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신성당 주임, 이요한 십자가의 요한 신부님 강론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토빗기의 말씀입니다. 6,10-11; 7,1.9-17; 8,4-9ㄱ
8,4 부모가 방에서 나가 문을 닫자 토비야는 침상에서 일어나 사라에게 말하였다. “여보, 일어나구려. 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5 사라가 일어나자 그들은 기도하며 자기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였다.
토비야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6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 하셨습니다. 7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들은 “아멘, 아멘.” 하고 함께 말하였다. 9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잠을 잤다.
오늘 토빗이야기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토빗이 눈이 멀고 나서 생활이 어려워져서, 4년째 눈이 멀었었죠. 그래서 생활이 어렵고 아내와 새끼 염소문제로 얼굴을 붉히고 나자 돈문제가 생활비가 문제가 되겠다 싶어서 자기가 돈을 빌려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돈을 받아오라고 아들을 보냅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계획을 세우시죠. 그 아들인 토비야를 돕기 위해서 누가 가겠냐 했을때 라파엘 천사가 와서 토비야를 돕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토빗도 구하고 사라도 구하는 결과가 되는 거죠.
오늘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황금률, 제일 중요한 사랑의 이중계명을 말씀해 주시는데, 결국 이 토빗기에 나타나는 토빗의 행동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했던 그 모습이죠.
메데와 메디아는 페르시아의 가장 중요한 두 도시이고 따라서 그곳에 살고 있던 토빗은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을 이스라엘 민족들이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에 우리가 쫒겨왔다. 그래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하느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삶으로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당했던 고통은 정말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시련과 모욕을 당하는 거죠.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부분을 말해줍니다.
내가 복음을 따르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쳤을때 나에게 오는 것은 결코 영광이 아니라 사실은 모욕과 멸시라는 것이지요. 왜냐면 이 세상은 이미 하느님 것이 아니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의 모든 믿음을 시험받는 곳입니다. 따라서 내가 주님을 닮으면 닮을수록 주님이 당하셨던 일을 당하겠죠.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당하셨던 것은 모욕이고 멸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고, 지금 성령께서도 그러시고 구약의 하느님께서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을 극진하게 모셨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이 다윗이후에 솔로몬시대부터 이미 자신의 정치적인 또는 여러가지 국가들 안에서의 동맹때문에 솔로몬이 택했던 제일 좋은 지혜로운 방식은 결혼을 통해서 옆의 나라들과 동맹을 맺는 거였죠. 그 결과가 결국 이방신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게 자신의 아들 밑으로해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하느님으로부터 멸망의 길로 걷는 시초가 됐죠. 이스라엘에서조차도 하느님은 멸시를 당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해주신 그 모든일을 넘어서면서 멸시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성령의 시대에 우리가 성령을 대하는 것도...
그래서, 기도란 과연 무엇인가? 지금 메르스가 굉장히 많이 퍼져서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하고 계실텐데, 기도란 무엇인가? 내가 기도한다고 해서 갑자기 메르스가 확 없어진다든지,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그냥 사라지는게 아니죠. 그것이 왜 주님께로부터 허락이 되었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퍼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일수 있는 마음,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내가 주님께로 더 갈 수 있도록 나를 일깨우는게 기도죠. 즉, 하느님을 바꾸는게 아니라 나와 우리 인간을 바꾸도록 만드는 것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오늘 토비야가 기도의 아주 중요한 모습을 보여줬죠. 사라와 함께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기도를 합니다. 결혼이 인간의 욕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셨던 사명, 하느님 뜻을 따르라고 부르셨던 그 소명을 말하면서 왜 우리 가톨릭이 혼인성사를 칠성사로 지정하면서 부부의 관계가 정말 성사인가를 잘 보여주는 그 기초가 되는 기도, 그 말씀이라고 보여지는 거죠. 바로 부부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는 거죠.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바로 기도라는 것은 이처럼 하느님께서 이미 하고 계시는 일을 내가 기억하는 거죠. 따라서 하느님께서 우리나라에 메르스를 허락하셨다면, 다윗의 흑사병처럼... 다윗이 잘못을 했죠. 그래서 흑사병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안에서도 당신의 자비를 베푸시죠. 예루살렘을 치려고 칼을 뽑으셨다가 “됐다. 이제 그만하라”이렇게 이야기하시죠.
우리가 분명히 그것을 통해서 고통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걸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되는 점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되는 것은 ‘기도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거다’ 라는 마술이 아니라 내가 기도를 통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이 무엇때문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 안에서 주님께서 들려주시고자하는 그 메세지를 알아낼수 있는 그런 의미의 기도가 필요한 것이죠.
그것을 우리가 빨리 알아들으면 주님께서 더이상 할 필요가 없으니깐 끝내시게 되죠. 다윗이 흑사병을 끝낼 수 있던 것도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윗이 기도를 하자 끝이 났죠. 우리의 기도의 참된 모습은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닫는 것 기억해 내는 것. 그것이 올바른 기도라고 말할 수 있죠.
오늘 성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성시간을 통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우리가 깨닫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드릴 수 있는 “내가 너희를 이렇게 인간이 되는 것만으로 부족해서, 너희에게 먹히기 위해서 음식이 되어서 너희 앞에 있다. 그럼 너희는 바로 이처럼 너희에게 먹히기 위해서 있는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성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리고 그분께 우리의 사랑을 더욱 더 드려야 되는 거죠.
“예, 주님, 저도 당신께 먹히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드리는 그런 미사와 성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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