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18, 하느님의 뜻이 땅으로 내려오려면,
인간의 뜻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비우고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의 의무.
1923년 10월 16일
1. 예수님의 부재 고통이 내 가련한 마음의 더 깊은 안쪽에 집중된다. 그분이 없이 지내는 밤들이 얼마나 긴지! 예수님 없는, 별도 해도 없는 영원한 밤들인 것 같다. 오직 하나 내게 남아 있는 것은 그분의 사랑하올 뜻뿐이니, 이 뜻 안에서 나 자신을 맡기고 주위를 둘러싼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 안식을 찾을 뿐이다.
2. 아! 예수님, 예수님, 이 고통스러운 마음에 오셔 주십시오. 당신 없이는 도저히 지낼 수 없습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의 부재의 그 끝없는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때, 그분께서 내 안에서 나오셨다. 내 두 손을 잡아 당긴 가슴께에 갖다 붙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4. “딸아, 나의 뜻이 땅으로 내려오려면 너의 뜻이 하늘로 솟아올라야 한다. 너의 뜻이 하늘로 솟아올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집에서 살려면, 인간적인 모든 것, 거룩하지도 순결하지도 올곧지도 않는 모든 것을 그 뜻에서 비워 내어야 한다.
5. 완전히 신화(神化)되지 않은 것, 곧 완전히 우리 (성삼위)로 변화되지 않은 것은 하늘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살 수 없다. 또한 내 뜻이 스스로의 모든 선으로 채울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비운 인간의 뜻을 찾아내지 못하면, 땅으로 내려와 그 자신의 중심 안에서처럼 자신의 생명을 펼칠 수도 없다.
6. 인간의 뜻은 나 자신을 덮어 그 안에 머무르게 하는 아주 얇은 베일이 되어야 한다. 내가 그 안에서 내 생명을 기르고, 기도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면서 원하는 모든 선을 행하는 성체와 거의 비슷한 베일 말이다.
7. 요점을 말하자면, 너의 뜻은 하늘에 들어가고 나의 뜻은 땅에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뜻은 더 이상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존재할 이유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8. 그와 같은 일이 내 인성에 일어났다. 내 인성은 비록 인간적인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는 하느님의 뜻에 생명을 주기 위해 있었을 뿐이다. 그 무엇도 결코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않았으니, 숨쉬기조차 하느님의 뜻 안에서 들이쉬고 내쉬고 했을 뿐이다.
9. 그런 이유로 하느님의 영원한 뜻이 내 인성 안에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다스리고 있었다. 내 인성 안에서 이 뜻의 지상(地上) 생명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바친 나의 뜻은, 때가 오면 하느님의 뜻이 땅으로 내려와 하늘에서와 같이 피조물 가운데서 살기를 간청하였다. 이 땅의 첫 자리를 네가 내 뜻에 주지 않겠느냐?"
10.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하늘에 있는 것 같았다. 단 하나의 지점에서 모든 세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으신 임금님 앞에 엎드려 성삼위의 상호적인 사랑과 흠숭, 그분들의 성덕, 언제나 오직 하나인 그분들의 뜻을 간직하였고, 이를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사랑과 흠숭과 순종과 일치의 보답으로, 그들 모두의 이름으로 바쳤다.
11. 하늘과 땅이,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하여 서로 껴안고 뜻의 일치를 이루는 입맞춤을 주고받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12. “이것이 너의 임무이다. 우리 성삼위 가운데에서 살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너 자신의 것으로 삼고 네 형제들을 대신하여 그것을 우리에게 주는 것 말이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에 끌려 인류에게 묶이게 되기에, 그들을 창조할 때 주었던 것처럼 우리와 그들의 뜻 사이의 일치를 - 이 일치의 숭고한 입맞춤을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줄 수 있게 된다.”
16권-19, 영혼은 예수님께서 씨 뿌리고 수확하며 경작하는 밭이다.
1923년 10월 20일
1 내 안의 모든 것이 깡그리 전멸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분의 부재가 더할 수 없이 깊은 굴욕 속으로 나를 던져 넣은 것일까? 예수님 없이는 영혼 내면이 황폐해지고, 모든 선이 쇠퇴하여 죽어 가고 있는 듯한 것이다.
2 저의 예수님! 저의 예수님! 이건 너무 가혹한 고통입니다! 오! 제 안의 모든 것이 죽어지는 것을 보면서 제 가슴이 피를 쏟고 있습니다. 생명이신 분이, 유일하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저와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내가 그런 상태에 놓여 있었을 때에, 지극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내 가슴에 한 손을 대고 꾹 누르시면서 이르셨다. “딸아, 어찌하여 그리도 괴로워하느냐? 내게 너 자신을 맡기고,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라.
4 네 눈에 모든 것이 쇠퇴하여 죽어 가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네 예수는 그 모든 것을 다시 일으켜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든다.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영혼은 내가 씨 뿌리고 수확하며 일하는 밭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밭은 내 뜻 안에서 살고 있는 영혼이다.
5 이 밭에서는 내가 즐겁게 일한다. 씨를 부릴 때에도 흙투성이가 되지 않는다. 내 뜻이 이 밭을 빛의 밭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밭의 흙이 깨끗하고 순수하고 천상적인 것이어서, 내가 내 뜻의 태양을 이루는 이슬방울과 거의 같은 작은 빛들을 흙 속에 심으면서 즐기는 것이다.
6 오! 영혼의 이 밭이 수많은 빛의 방울들로, 점차 자라나면서 수많은 태양이 될 방울들로 온통 뒤덮여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는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어서 온 하늘이 황홀해하며 바라본다. 그리고 주의를 집중하여, 밭을 이리도 놀라운 솜씨로 경작하고, 그것을 태양으로 변화시킬 만큼 고귀한 씨앗을 소유한 이 천상 농부를 바라본다.
7 이제, 딸아, 이 밭은 내 것이기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일단 태양들이 형성되면 다 거두어 내 뜻의 가장 아름다운 전리품으로 하늘에 가져간다. 그런 다음 다시 밭일을 하러 돌아와서 밭을 전부 갈아엎어 흙을 일군다.
8 이 때문에 내 뜻의 작은 딸은 모든 것이 끝장났다. 자기 안의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찬란하게 빛나던 태양들이 있었던 자리에 내가 뿌린 빛 방울들만 있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이 전멸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수확을 위한 준비다.
9 게다가 나는 이 밭을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고, 수확이 배가 되도록 더 넓히고자 한다. 그러므로 첫눈에 언뜻 보기에는 일이 더 힘들 것 같고 영혼도 더 많은 고통을 치러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 고통들은 땅을 파서 흙을 고르는 괭이와도 같아서, 씨앗을 보다 안전하게 자리잡게 하여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싹트게 한다.
10 수확을 끝낸 밭은 너무나 스산하고 초라해 보이지 않느냐? 그렇지만 다시 씨앗이 뿌려질 때까지 기다려라. 그러면 그것이 전보다 더 꽃다운 모습이 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런즉 너는 내가 하는 대로 맡겨 두고 내 뜻 안에서 살아라. 내 뜻 안에서 살면 언제나 나와 함께 일할 것이다. 우리 함께 작은 빛 방울들을 뿌리자. 누가 더 많이 뿌리는지 겨루어 보자. 그러니까 우리는 때로는 씨를 뿌리고 때로는 쉬면서 언제나 함께 즐거울 것이다.
11 나는 알고 있다. 너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가 너를 떠나면 어쩔까 하는 것 아니냐? 아니다. 아니고말고.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나와 갈라질 수 없는 것이다.”
12 그때 나는 예수님께 “저의 예수님, 전에 당신께서는 사람들에게 징벌을 내리고자 하시기 때문에 오시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그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오시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탄식하시는 듯한 어조로 “그것들은 올 것이다. 그 징벌들은! 아! 네가 만약 안다면!” 하셨다. 그러고 나서 모습을 감추셨다.
16권-20, 불꽃으로 양육되어 불꽃으로 바뀐 비둘기의 비유.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신화될 때에만 비로소 하느님 뜻 안에서 산다고 할 수 있다.
1923년 10월 30일
1 언제나 더 비참하게, 심장이 돌처럼 경직된 상태로 살고 있다.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 고통 때문이다. 참 생명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으니 나는 생명이 없는 느낌이다. 오! 얼마나 자주 같은 말을 이렇게 되뇌곤 하는지!
2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오, 저의 하나뿐인 지고한 선이시여, 어디를 향해 걸음을 옯기셨습니까? 제가 그 발자국을 따라가야 당신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멀리서나마 당신의 두 손에 입 맞춥니다. 그리도 큰 사랑으로 저를 껴안고 당신 가슴에 붙여 주시던 손이 아닙니까! 당신 얼굴에도 흠숭과 입맞춤을 드립니다. 지금은 제게서 멀리 숨어 계시지만 그리도 많은 은총과 아름다움으로 저에게 나타나시던 얼굴이 아닙니까!
3 말씀 좀 해 주십시오.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어느 길로 가야 당신께 다다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제가 어디에서 당신 마음을 상해 드렸기에 이다지도 멀리 달아나셨습니까? 하지만 당신께서는 결코 저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고도 지금 이렇게 떠나 계십니까? 아! 예수님, 예수님,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는 자, 당신의 작은 딸, 귀양살이 중인 이 가련한 자에게 부디 돌아와 주십시오!’
4 그러나 나의 그 모든 탄식과 분별없는 말들을 어떻게 다 적을 수 있으랴! 그러는 사이 의식이 사라지고 있음을 지각했는데, 그때 온통 불타면서 고통으로 버둥대고 있는 비둘기 한 마리와 비둘기 옆에 있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는 뜨거운 입김으로 그 자신의 불꽃을 비둘기에게 불어넣어 먹이고 있었다.
5 비둘기가 다른 어떤 먹이도 먹지 못하게 하면서 그것을 움켜쥐고 자신의 입에 바싹 붙였기 때문에 비둘기는 그에게서 나오는 불꽃을 빨아들여 삼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비둘기는 고통으로 몸을 뒤틀면서 바로 제가 먹은 불꽃으로 변모되었다.
6 내가 이를 보며 놀라워하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어째서 내가 너를 떠날까 두려워하느냐? 너를 떠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떠나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큰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내가 나 자신에게서 따로 떨어질 능력은 없는 것이다.
7 내 뜻을 행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가 내게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나도 그에게서 떨어질 능력이 없다. 뿐만 아니라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의 불꽃을 그에게 먹인다. 너는 온통 불타고 있는 저 비둘기를 보지 않았느냐?
8 그 비둘기는 네 영혼의 표상이었다. 그리고 뜨거운 입김으로 그것을 먹이고 있었던 이는 나였다. 내가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 내 성심에서 쏟아지는 불꽃만을 내 입김으로 먹이는 것을 그토록 즐기는 것이다.
9 너는 알지 못하느냐?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내 뜻의 지극히 순수한 빛으로 여과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걸러지는 것은 압착기에 눌려 짜이는 것보다 순도가 더 높다. 압착기는 모든 것을 분쇄하지만 그 내용물의 껍질과 씨앗의 성분을 다 밖으로 내보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밑바닥에 잔여 성분이 침전되어 언제라도 탁해질 수 있는 것이다.
10 이와 반대로 어떤 것이 여과될 때, 특히 내 빛의 두꺼운 켜를 통해 여과될 때, 그때에는 탁한 무엇을 남길 위험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이 티 없이 깨끗해져서 그것이 통과한 빛의 순도를 방불케 한다.
11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에게 큰 영예가 되는 것이 이것이니, 그가 생각하든지 말하든지 사랑하든지 또 다른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내 뜻이 책임지고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을 이 뜻의 지극히 순수한 빛으로 걸러 낸다는 점이다.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은, 그가 행하는 모든 것 속에 우리 (성삼위)가 행하는 것과 구분되는 것이 없게 하여, 그 모든 것이 서로 손잡고 그들의 유사성을 공유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그분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음을 알았다. 어떤 정원 안에 있었는데, 피곤해서 쉬려고 한 나무 밑에 앉았다. 그러나 햇살이 너무나 강렬히 나를 관통하는 바람에 온 존재가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보다 잎이 무성한 다른 나무 아래로 옮겨 앉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늘이 더 깊어 그 뜨거운 햇볕에 데지 않게 해 줄 것 같아서였다.
13 하지만 한 목소리가 - 내 사랑하올 예수님의 목소리 같았다. -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말하였다.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작열하는 영원한 태양의 빛살을 쐬어야 한다. 빛으로 살고, 빛만을 보며, 오직 빛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영혼을 신화(神化)로 이끌어 간다.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신화될 때, 그때에만 비로소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산다고 할 수 있다.
14. 그러니까 너는 오히려 그 나무 밑에서 나와 내 뜻의 이 천상 에덴 속을 거닐어라. 태양이 너를 속속들이 주사(走査)하여 빛으로 바꾸고, 하느님 안의 신화의 마지막 붓질을 해 줄 수 있도록 말이다.”
15. 그 말씀대로 나는 거닐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저 아래 신부님이 보였다.) ‘순명’이 나 자신 안으로 돌아오라고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