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26, 하느님 뜻의 기쁘고 슬픈 역사. 성모님께서 ‘하느님 뜻의 어머니요 여왕’이시며 ‘피앗 볼룬타스 투아’ 사업의 탁월한 모범이신 까닭.
1923년 11월 24일
1. <수난의 시간들> 중 고통의 엄마께서 숨을 거두신 아드님을 받아 안으시고 무덤에 안장하시는 시간을 묵상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엄마, 예수님과 함께 모든 영혼들을 엄마의 팔에 안겨 드립니다. 그들 모두를 엄마의 자녀로 여기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엄마의 마음에 새기시어, 예수님의 상처들 속에 넣어 주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2. 그들은 한없는 고통의 자녀들이니 그렇게 여기시고 사랑해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모든 세대를 하느님의 지고하신 뜻 안에 넣겠습니다. 아무도 빠지지 않게 하여 그들 모두의 이름으로 엄마한테 위안과 따뜻한 동정과 하느님의 위로를 드리려는 것입니다.’
3.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면서
“딸아, 내 고통의 엄마께서 이 모든 자녀들을 어떤 양식으로 기르셨는지 네가 안다면...” 하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오 저의 예수님?” 나의 물음에 그분은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4. “너는 내가 나의 뜻 사명을 위해 뽑는 작은 사람이고, 내 ‘피앗’으로 창조되어 그 안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내 영원한 뜻의 역사를 알려 주고 싶다. 이 영원한 뜻의 기쁨과 슬픔, 그 효과와 무한한 가치, 이 뜻이 행했던 것과 받았던 것, 그리고 이 뜻의 수호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었던 사람에 대해서 말이다.
5. 작은 사람들은 내 말을 더 주의 깊게 듣는다. 그들의 정신이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비운 이들 같아서 누군가가 다른 어떤 음식을 주려고 들면 속이 메슥거리는 것을 느낀다. 작기 때문에 내 뜻의 젖만을 먹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6. 내 뜻은 사랑이 깃든 어머니 이상으로 그 거룩한 가슴에 그들을 붙여 안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게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입을 벌린 채 내 가르침의 젖을 기다리고, 나는 마냥 즐거워한다. 오! 내 뜻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미소를 짓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엉엉 울기도 하는 그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
7. 그런데, 내 뜻의 기원은 영원 속에 있다. 내 뜻 안에 슬픔이 들어온 적은 도무지 없었다. 성삼위 사이에서는 이 뜻이 지극히 높은 일치를 이루고 있었다. 완전히 하나였다. 이 뜻에서 나오는 각각의 행위는 내적인 것이건 외적인 것이건 다 우리에게 끝없는 기쁨과 새로운 만족과 무한한 행복을 주었다.
8. 그리고 우리가 삼라만상의 기구를 조성하고자 했을 때에 이 뜻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광과 조화와 영예를 주었는지 모른다! ‘피앗’이 발해지자마자 이 ‘피앗’이 우리의 아름다움, 우리의 빛, 우리의 권능과 질서와 조화와 사랑과 거룩함 및 모든 것을 널리 퍼뜨렸다.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의 '피앗'에 의해 피어난 우리 신성의 꽃송이들이 온 우주에 덮여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덕행들에 의해 영광을 받았다.
9. 우리의 뜻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랑에 사로잡혀 사람을 창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네가 이미 알고 있으므로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10. 아! 우리의 뜻에 처음으로 슬픔을 끼친 것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를 그토록 사랑하며 행복하게 해 준 이를 비탄에 잠기게 하려고 들었다. 우리의 뜻은 그러므로, 아들이 어머니의 뜻을 저버린 탓에, 오직 그 이유로 불구자가 되고 소경이 되었기 때문에 슬피 우는 자애로운 어머니보다 더 슬피 울었다.
11. 나의 뜻은 사람 안에서 첫 행위자가 되기를 원했었다. 오직 사랑과 기쁨과 행복과 풍요의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행동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뜻을 행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서 떨어져 나갔다. 절대로 그러지 말았어야 했건마는! 결국 내 뜻은 물러가고, 사람은 온갖 악의 깊은 구렁 속으로 추락하였다.
12. 그러자 이 두 뜻을 다시 결합하기 위하여,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지닐 사람이 필요하였다. 영원한 말씀인 내가 이 사람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할 것이기에, 우리 성삼위는 내가 육화하여 사람이 되기로 함께 결정하였다. 세상으로 가서 인간을 구원하고 단절된 두 뜻을 다시 결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어디로 내려갈것인가? 누가 자기 창조주께 자기의 살을 빌려 줄 것인가?
13.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한 피조물을 택하였고, 장차 올 구원자의 공로를 선취하여 이 사람에게서 원죄를 면해 주었다. 이 사람의 뜻은 우리의 뜻과 하나였다. 우리 뜻의 역사를 알아들은 천상적 피조물이었으니, 우리가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그 자초지종을 낱낱이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14. 우리 뜻의 슬픔에 대해서, 곧 배은망덕한 인간이 우리의 뜻에서 자신의 뜻을 갈라놓음으로써 우리의 뜻을 신적 영역 안에만 머물러 있게 했고, 그렇게 우리 뜻의 계획을 방해하여 이 뜻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선익과 인간이 창조된 목적을 알려 줄 수 없게 가로막았다는 것에 대해서였다.
15. 우리에게 주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또한 우리에게서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것은 가난해짐 없이 부요하게 하는 것이요, 본성으로 우리 자신인 것을 은총으로 피조물 안에 형성하는 것이며, 우리가 소유한 것을 주려고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주면서 우리의 사랑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가고, 우리의 뜻이 축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모든 피조물을 만들려고 했겠느냐?
16. 그러므로 우리의 소중한 모상들, 곧 우리의 자녀들에게 줄 수 없어지는 것이 우리 지고한 뜻에게는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우리의 뜻과 아무 관계없이 - 왜냐하면 인간 스스로 이 관계를 끊어 버렸으니까 - 움직이고 말하며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또 그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면 은총과 빛과 성덕과 지식 등이 강물처럼 그에게로 흘러갔을 터인데 그럴 수 없어진 것을 보면서, 우리의 뜻은 비탄에 잠겼던 것이다.
17. 피조물의 각 행위가 우리에게는 하나하나 다 슬픔이었으니, 그 행위마다 신적인 가치가 비어 있고 아름다움도 거룩함도 없어서 우리의 행위들과는 완전히 딴판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 이 천상적인 아기는 우리의 그 지극한 슬픔과 우리의 뜻을 떠난 인간의 엄청난 불행을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 모른다! 우리의 그 슬픔과 인간의 그 불행을 보고, 오, 얼마나 자주 뜨거운 눈물을 쏟곤 했던지!
18. 그러므로 이 천상 아기는 두려움으로 떨면서 자기 자신의 뜻에는 단 하나의 행위로도 생명을 주기를 원치 않았다. 이 때문에 언제나 작은 사람으로 있을 수 있었다. 자기의 뜻이 자기 안에서 도무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클 수 있었겠느냐?
19. 하지만 그가 행하지 않았던 것을 우리의 뜻이 행하였다. 우리의 뜻이 그를 온전히 아름답고 거룩하고 신적인 사람이 되게 길렀고, 얼마나 풍요하게 해 주었는지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이 되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 뜻의 기쁨 - 은총과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기적이었다.
20. 그럼에도 그는 너무나 작은 사람으로 남아 있어서 결코 우리의 품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를 수호하기로 가슴 깊이 다짐하였고, 지고한 뜻이 표현하는 모든 비탄에 대해 보상을 바쳤다.
그 자신이 우리의 뜻과 완전히 조화로운 관계 속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모든 행위들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있기도 했으므로, 그들에게 배척당한 우리의 뜻 전체를 자기 안에 흡수하여 이 뜻에 보상을 바치며 이 뜻을 사랑했던 것이다.
21. 또한 그는 우리의 뜻을 그 순결한 마음 안에 맡아 가진 듯 간직하고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뜻을 양식으로 줄 준비도 하였다.
22. 그러니 이 지극히 사랑하올 어머니께서 어떤 양식으로 당신 자녀들을 기르시기로 하셨는지 이제 알겠느냐? 하지만 이와 같이, 그분의 전 생애와 일찍이 알려진 적 없는 그분의 고통과 바로 그분 아들의 생명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23. 그분은 그 이상일 수 없을 만큼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지닌 수많은 칭호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칭호가 그분께 주어질 수 있었으니, 바로 ‘하느님 뜻의 어머니요 여왕’이라는 칭호였다.
24. 그런데, 딸아, 내 엄마께서 구원 사업을 위하여 하셨던 일을 이제 네가 ‘피앗 볼룬타스 투아’ 사업을 위하여 해야 한다. 그러니 너의 뜻이 네 안에 살아 있으면 안 된다. 그리고 각 사람을 위해 내 뜻의 모든 행위를 너 자신의 것으로 맡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내 뜻에 보상을 바치면서, 내 뜻의 양식으로 모든 세대들을 기르는 데 필요한 양식을 전부 네 안에 형성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25. 내 뜻에 대한 각각의 말과 효과마다, 또 하나의 지식이 더해질 때마다, 그들은 이 음식에 더욱더 입맛이 당기는 것을 느끼며 게걸스레 먹게 될 것이다. 내 의지에 대하여 내가 하는 모든 말이 그들의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하리니, 결국 그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다른 음식은 먹지 않게 될 것이다.
26. 만약 어떤 음식이 맛깔스럽고 사람의 기운을 회복시키며 병을 낫게 하고 온갖 좋은 맛이 다 들어 있다고 한다면, 더군다나 생기를 주며 사람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한다고들 한다면, 누구든지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이 음식을 먹고자 하지 않겠느냐? 내 뜻이 바로 그런 음식이 될 것이다.
27. 그런데 사람들이 내 뜻을 사랑하고 갈망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는 주의를 기울여 내 뜻이 맡기는 이 지식의 보고를 네 안에 받아들여라. 그러면 또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우리 자녀들을 위한 양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내 엄마를 본받아라.
너 역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겠지만, 이 뜻 앞에서는 어떤 희생도 별것 아니게 보일 것이다. 작은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며 결코 내 품에서 떠나지 마라. 그러면 내 뜻의 역사에 대해 내가 계속 이야기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