랑 같이 할 일을 너 대신 한다. 잠자기를 원한 것은 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것이니까 네가 할 일을 보충하는 것이다.
3.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겠느냐? 네가 곁에 있는 나를 느낄 수 없어서 안절부절못하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볼 때 - 왜냐하면 내 부재의 고통 속에 있는 너를 잠들게 했으니까 - 나도 바작바작 가슴을 졸인다는 것을 네가 안다면! 사실 고통은 네가 겪고 있지만 나 역시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내 뜻의 끈이 들어와 너를 더 단단히 묶는다. 우리의 결합 관계를 더 돈독히 하려는 것이다.
4. 그러니 용기를 내고, 이것을 기억하여라. 너는 내 뜻 안에서 달리는 내 작은 배다. 그리고 이 거룩한 뜻은 물로 이루어진 바다가 아니다. 여느 바다에는 항구와 해안이 있어서 작은 배며 큰 배며 탑승자들이 항해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거나 오락을 즐기려고 뭍으로 오르고, 많은 선객들은 다시 배를 타러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내 뜻의 바다는 빛과 불의 바다이고, 항구도 해안도 없다.
5. 내 작은 배는 따라서 정박하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이 바다를 가로질러 달리고 그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너의 심장 박동과 행위들 하나하나가 저마다 무변의 영원 전체를 주파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저 영원한 심장 박동과 행위에 연결시키면서 그렇게 하는데, 영원한 심장 박동과 행위란 각 사람의 그것을 말한다. 너의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그 모두를 가로지르며 영원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6. 그렇게 하면서 네가 (우리 성삼위의) 신성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져가고 또 우리에게 가져와야 한다. 이 신성이 그것을 주고 또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주고 있는 동안에는 받지 못하기에, 우리가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에 대한 보답을 받을 수 있도록 내 뜻의 무한한 바다를 가로질러 다닐 임무가 이 작은 배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7. 그런데 네가 괴로움에 짓눌려 있으면 이 바다를 가로지르며 돌아다니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내 뜻의 바다는 내작은 배의 쏜살같은 순회가 일으키는 파동이 감지되지 않으므로 너를 더욱더 태울 것이고, 너는 내 부재로 인해 더욱더 안절부절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이 순회를 계속하면 마치 살랑살랑 불어오는 감미로운 미풍처럼 되리니, 이 미풍이 우리의 불을 더욱 성하게 하는 한편, 너 자신에게는 내 부재의 고통을 누그러지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16권-36, 예수님께서 ‘구원 피앗’을 ‘창조 피앗’과 함께 엮으신 것처럼
‘셋째 피앗’도 그 두 ‘피앗’과 함께 엮어 짜라고 말씀하시다.
1924년 1월 23일
1.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있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피앗’이 온 우주를 만들어 내었다. ‘피앗’으로 하느님께서 만물 안에 인간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날인하여 나타내 보이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토록 힘 있고 조화가 넘치는 ‘피앗’이 하느님의 가슴에서 피조물을 향해 발해졌음을 알 수 있다.
2. ‘피앗’은 또 구원 사업을 이루었다. 영원하신 말씀께서 행하신 모든 것이다. ‘피앗’이 존재하고, 그 모든 것을 화관처럼 둘러싸며 하나하나에게 생명을 준다. 그러므로 ‘창조 피앗’과 ‘‘구원 피앗’이 함께 엮어 있고, 서로 안에서 메아리치며 단 하나의 ‘피앗’을 이루고 있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피앗’에 대한 보답으로 모든 피조물의 행위를 함께 엮으셨기 때문이다.
3. 흠숭하올 예수님께서는 이제,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 ‘셋째 피앗’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내게 여러 번 하셨다. 한데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창조 피앗’과 ‘구원 피앗’과 함께 엮을 수 있을 만큼 많은 ‘피앗’을 누가 만들어 낼 것인가?'
4. 내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지고하신 임금님께서 그분의 전능하신 ‘피앗’으로 창조된 만물 안에 인류에 대한 사랑을 그리도 많이 쏟아내 보이셨으니, 그분의 아들인 내가 그분과 같은 ‘피앗’으로 그분의 사랑에 보답할 만큼 많은 행위를 하면서 내 ‘피앗’을 그분의 ‘피앗’과 함께 엮는 것은 마땅하고도 옳은 일이었다. 이는 인간적이며 신적인 ‘피앗’이 그분의 ‘피앗’과 입맞춤을 주고받으며 땅에서 떠올라 그 ‘피앗’과 함께 엮여지면서 모든 피조물의 사랑의 보답을 대신 바치기 위함이었다.
5. 내가 지상에 왔을 때까지 모든 피조물을 통해 두루 퍼져 있었던 ‘피앗’은 다만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오자 더 이상을 하나가 아니었다. 사실 나의 첫째가는 임무는 그 ‘영원한 피앗’ 안에서 내 아버지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며 발하셨던 ‘피앗’ 과 같은 수의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창조 피앗’이 나의 ‘피앗’을 유쾌하고 어울리는 동반자로 삼게 되었다.
6. 그런데 이 '피앗'은 이제 둘인 채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셋째 피앗'을 바란다. 셋으로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셋째 피앗'을 행할 사람이 바로 너다. 이 때문에 내가 너를 여러 차례 너 자신 밖으로 끌어내어 바로 '창조 피앗'과 '구원 피앗' 안에 놓아두었다. 네가 그 안을 계속 날아다니게 하려는 것이었고, 그렇게 너의 '피앗'을 우리의 '피앗'과 함께 엮음에 따라, '창조 피앗'과 '구원 피앗'이 너 자신의 것인 '셋째 피앗'에 의해 함께 엮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7. 네가 우리의 '피앗' 안에서 활동하면 할수록 우리 '피앗'의 길에 그만큼 더 빨리 다다르게 될 것이다. '창조 피앗'을 통해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들이, 곧 우주 만물이 우리에게서 나왔던 것처럼, 또 '구원 피앗'이 피조물의 모든 행위를 대신하면서 길 잃은 자녀를 손잡고 이끌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데려갔던 것처럼, '셋째 피앗'도 일단 궤도에 오르게 된면 그 결과가 드러나 보일 것이다. 그것은 내 뜻이 알려지고 사랑받으며 통치권을 잡고 마침내 땅에도 이 뜻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8. 우리의 '피앗'과 함께 엮게 될 네 행위들의 수를 늘려 가면, 그 증가되는 각각의 행위마다 네가 우리의 '피앗'으로 하여금 받게 할 인간적인 입맞춤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일치를 이루도록 네가 그 둘 사이에 형성할 더욱 돈독한 유대가 될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스스로를 알리며 자신의 왕권을 잡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9.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일이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은 저절로 올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너한테 내 뜻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빠뜨리지 말고 다 쓰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이 길이기 때문이요, 지식의 빛이 사람들을 불러 귀 기울이며 알아듣게 하는 나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팔이 소리를 많이 낼수록 - 이 소리의 수는 알려 주고자 하는 지식의 수와 같다. -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올 것이다.
10. 이 지식은 경우에 따라서 설교자나 교사의 태도를 취할 때도 있고, 자비로운 아버지, 또는 사랑이 넘치는 연인의 태도를 취할 때도 있다. 요컨대 그것은 마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사로잡고 모든 면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모든 수단을 수중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담고 있는 지식이 많을수록 알리는 수단도 그만큼 많은 것이다.”
11.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거의 어찌할 바를 모르도록 당황한 나는 “다정하신 저의 사랑이시여, 당신께서는 제가 얼마나 비참한 인간이며 또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저의 행위들로 ‘창조 피앗’ 및 ‘구원 피앗’의 길과 같은 길에 다다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생각됩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12. “그러면 우리의 ‘피앗’이 원하는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냐? 우리의 ‘피앗’이 창조와 구원 사업에서 그렇게 했다면, 어째서 네 안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겠느냐? 필요한 것은 너의 뜻이다. 내가 내 인성의 뜻에 내 거룩한 ‘피앗’을 날인했던 것처럼 너의 뜻에도 나의 ‘피앗’을 찍어 주겠다. 그러면 우리가 같은 길을 따라갈 것이다.
13. 나의 뜻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의 전지한 능력으로 창조와 구원 사업의 행위들을 네 앞에 놓아 줄 터이니, 너는 쉽사리 너의 행위들로 ‘셋째 피앗’을 우리의 ‘피앗’과 함께 엮어 짤 수 있을 것이다. 어때, 기쁘지 않으냐?”
14. 그런데 내가 보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에 대해 말씀하심에 따라, 마치 태양이 그 자신의 빛 안에 별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과 같이 그분도 그 무한한 빛에 가려지신 듯 내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 말씀드렸다.
“저의 생명이신 예수님, 당신 뜻에 대해 저에게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그럴 때면 당신께서 당신 뜻의 빛 안에 사라지시니 저는 당신을 잃은 채 홀로 남아 있게 됩니다. 당신의 뜻이 저로 하여금 저의 생명이며 저의 전부이신 분을 잃게 하니,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15. 그 점에 대해 예수님은 “딸아, 나의 인성은 내 영원한 뜻보다 작다.” 하시며 설명을 덧붙이셨다.
“내 인성은 그 경계 내지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끝없는 뜻이 그 지식과 더불어 너에게 다가갈 때면, 마치 내 뜻의 빛에 가려지는 것처럼 그 빛 안에 사라진다. 그래서 네가 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네 안에 있으면서, 내 뜻의 갓난아이도 내 인성을 휩싼 것과 같은 빛 안에 사라진 것을 보며 즐거워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함께 있다. 다만 지고한 의지의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셔서 서로를 볼 수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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